소설리스트

389화 (388/1,284)

 # 389

회귀의 전설

389장. 300일 선물

‘아!’

아린은 선명한 꿈을 꿨다.

황금빛 마나의 구름 위를 걷는 환상.

예전에 스승님이 말했던 그것과 같았다.

각자에게 찾아온 환상은 다르지만 그 맛과 향기는 똑같다고 했다.

스승님은 그것을 전설의 황금배 맛이라고 했다.

마법사들의 꿈이라 알려진, 마나를 품고 있다는 그 열매의 맛이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마나의 보고 황금배.

직접 맡아보니 알 것 같았다.

아린은 눈을 감은 상태로 마음껏 그 향기를 맡았다.

폐부에 가득 찼던 탁한 기운이 밖으로 새어나가고 새로운 마나가 들어찼다.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으로 새로운 서클이 탄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다.

하지만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말을 듣는 순간 쿵! 하고 서클이 진동했다.

영주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실패했다.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니 마력이 점점 뜨거워졌다.

낯선 언어로 된 시들이 연속해서 서클을 두들겼다.

시를 쓴 이가 누군지 모르지만 심득의 세계를 맛본 자의 글이었다.

언어는 그 자체로 깨달음이라고 스승님은 말씀했다.

영주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는 위대한 마법사의 룬어 주문 같았다.

그림을 그리다 하늘의 본성이라 깨닫는 처음 시의 구절에서 아린은 아득한 기쁨을 맛봤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멋대로 흐리기 시작한 마력.

스승님도 7서클이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하셨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라고 했다.

세상 끝 바다에서 몰아치는 폭풍에 온몸이 찢겨나가는 위기 속에서 얻었다는 스승님의 깨달음.

아린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깨달음은 각자가 태어난 환경과 배움이 달라 각자에게 찾아오는 방법도 다른 법.

그런데 오늘 그 벽이 깨졌다.

다른 서클과 달리 유난히 힘든 7서클 이상의 벽이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단순한 이치가 이렇게 큰 작용을 할 줄 몰랐다.

6서클까지는 대마법사 칭호를 받았던 사부님이 이끌어 주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어린 시절부터 대마법사의 마력 샤워로 다른 마법사와 다른 길을 걸었던 아린도 벽에 막혔다.

머리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과 육신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

수많은 선배 마법사들의 경험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 깨는 벽이라 불리는 7서클의 벽.

여기에 막혀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좌절했다.

7서클에 오르는 순간 왕국 마탑을 맡을 수 있는 선택권이 생겼다.

대형 마탑에서도 장로급 소리를 들었다.

7서클에 드는 게 어려운 만큼 대우 또한 엄청났다.

‘이제……. 거의 왔어!’

아린은 마탑이나 왕궁 마법사 정도가 꿈이 아니었다.

어느 날 듣게 된 자신에 관련한 출생의 비밀.

말도 안 되게 엄청난 실력의 마법사였던 스승님이 온전히 자신만을 돌봐온 이유를 알아버렸다.

스승님의 비밀 마탑에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보화가 숨겨져 있었다.

평생 아니 수천 년은 떵떵거리면 살 수 있을 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숨겨진 위대한 가문의 재산이었다.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할 가문.

7서클에 올라서야만 개방이 허락됐다.

이제는 당당히 마법의 문을 열고 가져갈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작될 새로운 가문의 역사.

혼자서는 벅찼다.

스승님이 마나의 품으로 돌아간 뒤 세상에는 믿을 게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스르르르릇.

완벽하게 서클이 완성됐다.

심장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 강력한 일곱 개의 고리.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일개 군단 정도는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대범위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마법사가 됐다.

생각보다 심장은 요동치지 않았다.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졌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고요한 마력의 흐름이 알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 뒤에 있는 남자도 느껴졌다.

아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 멍해 있는 영주.

그녀가 방금 무엇을 얻었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흐윽…….”

아린은 막혔던 벽을 깨트려준 영주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속절없이 영주 품에 안겼다.

세상에 던져진 상처 입은 영혼의 자신을 온전한 한 사람으로 봐준 영주.

영주는 품에 안긴 아린을 부드럽게 안아줬다.

***

세상에! 떡이 두 개나 굴러 들어왔다.

얼떨결에 7서클 마법사 옆에 있다가 엉겁결에 깨달음을 얻어 버렸다.

7서클 마법 공식은 없지만 7서클 마법사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마력의 질과 양의 차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파이어 볼로 성문도 거뜬히 박살낼 수 있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득템이었다.

그리고 품에 안긴 아린.

그녀를 얻게 된 순간 영지는 7서클 마법사가 수호하는 위엄이 넘치는 영지가 된 것이다.

“흑……. 고마워요…… 영주님……. 흐윽.”

아린! 내가 고마워!

난 그녀처럼 울지 못했다.

입이 찢어지려는 거 억지로 참았다.

- 엎어져도 7서클 마법사 앞이라니……. 후우, 이런 불공평한 X 같은 세상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알파닥이 속내를 숨기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지가 마치 살아 있는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 칭호가 ‘욕심 많은 복돼지’로 변경 됐습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알파닥 말을 가볍게 씹어줬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는 말도 안 되는 능력자였지만 요즘은 녀석이 전혀 안 부러웠다.

그래봐야 내 시다바리였다.

“흐윽……. 흐으윽.”

아린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이제 괜찮아?”

부드러운 시선으로 아린을 보며 물었다.

눈물범벅이 된 아린.

“저 버리지 말아줘요.”

“응???”

“이제 영주님과 함께 할 거예요.”

아니 뭘?

아린의 맹세를 담은 말에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등을 토닥이는 사이에서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오늘이……. 300일이에요.”

마법사라 계산도 정확했다.

“100일째, 200일째 영주님께 선물만 받았는데……. 오늘은 제가 할 거예요.”

선물? 뭐?

스윽.

“!!!”

그때 갑자기 내 입술이 따뜻하고 보드라운 것에 덮여 버렸다.

눈동자가 황소 눈알처럼 커졌다.

눈을 감고 파르르 떨고 있는 용기 있는 7서클 여마법사.

서툴렀다.

아린의 첫 키스가 확실했다.

한쪽은 천상의 여신 못지않은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반대쪽은 지옥의 화신 같은 아린.

그녀의 과감한 선택에 나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 아린! 

나도 이곳에서는……. 너만 바라볼게!

- 이런 미친 X 바람둥이 같으니라고! @#$$$%!

귓가에 들려오는 알파닥의 걸쭉한 욕설.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제 대한민국 법적 미성년자도 아니다.

무엇보다……. 아린의 입술은 생각지 못하게 달콤하고…….

끝내줬다.

***

“주군. 올해 세출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가?”

“밀과 각종 곡식은 자급자족할 정도가 됐습니다. 옷감을 비롯해 여러 물건들과 교환해도 영지 운영에 지장이 없을 정도입니다. 주군의 영도력 덕분에 단시일에 영지가 안정권에 들었습니다!”

영지 상황을 보고하는 카르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모두 다 주군의 성은 덕분이옵니다!”

기사 카르스……. 진짜 일 잘한다.

탈만과는 질적으로 좀 달랐다.

체계적으로 기사 수업을 받은 탓인지 이것저것 능력이 많았다.

특히 아부가 정말 듣기 좋았다.

가식도 아니고 진심을 담아 충심을 어필하는 저 모습…….

“모두 다 경 덕분이다.”

난 공을 아랫사람에게 돌릴 줄 아는 남자다.

“황공하옵니다!”

이곳에서는 백작 귀족 영주요 지구에서는 정1품 대감이다.

관직의 끝을 달리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내놓고 자랑 못했다.

귀신 왕에게 정식으로 받은 품계임에도 누가 나의 말을 믿어주겠나.

또 이계에서 백작 작위를 받았다고 말하면 당장 미친 놈 되기에 조건이 완벽했다.

“겨울 준비는 다 끝났나?”

“장작과 석탄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목욕탕 건설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강가의 물을 끌어다 성안에 대형 목욕탕을 건설 중이다.

로마가 칭송받는 이유가 시민의 청결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정복한 대부분 곳에 목욕탕, 신전, 극장이 존재했다.

잘 믿고 잘 씻고 잘 노는 민족이 바로 로마인이었다.

마력석을 이용하면 목욕탕 돌리는 거 일도 아니었다.

영주가 조금만 풀면 모두가 땡큐였다.

그런데 이곳 영주들이 그 이치를 모르고 그걸 싫어했다.

모두 다 자기 소유라 생각해 나누고 베푸는 일에 인색했다.

난 그런 놈 되기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주라고 만나기만 하면 고개를 땅에 박는 사람들 천지였다.

이곳 사회 시스템까지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최대한의 인간적 도리는 아끼지 않았다.

“상단들은 몇 곳이나 들어왔나?”

“허가를 받은 상단 여섯 곳과 새로이 타진 중인 상단이 두 곳 더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군.”

“영주님의 은혜를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식기와 시계는 어디서 짝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걸 얻기 위해 영지에 들어온 상단들은 원가에 상품들을 넘겼다.

그 덕에 영지민들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밀을 팔아서도 생활이 됐다.

잘 수 있는 집과 굶지 않게 먹을 음식, 아프지 않으면 바라는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드워프들 물건이 다른 쪽에서 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드워프 물건?”

“영주님을 통해 얻은 물건이 아닌 과거에 그들이 직접 인간들에게 팔았던 것들입니다. 그들이 무기 하나는 끝내주게 만듭니다.”

“그래?”

“영주님과 거래하는 드워프들과 다른 일족일 겁니다.”

내가 아는 드워프는 강릉에서 공장 돌리고 있다.

“그렇겠지.”

“그래도 영주님이 취급하는 특별한 제품을 따라올 수 없을 겁니다.”

기사 카르스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절대 여기서도 비밀을 깔 수 없었다.

원가를 알면 폭리를 취했다고 전쟁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럼 올 겨울 일은 거의 끝난 건가?”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습니다.”

카르스가 주저하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산에 눈이 쌓이면 오크들이나 마수들이 영지를 침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토벌단을 꾸려…….”

“됐다. 내가 해결하겠다.”

“네? 주군께서 말입니까?”

7서클 마법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정령들과의 친화력을 위해서 실전은 필수였다.

지구에서 해결해야 할 위기도 산재해 있고 여전히 문제들이 끝나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끈적끈적한 어둠의 기운이 감지 됐다.

조만간 뭔 일이 터질 게 확실했다.

그 전에 실전 경험을 쌓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타다다닥.

“주, 주군!”

그때 밖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 너머에서 탈만 경의 흥분한 목소리.

“들어오라.”

끼이이익.

“주군! 왔습니다! 왔어요!”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탈만 경이 소리쳤다.

“뭐가 말인가?”

“시, 신전의 사제들이 드디어 왔습니다!”

“뭐라고? 신전의 사제들이!”

집나간 며느리들도 시댁 돈 냄새 맡으면 돌아온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처럼 영지가 살 만해지자 신전에서 드디어 사제들을 파견했다.

영지민들의 심신 안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곳의 종교 집단.

그들과의 첫 대면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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