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6화 (385/1,284)

 # 386

회귀의 전설

386장. 희망을 주는 남자 (1)

“정말……. 사람들이 귀인을 몰라본다니까. TS 그룹이 어디야?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그렇게 통 크게 체육계를 위해 이바지하는 그룹이 어디 있어? 그런데 감히 그쪽에서 밀고 있는 선수를 발로 차? 내 이것들 교육 단단히 시키고 말겠어!”

“여보. 코치들 화끈하게 조져요! 그것들이 선수들을 우습게 봐서 그래요.”

“그렇지? 흐흐. 우리 마누라가 역시 말이 잘 통해~. 그런 의미에서 찐하게 러브 샷?”

“아잉…….”

혼련본부장 고승표는 집에 들어와 아내와 소주잔을 나눴다.

바닥을 기었던 어려운 시절부터 함께했던 아내는 곱게 늙는 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고생시켰던 게 미안해 고승표는 한눈 한 번 피우지 않았다.

대한체육회가 공공기관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연봉이 박했다.

위에서 떨어져 합류한 낙하산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상당한 위치까지 승진했다.

아내의 내조가 고마운 줄 알았다.

오십 대지만 마음은 언제나 청춘으로 살았다.

“크아~ 맛있다.”

아내가 끓여준 시원한 동태탕에 마시는 소주는 늘 기가 막혔다.

얼굴은 고만고만하지만 음식 솜씨가 끝내주는 마누라는 평생을 두고 복덩이였다.

애들도 무난하게 서울권 대학에 입학했다.

아내의 내조가 있기에 이만큼 삶이 편안하고 이 자리까지 승진했다고 고승표는 믿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그때 고승표 핸드폰이 울렸다.

“아니 이 시간에 뭐야? 내일이 주말인 거 모르나…….”

“중요한 전화일 수 있잖아요. 한 번 받아 봐요.”

분위기를 깨는 전화벨 소리에 고승표는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헛!”

하지만 곧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 늦은 밤에 미안해요.

“아닙니다! 새벽에 전화하셔도 괜찮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회장? 체육회 회장님?’

고승표 아내는 남편의 긴장한 모습에 덩달아 귀를 쫑긋 세웠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느낌이 좋았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 고 본부장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장태산 군은 철저하게 제가 커버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 그게 아니라 오늘 그룹 차원에서 국가 체육인재 육성을 위해 긴급 투자금을 책정했습니다.

“네?”

그룹 차원의 투자금이라는 소리에 핸드폰을 잡고 있던 고승표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아내.

- 진천 선수촌 있지 않습니까.

“네, 네 있습니다. 2년 뒤에 1차 완공될 예정입니다.”

- 그곳하고 태백선수촌 시설 건축 및 개선에 자금을 투입해 집행할 생각입니다.

꿀꺽.

자금이라는 말에 고승표는 침을 삼켰다.

뭔지 모르지만 엄청난 대박이었다.

체육회가 아닌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줬다는 건 의미가 남달랐다.

“총 투자 금액을 얼마쯤으로…….”

고승표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 문제는 언제나 예민한 사안이었다.

- 초기 투자금으로 큰 거 한 장 생각하고 있습니다.

“100억 정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도 엄청난 지원금이었다.

TS 그룹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는 금액이 수십억에 달했기에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 1000억입니다.

“네……. 1000억……. 네? 1000억요!!!”

고승표는 귀를 의심하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진천선수촌 총 공사비가 5000억 정도로 잡혀 있었다.

그것도 몇 년에 걸쳐 어렵게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 누적된 자금이었다.

그런데 일개 기업에서 1000억을 지원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 선투자 되는 1차 집행 금액입니다.

“회, 회장님!”

- 그렇게 알고 협회와 협의해 보시고 찾아오십시오. 그럼…….

통화가 끊겼다.

자신을 통해 1000억 이상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하관우 회장.

느닷없는 그의 통보에 고승표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여, 여보. 진짜 1000억이래요?”

가정주부지만 고승표 아내는 지금 통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이제부터 남편은 절대 승진에서 밀리거나 잘릴 염려가 없었다.

든든한 TS 그룹 회장의 배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고승표는 금요일 저녁 고요한 야밤이라는 것도 잊고 아파트 거실에서 짐승처럼 포효를 터트렸다.

***

타다다닥 탁탁탁.

‘뭐야? 오늘 왜 이렇게 몸이 가벼워?’

조영준은 아침 일찍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른 날 같지 않은 이상함을 느꼈다.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웠다.

특별히 컨디션을 위해 한 게 없었다.

저녁에 장태산과 치킨에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잠든 게 다였다.

그런데 평소처럼 눈 뜬 아침이 달랐다.

“어? 선배 오늘 좋아 보인다. 뭐 좋은 일 있어?”

같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동료이자 썸을 타고 있는 권예림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오늘 좀 이상하네?”

런닝머신에서 내려와 벤치 프레스로 다가가는 조영준.

스키 선수지만 근력 운동은 필수였다.

평소 80킬로 정도를 들었던 조영준이 여느 날처럼 자세를 잡았다.

“!!!”

쑥 하고 바가 위로 가볍게 올라가 버렸다.

이상하게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와? 뭐야? 그거 방금 전 역도 애들이 들어 올린 건데…….”

“130 아냐?”

“쟤들 크로스 애들이잖아…….”

사방에서 운동하던 선수들이 조영준을 보며 수군거렸다.

평소 130킬로그램을 쉽게 들어 올리는 선수가 드물었다.

자칫 근육이 파열될 우려가 있었다.

그런 마당에 스키 선수가 130 무게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슥슥슥.

조영준은 신기한 현상에 빠르게 벤치 프레스를 계속 했다.

이 정도 무게라면 당연히 근육이 파열될 정도로 큰 고통이 몰려와야 했다.

하지만 몇 차례 더 들었다 놨다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숨도 가빠오지 않았다.

텅.

벤치 프레스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멍해진 조영준.

‘설마…….’

어제 잠자리에 들기 전 장태산은 조상님이 도울 거라고 했다.

그리고 조영준은 거짓말처럼 돌아가신 할머니 꿈을 꿨다.

몇 해 전 고인이 되신 할머니는 장손인 조영준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꼈다.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 대신에 조영준을 직접 키워 주신 고마운 분이셨다.

돌아가시던 날도 연금을 모아놓은 통장을 내밀며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용돈을 주셨던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동안 그리움에 사무쳐 울었다.

지금도 할머니를 위해 이를 악물고 뛰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TV에 나오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정말로 좋아하셨다.

그런 할머니가 어젯밤 찾아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 됐다, 수고했다’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그리고 눈을 뜨고 맞은 아침.

뭔가 이상하게 변했다.

마법처럼.

“선배……. 뭐야? 어젯밤에 산삼이라도 먹었어?”

같이 몇 년 동안 운동했던 권예림이 정말 놀란 눈으로 물었다.

“잘은 모르겠고……. 이제 나도…….”

‘메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아!’

월등히 좋아진 체력.

어떤 잔기술보다 순수한 인간의 육체 능력이 중심이 되는 노르딕 스키.

조영준은 아침부터 가슴 뛰는 희망을 맛보고 있었다.

‘고맙다. 장태산.’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장태산의 얼굴.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벅차게 따스해졌다.

***

“꺄아아아아악! 오빠 저기 강 건너 북한 맞죠?”

“으흐흐. 휴가다~ 휴가~.”

“파주는 장단콩 두부가 맛있다던데. 오늘 그거 먹는 거예요?”

“이사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사이 더 변한 것 같은데? 오빠……. 또 여자 생겼어?”

“이사님……. 매력 포텐 터진 것 같아. 안겨 봐도 돼요?”

“미나! 너 그러기만 해봐! 오빠는 내 거거든!”

“언니가 나눠 쓰자고 했잖아!”

“언제! 안 돼! 오빠는 고삐리 때부터 내가 찜했어.”

아! 누가 이들의 날 것 같은 모습을 볼까 두려웠다.

과거와 달린 이번 생에는 대한민국 걸그룹 투 탑이 된 FOB.

그녀들과 함께 스타들만 탄다는 스타밴에 함께 탔다.

주말이라 선수촌에서 나왔다.

선수촌장 명의로 나에게는 프리 패스권이 허락됐다.

마음대로 외박 및 외출이 가능해졌다.

독자 훈련을 통해 실력 배양 중이라고 하자 선수들에게 허락되지 않는 여러 특혜들이 주어졌다.

방에도 인터넷 선이 깔렸다.

코치들도 이제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배경이 무섭다는 걸 그들이 알았다.

어젯밤에는 조영준을 수면 마법으로 재우고 마력 샤워를 시켜줬다.

운동선수들의 흔한 증상인 비틀어진 뼈와 근육, 내장기관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마력을 불어넣어 육체 기능을 극대화 시켰다.

화타의 침술에 마력 샤워까지 더해져서 조영준의 몸은 서양 선수들만큼 달라졌을 것이다.

대신 보통 사람이기에 가끔 마력을 다시 채워져야 했다.

단전이 발달돼 있지 않아 한 달 정도면 곧 방전이 될 것이다.

물론 마력이 없어도 육체가 개조되어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지구력을 품게 된다.

마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사들이 제자나 후배들을 위해 펼치는 마력 샤워.

첫 시술자가 조영준이 되었다.

그렇다고 공짜는 아니다.

조영준의 조상들로부터 카르마 포인트를 받았다.

생각보다 짭짤했다.

그렇게 날이 밟고 난 M.T.S에 갔다.

FOB 멤버들을 쓸어 모아 차에 태웠다.

친구와의 약속을 이행할 때였다.

다만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좀 늦어졌다.

다행히 FOB 멤버들도 행사가 없어 쉬는 타이밍이었다.

여름 노래가 대히트를 쳤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서 과감히 그들을 좀 쉬게 만들었다.

이미지 소모를 가속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겨울에 맞춰 신곡과 안무도 제공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오늘 맴버들 전부를 끌고 나왔다.

차 안은 그녀들이 풍기는 향으로 장난 아니었다.

이제 소녀가 아니라 여인으로 변신하는 시기였다.

독특한 FOB 멤버들의 매력이 온통 나에게 향했다.

섹시, 청순, 요염, 깜직, 귀여움과 발랄함을 모두 맛봤다.

탑급에 이르더니 스스로 광채가 나기 시작하는 그녀들이다.

음원 판매와 광고, 행사로 멤버들은 지난 달 3분기 수익으로 일인당 10억씩 정산을 받았다.

내 말대로 그녀들은 돈을 모아두고 있었다.

연말 정산이 끝나면 서련은 나와 함께 건물을 보기로 했다.

건물주가 되면 앞으로 편하게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연예인들은 잘나갈 때 바짝 벌어둬야 하는 특수한 직업군이었다.

그래야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장님이 그러던데 오빠 진짜 국가대표 됐어?”

“뭐야? 이사님 국가대표야?”

“흐흐. 니들은 몰랐구나~ 우리 오빠 스키 국가대표야~.”

서련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와! 그거 엄청 어려운 건데…….”

“역시 우리 이사님 짱!”

“이사님, 저 스키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안 돼! 내가 배워서 가르쳐 줄게~.”

서련이 철벽방어를 펼쳤지만 쪽수에는 이기지 못했다.

슬금슬금 나에게 다가와 애교를 떠는 멤버들에 의해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는 동안 차 안 가득 달달한 향기는 고문이었다.

“이사님! 혹시 김유나 보셨어요?”

“어?”

“뭐야……. 오빠 그 표정……. 혹시 김유나도 아는 거야?”

막내 조아의 질문에 서련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여자들의 촉은 언제 당해도 무섭다.

몇 달 만에 봐도 사라지지 않는 신기한 스킬이었다.

“가, 같이 운동하니까 알지. 하…… 하하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김유나 까칠하다던데 아니에요?”

미나가 물었다.

“무슨 소리야. 유나 생각보다 부드러운…….”

나도 모르게 나오는 유나에 대한 변명.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혹시 손이라도 잡아 본 거야? 와아! 그 짧은 시간에 김유나가 넘어왔어?”

서련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차마 손이 아니고 발을 잡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사님. 목적지에 다 왔습니다!”

그때 매니저가 날 살려줬다.

선팅 너머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

그렇게 잊고 싶었던 지난 생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운명처럼 같은 곳에서 근무하게 된 내 친구.

그 녀석을 위해 오늘 성대한 이벤트가 벌어질 장소였다.

“와아아…….”

“으아! 저분들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