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4
회귀의 전설
374장. 그분들 (1)
“국가대표… 라고?”
“그렇습니다. 오늘 전해온 정보에 의하면 놈이 동계 올림픽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을 떠난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대인!”
리장창은 잊지 않았다.
세월이 지날수록 놈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였다.
무서운 놈이었다.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운동신경 또한 남달랐다.
보통 인간의 능력이 아니었다.
살수들을 서슴없이 죽일 만큼 이성적이고 냉정했다.
놈의 사업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수시로 미국에 넘어가 로버트 라이언과 수작을 부렸다.
중국몽을 위해 인수하려던 볼부 자동차를 놈이 중간에 가로챘다.
부정할 수 없는 뼈아픈 일격이었다.
볼부는 자동차 사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업이었다.
미국 의회나 행정부 로비도 통하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거금의 로비를 차단시켰다.
장태산에 대한 의심은 점점 커졌다.
놈은 생각보다 주도면밀하고 치밀했다.
형식적으로 로버트 라이언이 전면에 나섰지만 장태산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게 이제는 확실했다.
“기회인가?”
“놈이 거주하는 공간은 철옹성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본가 주변에 성을 쌓고 있다는 첩보도 받았다.
특수부대 출신 경호원들이 항시 가족을 보호했다.
놈에 대한 반격은 보류됐다.
고수가 똑똑한 데다 의심도 많았다.
“올림픽에선 종종 사고가 나는 법이지.”
리장창이 씨익 웃었다.
빠르게 계획이 변경되었다.
“물론입니다. 시국도 어수선하고 탈레반 같은 알라의 뜨거운 후예들이 이런 국제 대회에 테러를 획책하기도 합니다.”
리장창의 말에 제갈유량도 웃으며 답했다.
“아사신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그곳에도 의뢰를 넣어라.”
“존명!”
“절대 우리가 밝혀지면 안 된다.”
“비밀을 엄수토록 하겠습니다!”
제갈유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장태산…. 조금만 기다려라. 질긴 네 목숨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때는 호감을 품었던 청년이었지만 이제는 분명히 제거해야 하는 적이 된 자.
리장창은 조용하게 핫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
제비? 누가? 내가?
차에서 내려 스포츠 백을 메는데 은근히 들려오는 대화 소리.
태릉선수촌에서 자가용 이용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듣고 직접 차를 몰았다.
짐이 제법 많아 좀 큰 차를 이용했다.
미국차도 비싼 차는 쓸 만했다.
선수촌에 일단 입소하지만 태릉에만 있을 수 없었다.
사방에 벌려놓은 사업이 많았다.
볼부 매각 기일이 바로 며칠 후였다.
포드가 미국 정부 자금을 사용하고 있어 매각이 생각보다 늦어졌다.
일시적으로 포드는 미국 정부 기업이 됐다.
이것저것 가계약과 서류 정리, 법원 허락까지 처리하려면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중국 쪽에서 로비가 들어온다는 얘기도 속속 들려왔다.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서 일단 내가 이겼다.
로버트가 이것저것 처리했지만 몇 달이 훌쩍 걸렸다.
그리고 이제 본 계약만 체결하면 끝났다.
그것 말고도 러시아 사업이 본 궤도에 올랐다.
푸틴과 조만간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았다.
러시아 쪽을 공략하는 것도 내 계획 중 일부였다.
자금은 신중하게 굴렸다.
분명 자수성가해 번 돈이지만 내 돈처럼 사용할 수 없었다.
러시아 투자에 회의를 보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모두들 러시아 저력을 무서워했다.
과거부터 세상을 놀라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국가였다.
그 의심과 감시 중에 몇 십억 달러가 투입되는 놀이동산 계획은 쉽지 않았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몇 번의 자금 세탁이 불가피했다.
각국 첩보부들에게 꼬투리 잡히기 싫었다.
여기저기 가상과 실체의 사모펀드 업체를 섞어 어찌 마무리가 되어갔다.
놀이동산 설계도 직접 참여했다.
사실 신계에서 놀고 있는 블라드미르에게 떠넘겼다.
녀석은 오랜만에 맡게 된 일다운 일이라고 좋아서 방방 뛰었다.
최근 들어 가끔 찾아가 포인트를 사용해 이것저것 구입해서 넣어줬다.
애도 아니고 온갖 달달한 간식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건 그렇고 나를 지켜보는 자식들 표정이 가관이다.
어깨에 백을 멘 채로 지난 밤에 녀석들과 눈싸움을 벌였다.
정말 유치했다.
선수촌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적의를 보일지는 몰랐다.
“나 알아?”
눈을 부라리고 질투를 비롯해 온갖 감정을 드러내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대놓고 물었다.
친절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이놈 성격이 지랄이라 말이 툭 튀어나가고 말았다.
“…뭐야? 지금 시비야?”
모든 소모임이나 단체에는 우두머리가 있는 법.
가장 체격 좋은 녀석이 의자에 앉은 채 나를 쳐다보며 눈을 흘겼다.
웃긴 놈이다.
지들이 먼저 도발하고 나에게 덤터기를 씌웠다.
“어.”
물론 나가는 대답이 고울 리 없다.
“이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 넌 선배도 없어!”
옆에 있던 떨거지가 나섰다.
“내 선배? 선배는 학교에나 있지 여기는 없는 걸로 아는데?”
오는 시선이 고와야 가는 말이 싸가지 넘치는 법이다.
보자마자 적의를 드러내는 놈들에게 알아서 대가리 숙이며 머저리 짓 하고 싶지 않았다.
요즘 들어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이런 허접들에게까지 스트레스 받고 살기에 내 인생은 짧고 바빴다.
저들의 인생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덩치와 경력 믿고 까부는 건 곱게 봐지지 않았다.
“뭐! 이 새끼야!”
여러 명의 애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이제야 녀석들이 다 보였다.
하키라는 글자가 트레이닝복에 새겨져 있었다.
“여기 선수촌이 아니라 깡패 합숙소였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피식 웃으며 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염장 지르는 데 날 따라올 자가 없었다.
저벅저벅.
도끼눈을 뜬 놈들 앞으로 걸어갔다.
으드득.
사방에서 분을 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줄래?”
정문 앞을 하키 선수들이 늘어서 막고 있었다.
머릿수에 쫄 내가 아니다.
“어이~ 간 큰 한국대생 이름이 뭐야?”
아직 의자에 앉아 있던 녀석이 이름을 물어왔다.
“알아서 뭐하게?”
“크크크…. 재밌는 녀석이네….”
“다른 건 모르겠고~ 건들지 마. 보기보다 내가 성격이 안 좋아.”
툭.
앞을 막아서고 있는 덩치를 가볍게 밀었다.
“어!”
손길 한 번에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나는 덩치가 살짝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보약 좀 먹고 다녀라. 쯧쯧.”
길을 열고 정문으로 향했다.
“야! 너 이 새끼….”
“오늘 한 번 죽어볼래!”
“이 새끼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수컷들의 본능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국가대표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세상 물정 다 겪지 않은 나이들이었다.
“돌대가리들아. CCTV가 다 보고 있는 거 모르냐?”
곧 들이받을 기세로 몰아치는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들어 위를 가리켰다.
국가 중요 기관답게 사방에 CCTV가 많이 설치돼 있었다.
인터넷에서도 검색이 안 될 만큼 정보가 통제되는 선수촌이었다.
“단체로 다구리 깠다고 아주 광고를 할래? 그렇게 해서 선수 생명 유지하겠어?”
“…….”
순간 아무 생각 없이 덤비려던 녀석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맞짱 뜨고 싶어?”
파바바밧.
움직임은 주춤했지만 눈빛들은 성난 오크 저리가라다.
“그럼 조용히 불러. 지켜보는 눈 없는 곳에서 보면 좋잖아~.”
친절한 배려와 아량도 잊지 않았다.
남자들만 모이는 공간의 생리는 나이를 떠나 나타나는 현상이 비슷비슷했다.
프로 선수들이고 국가대표라고 해도 혈기 방장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에 불꽃이 안 튀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그것도 싫으면… 하키로 한 판 붙든가~.”
“너, 너!”
“으으으으으.”
하키 선수들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는 걸로 강력한 도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밤에 너무 처먹지 마라. 불량한 돼지 된다~.”
충고는 옵션.
나름 거한 환영식을 받고 오륜관 정문을 향해 들어갔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등 뒤로 분노로 뚜껑이 열린 어떤 놈의 웃음이 배경 음악처럼 쫙 깔렸다.
앞으로 종종 맞닥뜨리게 될 태릉의 날들이 기대됐다.
생각보다 무료하거나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
끼이이익.
방문이 열렸다.
입구에서 기숙사 담당 사감에게 방 키와 옷, 주의사항이 기록된 종이를 받았다.
“빨리도 낡았네.”
1997년 건축된 오륜의 집.
상태가 좋지 않았다.
4층 끝 방 앞에 내 이름이 박혀 있었다.
크로스컨트리 장태산.
천장은 물이 샌 자국이 여기저기 보였고 복도에는 길게 빨래대가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코끝을 자극하는 익숙한 체취.
“……군대에 다시 온 기분이군.”
피부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제는 지난 과거 기억에만 남아 있는 시큼하고 털털한 땀 냄새가 복도 공기에 가득 배어 있었다.
죽어서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그 시절.
남자들이 풍겨내는 지독한 체취에 과거 군대 시절 추억이 강제 소환됐다.
“열악하네….”
그리 지은 지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숙소는 전혀 쾌적하지 않았다.
싱글 침대 두 개가 좁은 방에 붙어서 놓여 있었다.
초등학생용 책상 두 개, 옷장 두 개, 미니 냉장고 하나가 방 살림의 전부였다.
하물며 개인 화장실도 없었다.
대학교 기숙사보다 방이 조금 더 큰 편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슷했다.
4층짜리 건물은 지난 시간보다 더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칙칙한 적벽돌이 만들어낸 분위기도 한몫했다.
이곳을 스쳐 지나간 선수들의 고단한 한 같은 게 사방에서 느껴졌다.
오면서 봤던, 최근에 지어진 듯 깨끗한 여자 기숙사와는 너무 비교됐다.
창밖으로 마지막 단풍이 물들어가는 낮은 산이 보였다.
백을 침대에 던졌다.
같이 기거하게 된 크로스컨트리 남자 선수의 큰 여행용 가방이 한쪽에 보였다.
“인터넷도 안 되는 공간이라…. 죽어라 운동만 하라는 거네.”
벽 이곳저곳을 살펴도 인터넷 선이 보이지 않았다.
군대와 다를 게 없었다.
선수들이 일체 잡념에 빠지지 않도록 환경이 완벽했다(?).
환경이 이럴 때, 포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옷을 갈아입었다.
사감에게 받은 KOREA가 새겨진 유니폼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이제부터 난 국가대표였다.
태릉선수촌에 입소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었다.
“빨랑 졸업하고 나가자!”
그렇다고 올림픽 개막까지 이곳 갇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하루하루가 몹시 중요한 순간들이었다.
선수촌 탈출 계획은 이미 다 짜져 있다.
도망이 아니다.
나는 정정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볼일을 보러 나갈 참이었다.
다만 시간이 좀 필요했다.
누구나 나의 뜻 있는 탈출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례를 만들어야 했다.
저벅저벅.
그때 문밖에서 무거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운동을 끝내고 온 선수의 축 늘어진 기가 느껴졌다.
끼이이익.
그리고 열리는 문.
나와 함께 방을 쓰게 된 국가대표 선수가 들어왔다.
눈이 먼저 마주쳤다.
나는 본능적으로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반갑습….”
어라! 그런데 같이 들어오는 저분은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