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2
회귀의 전설
372장. 선수촌 (1)
뭘 그렇게 놀라?
나 같은 사람 처음 보지?
트럼프 눈빛이 귀신에 홀린 듯했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본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누구든 회귀 당사자가 되면 나만큼은 안다.
그런데 트럼프를 직접 만나보니 그는 생각보다 순진했다.
꿈꾸는 욕망이 눈에 훤히 보인다고나 할까?
세계의 왕이 된 트럼프가 미래에 저지른 행동은 실로 파격적이었다.
지금껏 맺었던 각종 국제조약을 헌신짝 버리듯 걷어찼다.
정직과 신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수호자 역할을 해온 미국 대통령이 할 짓은 아니었다.
그는 꿈꾸는 욕망에 정점을 찍으며 양아치 중에서도 지존급 수준을 보였다.
본인이 한 말도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릴 만큼 제대로 뻔뻔했다.
듣기 싫은 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정면에서 침 튀기며 반박했다.
트위터라는 망을 통해 심심하면 언론을 비롯해 정치인들과 수시로 개싸움을 벌였다.
눈 뜨면 트위터를 통해 욕부터 뱉어야 그날 백악관의 하루가 시작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중동 문제에서도 자국에 돌아오는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발을 뺐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동맹국도 필요 없었다.
세일 가스로 중동 석유가 불필요해지면서 행동은 더 대담해졌다.
특유의 장사꾼 기질로 멕시코, 캐나다, 유럽, 한국을 비롯해 친미 국가들과도 수시로 드잡이질을 벌였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무기도 가장 잘 팔아먹었다.
그의 재임 당시 가장 큰 사건은 중국과의 무역전쟁이었다.
넘버 투를 대놓고 물어뜯었다.
중국에 국빈으로 방문해 즐길 걸 다 즐기고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쳤다.
그때 황제 놀이하던 시진핑이 아주 똥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북한 김정은과도 핵단추를 가지고 위험한 장난을 시도했다.
핵단추가 크고 작네 하며 유치하게 싸우던 트럼프.
어느 순간 평화적으로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한반도에 봄이 왔다.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음에도 도통 종잡을 수 없었던 트럼프.
아니나 다를까 직접 눈으로 보니 집안이 정신없이 초호화 럭셔리 끝판왕이었다.
딱 봐도 중세 낭비벽 1위인 프랑스 왕 수준이었다.
온통 황금으로 도배가 됐다.
그것도 가짜가 아닌 진짜 24K 순금으로 도배한 게 분명했다.
허세도 하늘을 찔렀다.
적당한 수준을 넘어 온통 금, 엔틱 가구의 향연이었다.
21세기의 신귀족을 꿈꾸는 트럼프였다.
그런 그가 나의 한마디에 당황하고 놀라워했다.
정치권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던 것도 다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남자라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것도 세계의 왕~. 전 레오 당신에게 무척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합니다.”
돈 안 드는 덕담은 아부를 떠나 모두를 이롭게 하는 법이다.
나의 눈을 응시하며 부르르 몸을 떠는 트럼프.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러더니 갑자기 광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덥석!
아, 이런 액션은 사양이다.
털북숭이 트럼프에게서 훅 맡아지는 서양 남자 특유의 수컷냄새.
“형제! 그래 다니엘, 이제부터 넌 내 형제다!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미친 듯 광소를 터트리며 굵은 팔로 힘껏 껴안는 트럼프.
……이 남자, 품이 생각보다 포근하다.
젠장.
- 선택된 자가 당신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 선신과 악신에게 동시에 선택을 받은 자와 같은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 선택된 자의 행동으로 인해 당신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 상급 신들이 당신을 눈여겨 볼 것입니다.
- 선한 카르마 포인트와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선택된 자의 행동에 의해 지급됩니다.
- 상급 신이 된다면 그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신이 되시겠습니까?
“!!!”
이런 또, 똥 밟았다!
계속 들려오는 알림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오바마 때와 달리 선한 카르마 포인트가 지급되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와 함께 일을 도모하면 그의 업보도 나눠가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선과 악의 길을 동시에 걷는 트럼프로 인해 나까지 그의 영향을 받게 됐다.
지금까지 너무 쉽게 인생을 살았다.
다른 자도 아니고 트럼프와 한패가 되어버릴 운명의 순간이 얄궂었다.
그래도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 아니면 미래 설계에 답이 없었다.
이럴 때는 못 먹어도 고!
“브라더!”
아버지뻘인 트럼프를 바라보며 형이라 불렀다.
“그래! 마이 브라더!”
이제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는 안 봐도 막장이었다.
“오늘 마음껏 마셔보자! 다 마시고 죽자!”
트럼프 이 형님 성격이 좋게 표현해 화통했다.
트럼프와 나는 좀 더 편해진 관계에서 술을 마셨다.
바에 비치되어 있던 양주와 와인을 섞어서 들이켰다.
트럼프는 술이 굉장히 강했다.
그리고…… 그와 나는 결국 한 방 한 침대에서 잠이 들 정도로…… 가까워졌다.
진짜 형제가 된 셈이다.
***
“뭐야? 태산 씨 지금까지 미국에 있었어?”
“응.”
“그런데 연락 한 번 없었어? 그게 말이 돼?”
“비즈니스.”
“피이~ 남자들은 다 그래.”
사업가 집안 딸답게 임윤아는 말만 요란스럽지 이해심이 많았다.
미국에 보름 동안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한마디로 좀 놀았다.
트럼프 이 형 제대로 놀 줄 알았다.
술이 떡이 된 다음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조깅과 수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빅 사이즈 수제 햄버거 두 개를 먹어 치웠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와이너리에 들러 특급 와인을 해치웠다.
전용 골프장에서 하루 종일 골프도 쳤다.
저녁에는 주변 셀럽들을 모아 파티를 열었다.
트럼프 형님의 낙점으로 미스 USA가 된 미녀들이 수시로 모였다 흩어졌다.
수영장이 달린 대형 요트를 타고 플로리다 해변을 누볐다.
말로만 듣던 백만장자의 삶 속에 섞여 잠깐 맛 좀 봤다.
반성 많이 했다.
아! 내가 돈을 벌어 개처럼 쓰지 못했구나.
어차피 죽으면 다 사라질 물질에 너무 집착했구나.
트럼프를 보며 뼈저리게 느꼈다.
크게 깨우친 나는 로버트 라이언에게 수시로 전화를 했다.
먼저 트럼프 것보다 좋은 요트 제작을 의뢰했다.
골프장도 몇 곳 구입했다.
경기 위기에 싸게 나온 매물이 천지였다.
헬기도 군용급으로 튼튼한 녀석을 몇 대 사들였다.
각 별장과 와이너리에 자가용도 시리즈로 구매해 놔뒀다.
그렇다고 트럼프처럼 품격 없이 놀지 않았다.
명화를 직접 그려 공간을 장식했다.
황금으로 도배하기에는 아직 내가 젊었다.
벌인 일을 적당히 마무리 하고 임윤아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공부하고 있는 예일을 찾아왔다.
라라라라♫.
스마트폰이 울렸다.
미국에서 사용하는 전용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벨소리가 기존 휴대폰과 비교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형님!”
- 동생, 벌써 보고 싶어 어떡하나?
“하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럼 어때! 오늘 밤에 파티 한 번 더 열까?
“저도 그러고 싶지만 한국에 벌여놓은 사업들이 많습니다.”
- 안타깝군. 내 인생 친구를 머나먼 고국으로 보내야 하다니.
“제 마음도 안타깝습니다.”
- 언제든 놀러오게. 그리고…… 도움 고마웠어.
인사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트럼프를 좀 도와줬다.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투자자금을 지급했다.
내가 알던 과거보다 실제 트럼프는 더 어려웠다.
“형제끼리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 그래. 그 마음 잊지 않을게.
빅 픽처를 위한 투자였다.
트럼프는 의외로 계산이 정확했다.
얼마 안 되는 투자자금으로 그와 호형호제하게 됐다.
그의 미래를 알고 있는 나만이 가능한 투자였다.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오겠습니다.”
- 기다리고 있겠네~.
“넵! 형님.”
통화가 끝났다.
“누구?”
“트럼프.”
“와아! 태산 씨. 그동안 트럼프와 같이 있었어? 그 바람둥이와?”
“비즈니스…….”
“그 아저씨 되게 유명해. 와이프부터 시작해 주변에 미녀들이 바글바글해.”
“윤아보다는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
“……진하게 놀았구나?”
“하하. 남자들 사업이 다 그렇지.”
트럼프가 은근히 권했지만 미녀들을 침실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됐어!”
윤아가 삐친 척 연기를 했다.
아쉽게도 임윤아와는 키스가 전부였다.
오정 랜드에서 회전목마를 타고 난 뒤 나눴던 키스는 뜨거웠지만 그 다음 순간을 만들지는 못했다.
집에 돌아와 그 동안 그려놓은 그림을 감상하고 와인을 마시다…….
임윤아가 그만 순식간에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되레 황당한 표정을 짓던 임윤아.
회장님의 호출에 아쉬움만 남기고 떠났었다.
“뭐 먹고 싶어?”
“피! 피!”
“달콤한 와인도 가져왔는데?”
“그럼 뭐…….”
임윤아가 살짝 갈등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머리칼을 쓰다듬어줬다.
“어떤 요리해 줄 거야?”
금세 기분이 좋아진 임윤아.
“원하는 건 뭐든~.”
“그럼 오늘은…….”
말끝을 줄이며 뜨겁게 나를 바라보는 그녀.
길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다.
하지만 난 오늘도 임윤아의 소망이 불발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뭔지 모르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듯한 느낌.
임윤아를 향한 감정은 좀 달랐다.
그래도 좋았다.
날 따스하게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이 공간과 이 시간.
역시 오늘도 축복이었다.
***
- 태, 태산아……. 고맙다.
꾹꾹 북받치는 감정을 애써 눌러 참는 남자의 목소리는 뜨거웠다.
“축하해. 선배.”
- 고맙다……. 네 덕분이야. 나 차석이다!
“제 덕도 있지만 선배 노력 덕분입니다.”
담담하게 대꾸했지만 실실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사법고시 2차 합격자 발표가 났다.
싱그러운 봄은 짧았고 뜨거웠던 여름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다렸다는 듯 가을이 찾아왔다.
어느새 2학년 2학기도 중반으로 접어든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숨죽이며 기다렸던 학필 선배는 제일 먼저 합격의 기쁨을 나에게 전해왔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일이 있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배우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전생에 사건의 주인공인 배우가 아닌 다른 여배우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여전히 언론사와 상류층이 얽힌 사건은 빠르게 묻혔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도 세상을 떠나버렸다.
분명 알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다른 사건들로 인해 나의 발목이 잡혔다.
늦게나마 막아보기 위해 찾아갔건만 허락되지 않는 영역인 듯 손 쓸 수 없었다.
사건 직후 살신성인의 운명을 타고난 이라며 한 개인이 끼어들 수 없다고 알림음이 알려왔다.
그분의 희생이 있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만 받았다.
거대 흐름은 아무리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때 알았다.
두 번씩이나 같은 소식을 접한 나는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알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을 위해 제물처럼 바쳐졌다는 것을 확인한 전직 대통령.
회귀자라고 해도 모든 사건과 사고를 없었던 일로 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만능 해결사가 아니었다.
대세의 정해진 운명과 생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살아남았다.
나의 도움이 뒤에 있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다.
멍청한 최병박 정권은 달러만 냅다 쏟아 부었을 뿐이었다.
미국과 유럽, 일본은 본격적으로 발권력을 동원했다.
언 발에 오줌을 싸질렀다.
이 재앙이 앞으로 10년 뒤 더 크게 다가오리란 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풀린 자금이 다시 그들의 수중으로 들어갈 때 수많은 평범한 이들은 고금리의 늪에 빠져 수없이 좌절하고 절망했다.
모든 게 치밀하게 계획된 음모라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획책된 음모였다.
숨을 죽이고 힘을 길렀다.
아직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성과를 보였다.
유학필 선배의 사법고시 2차 차석 합격은 그 중에서도 쾌거였다.
“주변에 착하고 정의감 넘치는 선후배들…… 포섭해 주십시오.”
- 걱정마라. 그렇지 않아도 쓸 만한 인재들이 연락해 왔다.
유학필 선배는 이제 확실히 내 사람이 됐다.
“주말에 한잔하시죠.”
- 그래…… 한잔해야지. 너도 합격했는데.
다 알고 있는 문제였지만 난 적당히 논술 답안을 섞어 100위 안에만 들었다.
“집에 가보셔야죠. 부모님이 기다리실 겁니다.”
- 고맙다. 장태산!
“저도 선배가 고맙습니다.”
또 다른 10년을 위한 포석이었다.
통화는 기분 좋게 끝났다.
“좋네…….”
관악산 단풍이 물든 교정은 아름다웠다.
학교가 주는 낭만은 두 번 사는 이 생에서도 도움이 됐다.
답답할 때마다 홀로 걷는 교정은 나를 고요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태산 씨!”
인연도 있었다.
같은 교양과목을 신청하고 과제를 함께 했던 고연지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녀와도 두 학기를 같이 보내게 됐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다.
오늘 저녁도 순댓국에 소주를 곁들여야 할 것 같았다.
띠리리리리.
아직 스마트폰이 출시되지 않아 여전히 투박한 휴대폰이 날카롭게 울렸다.
- 태산 군, 나야.
체교과 서준호 교수의 전화였다.
“넵! 교수님!”
- 바쁘지?
“아닙니다.”
- 그럼 시간 좀 내줘야겠어.
“시간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 대한체육회에서 연락이 왔어.
“네?”
- 선수촌에 합류해 달라는군.
“서, 선수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