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7화 (366/1,284)

 # 367

회귀의 전설

367장. 상사화 (1)

“생각보다 힘들 것 같습니다.”

“주식회사입니다. 매입이 힘들다니요?”

“대표님 말대로 매입을 추진했지만 정부의 방해를 받았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일본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요?”

“동룡시멘트는 주현태 회장이 51퍼센트 이상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라 주식을 시장에 풀지 않습니다. 일한시멘트는 몇 년 전 신일본 그룹이 인수했습니다. 상장 주식 전량을 소각해 비상장 주식회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삼룡시멘트는 산업은행이 대주주입니다. 이쪽도 시세보다 높게 불러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

TS 그룹 하관우 회장이 방문했다.

일전에 지시해 두었던 시멘트 회사 인수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일이었다.

작년 연말에 갈수록 아토피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에 퍼뜩 깨달았다.

시멘트 회사들의 썩은 양심 때문이었다.

환경부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더러운 자들의 카르텔이 공고했다.

시멘트 소성로에 쓰레기를 함께 태우기 시작하면서 아토피 환자가 증가했다,

자연 상태의 시멘트는 독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물고기를 넣어도 장시간 살아남는다.

그러나 현재 가공되고 있는 시멘트는 물고기가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독 덩어리 그 자체였다.

소성로에 석탄을 넣고 시멘트를 생산하던 시기에는 아토피 환자 보는 게 드물었다.

대기 환경 영향도 있지만 상당수가 주거에 사용되는 자재가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시멘트였다.

모든 걸 뜯어 고칠 수 없지만 하나씩 이런 행태를 개선해 갈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암초에 부딪쳤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세 업체를 인수하는 데 장애가 생긴 것이다.

“이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견되는 사업입니다. 환경부에서 유독물질을 소성로에 사용하는 걸 허락한 뒤 업체들의 순이익이 비약적으로 늘었습니다. 시멘트를 팔아서 남는 것보다 폐타이어 같은 유독 물질을 처리하고 받는 수익이 더 큽니다. 중국산이 가격에 밀릴 정도입니다.”

너무 쉽게 생각했다.

돈이라면 영혼도 파는 놈들이 사회 지도층이라는 걸 잊었다.

땅에 묻기도 힘들고 환경오염이 심한 폐타이어 같은 산업폐기물들이 시멘트 재료가 됐다.

6가크롬을 비롯한 발암물질들이 시멘트에 섞여 아파트를 비롯해 주거환경에 악영향을 미쳤다.

“셋 다 일본에서 폐기물을 수입합니까?”

“그렇습니다. 경쟁적으로 폐석탄재를 비롯해 폐타이어 같은 여러 가지 산업 폐기물들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경부 국장을 통해 경고가 들어왔습니다. 계속 건들면 TS 그룹에 대한 특별 환경 감사가 들어갈 거라고 했습니다.”

“…….”

환경부가 더 환경을 오염시키는 작태에 할 말이 없었다.

국민 편은 없었다.

돈벌이에 급급한 염병할 기업들 이익만 중요시 됐다.

그리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정치인들과 공무원들 호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지난 생에도 몇 번 쓰레기 시멘트 문제가 터졌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언론도 한통속이었다.

돈 몇 푼에 영혼을 파는 기레기들 천지였다.

“제 연구소를 쓰레기로 지을 생각 없습니다. TS 건설 현장 모든 곳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레미콘 회사들이 모두 세 회사들 제품을 사용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TS 그룹 힘으로는 이번 인수가 불가능했다.

외국 자본으로 흡수하고 싶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세 회사는 일본을 비롯해 정부와 언론사까지 끈끈한 커넥션으로 존재했다.

“새로 설립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정부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겁니다. 석회석 채굴부터 공장 운영까지 정부의 간섭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흐음.”

충분한 자금이 있어도 실현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종종 있다.

“동룡 주 회장은 일본인들과 친분이 두텁습니다. 야쿠자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삼촌이라는 작자의 실체를 잊고 있었다.

완전 개 쓰레기였다.

피가 섞였지만 남보다 못했다.

여동생인 어머니조차 피하고 두려워하는 개 쓰레기가 주현태 회장이었다.

“시멘트 수입은 가능합니까?”

“그건 가능합니다.”

“환경부나 정부 기관에서 트집 잡지 못하도록 미국산 시멘트를 구입하십시오. 연구소 주변 레미콘 업체를 매입해 이용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일단은 한 박자 쉴 타임이었다.

카르텔을 깨는 건 권력자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창호 업체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시하신 대로 유리 생산업체와 창호 업체 인수 건도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불경기로 주식 매입이 쉬웠습니다.”

“계열사로 편입하십시오.”

“처리하겠습니다.”

“큐셀 공장 확충 건은 잘 되고 있습니까?”

“대표님 지시대로 장주시 신설 공단에 대규모 부지를 확보했습니다. 유리 생산 업체와 창호 업체도 조만간 그 부지로 이주시킬 생각입니다.”

“이런 말 하면 황당하겠지만 오정 디스플레이 단지 정도 규모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점 참고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은 하지만 하관우 회장도 못 믿는 눈치였다.

중형 도시 하나 규모인 오정 디스플레이단지.

내 꿈은 그 이상이었다.

“장만수 장관은 그 이후 연락이 없습니까?”

“홍삼 세트가 부족했나 봅니다.”

“6년근 홍삼 세트가 몸에 얼마나 좋은데~ 배가 불렀군요.”

하관우 회장과 설 이후에 만난 장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덕담이 오고갔고 여러 가지 요구가 넌지시 전달됐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다 하관우 회장은 돌아왔다.

홍삼 세트를 전달하자 화색이 만발했다는 장만수.

아마도 박스 안에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조만간 신호가 올 겁니다. 바로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넵!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올해, 바쁜 한해입니다. 하관우 회장님 역할이 중요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대웅 건설이 곧 매물로 나올 겁니다. 금구 그룹 유동성이 엉망입니다. 준비하십시오.”

“……완벽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폭풍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들은 파산 이야기가 나오고 미국 실업률은 10%를 넘어갔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의 실업률도 20%를 돌파했다.

기초가 탄탄하지 못한 기업들이 쓰러졌다.

환율 시장은 널을 뛰었고… 먹을 것들이 사방에서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

“네? 이걸 같이 발표하자고요?”

고연지는 장태산이 건네는 A4를 받아들고 당황했다.

장태산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인문대 잔디밭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곧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발표 수업 안 해 봤습니까?”

“그건 해봤지만….”

“제 말투와 분위기만 잘 따라오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습니다.”

자신만만한 장태산의 말에 고연지는 A4에 타이핑된 시를 봤다.

제목은 특별할 것 없었지만 시는…. 왠지 모르게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뭐야? 창작시야?’

쓸 만한 시를 넘어 상당히 괜찮았다.

비유와 은유가 적절히 섞였지만 주제와 소제,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좋은 시였다.

“바빴어요?”

고연지는 시보다 장태산에 관심이 많았다.

“아침에도 회의하고 왔습니다.”

“회사 구경 가도 돼요?”

“안 됩니다.”

“피이~.”

“엘자 그룹에 비하면 구멍가게입니다. 구경할 것 하나 없습니다.”

“오늘 저녁은 사는 거죠?”

“소주는 안 됩니다.”

“…순댓국을 소주 없이 어떻게 먹어요!”

장태산 말에 고연지는 발끈했다.

순댓국 생각에 며칠 동안 입 안에 괜히 침이 돌았다.

“오늘도 회장님 면담하면 혈압에 쓰러질지 모릅니다.”

“그럼 딱 세 잔만 마실게요.”

“그 정도는 봐드리겠습니다.”

‘뭐야? 이게 무슨 분위기람?’

남자 친구 앞에서 술자리 허락받는 분위기였다.

“태산 씨!”

그때 코하네가 가슴에 전공 서적을 품고 나타났다.

“난 안 보여?”

“연지 상은 안녕하십니까~”

“으으.”

고연지는 코하네의 이중성에 고개를 저었다.

“태산 씨는 잘 지냈습니까?”

“보시다시피~.”

“아… 그렇구나.”

코하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주에 오정 그룹의 막내딸과 같이 밤을 보내고… 오늘은 엘자 그룹의 딸과 달달하게 대화를 나누다니… 진짜 간 큰 바람둥이다!’

뻔뻔한 장태산이 존경스러웠다.

장태산에 대한 보고뿐만 아니라 세계적 기업 오정 그룹에 대한 정보 획득도 중요한 일이었다.

장태산과 오정의 임윤아가 놀이동산에서 나와 같이 집으로 들어간 걸 확인했다.

다음 날 오전이 돼서야 장태산 집에서 나간 임윤아.

코하네는 장태산의 바람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닙니다! 태산 씨는… 진짜 대단한 남자입니다.”

코하네가 감탄을 터트렸다.

“뜬금없이 대단한 남자는 뭐야? 코하네가 태산 씨에 대해서 뭘 알긴 알아?”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코하네의 말에 고연지가 물고 늘어졌다.

“앗! 오늘 발표할 시입니까?”

코하네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따라라라~♫ 따라라라~♪.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이제는 강의실로 가야 할 시간.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강의실로 걸음을 옮겼다.

***

‘저 녀석이 그 녀석이었어?’

한국대 교수들은 그 수가 꽤 많았다.

각 단과대 이외에는 학장들이나 원로 교수들 말고는 서로 교류가 적은 편이었다.

다들 자기 학문이 최고라는 자존심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교수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돌았다.

법학과에 상상을 뛰어넘는 천재 녀석이 등장했다는 소문이었다.

타과생들보다 똘기가 더 강한 법대생들.

개중의 한 녀석일 거라고 양유종 교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시 해석으로 친해진 미대 동양화과 교수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법대생이 실기로 음대와 미대생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실화였다.

그런 장태산이 교양 과목으로 자신의 강의를 선택해 들어왔다.

‘미술이나 음악과 달리 시는 좀 다를 거다. 그게 학습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양유종 교수는 한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들 중에서 시로 문단에 등단한 실력자였다.

학문적 소양뿐만 아니라 시적 감수성도 풍부했다.

문창과와 달리 창작보다는 문학사나 비평이 주를 이루는 국문과에서는 특이한 경력이었다.

“교수님 발표해도 되겠습니까?”

장태산이 수업이 시작되자 당당하게 앞으로 나왔다.

“오늘 기대가 커요.”

양유종 교수가 미소를 머금었다.

시신(詩神)이 내리지 않는 이상 일주일만에 괜찮은 시를 창작하기는 어려웠다.

시인도 무속인들처럼 신빨을 받아야 멋진 시가 나오는 법이었다.

학문적으로나 기계적으로 창작한 시는 완벽할지 몰라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에 반해 10분 만에 창작한 시라도 시신을 받아 써 내면 그 감동은 장난 아니었다.

유명한 시인들의 시들 또한 다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부족한 시지만 잘 부탁합니다.”

교수를 비롯해 학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장태산.

잘생긴 얼굴에 품위까지 넘치자 강의실 학생들 대부분이 호감을 보였다.

하는 짓이 밉상이 아니었다.

당당한 미소는 더 보기 좋았다.

“오늘 발표할 시 제목은 ‘상사화’입니다.”

‘상사화?’

시 제목에 꽃 이름들이 많이 붙었다.

상사화로 발표된 시들도 꽤 됐다.

양유종 교수는 제목을 음미하며 귀를 기울였다.

“오늘 발표를 돕기 위해 여학우 한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고연지 양 부탁합니다.”

인문대 퀸카로 소문난 엘자 그룹의 고연지가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나왔다.

이미 손에 A4 용지를 들고 있었다.

‘능력 좋네~.’

양유종 교수도 고연지를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존심 강한 한국대 교수라도 대그룹 자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인맥이 연결되면 이것저것 받는 혜택이 적지 않았다.

고연지는 미모뿐만 아니라 실력도 뛰어났다.

인문대 교수들의 사랑을 받는 여학생이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서로 엇갈리며 피어 꽃은 잎을, 잎은 꽃을 보지 못하는 연유로 상사화라 불립니다.”

장태산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시는 짧지만 시는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이자 서사입니다. 지금 발표하는 상사화도 그렇습니다. 이 시의 배경은 산중 절에서 수행하는 젊은 묵언승과 그를 사모하는 동네 여인의 그리움이 모티브가 됐습니다.”

‘스님과 동네 여인이 모티브?’

양유종 교수는 장태산의 말에 시의 이미지가 머리에 그려졌다.

시의 내용은 아직 모르지만 뭔가 느낌이 왔다.

“물론 스님과 여인은 맺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스님을 사모하다 여인은 상사병에 시름시름 앓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은 일주문까지 뛰어갑니다. 자신 때문에 귀한 생명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걸 막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스님이 일주문을 박차고 나가려 할 때 일주문 앞으로 상사병으로 죽은 여인의 상여가 다가왔습니다…. 묵언승은 절망합니다.”

스토리가 참신했다.

“그리고 일주문 앞에서 상사화 꽃을 발견하게 되는 스님은 자신 앞에서 상여에 실려 나타난 여인을 위해 3년 묵언을 끝내고 시를 읊게 됩니다. 그럼…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연애시 따위가 아니었다.

시에 서사적 배경이 설명되자 양유종 교수와 학생들은 깊은 몰입에 빠져들었다.

소설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 내용이었다.

스윽.

장태산이 서 있는 강단 위에 나란히 올라서는 고연지.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 고연지를 뜨겁게 바라보는 장태산.

“…….”

무겁게 깔리는 분위기.

아무런 음향 장치도 없지만 장태산이 말했던 시의 배경을 상상하며 모두들 환상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혹여….

이 생에 내가 그대를 만나지 못하고 떠났거든

선 붉은 핏빛 애절한 한을 품고 간 줄만 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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