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
회귀의 전설
365장. 대목장(2)
‘하아! 내가… 못 산다!’
윤소진 과장은 사무실을 뒤집는 아버지의 일갈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 괄괄한 성격은 나이가 먹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몇몇 남지 않은 대한민국의 대목장.
자존심이 곧 생명이었다.
점점 맥이 끊겨가는 한국 특유의 목공 기술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했다.
과거처럼 대목장들이 모이는 큰 공사가 없었다.
국가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래야 금강송 같은 귀한 자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목공 기술이 자꾸 퇴보했다.
싼 자재로 한옥을 짓다보니 대목장들이 설 자리가 점차 사라져 갔다.
제자들도 전통보다는 빠르고 간편한 임시방편의 기술들만 습득하고 이용했다.
인건비와 재료비가 높아지면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었다.
‘내가 미쳤지…. 집에서 일을 하다니….’
설계가 쉽지 않았다.
깐깐한 장태산 대표에게 수시로 퇴짜를 맞았다.
반박할 수 없는 허점을 짚어냈다.
야근하는 일도 많았다.
설날에도 집에서 설계도 살피며 수정하기 바빴다.
일을 하고 있는데 설이라고 찾아온 친동생들과 술을 마시던 아버지가 방에 들이닥쳤다.
같은 계열 직종이지만 한옥 건축 쪽이 아니라 처음부터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런 아버지 눈에 펼쳐놓은 설계도가 눈에 띄었다.
대목장이라 바로 설계도를 훑어보고 내용을 알아봤다.
그리고 시작된 추궁.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서 아버지 말이 곧 법이었기에 윤소진은 모든 걸 불었다.
‘장태산 대표가 본가가 있는 동네에 대규모 한옥식 연구 단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나이는 좀 어리지만 깐깐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조용히 듣고 있던 아버지는 설계도를 달라고 했다.
회사 내에서도 오픈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목장 명예를 걸면서까지 요구했다.
유출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고 난 뒤 조심스럽게 넘겼다.
장태산 대표 측에서 대목장 출신인 아버지를 고용하기로 말이 되었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설계도를 살펴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노발대발했다.
한옥 건축의 겉만 따르는 허접한 설계도라며 윤소진을 보며 화를 냈다.
개인적인 소견보다 회사일이니 관여하지 마시라 만류했지만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 아버지.
기어이 장태산 대표를 만나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최대한 미뤘다.
괜히 승진한 자리에서 잘리고 직장까지 잃고 싶지 않았다.
설계도 유출만으로도 퇴사와 함께 손해배상을 당할 판이었다.
그러나 이미 꼭지가 돈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찾아가겠다고 나섰다.
윤소진은 최악의 순간은 피하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와 동행했다.
그런데….
‘망했어. 이제 나…. 뭐 해먹고 사냐?’
나이에 비해 놀라울 만큼 대단하게 자수성가한 장태산 대표였다.
그런 그를 멍청한 놈이라 함부로 막말을 내뱉는 아버지 윤용곤.
설계도를 든 손으로 삿대질을 하며 퍼부었다.
장태산 대표가 기분이 상해 나가라고 한 마디 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윤소진은 눈앞이 캄캄했다.
“어르신, 뭐가 그렇게 노여우십니까?”
어라? 그런데 우려와 달리 장태산 대표가 웃는 얼굴로 아버지 윤용곤을 대했다.
“네가 이 설계도를 만들었냐!”
“네~ 제가 주도했습니다.”
“멍청한 놈! 한옥 건축의 기본도 모르는 놈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처바르면 그게 한옥이더냐! 너 같은 놈들한테는 동네 소나무도 아까워!”
“먼저 자리에 앉으십시오. 가르침을 하사하시면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수용하겠습니다.”
‘뭐야? 장 대표 보살이야?’
욕을 먹고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장태산 대표였다.
그의 정신력에 윤소진은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자신이야 일찍부터 아버지의 불같은 성격을 봐왔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윤용곤을 대하기 쉽지 않을 만큼 성격이 괴팍했다.
국가 공사에서도 간섭하거나 원칙에서 벗어나면 바로 삿대질에 막말로 일을 엎어버리기 일쑤였다.
“에잉!”
못마땅하다는 속내를 비치며 윤용곤이 자리에 앉았다.
“유 팀장님, 여기 산삼차 부탁해요~.”
열린 대표실 문밖에서 당황하고 있던 유세라 팀장에게 차를 부탁하는 장태산.
“네….”
“윤소진 과장님은 커피?”
“주시면… 저도 산삼차요.”
세 사람 모두 자리에 앉았다.
“어르신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장태산이 정중하게 다시 물었다.
“서양 것만 배워서 겉멋만 든 네놈이 한옥을 알기나 하는 것이냐?”
윤용곤의 눈빛이 야밤에 찾아든 호랑이처럼 이글거렸다.
“어르신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다!”
“네?”
“네놈이 알고 있는 대략적인 지식은 맞았다. 터 잡기나 간살잡이는 문제가 없다. 어디서 방위를 제대로 배웠는지 내가 봐도 괜찮았다. 하지만… 양식이 문제야.”
“어떤 양식 말입니까?”
“건물의 성격에 따라 납도리나 굴도리, 홑처마와 겹처마, 초익공이나 이익공의 양식을 결정해야 하는데 너무 중구난방이야. 단면도 쓰임새를 고려하여 3량, 5량, 7량 구조로 나뉘는데 이건… 고주의 유무가 너무 뒤죽박죽이란 말이지. 이건 한옥이 아니라 잡탕이야!”
모든 게 마음에 안 드는 윤용곤이었다.
공부 좀 했다는 놈들이 저지르기 가장 쉬운 것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설계도는 사실 파격적이었다.
윤용곤도 깜짝 놀랄 만큼 공간과 배열이 뛰어나게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과거 전통 방식들 상당수가 배제되고 결여됐다.
아직 최종 설계도가 아니라고 하지만 용도와 활용에 이해하지 못할 공간이 많았다.
특히 지하 공간은 얼토당토않게 넓었다.
지하 공간은 특히나 한옥 건축과 맞지 않았다.
사실 연구소라는 간판 자체가 한옥과 어울리지 않았다.
지붕 같은 형식만 취하고 나머지 뼈대는 현대식으로 설계되는 게 보통이었다.
아쉬운 점이 몇 곳 보였지만 정성을 들인 부분들이 눈에 보여 욕심이 더 났다.
더 늙기 전에 한옥의 정수를 건축으로 꽃피워 보고 싶었다.
한옥은 생각보다 건축비가 많이 들었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잊힌 재료들도 많았다.
장태산이라는 녀석이 주식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고 딸인 윤소진이 다 말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기회가 된다면 제대로 역사에 남길 한옥을 만들고 싶은 윤용곤 대목장이었다.
“어르신은… 산은 못 보고 나무만 보신 듯합니다.”
“뭐, 뭣이라! 내가 산을 못 봐?”
윤용곤 대목장이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 되묻자 활짝 웃는 장태산이었다.
“쯧쯧…. 아직도 형(形)에 얽매여 실(實)을 얻지 못하다니…. 곤(鯤)이 언제 대붕이 될까!”
그 순간 윤용곤 대목장을 향해 터진 장태산의 뜨거운 일갈.
“허엇!”
분노해 화를 내던 윤용곤의 얼굴이 순식간에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
돌아가신 스승님이 언제나 부족한 윤용곤을 책망할 때 내뱉었던 말이 형과 실, 곤과 대붕 이야기였다.
“너, 넌 누구냐!”
손가락을 들어 장태산을 똑바로 가리키는 윤용곤.
“무심한 구름은 산봉우리에 피어나고 고달피 날던 새는 제 둥지로 돌아올 줄 아니~♫”
장태산은 시를 노래처럼 가락을 실어 흥얼거렸다.
“…으으.”
시가 가락을 타고 길어질수록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려가는 대목장.
“주어진 운명을 즐기며 사는데 있어 어찌 다시 의심하랴~.”
마지막 구절이 끝났다.
“스, 스승님….”
그리고 난데없이 윤용곤은 장태산을 보며 스승님이라 부르짖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
대목장 어르신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사건이 커졌다.
서양 건축과 달리 한옥을 짓는 데는 더 깊은 이해가 필요했다.
내가 알고 있는 수박 겉핥기식 지식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스티븐 메튜가 감탄하고 인정할 만큼이 되려면 한옥에 대한 이해가 깊이 요구됐다.
포인트를 이용해 신을 만났다.
한옥 전문가를 초청하자 등장한 신들이 수십여 명이 훌쩍 넘어갔다.
다들 대목장급이었다.
삼국시대에서도 기와를 사용했다지만 초청에 응한 이들은 고려 시대 중기 이후 대목장들만 나타났다.
많이 배웠다.
대들보, 종보, 보아지, 동자주, 장연, 단연, 종도리, 중도리, 판대공, 추녀마루, 잡상, 내림마루, 용마루, 망와, 머거불 등등.
한옥에 관한 고유 낱말들과 축조 방식에 개안하며 능통해졌다.
신계에 머물며 몇 달 동안 합숙 훈련을 했다.
신계에 가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간이다.
팀 단위로 움직이는 신선들과 함께 수십 채의 고루거각을 건축하는 데 직접 참여했다.
서양신들 주문과 의뢰가 많았다.
포인트가 상당히 지불됐지만 동양적 매력에 서양신들도 매료됐다.
대목장 신선들은 포인트에 연연하지 않았다.
서양 예술 계통 신들과 달리 한국 대목장급 신들은 전생에 쌓은 업은 악행보다 선행이 많았다.
예술 한답시고 여인들 홀리고 다니며 방만하게 생을 살지 않았다.
나무와 기와, 흙을 만졌던 이들은 고집은 셌지만 인간적으로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하급 신선들에 속했지만 포인트가 모자라지 않았다.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이 많아 선계에서도 포인트를 많이 벌고 있었다.
그런 신선들은 사라져 가는 한옥 기술을 안타까워했다.
포인트를 요구하지 않는 무보수 신선들도 많았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목수의 명예와 한옥에 대한 자부심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마음이 신선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스럽게 신선계 삶에도 나타났다.
그들의 기술을 배웠다.
지붕, 벽면, 담, 마루, 디딤돌, 담장, 창, 기와, 초석까지 완벽하게 한 세트를 습득했다.
신들이 아니라면 꿈도 꾸지 못할 방대한 지식이었다.
신계에서 많은 땀을 흘리고 노동을 했지만 인간계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인간계에 돌아온 직후부터 설계도 수정을 거듭했다.
연구실뿐만 아니라 내가 거주할 공간과 차후 확장까지 생각하며 설계했다.
그렇다고 신들의 재능을 공짜로 받아온 것은 아니었다.
요즘 짭짤하게 포인트를 벌어놨기에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것과 공짜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대목장 신들 중에 한분이 여기 있는 윤용곤 대목장의 스승님이었다.
스승님의 눈으로 대목장을 바라보자 안타까움과 짠함이 일시에 밀려왔다.
신들과 교감하다 보니 해당 신의 감정이 전해졌다.
그렇다고 진하게 빙의되지는 않았다.
그저 신의 기억 일부가 전이되어 반응하게 된 정도였다.
제자를 꾸짖던 장면과 스승이 막걸리 마시며 즐겨 부르던 귀거래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일제강점기와 전란기를 거쳐 1980년대에 하직한 윤용곤 대목장의 스승님.
체구는 작달만했지만 눈에 흐르던 정기가 장난 아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설계도를 탁자 위에 펼쳤다.
완벽한 궁궐 형태였다.
외성과 같은 담벼락으로 내부가 완벽하게 보호가 됐다.
최첨단 방범 시설이 설치되어 함께 가동될 것이다.
한옥이지만 에어컨을 비롯해 온풍기 같은 냉난방기도 장착된다.
외형은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내부는 연구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난….”
스승을 부르던 대목장은 입을 쉽게 열지 못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평가하기가 곤혹스러울 것이다.
주도권을 가져와야 할 타이밍이었다.
“대목장께서는 한옥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입을 다물고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대목장.
“집은 인간의 인생을 담는 공간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물물이 쇠퇴하고 변하듯 집도 생활방식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법입니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한옥은 과거를 회상하는 옛 추억 속 물건이 아닙니다. 대목장께서 염려하시는 부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옥이 문화유산이나 불편한 과거를 상징하는 것으로 남으면 안 됩니다.”
윤용곤 대목장도 이미 알고 있는 바였다.
대목장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았다.
“전통은 중요한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창조적 발전이 필요한 이중성의 기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과거 유물이 되겠지만 변화를 수반하면 언제까지나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조용히 사무실 문이 열리고 유 팀장이 산삼차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찻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보다 한옥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현대 건축은 품기 힘든 자연미를 표현하기에 한옥만한 건축기술이 없습니다. 세상이 각박해지면 자연을 그리워하고 찾고자 함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지친 육신에 편안함과 아늑함을 선사하는 한옥은 메리트가 넘칩니다. 대목장께서도 알다시피 한옥은 현대인에게 부족한 기를 소통하게 하는 마지막 창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용성이 받쳐주지 못하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합니다.”
“……자네 말은 이해하네. 하지만 넘지 말아야 선은 존재하는 법이야. 실용성과 편리함만 쫓다가는….”
“대목장께서 이곳에 오실 때 뭘 이용하셨습니까? 자가용? 그게 아니라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셨겠지요. 그 탈것들이 실용성과 편리함만 쫓았다고 말씀하시지는 못하시겠지요?”
최대한 정중하게 대꾸했다.
“…….”
대목장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에 어폐가 있다는 걸 알 것이다.
고집스럽지만 꽉 막힌 분은 아니었다.
한옥도 창작적 예술 세계였다.
대목장 정도 되려면 열린 마음과 생각이 필요했다.
“한옥에서 가장 힘든 계자난간과 선자서까래는 요즘 방식인 프리컷을 사용함으로써 인건비는 절약되었습니다. 동시에 심미적 기능도 개선된 걸 대목장께서 아실 겁니다. 그리고 한옥의 단점인 열손실도 창호와 목구조 개선으로 잡아낼 수 있습니다.”
이래서 더 대목장 윤용곤의 도움이 필요했다.
말을 하면 바로 알아들었다.
대충 짓는다면 스티븐 매튜를 감동시키지 못할 것이다.
엄한 시어머니가 현장에 있어야 했다.
“대목장 어르신…. 전통을 수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 유물이 아닌 우리와 함께 현재 같이 숨 쉬고 호흡하는 한옥 건축물을 만들고 싶습니다!”
뜨겁게 말에 힘을 담았다.
“도와주십시오! 어르신께서 현대 한옥의 한 획을 그어주십시오!”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대목장을 바라봤다.
파바밧.
공간에서 튀기는 눈빛과 눈빛의 만남.
“……알겠네. 미약하지만…. 자네를 돕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뜻을 수락하는 윤용곤 대목장.
“어르신….”
그의 거칠고 단단한 손을 뜨겁게 붙잡았다.
수십 년 목수의 길을 걸어왔을 프로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
맞잡은 손에 심장에서 금방 펌프질한 뜨거운 혈류가 쿵쿵 힘차게 휘돌아 흐르는 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