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
회귀의 전설
355장. 스키 타기 좋은 날 (1)
“왜 시비야!”
대놓고 놀리는 알파닥에 까칠하게 반응했다.
알파닥만 만나면 경쟁심리가 극도로 작용됐다.
특급 도우미 겸 갈굼자인 알파닥.
아무리 정령을 소환하고 마법이 늘어도 알파닥에게는 묘하게 한 수 접히는 기분이 들었다.
알파닥과 첫 만남부터 그랬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날 관찰했다.
나를 터로 삼아 붙어사는 지박령처럼 말이다.
신들을 만나 거래하는 것보다 더 이상한 일이었다.
- 마법진의 마무리가 뭔지 그 위험한 마법사 계집에게 안 배웠어?
“아!”
그제야 알아챘다.
아린이 성문을 깨울 때 했던 행동.
알파닥은 역시 똑똑했다.
- 마력은 살아 있는 생물체다. 아니, 우리쯤은 어떻게 넘볼 수 없는 신의 그림자다. 우습게 보지 말아라.
“우리쯤? 뭐야? 너 살아 있는 존재야? 그리고 안 어울리게 유신론자였어?”
알파닥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었다.
알파닥 목소리에 신에 대한 경외심이 묻어나왔다.
- 단세포 같은 새끼.
“오호~ 알파닥 성깔 살아 있네~.”
내가 미친 건지 모르지만 알파닥과 대화가 가능했다.
알파닥 놀리는 재미도 쏠쏠했다.
- 닥쳐! 그러다 죽는 수가 있다!
“마음대로 해. 어차피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한 번 죽어본 경험이 있어 간이 커진 걸 알파닥은 몰랐다.
그 와중에도 알파닥의 진심을 눈치챘다.
말은 싸가지 없게 날리지만 알파닥은 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 잘난 체 말고 빨리 끝내! 마력이 날아가잖아!
“충고는 고마운데 말투 좀 고쳐라.”
언제나 큰소리치는 알파닥은 10년쯤 같이 산 악처 같았다.
- 웃기고 있네. 계집들만 보면 눈 돌아가는 발정난 수컷이! 난 네 나이 때 남자는 눈에도 안 담았어!
“남자? 너 설마…….”
딱 걸렸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볼 것 없는 허공을 째려봤다.
알파닥은 내가 알기로 남성체였다.
그런데 알파닥은 여자보다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 다, 닥쳐! 네가 뭘 안다고!
알파닥이 급 당황했다.
“흐흐흐. 이해해 줄게. 너도 알다시피 브로맨스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지~. 난 성 소수자의 인격도 존중할 줄 아는 인격남이다. 하지만 너의 그 화끈한 우정에서 난 빼줘라~.”
-뭐! 이 개나리 십장생 &**$$$……. #$.
머릿속에서 연속으로 터지는 욕설의 향연.
그런 알파닥의 반응은 무시했다.
그리고 손에 들린 검에 마력을 서서히 불어넣었다.
파아아앗!
빛나기 시작하는 검.
‘깨어나라!’
진심과 경건한 마음을 담아 마력을 넣었다.
그리고…….
파아앗! 파아아아아아앗!
검에 엄청난 마력이 휘돌기 시작했다.
검신에 각인된 마법진들의 오묘한 빛깔이 순간 눈을 멀게 만들 지경이 됐다.
마법진이 검신 위에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팟! 팟! 팟!
아린의 마법처럼 나의 마법도 검에 먹혔다.
- 5서클 방어마법진이 각인된 마력검이 완성되었습니다.
- 인간 최초로 정령중급마법검을 제작했습니다.
- 위대한 대장장이의 길을 걷는 당신의 레벨이 오릅니다.
- 대장장이 바쿨라가 마나 포인트를 화끈하게 쏘았습니다.
- 대장장이 레벨이 올랐습니다.
어김없이 전해지는 알림음에 입이 쫙 찢어졌다.
다른 때보다 더 보람 있고 실속 있었던 이번 이계 방문.
이 보다 좋을 수 없었다.
- 칭호가 ‘복 터진 돼지 새끼’로 변경되었습니다.
***
“서, 선물요?”
“너무 고마워서 그러는데 받고 싶은 선물 없습니까?”
“…….”
아린은 뜬금없는 영주의 말에 할 말을 잊은 채 그를 봤다.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거하게 대접받고 난 뒤 창가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영주의 대접은 한결 같이 융숭했다.
들어보지도 못했던 육류와 해산물 요리가 매일 다르게 차려졌다.
누구의 도움 없이 영주가 손수 차려내는 식단에 아린은 만족했다.
이런 와중에 선물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영지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아린은 난생 처음 편안함과 행복함을 동시에 맛봤다.
자신과 살아서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인생이 펼쳐졌다.
일상생활도 만족했다.
성 안에서 오고가는 중에 누구도 아린의 외모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영지민들은 더없이 순박했다.
영주의 배려로 내성 안에 머물렀다.
내성에는 거주하는 자들이 많지 않았다.
잠자리도 편안했다.
마법사 연구 공간이 따로 배정됐다.
그곳에서 영주와 토론하는 시간이 많았다.
영주는 의외로 마법에 대해 아는 지식이 많았다.
가끔 아린이 놓치는 부분도 깨우쳐줬다.
스승의 빈자리를 어떤 면에서 영주가 채워주기도 했다.
아린은 생소한 정령마법에 대해서도 날을 세워 얘기를 나눴다.
아린도 마법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새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면 영주와 같이 아침을 먹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안 나는 날이 더 많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도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성 밖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어느새 붉은 땅거미가 대지에 내려앉고 하늘에는 보름달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고즈넉한 저녁 풍경 속에서 영주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왜 이렇게 들떠 있는 거지?’
아린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보는 영주의 모습이었다.
눈앞의 영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이에 맞지 않게 품격을 지켰다.
영지민들에게 가혹하지 않았고 일처리는 빈틈이 없었다.
대화를 나누면서 듣는 영주의 막힘없는 지식에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울리지 않는 마법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제법 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자신에게 두 번 묻지도 않았다.
마법도 한 번만 보여주면 끝이었다.
마법 공식을 보여 달라는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차분하고 배움의 열정이 넘치는 영주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영주는 기분이 살짝 들떠 있었다.
“너무 고마워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아린은 곤혹스러웠다.
언제나 호의만 보이는 영주는 오늘도 눈에 감사함이 가득했다.
빚은 아린이 더 많이 지고 있었다.
“그럼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어디 가세요?”
정작 떠날 사람처럼 말하는 영주의 말투에 아린은 당황했다.
어쩌면 이제 성을 떠나 달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아린은 불안했다.
영주는 그런 아린의 마음도 모른 채 싱긋 웃었다.
그사이 창 너머로 서서히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린을 지그시 바라보는 영주.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린도 영주의 두 눈을 조용히 응시했다.
사라랏.
조금 열린 창문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
마주한 둘 사이에 수상한 분위기가 흘렀다.
영주가 바람에 흩날리는 아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귀 뒤로 넘겼다.
사르르 아린의 얼굴이 붉어졌다.
영주 앞에만 서면 언제나 심장이 심하게 뛰었다.
심장이 오늘도 고장 난 것 같았다.
“기다리고 있어요…….”
알 수 없는 말을 연신 뱉는 영주.
갑자기 허전해지는 손길.
그리고 순간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마나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거대한 마나는 영주를 에워쌌다.
***
- 태산아. 잘 되고 있어?
“물론입니다.”
잘 지내고 있다.
아니 아주 바빠 죽겠다.
언제나 현실감 떨어지고 거짓말 같은 이계 방문.
지구로 돌아왔다.
손에 남아 있는 아린의 부드러운 머리칼의 감촉이 생생하건만 공간은 전혀 달랐다.
코를 파고드는 매캐한 공기로 이곳이 지구임을 알았다.
이런 순간이면 언제나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지구에서 이계로 출장 다닐 수 있는 존재는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방문 역시 제대로 꿀 빨았다.
아공간에 금과 보석을 쟁였다.
현물로 착착 계산되는 이계 알바비는 언제나 뿌듯한 결과물이었다.
아린을 통해 그토록 원하던 마법을 획득했다.
이곳에서 무난하게 적용만 된다면 초초대박이었다.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이계에 본격적으로 판매 루트가 구축되었고 제대로 시스템이 돌아갔다.
영지는 안정화 되어 갔다.
아라돈 후작놈 때문에 다소 골치가 아팠지만 아직 벌어 놓은 시간이 있었다.
자신감도 하늘을 찔렀다.
비밀 병기를 완성한 이후 마음이 더없이 든든했다.
후작이 두 놈이라도 두렵지 않았다.
- 뭐지…….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근거 있는 자신감입니다.”
- ……부럽다. 장태산.
“1차는 합격하셔야 합니다.”
- 걱정마라. 이번에는 합격한다!
유학필 선배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알바를 멈추고 온전히 공부에 힘을 쏟아온 유학필 선배.
한국대 법대생 간판은 그냥 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본 실력에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었으니 어느 정도의 원하는 결과는 얻을 것이다.
“2차까지 동차 합격이 목표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가볍게 유학필 선배를 눌러줬다.
“그건…….”
1차 시험이 끝나고 넉 달 뒤 2차가 시작된다.
사법시험 동차 합격은 쉽지 않았다.
천재들이나 동차 합격의 영광을 맛봤다.
“최소 10위 안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법조 선배들이 눈여겨 볼 겁니다.”
압력을 가했다.
유학필 선배가 기점이었다.
그를 통해 이 나라 사법 체계 근간을 바꿔야 했다.
성적이 높아야 서울 쪽에서 판사 생활을 할 수 있고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다.
동시에 선배와 나의 합격을 기반으로 한국대 법대생들 중에 쓸 만한 인재를 포섭해야 한다.
돈이 아닌 능력과 정성이 필요했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행정과 국회, 법의 세 축에서 법 쪽을 노렸다.
- ……죽을 만큼 노력하마.
“믿겠습니다.”
- 그래. 믿어라.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여유를 찾은 유학필 선배.
- 그런데 너는 괜찮아? 올해 동차 합격한다고 소문도 자자하고……. 군대도 해결하려면 재학 중에 합격해야지?
인생 선배의 평범한 걱정이 듣기 좋았다.
아직도 학생들이 날 보면 수군거렸다.
면접장에서 있었던 건방진 내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교수들이 괜찮다고 나를 두둔했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 장태산이 누구인지 똑똑히 보여줄 생각이다.
“그래야죠.”
- 학교 도서관이지? 심심하면 신림동으로 와라. 문제 파악 도와줄게.
“여기 강원도입니다.”
- 암자야? 요즘 누가 절에 들어가서 준비를…….
“스키 타러 왔습니다.”
- 뭐? 스키? 태산아 너 제정신이야? 며칠 후면 시험 보는데…….
“군대 문제 해결해야죠.”
- 군대? 군대하고 스키가 무슨…….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