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
회귀의 전설
345장. 세상에는 너무 많은 쓰레기가 산다 (3)
“여기는 뻐꾸기 11. 목적지에 도착했다.”
[둥지다. 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하라.]
“롸저!”
주한미군 AREA6 군산 비행장 소속 헬기부대 UH60 조종사 콜먼이 기지와 통신을 나눴다.
갑작스럽게 출동 명령을 받았다.
목적지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한국의 어느 섬.
최신형으로 장비가 교체되어 야간비행이 가능한 헬기로 군산 비행장을 이륙했다.
손님의 주문으로 최대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1800마력에 달하는 두 개의 엔진이 힘을 냈다.
최대 순항속도인 250킬로미터로 비행했다.
탑승 인원은 조종사 두 명과 손님이 다였다.
콜먼도 이런 비행은 처음이었다.
주한미군 소속 카투사들도 함부로 기체에 타지 못했다.
그런데 젊은 한국 청년이 심각한 표정으로 헬기에 탔다.
눈을 감고 분노를 다스리고 있음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상부에서는 손님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FBI? 간첩이라도 잡는 거야?’
한국군은 아니었다.
민간인이라고 하기에는 풍기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착륙하겠습니다!”
손님이 요구한 건 헬기로 한 사람을 더 수송하는 것.
섬은 다행히 충분한 모래사장을 끼고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육중한 군용 헬기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다.
충분히 안정적으로 착륙이 가능했다.
“어? 저거 뭐야?”
부조종사 로크 대위가 한 장면을 목격하고 놀랐다.
헬기에 달린 전자야간투시경에 세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형체로 보아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성이었다.
놀랍게도 그중 한 남자가 여성의 머리채를 끌고 강제로 이동해 가는 모습이었다.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는 거야?”
“저 자식들 뭐야???”
헬멧을 착용한 채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두두두두두두두두.
그 사이 조종사는 모래사장 위에 기체를 안정적으로 내려놓고 있었다.
지상과의 거리는 약 30미터.
안전한 착륙을 위해 헬기가 천천히 중심을 잡았다.
제법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기에 베테랑 조종사들도 착륙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자동조정장치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 열어 주십시오!”
그때 손님의 강력한 외침이 들려왔다.
“안 됩니다. 바람이 불어 레펠 하강은…….”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더 완강하고 강력하게 주문하는 손님.
조종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후 헬기 뒷문을 개방했다.
휘리리리리리링.
바람이 헬기 내부로 휘몰아쳐 들어왔다.
“레펠보다는……. 어!”
“뭐, 뭐야?”
“미친! 저 사람 지금 뛰어내린 거야???”
말릴 겨를도 없이 헬기에서 뛰어내린 정신 나간 놈.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놈을 향해 미친 들소처럼 들이받았다.
***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쌍놈을 만나게 된다.
돈과 권력을 믿고 까부는 오동성 같은 인간부터 시작해서 아주 다양했다.
각종 한국 재벌들에 연예계 스폰서를 바라는 정재계 언론 등등까지.
그런 놈들 중에서도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이 가장 저질이었다.
예술을 핑계로 내면의 포르노그래피를 완성하려는 하이에나 같은 놈들.
기체가 안정적 착륙 직전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우여곡절 끝에 코디와 연락이 됐다.
강예서와 영화팀이 배를 타고 예정에 없던 섬으로 들어갔다는 것까지 말했다.
그 외 정보는 전혀 없었다.
급히 국정원 1차장에게 연락했다.
국정원답게 바로 강예서가 도착한 섬을 알아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에 폭풍주의보까지 떨어졌다.
배는 물론이고 민간 헬기도 이용할 수 없었다.
로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군산 비행장으로 가라는 연락이 왔다.
미군 헬기를 타고 섬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중에 강예서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기도했다.
2009년까지만 해도 아직 그 개 같은 두 잡종에 대한 소문은 돌지 않았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예술의 탈을 쓰고 발정 난 두 마리 개가 활발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하긴 그간의 치부가 드러나고도 맞고소를 했던 뻔뻔한 놈들이었다.
그들의 양심은 폐기물 수거업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움도 남은 양심을 챙길 용기도 없었고 본인들이 당한 것만 계산하는 파렴치한이었다.
밑바닥 경험을 사회에 폭력으로 돌려주고 그것을 합리화했던 위험한 종자였다.
이슬을 먹고 독을 품는 독사보다 더 사악했다.
예서의 머리채를 휘감고 있는 주재국이 똑똑히 보였다.
머리 위에서 헬기가 호버링에 들어가 거친 바람을 만들어 냈다.
그 와중에도 머리채를 휘감은 손을 놓지 않는 놈.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모래사장에 발이 닿았다.
그대로 짐승만도 못한 인간을 향해 달려갔다.
이미 주먹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자 눈알을 치뜨는 주재국.
퍼어억!
놈의 얼굴을 그대로 주먹으로 갈겼다.
후두두두둑.
얼굴을 쳐 맞고 뒤로 몇 미터를 날아가는 놈.
어둠에 잠긴 모래 위로 피와 함께 놈의 이빨 몇 개가 흩뿌려졌다.
털썩.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모래사장에 널브러진 채 벌벌 떠는 주재국의 몸뚱이가 보였다.
“태, 태산 씨!”
잔뜩 잠긴 목소리로 강예서가 이름을 불렀다.
가까이 보니 뺨에 난 손자국과 흐트러진 머리칼, 흘러내린 눈물로 얼굴이 아주 엉망이었다.
마음이 아려왔다.
지난 생에 진짜 좋아했던 여배우는 이렇게 힘들게 이 바닥을 버텨왔던 것이다.
공포에 질려 덜덜 떠는 그녀에게 다가가 가만히 안아줬다.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았다.
자칫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 상처를 안고 살 수도 있었다.
“하아…….”
품에 안겨 긴 한숨을 내뱉는 강예서.
점점 호흡이 안정되어 갔다.
“너, 너.”
주재국이 한 방에 나가떨어지자 옆에 있던 장기동 감독이 덜덜 떨며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TV에서 봤던 꽁지머리가 재수 없었다.
트레이드마크처럼 입고 있는 생활 한복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세계 영화제에 나가 한국을 대표해 상을 받았던 가증스런 인간.
얼굴에 도화살과 괴강 백호살이 가득 넘쳤다.
색정과 폭력에 평생 물들어 살아야 할 팔자였다.
“넌 좀 더 맞아야겠지?”
작신 밟아 불구를 만들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살려두면 꽃다운 청춘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계속해서 괴롭힐 괴물.
놈의 눈동자가 쥐새끼처럼 번들거렸다.
“갈기갈기 찢어 바다에 뿌리면 용왕님이 쓰레기 버렸다고 노하시려나?”
“다, 닥쳐! 너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장기동이야! 장기동!”
아무 것도 없던 것들이 권력을 잡으면 저런 식으로 꼰대질 하는 건 전통인 것 같다.
“그래서?”
아직 똥과 된장을 구분 못 하고 있는 장기동.
내가 헬기에서 뛰어내린 걸 못 본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헛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강예서 이 바닥에서 매장시킬 수 있어! 너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지금 대배우를 폭행한 거야! 겁대가리도 없이!”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장기동.
일제시대 순사 완장 차고 민간인들 학살에 앞장 선 친일파 같았다.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을 보던 사람이 성공을 하면 종국에는 이 꼴이 되는 모양이었다.
상황 파악 못 하고 여전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개돼지도 저러지 않을 것이다.
“상 또라이 새끼. 크크크.”
저런 저급한 인간들 한두 번 본 것도 아니다.
놈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똑같아 이제는 웃기지도 않았다.
아공간에서 당장 창을 소환해 저 주둥이를 꿰뚫고 싶어 손이 근질거렸다.
살육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쓰레기 청소에는 소홀하고 싶지 않았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태산 씨…….”
강예서가 옷깃을 잡아끌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뭘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뭐야?”
“저거 미군 헬기 아냐?”
“UH60인데?”
“누가 왔어?”
헬기 소리에 섬 주민 몇 명과 스태프들이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어! 주재국 선배님!!!”
“싸움 난 거야?”
모래사장에 쓰러진 주재국을 발견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다가섰다.
결단의 시간.
장기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대상에게 상해를 가하거나 죽일 수 없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울리는 알림음.
“뭐라고?”
어이가 없어 허공을 보고 내뱉었다.
- 악신과 계약을 맺은 자입니다. 악신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아!”
어처구니가 없어 신음이 터졌다.
죽어서 악신계로 끌려갈 놈이었다.
산목숨으로 악신과 자신도 모르게 계약을 맺고 있었던 장기동 감독.
- 그를 해하기 위해서는 신이 되어야 합니다. 신이 되시겠습니까?
알림음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장기동을 다시 눈여겨봤다.
눈동자 깊숙이 일렁이는 어둠의 그림자.
인간의 탈을 썼으나 인간이 아닌 짐승의 눈빛이 분명했다.
“야! 강예서! 그 자식 누구야? 뭔데 여기 와서 행패야!”
사람들이 나타나자 어깨에 힘을 주고 더 큰소리를 치는 장기동 감독.
아주 개 쌍놈의 새끼가 맞았다.
“이, 이사님…….”
그때 술에 취한 씨큐리티 직원이 비틀거리며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면접 서류를 검토할 때 기억에 남았던 사람이었다.
분명 강예서 매니저 겸 보디가드로 발령 냈었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버럭 호통이 터졌다.
매니저가 정신만 차리고 있었다면 저 잡것들이 강예서를 상대로 저렇게 설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특전사 출신 중에서도 능력이 뛰어난 자였다.
“매니저님은 잘못 없어요……. 다 저 간악한…… 저 사람이 저지른 짓이에요.”
강예서가 장기동을 가리키며 차갑게 노려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전쟁에서 패배하고 돌아와도 용서를 받지만 경비를 소홀히 한 병사는 처단 받는 법.
“오오! 네가 M.T.S 이사였어? 어쩐지 고개가 빳빳하더라~.”
장기동이 이죽거리며 나를 아는 듯 감탄을 터트렸다.
악신의 기운에 사로잡혀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자였다.
“그래서?”
냉정하게 물었다.
“그래서는 뭐! 주연 배우를 저 꼴로 만들었으면 책임져야 할 거 아냐! 내 영화 어쩔 거야! 어쩔 거냐고!”
작두를 탄 것처럼 장기동은 침을 튀기며 악을 썼다.
속이 뒤틀렸다.
어떤 악신과 계약을 맺었는지 찾아내 밟아 버리고 싶었다.
적어도 중급 신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긴 나와 맞짱 뜰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같은 말을 내뱉었다.
“뭐가 그래서야! 당연히 배상해야지!”
“!!!”
배상이라는 말에 번쩍 메시지가 머리를 때렸다.
카르마를 이번 생에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품속에서 지갑을 꺼냈다.
수표 몇 장을 집었다.
벼락부자들은 몇 장쯤 가지고 다니는 고액 수표.
수표들 중에서 1억짜리 세 장을 골랐다.
저벅저벅 장기동에게 바짝 다가갔다.
“뭐, 뭐야.”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장기동.
“뭐긴 뭐야.”
“???”
와락 장기동 멱살을 잡아 당겼다.
“안 놔! 이거 놔 새끼야!”
바동거리는 장기동이 입고 있는 옷 속으로 수표를 구겨 넣었다.
씨익.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물었다.
“나…… 개 값 선불로 줬다.”
“뭐, 뭐라고?”
장기동이 황당해 하는 사이 놈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쫘아아아악! 쫘아아악!
연이어 터지는 찰진 뺨 싸대기 날아가는 소리.
“으아아아아악!”
생각지 못하게 장기동의 옥수수가 몇 알 빠져 허공으로 튀었다.
그럼에도 잠잠한 알림음.
역시 세상은…….
돈으로 해결되는 게 더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