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화 (343/1,284)

 # 344

회귀의 전설

344장. 세상에는 너무 많은 쓰레기가 산다 (2)

“도대체…… 매니저님은……. 하아.”

강예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에 벌어진 마을 주민들과의 화합을 위한 식사에서 매니저가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시다 쓰러졌다.

섬이었다.

강예서는 패딩을 둘러쓰고 숨듯이 해변을 걸었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몇 시간을 더 들어가야 닿는 이름 모를 낙도에 촬영장이 꾸려졌다.

마을 주민은 20여 가구에 다해 봐야 수십 명이 넘지 않았다.

촬영 장소는 섬에 남아 있는 폐교.

시나리오에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은 내용들이 연달아 추가됐다.

이전 시나리오에는 여주인공이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한적한 남해안 바닷가를 찾았다고만 되어 있었다.

그 부분이 한 마디 언급도 없이 섬으로 변경되었다.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며 현장에서 감독이 어선을 빌려 섬으로 들어왔다.

인원이 제한되면서 코디도 배에 타지 못했다.

매니저가 필요한 옷을 들고 강예서가 직접 메이크업 박스를 들었다.

섬에 도착하자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처음 육지에서는 영화계의 대가답게 진중하게 대했던 관계자들이 섬에서 들어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감독이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누드신과 베드신을 아무렇지 않게 요구했다.

모든 걸 책임지는 감독이었기에 시나리오 수시 변경 이야기는 여러 번 듣긴 했었다.

갑작스럽게 필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새롭게 연출을 하기도 했다.

그 부분이 대부분 파격적인 내용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었지만 유명한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연기를 하는 여배우 입장에서는 아직 신인인 강예서는 그 선을 알지 못했다.

스토리 라인도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산책 그림이 갑자기 맞닥뜨린 동네 깡패와의 진한 씬으로 바뀌었다.

원래는 바다를 찾은 다른 실연 남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날을 새우는 씬이었다.

대사가 워낙 많아서 온 힘을 다해 외웠고, 주인공의 성격을 분석하고 연구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스토리가 바뀐 것이다

“이건 아니야! 아니야!”

강예서는 바뀐 시나리오를 확인하고 몸서리를 쳤다.

가학적 성폭행을 당하고 난 뒤 이별한 사랑이 그나마 순수했다는 걸 알게 된다는 내용으로 시나리오가 변질돼 있었다.

그리고 납득할 수 없는 정서를 반영해 성폭행한 동네 깡패와 사랑에 빠져 섬에 남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관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섬에서 창녀처럼 살아간다는 스토리로 마무리 됐다.

삼류 개 막장 스토리였다.

제목도 ‘늪 같은 섬의 나쁜 개들’로 바뀌었다.

그제야 떠올려 보니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음울하고 저질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끔찍한 욕망을 거창한 예술로 포장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 내면을 다뤘지만 이건 싸이코들의 자기변명을 위한 몸부림처럼 보였다.

섬에 들어오면서부터 바뀐 끈적거리고 욕망에 사로잡힌 듯한 감독과 주연 배우의 눈동자.

감독들이나 PD들 상당수가 여배우를 상대로 성상납을 당연시 하는 관습이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M.T.S의 회사 마인드를 믿었다.

M.T.S에서 보디가드 겸 매니저를 붙여 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보디가드 겸 매니저의 등장에 감독은 처음에는 당황하는 듯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섬에 들어오는 배 위에서 핸드폰을 압수당했다.

일주일이면 영화가 완성된다며 완벽성을 위해 그 기간에는 핸드폰이나 통신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이상했지만 바다 위 배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순순히 응했다.

모든 사람들이 감독의 요구를 따랐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다른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장기동 감독의 말은 법이나 진배없었다.

친척이 살고 있다는 섬도 다를 바 없었다.

섬 주민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감독의 말에 꼼짝을 못했다.

사이비 광신도들을 방불케 할 만큼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섬에 내리고 얼마 안 되어 깨달았다.

강예서와 달리 초짜인 매니저 겸 경호원인 씨큐리티 직원은 감독의 말을 잘 따랐다.

영화계 생리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저 유명세 있는 감독 말에 고개를 숙였다.

“경찰서도 없고……. 회사에 연락해야 하는데…….”

장기동 감독도, 주재국 배우도 싫었다.

황 대표에게 연락을 넣으면 당장 섬에서 나오라고 할 것이다.

“태산 씨…….”

그리고 생각나는 또 한 사람 장태산.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강예서였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예서의 인생에 있어서 정말 듬직했던 생애 최고의 남자였다.

그가 몹시 그리웠다.

“예서야~.”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훅 튀어 나온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서, 선배님…….”

이번 영화의 남자 주인공 주재국 선배였다.

올해 나이 사십 대 초반으로 몇 년 전부터 영화계나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부상 중이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선 굵은 역할과 카리스마로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눈빛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절로 기가 죽었다.

지금도 눈빛이 이글거렸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멋있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질된 욕망이 그의 모습에 투영돼 보였다.

“안 추워? 들어가서 소주나 더하자. 내일부터 바쁘잖아. 우리 장 감독님 스타일이 불도저야. 그냥 화끈하게 한 방에 밀어 붙여서 끝내버려. 그래서 영화가 살아서 꿈틀거려~ 대단한 감독님이지. 크크크.”

감독을 향한 묘한 칭찬을 읊조리며 비릿하게 웃는 주재국.

말을 하면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강예서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강예서의 몸이 본능적으로 바들바들 떨렸다.

사냥감을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한 사냥꾼 같았다.

여자 스태프들도 몇몇 섞여 있었지만 술자리 도중에 모두 다 사라졌다.

뭔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듯 강예서만 남기고 하나둘 짝을 이뤄 빠져나갔다.

이상한 느낌에 핑계를 대고 강예서도 밖으로 나왔지만 이렇게 사냥꾼에게 잡혔다.

작은 섬이라 어딘가로 피할 수도 없었다.

밀집돼 있는 마을과 모래사장 말고는 길이 험준했다.

쉐에에에에엥.

바닷바람도 거칠었다.

“누구 기다려? 폭풍 주의보 내렸어. 일주일 동안 꼼짝 못해~ 배는 물론이고 헬기도 못 들어와. 전화도 안 되는 무인도 같은 섬……. 뭔가 느낌 오지 않아?”

주재국이 비뚤어진 표정으로 웃었다.

한 발자국 더 강예서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거리는 불과 2미터 정도.

해변을 밝히고 있는 희미한 가로등이 두 사람의 실루엣을 아슬아슬하게 흔들었다.

“선배님…….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불편해요. 더 다가오시면 소리 지를 거예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압도당한 강예서가 대차게 나갔다.

전 소속사 대표의 접대 요구를 뿌리칠 때 느꼈던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를 악물었다.

“왜? 내가 뭘 잘못했어? 아끼는 후배에게 조언도 못해?”

주재국이 피식거리며 툭툭 말을 던졌다.

“감독님에게 말하겠어요. 이 영화 저 출연 안 할 거예요.”

“누구 맘대로? 너 영화가 그렇게 우스워!”

눈빛이 변하며 버럭 호통 치는 주재국.

“제 마음대로 할 거예요! 시나리오 변경은 소속사와 배우 합의로 진행하기로 했잖아요! 선배님은 이 바뀐 시나리오가 이상하지 않아요! 그건 영화를 가장한 남자들의 저열한 포르노일 뿐이라고요!”

강예서도 목에 힘을 줬다.

“미친. 지X하고 있네~. 키키키.”

“!!!”

주재국의 갑작스러운 욕설에 강예서는 깜짝 놀랐다.

대놓고 여자 후배에게 저질스러운 욕을 퍼붓는 주재국의 모습은 이미 선배 배우가 아니었다.

시정잡배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너 알고 왔잖아? 장 감독님 배역 따려면 일단 벗고 시작하는 거 몰랐어? 예술? X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이름도 없는 것들 띄우는 게 쉬운 줄 알아?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 새끼들도 다 변태야. 예술로 포장해서 자극적 포르노를 대놓고 즐기는 새끼들이야.”

주재국은 거침없이 영화제 관계자들을 욕했다.

“그만해요! 듣고 싶지 않아요!”

“들어! 너 뜨고 싶지? 그럼 벗어! 이 바닥에서 여배우들 어떻게 크는지 몰라? 감독들이 그냥 주연 배우 꽂아주는 줄 알아? 알만 한 애가 왜 그래? 다 그것 때문에 꽂아주는 거야.”

“닥쳐요! 당신은 선배도 아니에요! 더럽고 저질…….”

“푸하하하하하하. 그래 나 저질이다. 그래서 어쩔 건데? 니가 떠벌려도 묻는 건 일도 아냐. 내가 아는 기자들과 소속사, 그리고 나를 좋아라 하는 팬들이 널 꽃뱀으로 몰아 알아서 묻어 버릴걸? 한 번 맛볼래? 배우는커녕 평생 꽃뱀으로 몰려 술집을 전전하다 어두운 지하방에서 폐인으로 살다 인생 끝내고 싶으면 말만 해~.”

악마가 따로 없었다.

주재국은 이 와중에도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주르르륵.

강예서는 차오르는 분노에 눈물을 쏟았다.

성상납 같은 거짓 능력이 아닌 진짜 실력으로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었다.

감독들과 PD들 손을 타지 않고도 기반을 다져 성장한 배우들이 분명 있었다.

힘들지만 그 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울어?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사회에서 가장 더럽고 치사한 바닥이 이곳이야. 여자 스태프들 봤지? 널 제물로 던지고 지들끼리 사라졌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장 감독은 여자가 없으면 잠을 못자. 한마디로 변태지~. 그리고 나? 단짝 친구. 우린 비밀이 없거든. 흐흐흐.”

주재국은 대놓고 장 감독과 한통속임을 까발렸다.

“더러워…….”

겨우 한 마디를 뱉어내는 강예서.

“뭐가 더러워? 젊은 청춘들이 만나면 당연히 불꽃이 튀여야지. 주연들끼리 이런 일 비일비재한 거 몰라? 성은 가장 순수한 에너지야. 영화를 이끌고 가는 힘이지. 너도 금세 적응하게 될 거야. 내가 밀어줄게~. 너 이번 영화 내가 추천했다. 몰랐지? 봄에 들어가는 드라마에도 꽂아줄게. 이번에는 주연 해야지?”

사람의 얼굴을 한 악마가 맛있는 미끼를 던졌다.

주연이라는 말에 대부분 여자 연기자들은 이런 상황에 자포자기하고 만다.

좁은 한국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배우는 신과 같았다.

PD와 작가를 구워삶을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있었다.

“안 해요. 선배랑 다시는 그 어떤 것도 안 할 거라고요!!!”

하지만 강예서는 주재국의 기대와 달리 더 강하게 반항했다.

눈물이 흐르던 눈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더럽고 치사한 연예계를 완전히 등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해! 넌 오늘 나와 연애를 해야 돼~. 그게 네 운명이야. 크크.”

“미친 놈!”

강예서 입에서 욕이 터졌다

쇄애애애앳.

주재국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짜아아악.

“아아악!”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세게 뺨을 맞은 강예서가 비명을 질렀다.

와락.

강예서의 머리칼을 오른손으로 휘어잡는 주재국.

타오르는 욕망에 눈동자는 이미 빨갛게 충혈됐다.

파괴의 본능이 폭발할 듯 주재국을 흥분시켰다.

“어디서 반항이야. 좋게 말할 때 들을 것이지~.”

그에게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장기동 감독과 주재국과 함께하는 관계자들도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 침묵했다.

영화판은 생각보다 그 판이 더 좁았다.

“오오! 재국아! 대사 연습하는 거야? 완전 죽이는데?”

그때 장기동 감독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불콰하게 달아오른 뺨은 알코올 때문이 아니었다.

강예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짐승의 등장이었다.

“형, 오셨어요~.”

“……살살 해라.”

강예서의 붉은 뺨을 보고 장기동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이런 애들은 실전으로 해야 정신 차리죠. 여기가 연기 학원도 아니고 징징 거리잖아요.”

“그건 잘했다. 요즘 애들은 감독 말을 엿으로 들어. 벗으라면 벗고 까라면 깔 것이지~”

“내일부터 당장 찍으려면 오늘 확실히 교육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오랜만에 제대로 교육 좀 시켜볼까? 크크.”

“그럴까요? 흐흐흐.”

장기동과 주재국은 음흉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머리채가 잡힌 강예서는 두 사람의 모습을 할 말을 잃었다.

감독과 주연 배우가 여배우를 놓고 주고받는 대화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절대 사람이 아니었다.

탈을 쓴 악마였고 짐승이었다.

삼류 포르노 영화에도 없는 개막장 스토리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강예서는 그저 눈물만 쏟아졌다.

“어선 빌려 놨다.”

“벌써요?”

“장사 한두 번 하냐.”

“존경합니다. 형님!”

“나도 너 사랑해~.”

두 마리 짐승은 강예서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은 채 거침없이 끌고 가는 주재국.

“아악!”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뽑힐 것 같은 고통에 강예서가 비명을 질렀다.

법이 살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을 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양아치 폭력배나 하는 짓거리를 유명 감독과 배우가 버젓이 저질렀다.

강예서가 비명을 질렀지만 어디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어떤 누구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좀 닥쳐줄래?”

히쭉 웃으며 주재국이 더 거칠게 강예서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다.

“오! 구도 좋아! 이거 써먹자.”

뒤따라가던 장기동은 손가락으로 앵글을 만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상생활을 연기처럼’이 제 모토지 않습니까.”

“그래서 네가 뜬 거야.”

“형님 가르침 덕분입니다.”

“가르침으로 되냐? 잠재된 본능이지~.”

“그 본능 형님이 깨워주셨지 않습니까.”

“너나 나처럼 밑바닥을 굴러본 놈들은 다 그런 잠재적 본능 품고 살지. 잘난 맛에 지X 떠는 계집들 박살내는 재미가 쏠쏠하잖아.”

“그렇죠. 밑바닥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은……. 다 밟아놔야 합니다!”

인생의 밑바닥 시절에 당했던 차별과 무시를 독기로 승화시킨 두 사람.

강예서를 끌고 준비해 둔 배로 다가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그때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접근하는 헬기였다.

거친 해풍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

“저, 저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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