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3화 (342/1,284)

 # 343

회귀의 전설

343장. 세상에는 너무 많은 쓰레기가 산다 (1)

타아아아아앙!

잡목이 우거진 넓은 들판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꾸에에에에엑! 꾸에에엑!

곰만 한 시베리아 야생 멧돼지가 총을 맞고 방아쇠를 당긴 자를 향해 돌격했다.

총알이 등을 관통했음에도 쓰러지지 않은 멧돼지의 눈알은 살기로 빨갛게 충혈이 되었다.

쓰러지더라도 반드시 총을 쏜 자를 들이받아 아작을 내겠다는 살육의 광기가 멧돼지를 극한으로 흥분시켰다.

곰도 두려워 도망친다는 시베리아 멧돼지.

목표를 발견했다.

홀로 서서 다시 총구를 겨누는 남자.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멧돼지가 거친 숨을 뿜어내며 내달렸다.

두두 두두두두둣.

지축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500킬로가 넘는 수컷 멧돼지는 이 구역의 최상위 포식자였다.

호랑이도 건들지 못하는 멧돼지가 한 남자와 대결을 펼쳤다.

멧돼지와 남자의 거리는 약 10미터.

숨을 멈추고 멧돼지를 겨냥한 남자의 총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타아아앙!

그리고 울리는 또 한 발의 충성.

꾸에에에에에엑!

단말마의 비명을 토하며 앞으로 고꾸라지며 앞다리가 꺾인 멧돼지.

콰다다당.

바닥을 구리며 총을 쏜 남자 앞까지 관성으로 굴러가 멈췄다.

단단한 멧돼지 이마가 뻥하니 총알에 관통당했다.

붉은 피와 뇌수가 곤죽이 되어 땅을 적셨다.

타다닥.

사냥이 끝나자 다른 쪽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던 일단의 경호원들이 빠르게 달려와 남자 주변을 둘러섰다.

특수 개조한 군용 사냥총을 들고 있던 중년의 남자.

경호원이 건넨 시가를 받아 입에 물었다.

“오늘은 좀 짜릿했어~.”

페이스 라인에 M자형 탈모가 진행되고 있는 남자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사냥은 남자의 오랜 취미 생활이었다.

KGB 시절부터 스트레스가 쌓이면 동료들과 헬기를 동원해 사냥을 즐겼다.

러시아 남자라면 술과 사냥은 기본이었다.

뜨거운 핏속에 흐르는 마초 문화는 그 자체가 바로 러시아의 상징과 같았다.

특히 지금 사냥을 끝낸 남자는 다양한 능력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레닌그라도 법대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것은 물론 격투기의 달인, 만능 스포츠맨, 사격술이 뛰어났다.

거기에 전투기도 몰 수 있는 조종술에 탁월한 말주변, 카리스마 넘치는 조직 장악력과 쇼맨십이 강한 위기관리 능력까지 모든 면이 완벽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 같은 예술적 능력 또한 겸비해 다방면에서 만능인 남자였다.

남자는 러시아의 위대한 황제 표트르 대제와 종종 비견 되었다.

“보스. 방금 한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남자 옆에 있던 최측근이 소식을 전했다.

러시아 내에서는 총리라 불렸지만 첩보국과 경호국에서는 보스로 통하는 남자.

“어떻게 됐어?”

“5년 장기 계약에 우리가 제시한 금액보다 배럴당 5달러를 더 지급하기로 했답니다. 1년 선불 300억 달러가 방금 전 여러 은행을 통해 입금됐습니다.”

“장사할 줄 아는 친구가 맞아. 목숨 값으로 10억 달러를 던질 정도라면 그 정도 배포는 돼야지.”

남자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된 5달러는 보호비 같습니다.”

“하하하. 당연한 것 아닌가. 내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어. 쪼잔한 양키들이나 겉과 속이 다른 유럽 놈들 같지 않아 좋아!”

남자는 기분이 좋았다.

지금의 위기쯤이야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다.

넘쳐나는 천연자원은 이렇다 할 공업 생산력이 없어도 러시아를 지탱해 왔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 제국은 수천 년을 버텨왔다.

“경호를 바로 지원할까요?”

“친구에게 선물은 과해도 좋은 법이지.”

“경호팀을 파견하겠습니다.”

“한국에 경호팀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상당히 강한 경호팀입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을 고깃덩이로 만들었습니다.”

장태산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었다.

“근접 경호 말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통보해 줘. 특히……. 중국 놈들 감시 잘해. 세상에서 가장 음흉한 도적놈들이잖아.”

같은 공산주의의 길을 걸었지만 중국과는 과거부터 수시로 부딪쳤다.

영토 문제뿐만 아니라 군사 무기를 함부로 카피해 생산해 내는 도적질 전문가들이었다.

러시아 과학자들을 꼬드겨 중요 정보를 빼내가는 일이 수없이 벌어졌다.

냉정이 끝났지만 자존심으로 미국과 수시로 부딪치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아쉬운 친구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 이번 오일 거래도 추진한 것이다.

돈도 중요했지만 진짜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로버트 라이언과 상당히 깊게 연관되어 있는 한국인 장태산.

러시아의 친구가 됐다.

“언제 한 번 초청해봐. 같이 사냥하면 재밌을 것 같아.”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다음 사냥감 찾으러 가볼까?”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원을 향해 몇 대의 헬기가 빠르게 다가왔다.

***

“꺄아아아악!!!”

“누구야?”

“몰라. 연예인인가 봐!”

언제나 사생팬들이 넘쳐나는 M.T.S 정문.

포르쉐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하자 사방에서 비명이 터졌다.

좋을 때였다.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래서 M.T.S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들에게 엄격한 사내 규율을 적용시켰다.

절대 팬들이 섭섭하게 대하지 말 것.

팬들과 교감하되 깊은 사이가 되지 말 것.

팬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대할 것.

아무리 성공해도 어깨에 힘주지 말 것 등등.

이사인 내 마음대로 만들어 배포했다.

화장실을 비롯해 건물 곳곳에 비치해 두고 머리에 강제 주입시켰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인 미성년과 성년의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에게는 교육이 필요했다.

팬들의 눈이 세상 누구보다 냉정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뜰 때는 모두 추앙하지만 추락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스타는 별일 때 가장 빛나는 법이다.

가치를 잃어버려선 안 됐다.

악의적 소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걸 파괴하는 순간 팬들은 냉정하게 돌아선다.

나 또한 과거에는 그런 팬들 중 하나였다.

사건이 터지면 인터넷 댓글로 연예인들을 공격하기도 했었다.

스타들 나이와 상관없이 완벽한 이상형이기를 바라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변질된 팬심이었음을 나중에 알았다.

그들도 똑같은 감정을 갖고 사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공감하지 못했다.

스타도 실수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일 뿐이라 걸 다시 살게 되면서 깨달았다.

“충성!”

파견 나온 씨큐리티 직원이 경례하며 주차장 차단기를 열었다.

사생팬들은 기회만 되면 건물 침투를 감행하는 바람에 경호원들은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훈련지로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주차장 안 이사 전용 자리에 차를 파킹했다.

건물이 워낙 커 주차장도 널널했다.

승강기를 타고 1층에 들러 바로 이사실이 있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오가다 마주친 직원들이 인사를 했다.

회사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좋았다.

연습생들이 뿜어내는 땀 냄새가 공간 곳곳에서 맡아졌다.

무엇을 이루고자하는 역동적 기운들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최저임금이 보장되고 사대보험도 가입되는 이런 연예기획사는 대한민국에 없었다.

마이너리그 최저 임금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굶지 않고 연습할 수 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두 감사했다.

이사실로 바로 들어갔다.

상시 근무하는 공간은 아니지만 사무실은 따뜻한 히터가 가동되어 최적의 환경이 유지 됐다.

벽면에는 FOB 멤버들의 프로필 사진이 붙어 있었다.

멤버들의 장난스런 사인과 문구를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이사님은 처음부터 내 밥!

- 우리를 잊으면 이사님의 과거도 무사치 못할 것이다!

- 오빠~ 우리만 바라봐~♡.

멤버들이 내가 없는 사이 이 방에 침투해 장난을 친 듯했다.

FOB는 요즘 대한민국 넘버원 걸그룹이 됐다.

지난 생과 완전 다른 일이 벌어졌다.

서련이야 워낙 미모가 월등해 뜨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은 그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각자 팬덤이 생겼다.

수익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작년 말 기준으로 멤버들에게 20억 이상이 배당됐다.

최고급 의전과 매니저, 경호를 부담했음에도 회사 수익이 엄청났다.

설치된 오디오를 작동해 FOB 멤버의 신곡을 감상했다.

- 예예예~♪ 별빛 반짝이는 하늘을 날아~♬.

귀엽고 깜찍, 그리고 묘한 섹시함이 가득한 신곡은 1달 동안 각종 순위를 올킬했다.

오늘도 행사로 인해 회사에 없었다.

대한민국 연예인들 중 가장 바빴다.

물들어 올 때 땡길 줄 아는 멤버들이었다.

가끔 서련이에게서 힘들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푹 쉬게 스케줄 조정해 주겠다고 하니 경제를 모르는 이사라고 구박만 당했다.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돈맛을 알아가는 황연태 대표는 나를 보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기저귀 값 걱정하던 매니저 시절 모습은 진즉에 사라졌다.

손목에 찬 시계 하나까지도 누구나 알 만한 명품을 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도배 됐다.

그렇다고 스타일이 촌스럽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 대표답게 톡톡 튀는 감각이 엿보였다.

“보기 좋습니다.”

“다 이사님 덕분입니다.”

“황 대표님 능력이 빛을 보신 겁니다.”

“죽을 때까지 옆에서 보좌할 수 있도록 은총을 내려주십시오~.”

아부가 수준급이었다.

“FOB 신곡은 준비됐습니다.”

“안무는…….”

“당연히 옵션이죠.”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내 실력을 알고 있는 황 대표는 손가락으로 엄지 척을 만들었다.

“혹시 이사님 연애하십니까?”

“네?”

“오늘따라 얼굴이 화사한 것 같습니다~.”

나이 그냥 먹는 거 아니다.

연예계에서 살아남더니 눈썰미가 귀신같았다.

타샤와 뜨거운 밤을 보내며 보드카를 격정적으로 마셨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언제나 쉬운 법이다.

타샤는 자유연애 주의자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스파이로 살아가는 그녀에게 작은 일탈은 활력소라고 했다.

날이 새도록 그녀와 사랑을 나눴다.

놀랍게도 타샤는 FSB의 명령으로 러시아 대사관 근무가 결정됐다고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러시아와 이런저런 협력 사업에 타샤는 필수였다.

눈치 빠른 곰들이 타샤를 내 곁으로 보낸 이유는 빤했다.

인연 있는 그녀를 통해 날 보호하면서 동시에 감시하겠다는 의미였다.

귀여운 애교로 봐줬다.

그 덕에 음란 신들이 포인트를 왕창 쏴줬다.

“FOB 맴버들은 설날 전까지 활동을 끝내십시오. 이미지를 소모하는 것보다 휴식을 취한 뒤 다음 곡으로 승부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소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은 연예인들이 뜨면 팔아먹기 바빴다.

유한한 이미지 소모를 걱정하지 않고 수익만 노렸다.

반짝 떴다가 사라지는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절대 그런 MTS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황연태 대표도 돈보다 소속 연예인들을 소중하게 여겼다.

“고은이는 계속 트레이닝 중입니까?”

“아주 성실합니다. 솔직히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보면 볼수록 진국입니다. 귀엽기도 하고 도발적인 이중적 매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황 대표는 강고은의 매력을 바로 캐치했다.

“한국 대표 여배우로 성장할 겁니다. 투자를 아끼지 마십시오.”

“배우려는 자세가 남다릅니다. 학업 성적도 뛰어납니다.”

강고은을 생각하면 언제나 이 사업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도깨비 신부’에서 열연하던 당시 발랄하던 그녀의 목소리와 행동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동준이는 미국에서 적응 잘하고 있습니까?”

“녀석의 성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현지 프로듀서 쪽에서 음반을 내자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요?”

“대표님의 안목에 언제나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엄지 척.

“예서 씨는 활동 잘하고 있죠?”

“물론입니다. 요즘 제대로 이름을 날리는 중입니다. 장기동 감독님 부름을 받고 지금 영화를 찍고 있습니다. 상대 배우가 배우 주재국입니다. 이 작품으로 칸에 갈 거라는 예상을…….”

“잠깐만요? 누구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고 있었던 파렴치한 영화감독 장기동과 그와 쌍벽을 이루는 천하의 개 쓰레기 남자 배우 주재국.

아차 싶었다.

이 바닥을 너무 좋게 생각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쓰레기가 섞여 살아갔다.

그중에서도 더럽고 치졸한 발정난 승냥이 같은 놈들이 쓰레기 아닌 척 쓰레기로 살아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강예서가 던져졌다.

지난 생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거의 무명이나 마찬가지였던 강예서가 주목 받기 시작하자 승냥이들이 달려들었다.

파르르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네?”

“강예서 씨 지금 어디 있냐고 묻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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