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
회귀의 전설
341장. 판을 깔다
“10억 달러? 흐음…….”
한국에서 보내온 보고서에 리장창의 안색이 변했다.
잊을 만하면 계속 엮이게 되는 장태산.
클라라뿐만 아니라 자신도 그를 직접 만나 봤고 한국 본가에까지 초대됐었다.
생각보다 인연이 깊다면 깊었다.
가문의 일로 기사단과 엮이지 않았다면 사위로 생각해 봤을 만큼 괜찮은 녀석이었다.
그런 이유로 홍콩에서 끝장을 보려고 했다.
살려두면 앞날에 엄청난 골칫거리가 될 것을 이미 예감했었다.
녀석은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은 물론 상당한 무술 실력까지 겸비했다.
금융위기를 돌파하는 데 전념하느라 잠시 녀석을 잊고 있었다.
리장창의 천지회 지분이 있는 홍콩상행은행의 보고에 깊은 시름에 빠졌다.
인단 단주의 이탈리아 조직도 녀석이 박살을 냈다는 보고를 받았다.
천지회의 천단, 지단, 인단의 단주들과 모두 악연으로 엮이게 됐다.
다른 놈 같았다면 진작 제거했어도 제거했을 것이었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도저히 장태산의 능력을 감 잡을 수 없었다.
녀석은 살수를 투입해도 살아남았고 심지어 홍콩 본진에서도 거짓말처럼 도망갔다.
한국에서는 전직 퇴역 군인들 대다수를 고용해 경호업체를 꾸리며 안전을 꾀했다.
거기에 미국 정보부의 보호를 받는다는 정보까지 받았다.
갈수록 처리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는 장태산.
이 와중에 갑자기 홍콩상행은행 한국 지점에 대출을 신청했다.
세계적 경제 환란이라 달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홍콩상행은행은 미국 외환위기로 투자했던 손실액이 수백억 달러가 넘어갔다.
보이지 않는 긴급 자금을 수혈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무턱대고 찾아와 10억 달러 대출 요구를 했다.
명분은 실패한 주식 투자에 대한 물타기를 위한 자금 융통이었다.
기사단과 천지회의 화교 자본이 들어가 있는 홍콩상행은행 수뇌부는 고심했다.
홍콩에서 대출 받아갔던 달러를 추적해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로버트 라이언도……. 그 녀석과 연관이 깊다.”
실패한 월가의 관리자였던 로버트 라이언도 의심스러웠다.
불과 몇 년 만에 그렇게 큰 대형 투자자가 될 수 없었다.
로버트의 자산이 수천억 달러가 넘어간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선물과 주식에 이어 외환 시장에도 뛰어들어 승승장구 중인 로버트 라이언.
미래를 훤히 읽고 있는 듯한 투자로 실패를 모르고 부를 쌓았다.
그런 로버트 라이언과 친구처럼 어울리는 장태산의 관계를 납득할 수 없었다.
나이도 차이가 컸고 신분도 달랐다.
장태산의 최근 수익률은 형편없었다.
벌어들인 자금을 쓸데없는 교육사업과 의료사업, 자선사업에 밀어 넣었다.
투자했던 주식은 한국경제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홍콩에서도 모든 걸 파악하고 있던 장태산이 허를 찔러왔다.
“알고 그랬다고 하기에는…….”
돈이 필요한 자들의 일반적인 루트를 밟고 있었지만 뭔가 찝찝했다.
뚜루루루루루 뚜루루루루루.
리장창의 사무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무나 알 수 없는 직통 전화였다.
“누구십니까?”
- 리 대협. 접니다.
“아! 단장님!”
리장창은 수화기를 들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내를 통해 습득한 프랑스어가 튀어나왔다.
전화기 너머 상대는 서로의 목적을 위해 손을 잡은 동업자이자 하나뿐인 외동딸 클라라의 시아버지였다.
동시에 아내의 친척이었다.
아무리 동업 관계로 혼맥이 형성됐지만 리장창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 간 후 클라라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엄격한 유럽 귀족가문은 중국 명문가와 다를 바 없는 가풍을 소유했다.
중국몽의 대의를 위해 먼 타국에 시집을 보낸 클라라를 걱정하는 리장창은 세상 누구보다도 기사단장이 어려웠다.
- 아르노라고 불러주십시오.
“다음에 그리 불러드리겠습니다.”
- 별일 없이 잘 지내셨습니까?
“단장님의 염려 덕분에 무탈했습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갔다.
동맹이지만 혈맹은 아니었다.
세상을 경영하는 다른 경쟁자들보다는 가까웠지만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않았다.
필요에 의한다면 서로에게 비수를 겨눌 수 있었다.
별일 없느냐 안부를 물었지만 서로에 대한 정보는 빠짐없이 수집했다.
- 하하. 다행입니다.
기사단장이 호쾌하게 웃었다.
‘투자 건이다…….’
장태산이 던진 미끼에 먼저 성전기사단이 반응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장태산이 던진 미끼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 다름이 아니라 오늘 투자자 로버트 라이언의 월가 사모펀드가 주식 투자를 타진해 왔습니다.
“음…….”
리장창이 신음을 흘렸다.
기사단장의 목소리만으로도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갔다.
- 리 대협도 알고 있겠지만 이런 환란 시국에 미국 달러를 은행에 유치하는 일은 신용에 크나큰 도움이 됩니다. 100억 달러를 유치해서 10억 달러를 빌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책입니다. 담보도 제공하겠다 하니 그보다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성전기사단 쪽은 넘어간 것 같았다.
클라라와 장태산 일을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기사단장은 개의치 않았다.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을 감수하는 조직의 수장다웠다.
계산기 몇 번 두들겨본 리장창은 이번 제안이 남는 장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상대는 쥐새끼 같은 장태산이었다.
“저희 쪽도……. 이견이 없습니다.”
- 그렇죠? 다행입니다. 공과 사는 언제나 구분함이 우리들의 오랜 세월 쌓아왔던 약속이 아니겠습니까.
천지회와 장태산에 얽힌 사건을 알고 있는 기사단장의 무언의 압력.
‘당했다.’
찝찝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대출.
“당연한 말씀입니다.”
리장창도 100퍼센트 동의를 던졌다.
장태산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몰라도 명백하게 유리한 거래였다.
거절하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었다.
- 하하하. 고맙습니다. 조만간 클라라와 함께 홍콩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요즘 갑자기 입맛이 없는지 홍콩을 그리워하는군요.
“오! 그런 일이!”
클라라의 방문 소식에 리장창의 목소리가 활기를 띠었다.
지금 당장은 장태산보다 클라라에 대한 그리움이 더 문제였다.
‘뛰어봐라……. 어린놈의 새끼! 너는 클라라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제거할 것이다!’
***
[정부는 갑작스런 환율 변동에 기업과 가계의 어려움을 돕고자 한국은행과 함께 외환안정을 꾀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가용 가능한 외환을 시장에 풀어 적극적으로 환율을 방어해…….]
TV 앵커는 앵무새처럼 정부의 발표 내용을 조잘거렸다.
사기꾼 정권은 갑작스런 외환위기에 당황한다.
한반도 대운하와 5대강 사업으로 한밑천 뽑아 먹으려던 쥐새끼 정권.
갑작스런 외환 위기로 똥줄이 타고 이때부터 무차별적으로 외환 보유고를 푼다.
그리고 블루라는 희대의 국제적 업자를 만나게 된다.
2020년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거래업자.
그를 통해 쥐새끼 정권은 본격적으로 해외자원기업 등을 사들이게 된다.
국내파에서 국제파로 진화하게 되는 셈이다.
멀쩡했던 공사들이 재정난에 휩싸였다.
정부 보증을 받는 공기업들의 부채가 수백 프로로 치솟았다.
정권이 바뀌어도 밝혀내지 못했다.
쓰레기들을 실제 가격의 수십 배를 더 얹어주고 구입하는 국제적 멍청이 짓을 한국이 맡았다.
“이건 최병박과 합자한 누군가가 있다……. 그게 누굴까?”
머리에 돈밖에 없는 희대의 사기꾼과 대한민국 자산을 나눠먹는 집단의 정체가 궁금했다.
시나리오 역추적은 가능했다.
“최상득 아들이 개입한 건 알겠는데……. 결국은 월가와 연결되어 있고 그 뒤에는…… 차일드가 있겠지.”
월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차일드 가문의 놀이터였다.
최병박이 한국의 외환을 무제한 사용해도 신용평가사들의 평가는 높았다.
차일드 가의 비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병박은 감옥에 가서도 해외 투자사업에 대한 추궁을 당하지 않았다.
미국 권력집단이 압력을 행사했음이 확실했다.
정부나 국회 모두 눈치를 봤다.
망해가는 월가의 투자회사를 산업은행이 매입하려 했던 일이 그 시작이었다.
밑이 아예 없는 독을 구입했다면 2009년에 대한민국은 망했을 것이다.
최병박은 운이 좋았다.
퇴직 후 2017년 정권이 바뀌는 시점까지 호사를 누렸다.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장태산입니다.”
- 장 대표님, 스티븐 벤슨입니다.
그가 준 명함을 전화번호에 저장해 놨다.
형식적인 인사는 생략했다.
- 대표님이 요구하신 대출 승인이 허락됐습니다.
“그래요?”
생각보다 빠른 결정이었다.
리장창이 어깃장을 놓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 본사에서 대출 서류를…….
“신용으로 가죠.”
- 네?
“로버트 라이언의 투자금이 내 보증금입니다.”
- …….
“그 대신 투자금을 200억 달러로 하죠.”
- 그런 결정이 가능합니까?
스티븐이 놀라 물었다.
물론이다. 다 내 돈이다.
“로버트는 현명한 투자자입니다. HSBC의 미래 발전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 아!
“대출 이율은……. 런던 리보금리로 하죠.”
- 너무 낮게…….
“200억 달러가 적나요?”
- ……바로 알아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조건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귀사의 빠른 결정 부탁드립니다.”
- 아, 알겠습니다.
통화가 짧게 끝났다.
“멍청한 놈들. 후후.”
중국 주식 거품 활황기에 홍콩 주식시장을 통해 엄청난 자금을 불렸다.
본토 주식들이 6000에서 1000대로 수직하강하게 된다.
홍콩에 상장된 우량 중국기업들의 주가가 바닥을 쳤다.
공매도를 통해 수십 배의 차익을 얻었다.
그 자금으로 다시 바닥을 치고 있는 중국 주식을 사들였다.
세상에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남는 장사는 드물었다.
중국은 경기침체를 막고자 정책자금을 무한정 풀어버린다.
시장 경제와 전혀 상관없는 공산당의 돈지랄이었다.
그 덕분에 중국을 비롯해 세계 경제는 위기를 돌파한다.
하지만 중국 금융시장은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풀어버린 자금은 부동산에 몰렸다.
그림자금융이 더 활개를 쳤고 지방정부 부채는 장부에도 잡히지 않았다.
쓸모없는 인프라 건설과 부동산 투자는 나중에 발목을 잡는다.
“HSBC는 내가 먹는다!”
화교와 유럽 기사단의 동맹 상징체인 홍콩상행은행을 접수할 생각이었다.
200억 달러 투자가 달콤할 것 같지만 그건 독약이 든 밑밥이다.
“스톡옵션의 마약에 중독되면 망하는 길밖에 없지.”
미래가 불확실한 홍콩상행은행은 스톡옵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구멍이 난 상태에서 200억 달러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명줄 같을 것이다.
200억 달러는 앞으로 80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이 된다.
그 자금을 모두 주식으로 토해낸다면 주인이 바뀔 수 있었다.
“1퍼센트 갑질도 할 수 있고 말이야. 크크.”
악당들의 전유물 같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10억 달러 빌려 놔도 1억 달러쯤 홍콩상행은행 주식을 구입할 것이다.
주식이 폭락한 지금이 적기였다.
1퍼센트 주식으로도 홍콩상행은행장을 바꿀 수 있는 시점이 곧 온다.
나머지는 말했던 대로 물타기 용으로 투입할 것이다.
남들의 뻔히 보이는 투자는 계속 진행형이다.
이놈의 동네는 비밀이 없다.
정부나 기관이나 개인 정보의 민감성을 몰랐다.
대놓고 자본을 확충할 기회였다.
10억 달러를 투자 받아 10배 이상 뻥튀기가 가능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예상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미국 대신 중국과 유럽이 얻어터진다.
중국과 유럽은 발권으로 그걸 막아낸다.
세상에 달러와 유로, 위안화가 넘쳐난다.
흥청망청 넘쳐나는 돈은 그야말로 먹는 게 임자였다.
“본격적으로 판을 깐다…….”
홍콩에서 벌어들인 자금은 다시 중국 주식에 투자가 될 것이다.
거품은 풍성할수록 풍미가 더하는 법이다.
겁도 없이 거품을 만들고 있는 중국을 위해 한 방이 필요했다.
IMF급 위기를 맞으면 인생이 돈이라는 공식으로 살아가는 중국인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공산당이 일당 독재로 통치해도 밥과 고기를 내어주면 참는 족속들이다.
먹을거리가 떨어지면 인간도 잡아먹던 풍습까지 살아날 것이다.
그게 주인이었던 공산당의 살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공자의 복수는 10년도 짧은 법이다.”
거대한 중국을 아작 낼 계획은 차곡차곡 머리에 그려지고 실행 중이었다.
단박에 쓰러트릴 수 없었다.
놈들의 아킬레스건을 노리고 한 방에 쳐야 했다.
그에 비해 쪽발이들은 다루기가 쉬웠다.
계산은 복잡한데 행동은 단순한 놈들이다.
강한 자에게는 숙이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전문가들이 그들이었다.
지금도 날 간 보고 있음이 확실했다.
“한 방에 쓸어버린다……. 꿈틀거리면.”
마피아들을 살육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사는데 인간으로 대접하는 건 감정적 사치다.
내가 가는 바쁜 길에 우회로는 없었다.
“2학년 1학기는 수업을 어떻게 짜야 하나~”
사법 시험 준비는 이미 끝났다.
독학사를 통해 법학과 학점은 이수했다.
작은 약속이라 할지라도 소홀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이.]
“무슨 일입니까?”
휴가에서 유세라 씨가 돌아왔다.
[대표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약속이 잡혔나요?”
[아닙니다.]
“누굽니까?”
[러시아에서 온 인연이라고 말하면 안다고 합니다.]
“러시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