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
회귀의 전설
337장. 파파 (1)
‘도대체 누가…….’
성문이 열리고 보스를 만난 한진웅은 일단 안심했다.
놀라서 충혈 된 듯한 눈을 제외하고 보스는 괜찮았다.
하지만 속속 들어오는 주변 상황 보고와 현장 점검 결과에 할 말을 잃었다.
중세 시대도 아니고 날카로운 무언가에 의해 토막이 난 시신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저항한 흔적도 없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수법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비교 불가능한 압도적인 손속으로 모조리 베어 버렸다.
부하 직원과 합동으로 호텔을 공격한 다섯 놈은 한진웅 팀이 처리했다.
권총도 소총처럼 다룰 줄 아는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
앞 뒤 협공으로 몰아붙였다.
그 와중에도 흥분한 마피아 조직원이 권총 들고 돌격하다 마빡에 구멍이 뚫린 것 빼고는 피해도 없었다.
“전설의 무공 고수라도 왔던 걸까요? 이건…….”
직원 한 명이 농담 같은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저었다.
총을 든 상대를 날카로운 흉기로 상대해 쓰러트리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스무 명에 달하는 자들 중에 무려 열다섯 명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마피아 딸이니까 암중 고수가 호위하는 거 아냐?”
“무협 소설 그만 봐. 그게 말이 되냐?”
“그럼 이건 뭐야?”
“우리를 겨냥한 게 아니면 돼.”
“내 말이~ 흐흐. 이제 걸리기만 해봐! 다 조져버릴 거야!”
총기에 야간 투시경까지 확보한 씨큐리티 직원들은 이제 겁날 게 없었다.
중국인들로 짐작되는 습격자들 품에서 총과 창탄을 충분히 습득했다.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었지만 전혀 문제가 없었다.
아직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RPG7까지……. 이 정도면 전쟁 수준 아닙니까?”
“마피아……. 진짜 쩐다. 앞으로 이탈리아 놈들 만나면 바로 고개 숙이고 살란다.”
“우리 보스 진짜 무서운 분이네. 군대에서도 맛보지 못한 실전 훈련을 이탈리아까지 끌고 와서 시키시다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흐흐흐. 진짜 짜릿한 게 나 오줌 지렸다.”
“이러다 우리 국제 신문에 나는 거 아냐? 한국 사설 경호업체 이탈리아에서 마피아들과 일전을 벌이다!”
“우리 스타 되는 거야?”
“미친놈들아. 여기서 마피아 건들고 집에 무사히 돌아갈 것 같아? 이 동네 짭새들도 다 마피아랑 한통속인 거 몰라?”
“그건 모르겠고~ 우리는 보스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지~.”
“우리 보스. 생각보다 능력 좋다는 소문이 파다해.”
“보스가 그냥 입 닦지 않을 거야. 그렇죠 대표님?”
“…….”
농담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해소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한진웅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가장 의심 가는 한 사람.
‘설마 보스가?’
하지만 정황상 증거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보스가 강한 사람이긴 했지만 사람을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예전에 집을 습격했던 히트맨도 살려 보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암중 살육자의 손속은 백정이 짐승 대하듯 처리했다.
적어도 살인을 밥 먹듯이 한 자가 분명했다.
살인을 하게 되면 품게 되는 주저흔이란 것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욱이 보스가 머물고 있는 방에서 현장까지 움직이는 데는 동선이 복잡했다.
그리고 뛰어내렸다고 하기에는 높이가 상당해 위험 부담이 컸다.
보스가 어떤 식으로든 밖으로 나와 암중에 그들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왔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어떻게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이 안 갔다.
‘그래도……. 하아. 골치 아프군.’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 달리 한진웅의 마음속에서는 의심이 계속 커져갔다.
분명 아닌 것이 맞는데 촉은 계속 보스에게 꽂혔다.
“대표님……. 저기 누가 오는데요?”
그때 구릉에 위치한 성을 향해 일단의 무리들이 다가왔다.
자가용과 SUV에 분리수거 차량을 달고 오고 있었다.
약 20여 대의 차량.
“모두…… 은폐해서 포위해. 손님들 오신다!”
“또요?”
“흐흐흐. 밤 한 번 오지게 기네~.”
겨울이라 아직 동이 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3시.
잠들지 못한 씨큐리티 직원들이 어둠 속 쥐 떼처럼 조용히 몸을 숨겼다.
총알과 수류탄, RPG7까지 수중에 넣은 상태였기에 탱크가 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한진웅과 씨큐리티 직원들.
생사를 넘는 위험 속에서 또 한 번 성장의 기회를 맞고 있었다.
***
“돈이 아깝꾼.”
사코가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 마을에 마피아들의 일이라고 말을 흘리지 않았다면 지금 난리가 났을 것이다.
마피아 일을 알고도 신고하거나 일을 키우면 일가친척들까지 몰살되는 걸 이탈리아 사람들은 잘 알았다.
법은 멀고 마피아의 입김은 가까웠다.
국가 권력 기관도 마피아 앞에서는 믿을 수 없어 순순히 침묵했다.
그러나 오늘 사건은 의외로 컸다.
요란한 총소리가 예상외로 상당 시간 울렸다.
소음기 달린 총으로 조용히 처리하라 지시했지만 잠입이 발각되면서 일이 커진 것이다.
“시간은 완수한 것 같습니다.”
“가성비 때문에 쓰지만 중국인들은 믿을 만한 작자들이 못 돼.”
“싸게 부리기에는 중국인들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그게 문제야. 싸고 좋은 건 세상에 없어…….”
“소란 부분에 대한 청구서를 작성하겠습니다.”
“그래야지. 우리도 피땀 흘려서 번 돈인데~.”
총성이 잦아든 구릉 위의 성이 딸린 와이너리.
사코는 조직원들 40명을 이끌고 구릉으로 올라갔다.
온드란게타 하부 조직들 사이에 요즘 알력 다툼이 심했다.
괜히 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끼이이익.
차가 와이너리 성 앞에 멈췄다.
눈발은 어느새 멈췄고 그 위에 뿌려진 붉은 피들은 조금 전 살벌했던 격전을 말해줬다.
타다닥.
조직원들이 빠르게 내려 사방을 경계했다.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습니다!”
발밑에 깔린 마피아 조직원의 시신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그 외의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모두 다 빨리 수거해!”
“넵!”
시신 전문 소각팀이 출동했다.
마피에서 공급하는 마약에 중독된 자들 중심으로 구성된 팀을 이용했다.
다른 일들에 투입하기에는 중독 증상이 심해 허드렛일을 맡긴 것이다.
그러다 죽으면 같은 팀 동료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면 그만이었다.
“이거 쌀쌀한데~.”
두툼한 밍크 가죽옷을 걸친 사코는 차에서 내리며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눈이 내린 산골짜기 구릉의 공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두툼한 여송연을 입에 베어 무는 사코.
딸깍. 치이이익.
지포 라이터를 켰다.
코에 스치는 피비린내가 기분 나빴다.
“피에트로의 딸년 시체를 찾아. 금발이라 쉽게 눈에 띌 거다.”
사코의 부하가 명령을 내렸다.
“모두 금발 계집의 시체를 찾아라!!!”
차에서 내린 사코의 부하들인 아레나 조직원들이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타앙!
고요함을 깨뜨리며 화끈하게 울리는 한 발의 총성.
안심하고 움직이던 사코와 그 부하들의 움직임이 순간 주춤했다.
하지만 이내 재빨리 총을 뽑아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어이. 거기 모두 총 내려놓지~.”
그때 머리 위쪽에서 들려온 카랑카랑한 목소리 하나.
차자자작.
성벽 위와 호텔, 그리고 바위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단의 무리와 낯선 이방인들.
그들이 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채 사코 일행을 겨냥했다.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였다.
“어…….”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무슨!”
사코는 너무 당황해 입에 물고 있던 여송연을 떨어트렸다.
“네가 오늘 밤 파티 설계자냐?”
동양인으로 보이는 청년이 성벽 위에서 코웃음 섞인 말투로 사코를 향해 물었다.
“너, 넌 누구야!”
사코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쳤다.
“그런 넌 누군데?”
“난! 온드란게타의 알프레도 피에로 님을 모시는 아레나의 보스 레오나르도 사코다!”
온드란게타를 들먹이며 사코가 목에 힘을 줬다.
이탈리아를 아는 놈이라면 온드란게타 이름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일 것이다.
“너도 깡패냐?”
“뭐, 뭐라고?”
“너 문신 있지? 등에 날아다니는 드래곤 같은 거 그려서 사람들 협박했지?”
“…….”
사코는 어이가 없어 입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깜짝 놀라 당황스러웠다.
조직에 입문해 드래곤 문신을 몸에 새겼다.
어린 시절 찌질하게 맞고 다녔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드래곤을 수호신으로 섬겼다.
“맞네! 이런 삼류 깡패 같은 새끼~.”
“이이이이!”
사코는 찰진 이탈리어를 구사하는 젊은 동양인 놈을 노려봤다.
당장 총으로 쏴서 갈겨 죽여 버리고 싶었다.
“드래곤. 그만 째려보고 니 똘마니들한테 총 내려놓으라고 말해. 피 보고 싶지 않으면.”
“너!”
분노로 이성을 상실한 채 손으로 총을 빼들던 사코.
순간 자신을 겨누고 있는 한 물건을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우리 보스 말씀 안 들려?”
덩치가 상당히 큰 곰 같은 동양인이 어깨에 대전차 화기를 올려놓고 사코를 겨냥했다.
맞는 순간 뼛조각 찾기 바쁠 RPG7.
마피아를 팔던 사코 입이 본드가 붙은 듯 꾹 닫혔다.
정황상 그냥 뱉는 말 같지 않았다.
지금 맡고 있는 피비린내가 청부를 맡겼던 중국인들의 피 냄새라는 걸 알아챘다.
“다니엘~ 마피아는 그렇게 다루면 안 돼.”
그때 성문을 열고 사코 앞에 모습을 드러낸 베르타.
바람이 차고 으스스한 시간임에도 잠옷 차림이었다.
사라라락.
구릉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날리는 베르타의 잠옷과 머리칼.
겨울 공기보다 더 차갑게 웃는 베르타.
타앙!
손에 들고 있던 권총으로 사코의 무릎을 쏴 버렸다.
일말의 경고도 없이 사코의 무릎을 박살내 버렸다.
“크아아아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땅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에 울부짖는 사코.
“지금 총 내려놓으면……. 저 꼴은 면할 거야. 말 들어. 아니면 너희 가족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 상상에 맡길게~.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카모라의 딸 베르타 스코티의 이름으로 약속해!”
독 오른 빨간 장미처럼 무섭게 웃는 베르타.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코의 부하들이 총을 내던졌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 보스의 딸은…….
동네에서 가장 센 언니였다.
***
“파파아아아아아아!”
카리나가 키 작고 배나온 이탈리아 중년 아재를 향해 달려가 안겼다.
“오! 카리나! 내 사랑하는 짹짹이!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괜찮은 거야?”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의 중년 남자.
동네 빵집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자상한 인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 도열한 마피아 조직원들은 그를 그렇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숨을 죽였다.
세계 마피아의 진정한 대부였다.
시칠리아를 본거지로 두고 있는 코사 노스트라의 보스 피에트로 루치아노였다.
파아아앗.
아침 햇살이 이제 사방으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어젯밤 황혼에서 오늘 새벽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마피아 보스 딸들과 괜찮은 저녁 만찬을 즐겼다.
중급 마력석을 무난하게 흡수했고, 뜨거운 유혹도 받았다.
화끈한 전투도 치렀다.
보통 사람들의 인간적이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손에 인정을 두지 않고 베었다.
짱개들 주변에 일렁이는 죽음의 그림자가 인정사정 볼 필요 없게 했다.
그들 주변에 도는 어두운 기가 장난 아니었다.
오크만도 못한 짐승을 베듯 쓸어버렸다.
이미 사람을 사냥감으로 생각하고 살인을 저질러 온 놈들이었다.
더 인간의 탈을 쓰고 살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다.
마력석을 흡인한 나의 눈에 그들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살신성인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손으로 직접 놈들을 싹 쓸어 지옥으로 보냈다.
그 일로 엄청난 카르마 포인트를 받았다.
그리고 맞이한 새벽.
베르타가 한 방에 사코와 그의 조직원들을 무릎 꿇렸다.
카리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새벽 동이 틀 무렵 카리나의 아빠가 대형 헬기를 타고 나타났다.
마피아 보스는 딸 바보였다.
카리나를 몇 번이나 안고 또 안고 쓰다듬으며 무한 애정을 보였다.
마피아 보스가 아닌 평범한 한 가정의 아빠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파파. 인사해요. 여기 다니엘. 그리고 다니엘의 부하들이에요. 이들이 위험에서 저를 구해줬어요.”
“오! 네가 말한 그 동양 청년!”
마피아 보스 피에트로가 나를 유심히 봤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국에서 온 다니엘…….”
“오! 형제여!!!”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덥석 나를 끌어안는 피에트로.
으아아아! 안 돼!
이 두툼한 입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