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
회귀의 전설
331장. 불청객 (2)
뭐지? 이 쎈 누나는?
까칠한 시선으로 여성과 그녀의 경호원들을 봤다.
한눈에 봐도 대단한 미녀였다.
일단 키가 180에 육박해 보였고 늘씬했다.
이곳 출신인 듯 우리나라 유명 모델 수준의 명품 몸매였다.
원색의 빨간 가죽 재킷과 어울리는 어깨를 살짝 덮은 금발이 산바람에 흩날렸다.
눈을 가린 동그란 선글라스 덕분에 붉은 입술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불시에 찾아온 불청객.
나에게 한바탕 당한 씨큐리티 직원들이 인상을 구겼다.
오가는 눈빛들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누가 봐도 시비가 붙을 만한 상황이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우리 직원들과 달리 찾아온 여인과 불청객들이 풍기는 기운이 달랐다.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모두를 제거할 능력자들 같았다.
그들 주변에 일렁이는 음울한 기운이 그들의 과거를 대변했다.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들이 착용한 선글라스 너머로 살기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눈에는 이들이 진짜 이계 용병들 같았다.
“저것들 뭐야?”
“저 새끼들 비웃는 것 맞지?”
직원들이 분위기를 눈치챘다.
나름 격하게 인생을 살아온 이들이다 보니 상대의 기운을 바로 알아챘다.
“뭡니까?”
이태리어로 물었다.
그것도 여인이 썼던 시칠리아 사투리였다.
“어? 당신 시칠리아 출신이야?”
이태리 사투리에 여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같은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만이 공유하는 반가움이었다.
그러나 반가운 기색을 표하기에는 분위기가 편치 않았다.
이 여성, 위험한 불청객이다.
시칠리아 사투리를 사용하고 저런 떡대들을 보디가드로 옆에 끼고 다니는데 대하기 편할 리 없다.
평범한 여성들 중에 저러고 다닐 존재는 흔치 않다.
“내 이름은 다니엘 장.”
먼저 이름을 밝혔다.
“카리나 루치아노~.”
같은 시칠리아 사투리가 반가웠는지 동료를 만난 듯 밝게 웃으며 이름을 밝히는 카리나.
반말이 평소 습관인 듯 자연스러웠다.
“!!!”
그러나 루치아노라는 성을 듣고 난 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태리, 그것도 시칠리아 출신이 루치아노라는 성을 사용한다는 건…….
“아가씨……. 하찮은 동양인들입니다. 길게 말을 섞지 마십시오.”
옆에 있던 콧날이 멋진 중년 남자가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유럽이나 미국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이 뿌리 깊었다.
“마테오. 지금 얘기하는 중이야.”
“죄송합니다.”
가볍게 경호원 말을 자르는 카리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사적인 공간이다.”
길게 얘기해 봐야 일만 커질 것 같았다.
직원들과 상대 경호원들과의 눈빛 교환이 심상치 않았다.
고조된 성난 늑대들의 영역 싸움 분위기였다.
“그러게~ 내 말이 그거야. 내가 주로 겨울 휴가지로 이용하는 곳인데 그쪽들이 지금 사적인 공간을 침해한 거야.”
“내 친구 소유야.”
“아니! 우리 파파 친구 소유였어.”
“법적으로 끝난 문제야.”
로버트가 구매한, 간접적으로 내 소유의 건물이었다.
“인간적인 문제가 남았지.”
카리나가 웃었다.
“뭘 원하는데?”
“겨울 휴가 기간 이곳을 사용하기를 원해. 이때쯤 이곳에서 마시는 와인이 정말 맛있거든~ 친구들과 해마다 이곳에서 파티도 열어. 그러니 그쪽에서 양보해 줘. 섭섭지 않게 보상할게. 파파가 알면 골치 아파지니……. 조용히 수락해 줬으면 해.”
파파를 언급했지만 그 말에 약간의 긴장감이 묻어났다.
확실히 감 잡았다.
“그건 좋은 제안이 아니야. 난 이곳이 필요해.”
그렇다고 쫄거나 밀리지 않았다.
“10일 동안 호텔을 사용할 거야. 예전부터 성은 내 전용 공간이었어.”
“지금부터는 아니지.”
파바바밧.
카리나 시선과 허공에서 부딪쳤다.
돈질 갑질이 지겨워서 이곳 이태리로 날아왔다.
돈 주고 완벽하게 소유권을 획득했다.
하지만 불청객은 아직도 본인의 소유물을 취급하듯 요구하고 있었다.
카리나의 경호원들 눈썹이 씰룩였다.
“우리 파파 무서운 분이야.”
카리나가 대놓고 경고를 날렸다.
경호원들이 자세를 잡았다.
“난 나 자신이 가장 무서워.”
한 번 터지면 나도 이성을 잃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날 붙잡을 수 없었다.
“뭐라고?”
“그쪽 파파 이름이 피에트로 루치아노 맞지?”
“어? 우리 파파를 알아?”
“코사 노스트라의 주인.”
“뭐야! 너 우리를 알고 있었어?”
마테오라는 경호원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따라 카리나 경호원 10여 명이 덤빌 자세를 취했다.
이탈리아에 오면서 그냥 오지 않았다.
이번 생을 다시 살기 전 마피아 영화에 심취해 공부 좀 했었다.
지금 눈앞의 여인은 마피아 보스의 딸이었다.
“이것들이 지금 우리를 핫바지로 보나!”
“보스. 조져요?”
나에게 얻어터지고 스트레스 풀길 없던 직원들이 으르렁 거렸다.
이태리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그들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다.
“보스? 당신도 보스야?”
카리나가 진지한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나도 보스다.”
싱긋 웃으며 그녀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
‘알고도 이러는 거야?’
동양인 남자 입에서 파파 이름인 피에트로가 나왔을 때 카리나는 그가 양보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탈리아의 4대 마피아 조직 중 가장 유서 깊은 코사 노스트라 마피아의 현 보스가 바로 카리나의 아빠였다.
시칠리아와 미국을 본거지로 두고 있었다.
마피아는 이탈리아를 다스리는 또 다른 주인이었다.
개중에서 코사 노스트라는 마약 거래와 건축, 부동산을 취급했고 연간 130억 유로가 넘는 자금을 운영했다.
마피아 조직범죄 매출이 이탈리아 1년 국내총생산의 7퍼센트가 넘어갔다.
그런 마피아 중에서 가장 정중하면서도 보복이 잔혹하기로 소문난 조직이 바로 코사 노스트라였다.
영화 《대부》의 실제 모델이었다.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외부인에 의해 착취를 당한 시칠리아인들은 국가나 법보다 자신 가족들이나 주변인의 협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걸 가장 잘 대변했다.
그런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한 마피아들은 유대 관계가 유난히 끈끈했다.
자신들에게 조금만 불합리하거나 손해가 나면 죽음을 서슴없이 선사했다.
예의를 보이지만 거절하면 가장 잔인하게 상대를 처리했다.
카리나는 동양인 보스에게 호감을 느꼈다.
차가운 날씨에도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야외에 서 있었다.
언뜻 보아도 탄탄한 근육이 보기 좋았다.
카리나 신분을 알고도 전혀 위축되거나 당황하지도 않았다.
얼굴도 이탈리아 남자들 못지않게 잘생겼고 매력적이었다.
차자자작.
보스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호원들이 권총을 뽑아들었다.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4대 조직 간에는 끊이지 않고 암투가 진행됐다.
조직 보스의 막내딸은 좋은 먹잇감에 거래 물건이었다.
본거지인 시칠리아가 아닌 만큼 마피아 조직원들은 예민했다.
카리나는 매해 겨울 휴가를 토스카나에 위치한 이곳에서 보냈다.
남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다른 마피아 조직원들의 영역이 아니었다.
북부 지역 권력자들과 암묵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장소가 토스카나 중부 지방이었다.
불안함 속에서 그나마 안전한 휴가지가 이곳이었다.
그런 유용한 휴가지를 빼앗겼다.
작년까지 조직에 우호적이던 인물이 주인이었지만 암살당하고 소유 회사가 넘어갔다.
정치권이 개입하면서 빠르게 외국 자본에 팔려 나갔다.
세계적 외환 위기로 이탈리아 정부의 자금이 부족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외국인 투자는 이런 시절에 적극 환영을 받았다.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카리나는 휴가를 강행했다.
딸의 고집을 어쩌지 못한 애정이 넘치는 보스 피에트로가 최정예 마피아 조직원들을 선별해 동행시켰다.
차에는 기관총은 물론 수류탄까지 실려 있었다.
후발대로 10여 명의 조직원들이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모르는 또 다른 보스 동양인 남자가 겁 없이 행동했다.
게다가 마피아 외동딸인 자신에게 반말을 사용했다.
이탈리아에서 총 맞아 죽기 딱 좋은 말투였다.
“마테오. 총 내려놔.”
“아가씨 저들은 다른 조직에서 섭외한 중국 조직일 수 있습니다!”
마테오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유럽에 쏟아져 들어오는 삼합회를 비롯해 중국 조직이 영역을 위협했다.
강해지는 중국 국력을 이용해 차이나타운을 확장해 가고 있었다.
경쟁 마피아 조직의 청소부 역할을 맡기도 했다.
중국인에 대해 코사 노스트라 조직원들은 적계심을 잔뜩 품었다.
“한국인들이야.”
“네? 그걸 어떻게…….”
올해 나이 스물하나인 카리나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퍼져 나가는 한류 팬이었다.
한국어가 귀에 익었다.
“맞지?”
카리나가 보스라 불리는 청년에게 물었다.
“정확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이지.”
“아가씨. 저 녀석들 수상한 놈들입니다. 총만 안 들었지…… 전문가들입니다.”
마테오가 다시 한 번 카리나를 말렸다.
처음 볼 때부터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자들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군지 느낌만으로도 알기에 눈도 안 마주쳤다.
그런데 저들은 겁도 없이 눈을 부라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한판 뜰 분위기였다.
총을 꺼내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변에 널려 있는 구식 병장기를 들고 싸우자고 덤빌 놈들 같았다.
차이나타운에서 봤던 양아치 조직원들 같지 않았다.
“경호 회사 직원들이다. 다들 전직 특수부대 출신들이지.”
보스라는 남자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국 군인들?”
카리나도 분단국가인 한국에 대해 조금 알고 있었다.
얼마 전 모병제로 바뀐 이탈리아와 달리 징병제인 한국 군인들은 용맹하다 알려졌다.
마테오도 전직 군인들이라는 말에 약간의 호기심을 드러냈다.
마피아 이전에 마테오도 징병제로 군대에 다녀왔었다.
그것도 특수부대.
그런 마테오는 군인 시절 한국 특수부대 위용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장비빨로 승부하는 미국 특수부대와 질적으로 달랐다.
“그런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워크숍.”
말이 절대 길지 않은 한국 남자 보스 다니엘.
카리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 남자에게 흥미가 생겼다.
나이도 어린데 이들의 보스였고 또 경호업체를 운영 중이었다.
마피아임을 알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마피아 세계에 살았던 카리나는 다니엘에게서 거친 남자의 냄새가 났다.
아빠와 비슷한 체취였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아가씨가 머물 숙소이니 너흰 호텔로 꺼져.”
마테오가 호의를 보였다.
본래 성격이었다면 말을 아끼고 주먹을 쓰거나 피를 봤겠지만 오늘은 인심을 썼다.
“싫다고 말했을 텐데~.”
“이 자식이!”
마테오 인상이 험상궂게 구겨졌다.
“정말……. 세상 무서운 게 없군.”
카리나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다니엘이라는 남자를 필터링 없이 자세히 보고 싶었다.
“카리나. 조용히 호텔에서 머무는 걸 추천해. 아니면…… 내 방식대로 처리할 테니.”
끝까지 정중함을 잃지 않는 다니엘.
하지만 몸에서 경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아가씨 명령만 내리십시오. 당장 저 놈을…….”
마테오가 잡아먹을 듯 다니엘을 노려봤다.
“그럼 마피아식으로 해볼까?”
마테오의 태도에 다니엘 입가에 악동 미소가 피어났다.
“무슨 헛소리야!”
“패배자는 주둥이 닫는 걸로~.”
대책 없이 마테오를 향해 내기를 제안하는 다니엘.
“마테오 어때?”
카리나는 자신을 오랫동안 경호해 왔던 마테오를 믿었다.
전직 이탈리아 특수부대 출신에 실전을 여러 번 경험한 마피아의 전사였다.
파파도 믿고 신뢰하는 조직의 기둥이었다.
“저 자식의…… 뼈를 부러뜨려 놓겠습니다!”
기대했던 대답을 내놓은 마테오.
“콜~.”
그 말에 다니엘이 활짝 웃으며 콜을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