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
회귀의 전설
330장. 불청객 (1)
“야, 야동이라고? 그렇게 비밀리에 보관한 게? 전부 다?”
“그렇습니다……. 지독한 야동 오타쿠였습니다. 최신 발매품부터 과거 은밀하게 거래되던 시리즈까지……. 거의 모든 동영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투자 목록이나 방법 같은 건?”
“몇 가지 발견한 투자 패턴 방법이 있지만. 조사해 보니 최근 모두 실패한 것으로 나옵니다. 한화로 몇 천 억을 손해 보고 있습니다.”
“흐음……. 그래?”
멀리 에도성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도쿄의 우뚝 솟은 건물 최상층.
내각 정보부 소속 팀장 사이토 다까시가 중년 남성에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직속상관은 아니었다.
관료가 아니었지만 그 어떤 자들보다 권력이 높았다.
내각 고위 관료들이나 의원들도 그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찾던 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행적이 수상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립니다. 물욕이 강하고 주변에 여자도 많습니다. 전형적인 세상의 욕망을 쫓는 자입니다.”
사이토 다까시는 냉정하게 평가를 마쳤다.
대상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자신도 미처 수집하지 못한 귀한 비밀 시리즈를 한국놈이 가지고 있었다.
덕후들 사이에서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비밀 버전.
그런 자가 상부에서 찾고 있는 위험한 자일 리 없었다.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날개를 옆에 붙여 놨습니다.”
“그래?”
날개라는 말에 중년 남성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보다 더 믿을 만한 날개들은 조직에서도 갖고 있는 신뢰가 대단했다.
지금껏 맡은 업무에서 실패한 일이 거의 없었다.
“정보부를 비롯해 여러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계속 감시할 예정입니다.”
“실수하지 말라.”
“넵!”
다까시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내각 정보부보다 더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영광을 찾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남자.
그 어떤 형태의 일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다.
***
“제가 먼저 도전하겠습니다!”
한진웅 밑에서 군 생활을 했던 특전사 중사 출신 사내가 치고 나섰다.
30대 중반의 다부진 체격의 사내 조창현이었다.
격투와 요인 암살이 주특기였다.
“조 팀장 살살 모셔드려라~.”
한진웅이 살짝 뒤로 빠져주며 자존심을 내세웠다.
보스가 암살자를 처리할 정도의 능력자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직접 본 일이 없었다.
몇 번 뒤처리를 맡았을 뿐이다.
보스가 처리했던 자들이 상당한 실력자들임을 알지만 그 정도는 자신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강릉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필리핀 살인 청부업자들을 보스가 처리했다.
한진웅도 보스가 말리지 않았다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오늘……. 확인한다!’
보스가 전수한 특수한 무술의 효용이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
확인되지 않은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사는 듯한 보스.
그와 겨뤄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한진웅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다.
“보스~ 갑니다!”
주먹을 움켜쥐고 성큼 다가가는 조창현.
파이팅이 넘쳤다.
조창현 역시 보스의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대련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를 수련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특수 부대 전문 하사가 됐다.
수없이 살인 병기를 다뤄봤고 우수한 성적으로 여러 차례 표창장도 받았다.
해외 훈련 중 네이비씰 대원들과도 맨주먹으로 싸워 이겼다.
두 주먹을 가볍게 움켜쥐고 보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들고 있던 검을 멀찍이 던져 버리고 편하게 자세를 잡고 있는 보스.
실력이 출중해도 아직 나이가 어렸다.
실전이 부족한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청년이었다.
“맞고 울면 안 됩니다~.”
보스가 웃으며 자존심을 긁었다.
“타앗!”
거리를 좁히고 다가가던 조창현.
기합과 함께 빠르게 왼쪽 주먹을 보스의 얼굴로 뻗었다.
잽과 같은 형식이지만 담긴 파워는 꽤 강했다.
그러나 왼손은 트릭에 불과했다.
진짜 힘은 왼손 뒤를 따라가는 오른손에 담겼다.
쇄애앳.
공간을 가르는 왼쪽 주먹.
조창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보스.
그 잘생긴 얼굴이 오늘 흠집이 제대로 날 판이었다.
퍽!
그 순간 갑자기 얼굴에 느껴지는 충격.
돌덩이에 얻어맞은 것 같은 통증이 느껴지기 전까지만 그랬다.
“!!!”
조창현은 비명도 토하지 못했다.
코뼈를 중심으로 이마에서 느껴지는 끔찍하고 둔탁한 고통.
팔다리의 힘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그리고…….
쿠우웅.
느릿하게 몸뚱이가 바닥으로 무너지며 쓰러졌다.
“조 팀장님!”
“헛!”
“뭐, 뭐야?”
보스 주먹이 언제 조창현을 때렸는지 대부분 보지 못했다.
뭔가 휙 조창현의 이마를 후려쳤다는 것만 느꼈다.
특수 훈련을 통해 달련된 동체시력이 남다른 씨큐리티 직원들이었다.
그들 모두 멘붕에 빠졌다.
말로만 듣던 차원이 다른 고수의 등장이었다.
투지 대신 바짝 경계심이 일었다.
이건 상상 이상의 실력이었다.
“조 팀장님은 탈락~.”
잠시 바닥에 기절한 상태로 쓰러졌던 조창현은 코피를 흘리며 일어났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몸이 흔들렸다.
“이게…….”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는 조창현은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었다.
번쩍하고 뭐가 스쳤을 뿐이다.
“다들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한꺼번에 와요~.”
손바닥을 까닥거리며 덤비라고 손짓하는 보스.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빠직 씨큐리티 직원들의 인내심에 금이 갔다.
“보스……. 책임지지 못합니다!”
한진웅도 내심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보스는 보스고, 대결은 대결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줘요? 나 말고 여러분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지켜낼 실력은 됩니까?”
또다시 도발하는 보스.
“직접……. 확인시켜드리겠습니다!”
활활 전의를 불태우며 한진웅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를 따르는 씨큐리티 직원들.
결의에 찬 시선으로 보스를 향해 주먹을 들었다.
***
쉬이익! 쉬쉬쉿!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가끔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열받은 시큐리티 직원들의 팔 다리가 거침없이 허공을 뚫고 가격해 왔다.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지 일체 봐주는 맛이 없었다.
직원들은 나를 죽여야 하는 적으로 대했다.
만족스러웠다.
이제야 제대로 대련을 해볼 맛이 났다.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은 고르고 고른 씨큐리티 에이스들이었다.
앞으로 강한 적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고르다 보니 어쩌다 커플들이었다(?).
전혀 사적인 감정은 없었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실력 보고 뽑았다.
한진웅 대표가 핵심이었다.
그는 강한 게 분명하지만 일반인 기준이었다.
중국 살수들이나 아사신을 만나면 바로 아웃이었다.
단기간에 여기 있는 직원들을 강력한 힘을 가진 이들로 키워낼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낼 실력은 되느냐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자존심을 자극했다.
교육을 빙자해 합법적으로 한 번 제대로 눌러줘야 불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이 궐기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씨큐리티 직원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강도 있는 훈련 내용을 짰다.
핸드폰을 빼앗아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
과거에 내가 군 입대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몰랐다.
다들 장교나 하사관 출신이었다.
말년 병장 갈굼 기술이 어떤 건지는 나만 알았다.
뻐억!
앞으로 뻗어오는 주먹을 후려쳤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잡고 쓰러지는 직원.
콰득.
목을 노리고 후려쳐오는 수도를 팔로 막았다.
빠아악!
“악!”
내공이 가미돼 강철처럼 단단해진 팔을 후려쳤으니 당연했다.
충격을 입은 손을 부여잡고 비명을 터트렸다.
팟! 팟! 팟!
날아오는 발길질도 가볍게 걷어찼다.
“억!” “헉!” “컥!”
정강이나 발목을 얻어맞은 직원들이 하체가 무너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인간을 갈기갈기 찢어 먹던 오크와 잔혹한 기사와 맞짱 뜨고 살아남았다.
한진웅 대표와 직원들 수준은 이계 3급 용병만도 못했다.
진정한 생사를 넘나들었던 용병들이 품고 있는 독기를 흉내도 못 냈다.
“하압!”
지켜보고 있던 한진웅 대표가 기합을 내질렀다.
거대한 덩치를 생각보다 가볍게 띄우며 우직한 발차기를 날려 왔다.
쇄애애애앳.
발에 실린 파워가 상당했다.
곰도 때려잡게 생긴 군화를 신고 있는 그의 발길질은 일품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림자처럼 발길질을 피하며 한진웅 대표의 허벅지를 뾰족한 손으로 찔렀다.
콰득!
단단한 근육에 박히는 손.
“큭!”
혈도를 제대로 짚어 발이 마비된 한진웅 대표가 착지에 실패했다.
콰다다다당.
착지 폼이 우습게 됐다.
거칠게 바닥을 구르는 모습이 재주 부리다 넘어진 곰처럼 됐다.
“으으…….”
“말도 안 돼…….”
팔다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은 대부분 직원들이 불신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남아 있는 자존심을 탈탈 털어내 줄 쇼 타임.
“내가 적이라면……. 여러분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비수를 훅 하고 찔렀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은 험한 꼴을 당했겠지요.”
그들에게 불길한 느낌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했다.
“…….”
씨큐리티 직원들은 인상을 잔뜩 쓴 채 이를 악물었다.
치욕적이겠지만 오늘의 이 대결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들을 믿었다.
대한민국을 떠받쳤던 특수 부대 전사들이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여러분을 특별 조련하겠습니다. 불만 있으면 오늘 돌아가도 좋습니다. 핸드폰도 돌려드리고 신분도 그대로 유지시켜 주겠습니다.”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이들이 선뜻 돌아가겠다고 말할 리 없었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다.
“남는 분들에게는 한 달 뒤 다시 테스트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때 만약 제 손 끝이라도 타격을 입힌다면 보너스 1억씩 드리겠습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던졌다.
파바바밧.
직원들 눈동자가 투지로 활활 타올랐다.
보너스가 문제가 아니라 이건 남자 자존심의 문제였고 그 사실은 그들도 나도 잘 알았다.
“그럼 오늘부터…….”
부우우우우웅 끼이이이이익. 끼이익.
그때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성문 앞이 요란해졌다.
몇 대의 자동차가 급제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닥.
그리고 빠르게 들려오는 여러 명의 구둣발 소리.
몰아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직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경호 태세를 취했다.
“아이……. 이분들은 또 뭐야?”
성문을 열고 들어오는 빨간 가죽 재킷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여자.
날씬한 몸매가 햇살을 후광으로 받아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태리어 사투리를 사용하는 그녀는 나와 직원들을 보며 상큼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 뒤로 시립하는 감색 슈트를 유니폼처럼 입은 일단의 덩치들.
몇 번 연습을 한 듯 키 순으로 줄이 잘 맞았다.
하지만 아무리 잘 빠진 몸매의 여성이어도 반갑지 않았다.
나의 유익한 시간을 깨뜨린 방문자.
갑작스런 불청객들의 휴식처 방문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