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7
회귀의 전설
327장. 식사를 합시다 (2)
“사실이냐?”
“네. 사실입니다.”
“왜 그랬는지 묻고 싶구나.”
“당시에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습니다. 개발팀, 기획실, 투자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안드레이드는 한 달에 몇 번이나 찾아오는 신생 IT 벤처 기업들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시 핸드폰 운영체제는 저희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과는?”
“……미래는 모두 알 수 없는 법입니다.”
2008년 마지막 하루를 남기고 집으로 호출된 임준형은 아버지 앞에서도 할 말을 다했다.
과거와 달리 그룹에서 위상이 달라졌다.
오정전자 전무에 오르면서 실무 능력 향상뿐만 아니라 그룹의 새로운 인재들의 보필을 받았다.
아직 아버지 임성철 회장만큼은 아니지만 라인이 생겼다.
그들의 조언에 힘입어 경영 수업에 매진 중이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다. 장수의 실수 하나로 모든 병사들이 죽을 수 있다.”
임성철 회장이 하나뿐인 아들을 추궁했다.
분명 자신에게 보고가 됐다면 안드레이드에 어느 정도 투자자금을 던지고 지분을 챙겼을 것이다.
IT는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걸 요즘 실감하고 있었다.
오정전자에 따로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두고 인재를 영입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조직구조가 발목을 잡았다.
아쉬움이 진했지만 쉽게 바꿀 수 없었다,
기업문화뿐만 아니라 개개인들의 성향도 미국과 달랐다.
과정보다 결과와 실적이 우선이었다.
“위기 상황이지만 그룹의 방향성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깟 핸드폰 운영체제 따위는 오정의 뛰어난 인재들이 금방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오정의 시장 점유율이라면 자체 운영체제만으로 통할 수 있습니다. 아이펀이 선수를 날렸지만 그들의 오만함과 폐쇄성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칠 겁니다.”
임준형은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했다.
어릴 적부터 보고 함께했던 오정의 저력을 믿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모였다.
가끔 실수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오정그룹의 항해는 순조롭고 장애물도 없었다.
오정 핸드폰뿐만 아니라 D램과 같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마이크로 컴퍼니와도 우호적이었다.
구글과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어 냈지만 소프트웨어 왕좌는 마이크로 컴퍼니였다.
“그래서 결론은?”
대낮부터 소주를 몇 잔 마신 상태였지만 임성철 회장은 술이 다 깬 상태였다.
어느새 성장한 아들이 괘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말수가 적지만 다른 그룹 자식들과 달리 이렇다 할 문제를 만드는 일이 없었다.
요즘 며느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족 간의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며느리 집안 그룹이 오정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오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마음만 먹으면 어지간한 그룹은 형체도 없이 공중분해 시킬 수 있었다.
생각이 있는 며느리라면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곧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거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임준형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임성철도 한때 품었던 패기가 임준형에게서 느껴졌다.
“실패하면?”
“마이크로 컴퍼니에서도 스마트폰 운영체제를 개발 중입니다. 노키아와 연합전선 구축을 논의 중입니다. 애플을 단시간 안에 박살내겠습니다!”
아들의 강단 있는 모습에 임성철 회장은 내심 안심이 됐다.
후계자 하나 키우는 데 계열사 하나쯤 희생된다 해도 상관없었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오정을 따라올 기업은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준비는 해놨군.’
오정전자에서 전무 직책을 수행하고 있지만 역할은 회사 내에서의 파워는 사장급을 넘는 임준형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힘을 더 실어주고 싶었다.
“그 정도라면 해 봐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임준형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과는 계속 그렇게 지낼 거냐?”
“그 녀석요?”
“장태산 말이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임준형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 자식을 다시 볼 일은 없어!’
자신 앞에서 자존심을 드러내고 건방지게 힘을 과시하던 놈.
황태자 임준형은 굳이 장태산이 필요 없었다.
특이한 투자 기법으로 떼돈을 벌었지만 본래부터 근본이 없는 놈이었다.
그깟 몇 조도 안 되는 자금에 꿈쩍할 임준형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여동생만 아니라면 뜨거운 맛을 보여줬을 것이다.
“척은 지지 말거라……. 위험한 녀석이다.”
임성철 회장의 조용한 경고.
임준형의 고개는 화석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
“스페셜 A코스 부탁합니다. 술은 소맥?”
“콜! 흐흐. 우리 대표님 술 맛을 안다니까~”
“뭐야? 대표님? 무슨 일 있어요?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네?”
“새로운 여친 생겼어요?”
세 명의 여직원이 수다를 떨었다.
난 배가 고팠다.
임성철 회장과 만나 먹은 삼겹살과 소주로는 양이 안 찼다.
이계에서 확 털어 아공간에 보관한 컬렉션을 구경하다 부름을 받았다.
얼굴에 근심 걱정을 품고 서민 코스프레를 즐기는 임성철 회장이 웃겼다.
자기 딴에는 심각했지만 난 아니었다.
오정은 생각보다 강했다.
치킨 게임 전문가답게 아이펀에 강하게 한 방 먹인다.
2020년까지 끄떡없이 버텼다.
임성철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넘쳤다.
하지만 공룡 충고는 말해주고 싶었다.
기업이 집단을 이루며 대형화 된 이후 한 사람의 경영자가 모든 걸 이끌 수는 없었다.
한국형 재벌들이 2020년 경제 위기에 쭉쭉 쓰러져간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시대가 변했지만 재벌들은 과거의 보스 역할에만 몰두했다.
수평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에 수직적 계열화만 고수했다.
오너의 말이 곧 법이었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오정이 변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임윤아 영향이 컸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승승장구 승리만을 쟁취했던 오정의 사업 DNA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임성철 회장은 말귀가 통했지만 임준형은 아니었다.
황태자에게 나 같은 서민의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그냥 오늘은 중식이 먹고 싶었습니다.”
얼큰하고 칼칼한 짬뽕, 매콤한 사천 탕수육이 먹고 싶었다.
이계에서 빵과 수프 따위만 먹었더니 강렬하고 매콤한 맛이 간절했다.
다음 출장 때는 고추장을 비롯해 여러 가지 먹거리를 더 준비해야 할 것 같다.
2008년 종무식.
사무실의 꽃인 여직원 셋이 활짝 웃었다.
한국 사업 파트너 조윤태 변호사, 듬직한 한진웅 실장, 하관우 회장, 황연태 대표를 중식 레스토랑으로 불렀다.
나와 같이 길을 걷는 인물들.
같이 한 상에서 웃으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이들이었다.
영주성에서 몇 번 사람들을 모아 가졌던 식사 모임이 이곳에서도 연장됐다.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집 앞 강남 10대 맛집인 차이니스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고급진 원형 원목식탁과 붉은 홍등, 금칠한 복(福)자 글씨가 장식으로 걸려있는 강남 명소였다.
큼직한 룸을 잡았다.
나를 위해 넉넉한 인심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게 많다고 누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목숨 건 알바를 끝내고 즐기는 셀프 회식 같은 것이다.
게살 수프를 시작으로 코스 요리가 나왔다.
“대표님~ 종무식인데 한 말씀 하셔야죠~.”
도도희가 웃으며 분위기를 잡았다.
소맥 제대로 말 줄 아는 김한별이 잔을 채웠다.
나이가 많고 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하관우 대표가 있었지만 모두 나를 이 자리의 대표로 인정했다.
“2008년 여러분들 덕분에 한 해를 무사히 마무리 했습니다. 다가오는 2009년도뿐만 아니라 그 이후까지도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진심을 담았다.
뜨겁게 다짐하며 모두와 눈을 마주쳤다.
“건배!”
“건배!!!”
잔과 잔이 부딪쳤다.
“크으…….”
진하게 탄 소맥에 다들 격한 탄성을 터트렸다.
“흐흐. 장 대표 옆에 있으면 자다가도 탕수육을 얻어먹는다니까~.”
조 변호사님이 너스레를 떨었다.
“내년에도 성은을 부탁드립니다. 장 대표님!”
이제 세상사는 맛을 제대로 배운 황연태 대표가 잔을 채워줬다.
대표가 되더니 손바닥 비비는 기술도 업그레이드가 됐다.
“오직 충정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대웅맨 하관우 회장은 겸손의 표본을 보였다.
회장 직함을 얻었음에도 한 번도 어깨에 힘을 주고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전 대표님께 사랑을~”
하트를 남발하는 도도희.
숫기 없는 유세라와 김한별은 묵묵히 안주를 탐했다.
A.T 씨큐리티 한진웅 대표는 그 와중에도 신경을 주변에 곤두세우고 있었다.
가까운 인연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참 소중했다.
2009년부터 격한 파장이 연속 휘몰아친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쓰나미처럼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도약하는 중국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냈다.
차기 지도자로 예약된 시진핑 부주석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 된다.
중국은 힘을 과시하기 위해 주변국을 괴롭혔다.
2008년 여파로 2010년에는 재스민 혁명이 일어나 이슬람권에 일대 폭풍이 불어 닥친다.
안정적이던 정권들이 무너지고 아랍국들이 연달아 내전에 휩쓸린다.
연쇄작용으로 난민들이 유럽으로 넘어가며 세계적 문제를 만들어 낸다.
또 내부적으로 잠재돼 있던 수니파와 시아파의 암투가 IS라는 괴물을 탄생시킨다.
모든 게 누군가의 계획 하에 일어나는 듯 시차를 두고 터진다.
미래를 분명 알고 왔지만 다시 겪는 현실에 조금씩 나비효과가 일어났다.
내가 예측했던 것보다 좀 더 빠르거나 늦게 선물과 환율이 움직였다.
투자 패턴에도 주의가 요구됐다.
내 운용자금이 늘어나자 그 파장이 곳곳에 영향을 미쳤다.
언제까지 앉아서 받아먹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세상은 보이지 않는 전쟁에 빠져든다.
문명의 충돌이 발생한다.
이슬람들과 중화민족들이 자신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세계 곳곳에서 부딪친다.
자유 민주 시장경제를 대변하는 서구문명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신정일치의 이슬람과 공산당이 다스리는 중국 문명은 충돌의 핵심이었다.
정신은 우월하지만 자본과 물질이 부족하다 착각하는 이슬람과 중국 문명은 힘을 키웠다.
그리고 서구 문명을 적으로 선포하게 된다.
자신들의 정체성과 민족성, 종교를 바탕으로 재탄생하려는 이슬람과 중화 문명.
적을 선택하고 줄기차게 도전을 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혼란과 무역 전쟁,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을 때 충분히 맛봐야 했다.
내가 회귀하기 전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에 휘몰아쳤던 금융위기는 전쟁위기로까지 발전했다.
남중국해에서 벌어졌던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의 확장판.
그래서 나에게는 오늘 이 순간이 더더욱 소중했다.
서로를 잘 아는 관계에서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식사 시간을 기억에 담았다.
“탕수육 진짜 맛있어요~”
“여기 자주 와요. 대표님~.”
여직원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쫄깃하게 씹히는 찹쌀 탕수육은 돼지고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코스요리로 사천 탕수육, 찹쌀 탕수육 등이 골고루 나왔다.
좋은 기름으로 튀겨내 풍미가 고소하고 깔끔했다.
달달한 과일 소스에 찍어 먹으니 환상이었다.
졸졸졸 맥주에 소주를 부어 제조한 소맥 안주로는 제격이었다.
홍콩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 중국 백주는 손을 안 댔다.
하긴 오줌도 중국 방향으로 싸지 않았다.
단숨에 잔을 비웠다.
“!!!”
입안과 목젖을 시원하게 쓸고 내려가는 소맥은 환상이었다.
월급날에만 누릴 수 있다는 외식 같은 느낌이었다.
부지런히 다들 젓가락을 놀렸다.
“언니~ 원샷!”
“그래! 오늘 먹고 죽자!”
“회장님~.”
술이 여기저기서 오갔다.
다들 안면이 있어 한 식구처럼 부담 없이 이 자리를 즐겼다.
연말 종무식인 만큼 분위기가 무거워질 일도 나쁠 일도 없었다.
연말 상여금도 두둑이 선물했다.
그리고 여직원들에게는 일주일간 휴가도 줬다.
원형 식탁 위에 가득했던 요리들이 빠르게 교체됐다.
서로 담소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머릿속은 계산에 바빴다.
처음 획득한 중급 마정석 맛은 어떨까 궁금했다.
영지 운영에 관해서도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따르는 이들 수가 이제 몇 만을 넘어갔다.
남작령에서 도망쳐 나온 영지민 수가 상당했다.
상단 황금마차가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들과 바꿀 새로운 지구 물건을 찾는 것도 재밌었다.
스테인리스와 시계 말고 더 참신한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다.
잠깐 머리도 식히고 바람이나 좀 쐬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껏 소맥을 마셨더니 배가 잔뜩 불렀다.
룸에서 나왔다.
화장실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툭.
어깨가 부딪쳤다.
여자 화장실 쪽에서 급하게 나오던 여성과 부딪쳤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쓰미마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