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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화 (324/1,284)

 # 325

회귀의 전설

325장. 털고 또 털어

거역할 수 없는 승리자의 명령.

무릎 꿇은 루벡의 어깨 위에 한쪽 발을 올렸다.

“흙저씨 수고했어~.”

콰스스스스스스.

기다렸다는 듯 흙벽이 스러지며 순식간에 주변을 에워쌌던 장벽이 사라졌다.

“허어엇!”

검을 뽑아들고 대기 중이던 루벡가의 기사들은 얼이 나간 채 그대로 멈췄다.

치욕스러운 자세로 항복을 고하고 있는 자신들의 주군.

그의 모습은 명예로운 기사들에게 충격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뭘 봐! 꿇어!”

거침없이 포효하는 일갈.

검 끝이 루벡 남작의 목에 살짝 박혀들었다.

뚝뚝 목을 타고 흐르는 피.

“뭐, 뭣들 하느냐! 어, 어서 무기를 버리고 베커 백작님께 항복하라!!!”

무릎을 꿇은 채 정신이 가출한 상태의 루벡은 애꿎은 기사들을 향해 갑질을 부렸다.

이 전투의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루벡가의 기사들.

철커덩 컹.

땅바닥에 기사들의 검이 하나 둘 떨어졌다.

기사들에게 주군의 명령은 그 무엇보다 우선했다.

- 영지를 침범한 루벡 드 알포네 남작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 남작가의 기사단과 병사 7,200명이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했습니다.

- 군마를 비롯해 엄청난 군수품을 획득했습니다.

- 첫 번째 영지전에서 승리했습니다.

- 영지를 완벽하게 수호한 당신! 영지민들의 충성심이 더할 나위 없이 올라갔습니다.

- 열심히 불 지른 당신에게 특별 마나 포인트가 지급됐습니다.

- 엄청난 마나 포인트가 지급됐습니다.

- 마신들이 당신의 갑질 폭력을 좋아합니다.

- 어둠의 마나 포인트가 지급됐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연속으로 알림음이 축포처럼 터졌다.

알림음 종류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져 떠나지 않았다.

피가 뜨거워지고 기쁨의 눈물이 왈칵 앞을 가릴 뻔했다.

이런 결과 얻으려고 목숨 걸고 전쟁하는 것 같다.

“인어야~.”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빛과 함께 등장한 물의 정령 인어.

“불 꺼라~.”

한 마디에 물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촤아아아아아아아’ 불길 위에 시원하게 물벼락이 쏟아졌다.

‘치이이이이이익’ 소리를 내며 불타던 대지가 그을음도 남기지 않고 삽시간에 꺼졌다.

거짓말 같이 눈앞에 타오르던 불바다가 사라졌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영주님이 승리하셨다!”

“베커 영주님 만세! 만세!”

함성을 지르며 우르르 베커성의 병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길에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다가 불이 꺼지고 드러난 광경은 볼만했다.

“……으으.”

너무 어이없게 패배한 루벡 남작가의 기사와 병사들은 물벼락을 맞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앓던 이를 한 방에 제거했음을 확인하고 하늘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트렸다.

피 보지 않고 시원하게 화끈한 한 판으로 이끌어 낸 승리.

이계에서의 또 하루가 완벽하게 완성 됐다.

- 칭호가 ‘프로 불질러’로 변경되었습니다.

***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쩌렁쩌렁 울리는 탈만의 목소리가 성벽을 뒤흔들었다.

탈만은 오늘 아주 신이 난 모양이었다.

용병으로 취급받던 과거 인생을 모조리 보상 받는 듯 기분이 들떠 보였다.

“영주~ 그쪽 애들이 말을 안 듣네?”

기사지만 여전히 용병 탈을 벗지 못한 탈만이 루벡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툭툭 탈만은 검으로 루벡의 등판을 쳤다.

“뭐, 뭣들 하느냐! 어서 열어라!”

며칠 만에 몰골이 핼쑥해진 루벡이 발악하듯 악을 썼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포로 생활은 지옥 생활 같을 것이다.

나는 기사도의 지침대로 따르지 않았다.

항복하거나 포로로 잡힌 귀족과 기사는 손님처럼 접대하는 게 이곳 예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루벡과 그의 기사들을 돌바닥에 재웠다.

음식도 딱딱한 빵에 멀건 수프만 제공했다.

남작성에 오는 중에도 말에 태우지 않고 걷게 했다.

루벡은 용병 옆에 손이 묶인 채 노예처럼 끌려왔다.

기사들과 묶여 굴비 세트가 되었다.

“으으으.”

화병으로 얼굴이 붉어진 루벡 남작은 연신 이를 악물었다.

오늘의 치욕을 갚기 위해 잔머리 굴리는 게 훤히 보였다.

“지, 진짜 영주님이다!”

“무, 문을 열어라!”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루벡과 포로 기사들, 그리고 무기를 뺏긴 채 줄줄이 엮인 동료들을 보고 상황을 알아챘다.

어차피 방어 병력도 기껏 수백 명밖에 없었다.

1,000명이 넘는 나의 병사들을 보고 꼬리를 내렸다.

루벡 남작군에게서 빼앗은 갑주로 땟깔 좋게 무장했다.

“성도 쥐똥만 한 데 사는 놈이 감히 내 성을 노려?”

말 등에 앉아 남작의 성을 보며 어이없는 웃음을 토했다.

본진 일꾼까지 싹 쓸어 동원해 공격한 루벡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놈이다.

루벡 남작의 성은 매우 작았다.

백작 성이 120평 팬트 하우스 정도 된다면 남작성은 딱 20평 연립 주택 수준이었다.

외성은 아예 없었다.

달랑 내성 하나가 전부였다.

그 아래로 나무 방책으로 보호되는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 작은 성에서 얼마나 뽑아 먹었는지 짐작도 안 갔다.

기사도 제법이었고 병사들 수도 상당했다.

정확한 면적과 인구는 알 수 없지만 수탈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 가능했다.

그그그그그그.

낡았지만 쇠로된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무기를 버리고 대가리 숙여!”

빈집 털이에 흥이 붙은 탈만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터더더덩.

남작가 수비병들이 무기를 던지고 고개를 숙였다.

저항은 일체 없었다.

“시간은 이틀 주겠다. 그 시간까지 베커 영지로 가고자 하는 자들은 가족들과 단출하게 짐을 꾸려라! 집과 땅을 무상으로 주겠다고 영주님께서 약속하셨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베커 영주님 만세! 만세!”

포로로 잡혔던 자들까지 함성을 지르며 만세를 외쳤다.

“???”

성의 수비병과 숨죽이며 상황을 살피던 마을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 빨리 빨리 움직여! 돼지나 소, 양. 모두 다 끌고 와! 크하하하하하.”

탈만이 실성한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포로로 잡혔던 병사들이 뛰기 시작했다.

“다들 짐 싸라! 베커 영주님께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구원해 주셨다!”

“으아아! 바쁘다 바빠!”

포로들이 식솔들을 챙기기 위해 더 민첩하게 움직였다.

“으! 으!”

눈 뜨고 지켜보는 루벡 남작은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팠는지 진한 신음을 흘렸다.

루벡 남작가 성을 탈탈 털어갈 생각이었다.

나의 영지는 백작령이라 땅은 넓고 성은 컸지만 영지민이 턱없이 부족했다.

영지가 유지되려면 충분한 노동력이 필수였다.

그런 약점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묘수를 고민했었다.

포로로 잡혀 있던 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아끼지 않았다.

풍족하게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잠자리를 제공했다.

자유롭게 포로들이 성에서 돌아다니는 중에 베커성 영지민들에 의해 설득 당했다.

오크 부족뿐만 아니라 마수를 홀로 때려잡은 나의 얘기부터 영지민들에게 무료로 집과 땅을 나눠주는 미담이 끊이지 않고 전해진 것이다.

루벡 남작의 지금까지의 악행이 효과를 더했다.

병사였던 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각자의 집을 향해 달렸다.

성에 남아 있던 자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여보!!! 짐 싸! 우리 이사 갈 거야! 이 영지 망했어!”

“여기 있으면 이제 거지꼴을 못 면해. 모두 다 베커 영주님 땅으로 떠나자!”

성 밑 마을도 난리가 났다.

살아 돌아온 남편이나 아들이 가족들에게 이사 가자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그들 얼굴에서는 희망이 넘쳤다.

베커성에서 맛봤던 진한 자유와 넘치는 활기에 전염이 됐던 것이다.

“성을 접수하라!”

“명!”

탈만의 명령에 병사들이 부리나케 남작성을 접수했다.

항복한 병사들의 무기를 모으고 성벽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경비를 섰다.

“들어가십시오. 주군!”

탈만은 어깨에 힘 빡 주고 나를 인도했다.

“수고했다. 탈만 경.”

사양하지 않고 영주로서의 권리를 즐겼다.

“어서 와서 창고를 열라!”

탈만은 인상을 쓰는 루벡 남작을 거칠게 다뤘다.

루벡은 치욕에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얘들아! 저것도 쓸어 담아! 딱 봐도 돈 좀 될 거 같다!”

다다다닥.

탈만은 따라온 병사들을 지휘해 루벡 남작성을 탈탈 털었다.

위에서부터 아래, 부엌까지 남김없이 훑었다.

용병답게 돈 되는 것들은 기가 막히게 알아봤다.

하지만 나오는 물건들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개중에 제법 호화로운 물품들이 섞여 나왔다.

하지만 날 감동시킬 만한 보물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자식과 마누라를 왕성에 보냈다는 루벡 남작.

그것만 봐도 돈 좀 있을 게 확실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이것도 옮겨!”

병사들이 장식용 갑주며, 그림, 양탄자까지 쓸어냈다.

하지만 크게 아쉬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 눈치의 루벡 남작 모습.

악독한 눈빛을 줄기차게 뿜어냈지만 음모를 꾸리는 냄새는 끊임없이 풍겼다.

“루벡 남작.”

그를 불렀다.

“……말하시오,”

“불어.”

“뭐, 뭘 말이오!”

“금고. 그거 어디 있어?”

순간 눈빛이 흔들리고 몸을 움찔거리는 루벡.

“없소! 난 가난한 영주요! 더 이상 빼앗아갈 게 이 성에는 없소이다!!!”

과할 만큼 소리를 빽빽 지르는 루벡 남작.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대한민국 초등생도 아는 이치를 모르는 루벡이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가 집무실인가?”

“……그렇소.”

3층 난간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한 곳을 가리켰다.

“주군. 이놈 수상합니다. 귀족이라는 작자가 감춰놓은 보물이 없다니 말이 안 됩니다.”

탈만도 당연한 의심을 품었다.

“닥쳐라! 귀족의 말은 무게가 다른 법이다! 내가 감쳐놓은 보물이 있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어디서 많이 듣던 엄포에 피식 웃음이 났다.

뚜벅뚜벅 집무실로 들어갔다.

이미 병사들이 한바탕 휩쓸고 간 뒤였다.

군데군데 무거운 책장과 의자 따위밖에 없는 집무실이었다.

“흐으음~.”

눈을 지그시 감고 방 안의 기를 탐색하며 들이마셨다.

마력이 흘렀다.

감춰져 있지만 아주 미약한 마력이 방안에 규칙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빙고!

왼쪽 벽면을 향해 거침없이 걸었다.

한때 그림이 걸려있던 자리에는 액자 자국만 남았다.

하얀 벽면은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돈 냄새가 났다.

마력과 함께 돈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다.

개코가 된 것 같았다.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마력을 벽에 투여했다.

파지지지짓.

저항감이 감지됐다.

마법으로 보호되는 마법 금고가 확실했다.

“루벡 남작.”

고개를 돌려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루벡을 봤다.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왜, 왜 부르시오.”

진실을 아는 루벡은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정확하게 마법 금고를 찾아낸 내가 괴물처럼 보일 것이다.

“맞고 열까? 그냥 열까?”

깔끔한 의미의 경고가 루벡에게 날아갔다.

“무슨 헛소리요! 무, 무얼 연단 말이오!”

루벡이 억울하다는 듯 큰 소리를 냈다.

스릉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콰가가가강! 콰가가가가각!

사정없이 단단한 벽면을 내리쳤다.

캉!

그 순간 들려온 단단하고 맑은 금속음.

“헛!”

루벡 남작의 놀란 헛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벽과 하나가 되어있는 금고는 꺼내갈 수 있는 수준의 크기나 무게가 아니었다.

“탈만 경~.”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어디서 주둥이를 까!”

쫘아아아앗.

탈만의 솥뚜껑만 한 손이 루벡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아아악!”

콰다다다당.

비명을 지르며 집무실 바닥을 구르는 루벡.

“너 같은 악덕 영주는 살려주면 안 돼! 죽어!”

퍽퍽! 퍼버벅!

탈만은 루벡을 개 패듯 패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루벡 남작이 영지에서 벌였던 잔혹한 짓은 나도 들어 알고 있었다.

평민들의 피 기름을 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던 자.

영지민들 모두를 농노로 부렸다.

수확을 해도 겨우 빌어먹을 정도만 양식을 허용했던 루벡 남작.

세금, 강제 노동 착취뿐만 아니라 어여쁜 여자들은 루벡 남작이 절대 가만 두지 않았다.

반항하는 자는 죽이거나 노예로 팔아 돈벌이로 쓰던 악덕 귀족의 대명사였다.

그런 루벡에게 탈만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만.”

“넵!”

“루벡~ 살고 싶지 않나?”

“으으으…….”

눈탱이가 퉁퉁 붓고 팔 한 쪽이 꺾인 루벡이 진한 신음을 흘렸다.

“주군. 더 패야겠습니다!”

우두둑 손가락을 꺾으며 탈만이 다시 나섰다.

“오, 오지 마……!”

루벡이 공포에 질린 채 손을 휘저었다.

무식한 용병의 주먹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그럼 불어 새꺄!”

탈만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쩌렁쩌렁 울렸다.

울분이 담겨 있었다.

마력을 다루지만 용병 생활을 하며 귀족들에게 당했던 모욕이 한스러웠던 것이다.

탈만이 주먹을 움켜쥐고 다가갔다.

“여,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만. 그만 때리세요!!!”

루벡 입에서 드디어 항복 선언이 나왔다.

용병 탈만에게도 알아서 경어를 사용했다.

매에는 귀족도 못 버텼다.

모든 게 순리대로 흘러갔다.

루벡이 힘없이 벽면 앞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열려라. 내 사랑…….”

약속된 주문어가 듣기에 몹시 불편했다.

변태 새끼 같았다.

파아아앗!

곧 강렬한 빛이 터졌다.

그리고 제법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되던 마법금고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드러난 금고는 어른 몸통만 한 크기였다.

“끌고 가.”

“넵! 주군!”

금고가 나타나자 활짝 웃던 탈만이 영혼까지 털린 루벡을 끌고 갔다.

“흐흐흐.”

나도 모르게 악당처럼 웃으며 흡족한 마음으로 금고 문을 열었다.

팟! 팟! 팟!

아! 황홀하게 쏟아져 나오는 보석과 황금이 뿜어내는 광채.

놀랍게도 가난하다던 남작의 금고 안에는 보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오오! 이건……!!”

- 칭호가 ‘털고 또 털어’로 변경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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