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회귀의 전설
321장. 땅뺏기 (3)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기사 카르스는 눈앞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한때 백작가의 총망 받는 기사였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마물 때문에 백작가 성에서 쫓겨났다.
성직자나 기사들, 마법사들을 총동원해도 마물을 처리할 수 없었다.
결국 영주는 공포에 질린 채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하지만 카르스는 영주를 따라갈 수 없었다.
기사 가문 출신이었지만 카르스는 평민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영주는 다른 곳에 몸을 의탁하면서 꼭 필요한 자들만 동행을 허락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카르스는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기어이 그는 기사의 상징인 마력 무구를 반납했다.
상황이 급박했기에 영주는 카르스에게 기사 자격 박탈을 명하고 떠났다.
기사 자격이 박탈된 카르스였지만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잔혹한 영주는 때때로 자격을 박탈한 기사들의 오른손을 베기도 했었다.
여인과의 사랑을 택한 카르스는 영지에 남았다.
어촌 마을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는 영지민들과 남아 함께 살게 되었다.
기사였던 카르스는 영주 대신 요새를 관리하고 영지민들을 돌봤다.
물자는 풍부하지 않았지만 생활은 만족스러웠다.
여인과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새로 영주가 부임하거나 마물이 이곳까지 노리게 되면 모든 걸 잃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책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떠돌이 오크 무리들이 순찰 중에 가끔 발견되었다. 긴장이 감도는 와중에, 최근 빈 백작성에 새로운 영주가 부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카르스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새로운 영주가 제발 자비로운 자이기만을 기원했다.
영지민들을 다독이고 그렇게 영주를 맞이할 준비를 해갔다.
오늘도 그렇게 평소처럼 순찰을 나섰던 카르스였다.
영지는 더할 나위 없이 평안했다.
농사가 풍년이라 곳곳이 먹거리로 가득했다.
만족스러움을 안고 마을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성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나타난 마수의 습격을 받았다.
불의의 일격.
‘모든 게 계획적이다!’
마수놈들은 몬스터들과 달랐다.
비상한 머리를 사용할 줄 알았다.
도망치던 관성대로 성으로 향하던 카르스는 밀려오는 공포에 질렸다.
이대로 가면 방책에 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을 당할 게 뻔했다.
마수 라쿠라는 죽은 시체까지도 먹어치운다.
주민들을 학살한 채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방책 안에 머무를 것이다.
‘시간을 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수 떼를 끌어들인 꼴이 됐다.
카르스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목숨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었다.
‘안녕. 내 사랑 다이아, 내 아들 루크……. 아빠가 죽어서도 사랑한다!’
결심한 카르스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스릉!
장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앞을 막을 것이다! 성문을 폐쇄하고 요새로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마력이 담긴 카르스의 목소리가 웅웅 울리며 방책 위까지 퍼졌다.
‘모든 신들이시여! 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카르스는 신께 소망했다.
헛되지 않은 죽음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영광을 얻고자 했다.
어느새 성문 가까이에 이르렀다.
“탓!”
카르스가 기합과 함께 달리던 말에서 뛰어내렸다.
휘리릭.
관성과 탄성을 이용해 허공에서 몸을 한 바퀴 돌려 바닥에 착지했다.
“카르스 님!!!”
카르스와 함께했던 병사들이 놀라며 그를 불렀다.
“명령이다! 모두 들어가!”
방패까지 손에 든 카르스는 성벽 앞에서 마수 떼를 막아섰다.
검에서 우윳빛 마력이 줄기차게 뿜어져 나왔다.
케라라라라라라라!
건방진 인간이 앞을 막자 흉포한 울음을 토하며 선두에서 선 라쿠라가 거침없이 도약했다.
카르스의 목덜미를 노린 맹렬한 일격.
마력 따위는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아!’
카르스는 라쿠라의 용맹한 돌격에 순간 절망을 느꼈다.
라쿠라에게서 느껴지는 강자의 패기가 카르스의 의지를 흔들었다.
저 발에 깔리는 순간 모든 게 끝날 게 분명했다.
“에레카시여…….”
자비의 신 에레카를 온 마음으로 부르는 카르스.
오직 신의 자비만이 이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쇄애애애애앳.
그때 카르스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강맹한 바람이 느껴졌다.
뻐어어어억!
카르스의 눈이 한없이 커졌다.
두 눈에 똑똑히 보이는 한 장면.
신이 보낸 게 분명한 빛의 화살이 카르스를 덮치던 라쿠라의 이마를 통렬하게 꿰뚫었다.
***
- 마수 라쿠라가 바람의 정령왕의 가호가 담긴 화살에 마빡이 뚫려 한 방에 즉사했습니다.
- 최초로 하급 마수를 사냥했습니다.
- 마나 포인트를 엄청나게 획득했습니다.
- 최초로 마수를 잡은 허접 당신! 레벨업을 팍팍 쏩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레벨업 하셨습니다.
- 칭호가 ‘마수 마빡을 관통시킨 자’ 로 바뀌었습니다.
짜릿했다!
연타 레벨업 잭팟을 터트렸다.
단 한 방에 연이어 오르는 레벨업에 입이 찢어졌다.
아직 저레벨이라 경험치가 제대로 적용됐다.
강한 놈을 후려 팰수록 레벨은 증폭했다.
오크 대전사로 획득했던 레벨업의 꿀맛이 생생이 기억했다.
저릿저릿 손발에 전기가 통할 정도로 맛났다.
- 동료 대갈통을 한 방에 쪽박 낸 당신을 마수들이 노려봅니다! 오! 저 격렬하고 살기 가득한 눈깔 좀 보소~ 패기 살아 있네! 마수들이 당신만을 노리고 다구리의 전설을 보여주려 준비 중입니다!
알파닥의 갈굼이 오늘따라 진했다.
알파닥의 초치는 소리에 행복지수가 짜증지수로 급변했다.
워낙 빠르게 달리는 놈들이었기에 두 번째 화살을 날리지 못했다.
기사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를 살려야 했다.
케라라……. 케쿠쿠쿠!
허망한 동료의 죽음에 마수들이 모두 날 노려봤다.
집단생활을 하는 놈들답게 유대가 강했다.
오크의 복수심은 개껌도 안 될 만큼 분노의 눈빛은 더러웠다.
쿠케케케케케케!
놈들이 요란하게 개처럼 짖더니 방책 위에 있는 날 향해 돌격해 왔다.
와라 썅!
나도 대기 중이었다.
오른손에 든 물의 정령 하급 마법창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아이스 스피어!”
쩌어어엉!
물의 정령왕의 축복을 받은 창에서 푸른빛이 쩡 하고 터졌다.
“꺼져!”
성벽 위에서 몸을 날리며 창을 던졌다.
쇄애애애애애앳.
푸른빛에 물든 창이 벼락처럼 날았다.
나를 향해 도약하던 선두의 라쿠라를 향해 날아가는 창!
퍼어억!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고 날 듯 달려오던 라쿠라의 입속으로 창이 그대로 꽂혀 들어갔다.
쩌저저저저저적.
그 순간 라쿠라의 거대한 몸뚱이가 푸른빛이 도는 얼음덩어리로 뒤덮였다.
“탓!”
힘찬 기합과 함께 마수 떼를 향해 돌격했다.
방패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에 검을 들었다.
화르르륵 검에서 붉은 불길이 일었다.
황금빛이 방패에서 거칠게 터졌다.
그리고…….
쿠라 쿠케케케케케!
마수 떼가 번들거리는 붉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나를 한입에 삼킬 듯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왔다.
“니들 오늘…… 다 뒤졌어!”
심장이 으르렁거렸다.
마력을 가득 머금은 불검이 라쿠라의 대갈통을 향해 풀 스윙으로 날아갔다.
***
콰아아앙!
폭발음이 연달아 울렸다.
거대한 마수가 휘두르는 앞발을 처음 보는 용병이 방패로 후려쳤다.
거대한 라쿠라가 방패에 밀려 자세가 흐트러졌다.
허점을 놓치지 않고 깊숙이 찔러가는 용병의 검.
케에에엥! 케겡!
배가 갈라진 마수가 구슬픈 비명을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와르르 쏟아지는 마수의 창자들에서 모락모락 김을 뿜어졌다.
“너 이리와 새꺄!”
용병의 검은 거침이 없었다.
마수 라쿠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수를 향해 먼저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마수들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펄쩍 뛰어 용병의 목을 물거나 방패를 제거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마수 떼의 모든 공격이 부질없었다.
황금빛 방패는 마수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볍게 튕겨 내거나 박살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의 검은 단단한 마수 가죽을 거침없이 찢어발겼다.
촤아아아앗.
마수의 푸른 피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대지위에 쏟아졌다.
“이, 이게…….”
기사 카르스는 할 말을 잃었다.
손에 들린 검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도 의식하지 못했다.
일개 용병이 마력 무구를 이용해 일방적으로 마수 떼를 도륙하고 있었다.
일인 활극이었다.
어지간한 마수들도 두려워한다는 라쿠라 떼를 용병은 홀로 사냥했다.
피가 튀고 살점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검이 신의 벼락마냥 마수들의 뼈를 치고 갈랐다.
케게겡 케구루루루!
마수들의 기괴한 비명이 사방에서 들렸다.
땅바닥에 쓰러지는 마수들의 손과 발, 머리가 사방에 제멋대로 나뒹굴었다.
촤아아아아아앗.
푸른 마수의 피가 비처럼 쏟아져 땅을 적셨다.
콰아앙! 촤르르르릇.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공수가 오고갔다.
보고 있던 인간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이렇게 치열한 인간과 마수의 전투는 다들 처음 봤다.
케루루……. 케루루.
아직 살아남은 마수들이 주춤거렸다.
마수들의 눈동자에 본 적 없는 공포가 스쳤다.
용병도 몸에 상처를 입었다.
마수의 발톱이 스친 용병의 어깨 한쪽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
“이리 온나~ X방새들!”
용병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용병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마수 떼를 향해 퍼부었다.
지치는 기색도 없었고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광기가 용병의 온몸에서 펄펄 끓었다.
활화산 같은 마력의 카리스마가 마수들을 옭아맸다.
캐루 캐루루루루루!
생존한 마수 세 마리가 분노의 울음을 토하며 등을 보였다.
이미 공격의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꽁지를 말고 마수들은 빠르게 대지를 박찼다.
공격할 때보다 더 잽싸게 도망쳤다.
“푸하하하하하하.”
목이 터져라 웃기 시작한 용병.
“흙저씨~! 저 새끼들 묻어!”
갑자기 허공을 향해 용병이 외쳤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콰드드드드득 마수들이 달리던 땅이 갑자기 쑥 아래로 꺼졌다.
케겡켕! 켕!
마수들의 다급한 비명소리가 지하 깊은 곳에서 울렸다.
“대, 대지의 정령!”
기사 카르스는 경악에 경악을 거듭했다.
마력검을 든 용병이 정령까지 부렸다.
그것도 마수들을 한 방에 묻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대지의 정령을 말 한마디로 움직였다.
철컥. 쿵.
용병의 손에 들린 방패와 검이 대지를 울리며 꽂혔다.
‘전부 다 정령 마력무구!’
한때 자신도 소유한 적이 있는 마력무구였지만 그 차원이 달랐다.
카르스는 경외의 시선으로 전신(戰神)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용병을 바라봤다.
감히 숨도 쉬지 못했다.
아직도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는 용병의 눈동자.
기사 카르스와 뜨겁게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