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회귀의 전설
311장. TS건설 설계팀 (2)
‘이 새끼들 표정 왜 이래? 좌우지간 마음에 안 든다니까…….’
부장급 팀장 왕승표.
다른 날 같지 않게 어정쩡하게 인사를 건네는 팀원들이 불만이었다.
실질적 회사 주인이 바뀌었어도 내부 시스템은 아직 기존 방식 그대로였다.
왕승표는 임원 승진을 위해 요즘 열심히 손바닥을 비비고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 다녔다.
TS 그룹이 된 이후 회사 재정이 더 안정적이고 튼튼해졌다.
임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안정된 회사 재정에 맞게 늘었다.
기사 딸린 자가용에 전용 집무실 등, 판공비가 1년에 1억씩이나 떨어졌다.
어제도 회사 중요 임원이자 학교 선배인 상무를 모셨다.
아예 라운딩부터 시작해 진하게 술자리까지 마무리하며 대접했다.
오늘 아침에는 일찍부터 사우나로 출근해 같이 땀까지 빼고 나왔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확답을 받았다.
비리로 잘려나간 임원들 빈자리에 왕승표를 꽂아 넣어주기로 했다.
그 동안 큰 걸로 몇 장이 뇌물로 전해졌다.
그룹 차원에서 건축 디자인팀을 임원급으로 올리는 데 협의해 확정된 것이다.
부장과는 다른 임원의 세계.
왕승표는 흐뭇한 마음으로 천천히 회사에 출근했다.
그런데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수다를 떨었다.
팀장의 빈자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농담처럼 짤리고 싶냐고 말을 내뱉었지만 진심도 들어 있었다.
자신의 디자인 철학을 문제 삼는 놈들부터 지방 일터로 발령내 버릴 생각이다.
특히 몇 년 전, 은밀한 술자리 제안을 거절했던 윤소진 대리가 1순위였다.
출신 학교도 라이벌 학교인 연지대 출신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긴장한 표정과 어정쩡한 태도로 연달아 왕승표에게 인사를 했다.
“다들 주말에 뭐했어? 표정들이 왜 그래~ 윤소진 대리는 오늘따라 피부가 더 칙칙해 보인다. 나이는 화장으로도 어쩔 수 없나 봐? 그렇지? 혜진이는 오늘도 굿~.”
엄지를 치켜세우며 공혜진을 칭찬하고 윤소진을 디스했다.
공혜진은 고영대 건축학과 출신이었다.
후배를 우선 키워주는 게 인맥의 당연한 선택이고 수순이었다.
전 사업체에서 성희롱에 대한 교육 공문이 내려왔지만 왕승표는 교묘하게 그 틈새를 피해 다녔다.
덩치와 다르게 눈치가 빠르고 얍삽했다.
윤소진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나이 들어 서러운 여자에게 가하는 치명적 일격이었다.
“회의 계속 진행하시죠. 한시가 바쁩니다.”
“회의? 어라……! 넌 누구세요?”
그제야 회의실 정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낯선 젊은 남자를 발견하고 왕승표는 당황했다.
윗선에서 누가 온다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낯선 청년이 자신의 영역에서 뻔뻔하게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주간 회의는 팀장이자 부장인 왕승표의 몫이었다.
“장주시 연구소 설계에 참여하게 된 발주처 직원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당당하게 목소리가 회의실 가득 울렸다.
목에 걸고 있는 인식표에는 이름 석 자만 보였다.
‘장주시?’
왕승표의 인상이 일시에 구겨졌다.
그것 때문에 대표에게 잔소리를 잔뜩 들었다.
대학교 선배인 대표를 비롯해 상무 나재한이 위에서 커버해 무마해줬다.
발주처도 초기 설계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었기에 큰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입도 짭짤했다.
슈퍼컴퓨터가 들어갈 연구실에 이어, 계속 연구 단지에 들어설 건물의 설계들이 발주됐다.
설계 외주비만 20억이 떨어졌다.
여러 건의 발주를, 알고 지내던 업체에 하청 주었다.
그리고 7억을 현찰과 상품권으로 쪼개 돌려받았다.
엄청난 백 마진이었다.
그걸 비자금으로 삼아 상무를 비롯해 임원들에게 로비 했다.
혼자 착복해도 되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했다.
회사 자금이 넉넉하게 회전되면서 떨어질 떡고물이 쏠쏠하니 장난 아니었다.
이대로 임원이 된다면 한 해에 10억 뽑는 건 껌이었다.
“발주처 직원이면 직원답게 있어야지. 이건 월권 아닌가? 우리 회사가 만만하게 보여? 팀장 허락도 없이 우리 팀 애들을 불러 놓고 회의를 해! 그것도 내 영역에서?”
기회다 싶어 왕승표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버럭 호통을 쳤다.
상황은 깊이 알 수 없지만 건수가 제대로 걸렸다.
그간 쌓였던 암암리에 쌓인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듯 했다.
발주처 직원에 대한 경고 차원도 있어 목소리를 더 높였다.
멍청하게 연구소 따위에 단위가 큰 돈을 투자하는 회사라면 말 다한 것이다.
그런 회사에 쓸 만한 인재가 있을 리 없었다.
딱 봐도 장태산이라는 놈도 한참 어려 보였다.
아직 솜털도 가시지 않는 놈을 보내는 회사라면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런 놈 하나 찍소리 못하게 눌러놓는 건 일도 아니다.
‘자식. 너 딱 걸렸어. 흐흐흐.’
장태산은 이미 굳어 버린 채 새카만 눈동자로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누가 봐도 머릿속이 어지러워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티, 팀장님. 장태산 씨 방금 스티븐 매튜와 통화한 사이입니다…….”
왕승표의 학교 후배인 대리 하나가 조용히 정보를 건넸다.
“스티븐 매튜? 푸하하하하하. 야! 저 X만한 꼬맹이가 무슨 스티븐 매튜를 알아! 쟤가 알면 난 그룹 회장님 숨겨둔 아들이야, 임마~.”
아직 숙취가 다 가시지 않은 왕승표는 호기를 부렸다.
임원 승진이 확정됐다는 소리를 들은 마당에 쉽게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일 년에 매출이 몇 조가 일어나는 건설 회사였다.
이런 회사의 임원이 됐다는 사실은 충분히 흥분할 만했고 들뜬 감정에 정신을 못 차렸다.
스르르르르릇.
그때 설계팀 사무실 문이 조용히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거침없이 회의실로 몰려오는 사람들.
“대표님이 아침부터 웬일이야…….”
“임원분들도 전부…….”
사무실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던 직원이 속삭였다.
팀원들 모두 돌아가는 상황에 바짝 긴장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대표와 임원들이 무리지어 설계팀 사무실에 몰려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마? 지금 나 임원 승진했다고 알려주러 온 거야?’
왕승표는 몰려오는 대표와 임원들의 모습을 보고 환희에 찼다.
이례적이긴 해도 이런 식의 승진 발표가 없으라는 법은 없었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는 팀원들.
임원들 표정에 군기가 바짝 들어, 대표 뒤를 따라 줄줄이 들어왔다.
“대표님!”
왕승표가 활짝 웃으며 대표를 맞이했다.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건설사 대표 진태준은 왕승표 인사를 받지도 않고 쌩 지나쳤다.
그리고 누군가 앞에 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근무 환경이 나쁘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다만…….”
다름 아닌 발주처 직원에게 대표가 굽실거렸다.
또 그런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회의실 공간을 지배하는 장태산.
“???”
긴장한 임원들과 달리 팀원들은 영문을 모른 채 눈만 껌벅거렸다.
누가 봐도 이 상황은 이해 불가한 광경이었다.
“어제 여기 계신 팀장 분과 라운딩 하신 임원 분 계십니까?”
장태산이 진태준 대표 뒤에 도열한 임원들을 향해 물었다.
“제가……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요?”
피식 웃는 장태산.
그에 반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엿 같은 상황에 왕승표 팀장의 얼굴색은 하얗게 떴다.‘지, 진짜 스티븐 매튜와 통화하는 사이야?’
팀원의 경고에도 본인이 회장 아들이라며 개무시했던 좀 전의 행동이 떠올랐다.
“진태준 대표님.”
“넵! 대표님!”
“회사 경영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장태산의 눈이 왕승표를 향해 차갑게 던져졌다.
“……죄송합니다.”
진태준 대표 고개가 자연스럽게 90도로 숙여졌다.
“제 권한으로 그룹 감사팀 파견을 이 시간부로 긴급 요청하는 바입니다.”
얼음처럼 차갑게 장태산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룹 감사 발언.
“…….”
회의실 공기는 순식간에 북풍한설이 몰아치듯 차갑게 얼어붙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재(人災)였다.
왕승표는 힘없이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
[If there is anyone out there who still doubts that America is a place where all things are possible, who still wonders if the dream of our founders is alive in our time, who still questions the power of our democracy, tonight is your answer.]
감동적인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수락연설이 화면에 떴다.
예상했던 대로 오바마는 2008년 11월 6일 대통령에 당선됐다.
알고 있었지만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생에는 오바마의 연설을 듣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직접 연관된 당사자도 아니었고 처했던 여건도 좋지 않아 무심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But above all, I will never forget whom this victory truly belongs to. It belongs to you. It belongs to you.]
연설은 계속 됐다.
내가 기다리던 구절이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 어차피 승자가 될 운명이었지만 승리가 누군가에 의해 창출되었음을 잊으면 안 될 겁니다…….”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메시지를 보냈다.
오바마는 잊지 않겠다고 확약했다.
그는 말처럼 절대 잊으면 안 됐다.
그의 수많은 약점을 내가 움켜쥐고 있었다.
[I was never the likeliest candidate for this office. We didn’t start with much money or many endorsements…….]
다음 구절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작은 돈이 모여서가 아니라 한국인인 내가 적극적으로 밀어 그가 당선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생물은 돈이었다.
근본적으로 돈이 정치이고 정치가 돈인 것이다.
사람들을 자극하는 감성적인 문구도 다 인재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광고와 캠페인에 투자한 돈이 적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들은 돈과 한 덩어리로 움직인다.
긴 시간 오바마 대통령은 계속 연설을 이어갔다.
세상에 또 다른 황제가 태어나는 날.
대한민국은 그렇게까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를 휩쓰는 미국발 위기가 얼마 전부터 피부에 와 닿았다.
뜨거운 물에 놀란 물고기 떼처럼 공포가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IMF를 경험했던 세대들은 더 바짝 긴장했다.
환율이 치솟았다.
바닥을 치던 미국 달러가 양적완화를 기점으로 순식간에 강자가 됐다.
원화 값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최병박 정부는 긴급하게 지금껏 쟁여놨던 달러를 풀어재꼈다.
1997년 IMF 이후, 피 같은 국민의 혈세와 전 정부의 노력으로 쌓아놨던 달러였다.
정부는 아낌없이 구멍 난 시장에 달러를 던졌다.
퇴임 후 원 없이 돈을 써봤다고 자랑까지 했던 인물.
돈에 환장한 최병박과 그 휘하 졸개들이 벌인 파티의 시작이었다.
그들로 인해 해외에 뿌려진 달러가 얼마인지 대한민국 국민은 짐작도 못했다.
해외 자원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흘러가는 강물에 쏟아 부은 검은 돈의 행방은 묘연했다.
사실 2020년까지 어떤 누구도 찾지 못했다.
[Thank you. God bless you. And may God bless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막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끝났다.
라이브로 듣는 연설은 꽤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을 다시 일터로 복귀시킨다는 그의 연설 내용은 임기 동안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 그를 존경하지만 민중은 8년 뒤에 그의 경제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미국 대통령 트럼프.
“한 번 만나야겠지…….”
오바마보다 트럼프가 더 구미에 당겼다.
정의로운 정치가가 아닌 얍삽한 장사꾼이 차라리 터놓고 얘기하기 편했다.
띠리리리리리.
연설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이 울렸다.
“로버트……. 접니다.”
“보스……. 정말 존경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로버트가 전화를 했다.
“누구나 예측 가능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예측이 확신은 아닙니다.”
“그럼 하나 더 예측하죠. 오바마 대통령, 재선에 성공할 겁니다.”
“투자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보스……. 그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 왔다.
오바마를 밀었던 대가를 받아낼 타이밍이었다.
정치도 경제 원리와 다를 바 없었다.
투자와 지분 관계가 명확했다.
특히 모든 사회 구조가 비즈니스로 연결된 미국 문화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선물이 괜찮습니까?”
“생각보다 푸짐합니다.”
“그래요?”
“국무부와 국방부를 제외한 여러 장관직에서 두 개를 할당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 같은 1급 외교관 몫을 빼고 다섯 자리, 장성에 대한 승진 인사권 다섯 장이 주어졌습니다. 동시에 실장급과 수석급 인사 셋도 배당되었습니다.”
엄청난 대가였다.
민주당 지분을 소유한 힐러리와 군사업체 네오콘 몫을 제외하고 선택하라는 특혜였다.
미국 장관들 중에 두 명이나 내 사람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그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외교관도 마찬가지였다.
실장급과 수석급 인사도 막중했다.
장군 승진은 덤이었다.
“성의를 보였군요.”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측 지분에 비하면 살짝 모자란 바가 있습니다.”
냉정한 월가 투자자다웠다.
“보스의 국가를 생각한다면 상무부가 좋겠습니다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전 장사꾼입니다.”
로버트도 미국인이었다.
그가 나에게 충성하지만 국가에 대한 애정까지 터치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신 바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었다.
미국과 나의 미래, 그리고 주변 적에 대한 대비를 위해 필요한 장관직이 있었다.
“세일 가스를 비롯해 에너지 투자를 위해서는 에너지부에 장관을 임명하십시오. 동시에 국토안보부 장관은 반드시 받아내십시오.”
“아! 역시 보스십니다!”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엄청난 권한을 가졌다.
국방장관, 법무장관과 지위가 같았다.
2002년 11월에 정식 출범한 부처로, 테러 방지 부서와 인력을 총집결시켰다.
그리고 미국 내 테러에 대한 모든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가졌다.
그 말은 사직당국과 정보기관, 미국의 모든 인프라 및 취약 대상에 대한 정보를 취합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미국인들에 대한 사생활도 감시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세관과 이민국, 해양수비대, 교통보안국, 연방비상관리청을 비롯해 22개의 연방기관을 지휘했다.
보안 비상시 연방과 주, 지방정부 및 민간까지 공조를 요구할 수 있었다.
테러에 민감한 미국에서 이만한 권한을 가진 자리는 드물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정보도 획득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획득해야 할 최우선의 자리였다.
“믿을 만한 인물을 준비해 주십시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미국이 아닌 보스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로 포섭하겠습니다.”
로버트는 역시 눈치가 빨랐다.
“장군으로 적합한 한국계 인사들도 추천 부탁드립니다. 한국 대사도 우리 쪽 인사를 심었으면 합니다.”
“추천 명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로버트……. 언제나 당신이 있어 든든합니다.”
“보스가 꿈꾸는 세상을 위해 일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문과 제 삶에 영광입니다!”
- 세계 지도자를 만들어 낸 당신에게 카르마 포인트가 엄청나게 지급됐습니다.
- 중급신이 될 수 있습니다.
- 신이 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