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9화 (308/1,284)

 # 309

회귀의 전설

309장. 위기 속의 기회 (2)

“!!!”

눈을 뜬 순간 화들짝 놀랐다.

폭발 직전의 검이 붉은 불꽃에 휩싸였다.

폭주하던 마력을 흡수하고 있는 붉은 형체 하나가 보였다.

화룡이었다!

불의 정령 화룡이 넘치던 마력을 불길로 빨아 마시고 있었다.

맛난 아이스크림을 빨듯 자연스럽게 마력검의 마력을 흡수했다.

화르르르르르르르.

새빨간 불검이 손에 잡혔다.

거짓말처럼 검과 마력, 정령이 하나가 되어 통제가 됐다.

마력의 들끓던 기운이 어느새 사라져서 잠잠해졌다.

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모양을 찾아갔다.

폭주하던 마력도 멈췄다.

츠츠츠츠츳.

놀랍게도 폭발하려던 검날도 화룡이의 불길에 의해 멀쩡한 형태로 돌아왔다.

화르르 화르르르르.

불길 속에서 도마뱀 화룡이는 여전히 혀를 날름거렸다.

상당히 만족한 듯 길게 용트림을 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불덩이 껍질 형태의 모양이 보였다.

놀랍게도 화룡이가 탈피를 시작했다.

화르르르르 불길과 함께 덩치도 살짝 더 커졌다.

이마 중간에 뿔도 생겼다.

더욱 강렬하고 붉은 불길이 화룡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처음 보는 괴사였다.

멍하니 넋을 놓고 변해가는 화룡이를 바라봤다.

그 순간 알림음이 강하게 머리를 때렸다.

- 불의 하급 정령이 중급 정령으로 진화했습니다.

- 불의 정령을 진화시켜 중급 정령사가 되었습니다.

- 초급 대장장이가 최초로 마력검을 제작했습니다. 감당 못할 경험치가 주어집니다.

- 불의 신성한 가피로 불의 정령 하급 마력검이 탄생했습니다. 정령왕의 축복이 검에 깃들었습니다. 불의 정령왕 이그리브가 당신을 눈여겨보기 시작했습니다.

- 대장장이 스킬이 중급 1이 되었습니다.

- 불의 중급 정령사가 된 당신에게 레벨 업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 중급 대장장이가 되어 제작된 물건에 마력부여가 가능해졌습니다. 대장장이 부가 스킬에 마력부여가 생성되었습니다.

- 마력폭발의 위기를 극복한 당신에게 마력전이 스킬이 생성되었습니다. 타인의 마력홀을 확장시킬 수 있습니다.

- 대마력 호흡의 보유스킬에 마력석 흡수, 마력전이가 등록되었습니다. 주 스킬이 성장하면 동반되어 향상됩니다.

- 마력홀이 확장되었습니다.

- 칭호가 ‘불의 정령 마력검을 제작한 미친 대장장이 녀석’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허어엇…….”

정신없이 연달아 울리는 알림음에 호흡이 꼬일 정도였다.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경험치와 보너스가 주어졌다.

중급 정령사! 중급 대장장이! 레벨 업! 정령왕의 가피를 받는 마력검! 마력홀 확장…….

이게 다 뭐야!

엄청난 보너스 폭탄에 행복의 바다를 헤엄쳤다.

보너스가 지렸다.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이런 폭발적 성장은 처음 경험했다.

흔한 게임에서도 이런 벼락 성장은 가능하지 않았다.

오크 대전사를 때려잡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의 상승이었다.

초짜도 아닌 이제 중짜 레벨이 됐다.

“화룡아…….”

고마운 불의 정령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포효하던 화룡이는 정신없는 와중에 정령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눈앞에 남아 있는 불의 정령 하급 마력검.

붉은 빛깔이 검에서 은은하게 배어나왔다.

마력석도 어느새 빨간색으로 변했다.

딱 봐도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검신에 화룡이의 연한 그림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고급지고 꽤 비싸 보였다.

“불의 정령 하급 마력검…….”

불의 정령왕의 가피가 깃들어 있는 검이었다.

이런 특수 옵션은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마력을 검에 불어넣어 보았다.

화르르르르르르르!

“대애애애애애바아아아악!”

금세 검이 불길에 활활 타올랐다.

마력 사용자는 전혀 뜨겁지 않았지만 상대방은 패닉에 빠질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이 검으로 화염계 마법까지 펼친다면…….

생각만으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불의 정령왕의 가피를 받은 놈이라 그런지 화끈함이 달랐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거겠지?”

위기 뒤에 연이어 이벤트가 터졌다.

가슴 속 희열에 온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마력전이 이것도 물건이군!”

한꺼번에 받은 선물 보따리를 푸는 초딩 애들 심정이 십분 이해됐다.

병사가 된 용병들 수는 늘었지만 사실 쓸 만한 기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일반 병사로는 치안유지가 전부였다.

강한 기사를 육성해야 영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옆 동네 영주 새끼가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적당한 검술을 풀고 마력전이까지 이용한다면…….”

어둠에 휩싸였던 영지에 희망이 보였다.

지난 보름 동안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답은 명확했지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노력한 만큼 거짓 없이 보상이 떨어졌다.

“그런데…… 화룡이 말고 다른 녀석들도 다 정령이잖아? 그럼……. 다른 정령검도…….”

불의 하급 정령검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스멀스멀 욕심이 생겼다.

화룡이만 중급 정령으로 진화한 상태다.

중급 대장장이가 된 마당에 다른 정령들의 진화도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돌이야~!”

즉시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다.

이 기분 이대로 쭉 가보고 싶었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

휘리리링.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바람의 정령 실프.

“너도 화룡이처럼 되고 싶지?”

앞뒤 없는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빙글빙글 바람돌이가 돌았다.

순수한 정령들도 성장의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우리 한 번 달려볼까?”

다시 망치를 잡았다.

휘리리리링.

나의 말뜻을 알아듣고 바람의 정령이 한 바퀴 주위를 빙 돌았다.

카앙! 캉!

그리고 힘차게 내려찍은 쇠망치.

밤은 더 깊어갔다.

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목숨이 오락가락한 뒤에 찾아온 이 순간.

나는 아직 성장이 고팠다!

***

“미친……. 회사가 직원에 대한 배려가 없어……. 설계도를 다시 그리라고?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연구소를 짓는 거야? 아오! 이제 늙어서 찬바람이 불면 삭신이 쑤시네…….”

TS 건설 설계팀의 노처녀 윤소진 대리는 월요일 아침부터 입이 댓 발이나 튀어 나왔다.

어느새 계절은 가을의 끝자락인 11월이다.

“세상이 날 안 도와줘. 하아……. 출근하기 싫다.”

주말에 한껏 기대하고 나갔던 선자리도 개판이었다.

대기업 다닌다는 놈이 패기가 없었다.

외모는 봐줄 만했지만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닐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본인은 야근 때문에 육아나 가사 분담은 가능하지 않다고 선포했다.

선을 보는 중에도 엄마하고 통화하며 이것저것 보고하는 모습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나도 결혼해서 놀고먹을 건 아닌데 처음부터 그렇게 패를 깔면 곤란하지~ 지 처자식은 어떻게든 먹여 살린다는 각오를 해도 모자랄 판에……. 여자들 못지않게 요즘 남자들 너무 계산적이야~ 에휴…… 이렇게 살다 죽을 팔자인가.”

안아 건설에 입사할 때 한 미모로 사내에서 날렸던 윤소진이지만 흐르는 세월을 이길 수 없었다.

올해 나이 서른다섯.

대리에서 진급할 기회가 없었다.

건설회사 특성상 여자들의 승진은 쉽지 않았다.

명색이 대기업 계열임에도 노가다 특성이 살아 있었다.

현장에 일이 터지면 설계팀도 한 달 정도 그곳에 가서 살아야 했다.

여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현장 환경이었다.

그런 이유로 건설사에서는 윤소진처럼 나이 많은 여자 직원을 보는 게 어려웠다.

최근 장만한 오피스텔 때문에 대출금이 남아 있는 윤소진은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버텼다.

그나마 TS 건설로 바뀌면서 회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 같은 무식한 회식이 사라졌고, 여직원에 대한 대우도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졌다.

“근데 설계가 뭐가 잘못됐다는 거야? 내가 봤을 때는 좋았는데…….”

출근하기 전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사무실로 들어서며 윤소진은 인상을 썼다.

몇 달 전 대표 특별 지시로 지방 연구소 설계지시가 하달됐다.

지금껏 주력 분야가 뇌물을 바탕으로 한 관급 토목공사와 주택사업이 주 실적이었던 안아 건설.

몇 해 전 플랜트 쪽 기술 분야가 추가됐지만 윤소진이 소속된 건축 설계팀과는 거리가 멀었다.

갑작스럽게 슈퍼컴퓨터 입주 시설과 특수 연구실에 대한 설계가 하달된 것이다.

부랴부랴 관련 업체를 수배하고 설계팀이 동원돼 어렵게 끝냈다.

대부분 외주체제로 돌아가기에 본사 설계팀이 투입될 일은 많지 않았다.

통일되고 멋대가리 없는 한국 주택사업과 대충 만들어도 되는 토목사업은 고급 설계 기술을 요하지 않았다.

하청 주고 윗대가리들 술 접대나 받는 그런 설계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순수 창작을 요구했다.

오랜만에 대학 시절처럼 열정을 불태웠던 윤소진 대리.

설계도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자리로 갔다.

스르르릇.

‘오늘도 무사히……. 술주정뱅이 부장급 팀장이 급설사로 회사에 나오지 않기를!’

직원이 500명이 넘어가는 TS 건설 본사.

눈에 들어오는 남자 직원이 없었다.

요즘 무식한 회식이 사라지자 실망으로 살아가던 팀장은 출근 전이었다.

설계팀은 다른 사무실보다 공간이 넓었다.

근무하는 직원은 총 20여 명.

회사에서도 팀원이 가장 많았다.

최신형 CAD(Computer Aided Design) 시스템도 완비 돼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

고참 대리에 속하는 윤소진이 활짝 웃으며 출근한 사무실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금요일까지는 얼굴을 봐야 할 동료이자 원수들(?)이기에 인상 쓸 필요가 없었다.

“윤 대리님……. 오셨어요.”

설계팀에서 윤소진의 유일한 여성 후임인 공혜진이 얼굴이 달아오른 채 인사를 받아줬다.

다른 직원들은 인사를 건네기보다는 다들 한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누가 사고 쳤어?”

눈치 빠른 윤소진이 공혜진에게 물었다.

“대리님……. 혹시 신입 직원 뽑았나요?”

“신입? 아직 공채 기간 아니잖아.”

“그런데 사무실에 직원이…….”

공혜진의 시선이 옮겨간 곳으로 윤소진의 눈이 돌아갔다.

타닥 타다다닥.

메인 CAD 컴퓨터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입력하고 있는 한 남자.

그러고 보니 처음 보는 이방인이었다.

사무실 직원들 모두 낯선 이를 살피느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누구야?”

“몰라요……. 출근할 때부터 저기 있었어요.”

“경력직인가?”

호기심 많고 짬밥이 되는 윤소진이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와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다 윤소진은 그만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먹었다.

새침데기 공혜진의 얼굴이 붉었던 이유를 이제 안 것이다.

‘이 싱싱하고 잘생긴 영계는 뭐야?’

자판을 만지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만 봐도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말로만 듣던 보기만 해도 눈이 호강한다는 영계 미남의 출현.

노처녀 윤소진의 심장이 주책없이 뛰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 대해서 직접 물어봐야 했다.

영계 미남은 전혀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일에 몰두하고 있는 집중력과 포스가 장난 아니었다.

감히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에 쫄아 다들 말을 붙이지도 못했던 것이다.

“저…… 저기요.”

윤소진이 용기를 내고 남자를 불렀다.

뚝.

그때 열심히 움직이던 남자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윤소진을 돌아보는 영계 미남.

싱긋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엄마야!”

남자의 꽃 같은 미소에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란 윤소진.

콩 하고 놀란 마음에 그만 엄마를 찾고 말았다.

화석화되어 가던 연애 세포가 충격으로 깨어났다.

친구들과 들었던 곗돈 타던 날 느꼈던 기분과 같은 기분.

“무슨 일이시죠?”

부드러운 중저음의 보이스가 제대로 살아 있는 남자의 질문.

윤소진의 눈에 남자가 목에 걸고 있는 신분증이 보였다.

‘장…… 태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