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1화 (300/1,284)

 # 301

회귀의 전설

301장. 장주시의 적폐 (3)

‘이, 이게 지금 뭐야?’

송대근은 몹시 당황했다.

지방 건설업체치고는 시공능력 순위가 제법 높은 4등급에 해당하는 종합건설업체를 소유한 그였다.

방금 전까지 개무시 하던 젊은 놈이 평범한 위치가 아니었다.

TV로만 봤던 TS 그룹 회장이 그 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룹 임원들도 회장을 따라 놈에게 정중하게 예를 보였다.

소장을 비롯해 현장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젊은 놈이 방금 전 뱉었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걸 책임질 수 있는 공사 현장 발주자라고 했던 말.

시바…… X됐다!

감리를 비롯해 소장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가 봐도 개판인 현장 상황이었다.

윗선도 대응 가능한 급이 있는데 이건 그룹 회장까지 출동했다.

“실망입니다. 하 회장님.”

장태산 입에서 회장을 추궁하는 실망의 말이 나왔다.

상식선이라면 회장이 화를 내고 현장 문제에 대해 따져 물어야 정상이었다.

“기대에 부흥하지 못한 점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갔다.

하관우 회장이 허리를 숙였다.

“제,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관우 회장 뒤에 서 있던 TS 건설 대표이사는 허리를 더 굽혔다.

대표가 저렇게 나오는 상황이면 그 밑에 직원들 사정은 볼 것도 없었다.

“위대했던 로마나 대제국이 망했던 이유는 국가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국가에 속한 국민들 정신이 먼저 바닥으로 추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웅과 안아가 무너진 건 오너도 문제였지만 직원들 마인드 탓도 큽니다. 무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인적자원에 적폐가 쌓이면 그 기업 역시 반드시 사라집니다.”

‘저 새끼 뭐야?’

송대근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젊은 놈이 회장 앞에서 연설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어린놈의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송대근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소장님.”

놈이 소장을 찾았다.

“넵!”

소장이 기합을 넣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군지 정확히 신분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이 현장 상태가 상식적입니까?”

“…….”

“정상적이냐고 묻는 겁니다.”

소장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소신 있게 나갔다면 이 사단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장 친척이라 해도 원칙적으로만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소장은 송대근에게 접대를 받았다.

술뿐만 아니라 여자, 그리고 용돈까지 수수했다.

관례라고 하지만 그 일 때문에 큰 소리를 못 냈던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끝났네……. 젠장.’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 등록금 준비가 벌써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현장 소장 직책은 정규직이 아니었다.

회사 임원들이 밀어줘야 가능한 비정규직 일자리였다.

건설 대표가 책임지겠다고 한 문제에서 소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건설 현장의 최고 책임자는 비정규직 현장 소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명백한 사건이 터지면 당분간은 손이나 빨면서 지내야 한다.

“……비정상입니다.”

소장이 주저하며 한 마디를 뱉었다.

“공사 현장이 대부분 불법적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네.”

소장이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남아 있던 일말의 양심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윗선에서 공사 현장 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몇 번이나 연락이 왔었다.

그러나 TS 건설에서 부장까지 지내고 나온 경력으로 임원이 된 동기들에게 걱정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야! 주 소장!”

건설회사 대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표는 미치도록 억울했다.

회장의 지시를 받고 특별히 당부했던 현장이었다.

갑작스러운 미국발 위기에 직면하면서 수주를 따내지 못해 회사가 어려움에 빠졌다.

그런 때에 수천 억 공사가 예상되는 현장은 특별 관리를 하는 게 정상이었다.

임원들을 통해 지시를 몇 번이나 내렸다.

회사에 있을 때부터 특별히 신임했던 주현필 부장이 현장 소장을 맡았기에 더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혔다.

어느 정도 관례로 돈이 오가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참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주 소장은 한때 모시던 상사였던 건설사 대표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작은 욕심에 눈이 돌아가 윗선의 당부를 가볍게 여겨 버렸다.

모든 게 자신의 불찰이었다.

“불법 행위자들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물으십시오. 공사비 중단은 물론 특히 공사 감리 업체와 시공사는…… 민, 형사상 소송을 통해 이 사태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도록 하겠습니다!”

권력이 막강한 듯한 새파랗게 젊은 남자의 명령.

“그룹 법무팀을 파견해 실사 파악 후 엄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하관우 회장의 목소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공개적으로 장태산 회장에게 처음 듣는 꾸중이었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앞으로 회사를 비롯해 대한민국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시설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특별히 건설사를 비롯해 다른 계열사에도 그 부분을 명확하게 전달했었다.

절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처리하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단이 나고 말았다.

하관우 회장이 보기에도 난장판인 공사장이었다.

요즘 정신이 없어 잘 챙기지 못했다.

안아의 적폐들이 꼬리를 물고 하나둘씩 드러났다.

회사에서는 전 회장을 따르던 놈들이 일을 처리하다 구멍을 냈다.

내수보다 수출 제품들이 많은 계열사에서 일이 터졌다.

수출은 기술만 필요한 게 아니라 바이어와의 인맥도 대단히 중요시 됐다.

비리로 잘려나간 임원들이 중국 쪽에 회사 기밀을 넘기고 이직했다.

그리고 바이어들도 함께 끌고 갔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배고픈 하이에나들이 슬슬 등장했다.

부패한 정권이 나타나면 여지없이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비어 있던 지갑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됐다.

기업의 보호 장치 역할을 했던 행정 장치들이 무력화 됐다.

국민 청원도 청와대가 먼저 답변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행정도 이익집단들 위주로 돌아갔다.

현 정권 여당 출신 지자체장들도 하나둘 소통 창구를 없앴다.

본격적으로 이익 집단과 이해관계를 만들어 끼리끼리만 소통했다.

사방에서 대놓고 쏟아지는 요구가 적지 않았다.

자신들과 관련된 업체나 사람들에 대해 도와달라고 넌지시 연락을 넣어 왔다.

물품 구매부터 직원 채용까지 부탁을 가장한 행패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외국 자본에 의해 임명된 명목상 회장이라 판단했는지 국회의원들과 정부 관계자들이 만만하게 대했다.

10대 그룹 회장에게 감히 할 수 없는 청탁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 것들을 처리하다보니 장태산 회장의 지시를 본의 아니게 어기게 됐다.

“지, 지금 무슨 소리요!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겠다니! 당신들 지금 재정신이야? 고소? 당신들 죽고 싶어!”

가만히 듣고 있던 송대근이 그제야 눈이 돌아갔다.

이 공사를 외사촌 형님을 통해 따내느라 들어간 자금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소장에게 찔러준 돈도 수억 단위가 훌쩍 넘었다.

아직 이번 달 결산을 받지 못했다.

큰 공사라 공사가 중단되면 인부들 인건비를 포함해 자재비가 수십억까지 적자가 난다.

한마디로 망할 수도 있었다.

진짜 감리가 진행되면 빼도 박도 못했다.

부실하게 공사한 곳이 셀 수 없었다.

A급 자제가 들어가야 할 곳에 모두 C급이나 폐급이 들어갔다.

시방서에 기록되어 있는 자재들과 전혀 다른 자재들로 대체됐다.

“당신이 건축주라면 이거 그대로 통과시킬 수 있어?”

새파랗게 젊은 놈이 비웃으며 물었다.

“…….”

송대근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 당신들 실수하는 거여! 나 괴롭히면 우리 외사촌 형님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여! 이 공사 온전히 끝날 것 같아!!!”

송대근은 앞뒤 없이 고래고래 악을 썼다.

이대로 물러나면 끝장이었다.

공사는 사실상 중단 됐다.

흩어져 일하던 인부들이 주변에 몰려왔다.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적당히 쳐 먹어야지!”

“저 시키는 노가다 양심도 없는 놈이지라~.”

“카악! 퉤! 개새끼 차라리 잘 됐다!”

“우리 일당은 어떻게 됩니까?”

“야! 하루 안 받고 말자. 시발 더러워서 이런 공사장은 더 일하기도 싫다.”

인부들이 앞 다투어 욕을 퍼부었다.

윗선에는 아부를 아끼지 않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함부로 했던 송대근이었다.

그 업이 그대로 그에게 돌아갔다.

“외사촌 형님이라면 안효근 시장을 말하는 건가?”

젊은 놈이 물어왔다.

“그래! 네놈이 얼마나 잘난 놈인지 모르겄지만 지방에서는 그렇게 공사하는 거 아니다. 이 공사…… 절대 나 안 통하고는 허락 안 난다!”

‘나만 안 죽어!’

어릴 적 조폭질 하다 건설 쪽으로 사업을 옮긴 송대근은 장주시에서 두려워할 게 별로 없었다.

외사촌 형님이 든든한 빽이 됐다.

지방의 텃새를 제대로 부렸다.

그룹 회장 앞에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이유였다.

‘여기 땅 값이 얼만데? 공사가 끝나가는 곳도 있다. 허가 안 나면 다 끝이여~! 니들만 장사꾼이냐! 나도 꾼이다~. 흐흐.’

송대근은 적어도 혼자 넘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사태를 넘길 만하다고 믿었다.

무슨 연구 단지가 들어선다고 들었다.

기업들은 착공 시작된 건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었다.

적당히 하다가 합의를 보는 게 기업으로서는 손실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이고 그게 상식이었다.

지방분권 시대라 지자체장에게 잘못 보이면 그 지역에서는 사업하기 힘들었다.

이것저것 트집 잡아 방해할 건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지방에서 공무원 적대해서 잘된 기업이 없었다.

“허락 필요 없어~”

젊은 놈이 다시 비웃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이거 그냥 다 버릴 거야? 뇌가 빈 거 아니면 절대 그렇게 못해!”

송대근은 자신했다.

“하 회장님.”

“넵! 장 대표님!”

“인부들 인건비나 자재비는 모두 지급하세요. 그리고…… 이 공사장 폐쇄하세요. 올라간 건 모두 허물고 폐기물 처리하십시오.”

“지시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헉!”

송대근은 귀를 의심했다.

확신하고 있던 생각을 비웃듯이 가격한 몇 마디에 숨이 막혔다.

보란 듯이 비웃는 젊은 놈 눈동자에 똘기가 충만했다.

한 마디로 미친놈이었다.

수백 억 손실 따위는 신경도 안 쓰겠다는 집념이 보였다.

진행된 공사 현장을 접는 것도 신경 안 쓰는 놈이 확실했다.

그제야 상황 돌아가는 판이 읽혔다.

고령화로 인해 농사짓기도 힘든 이 동네 땅값을 세 배나 주고 매입해 갔다는 소문.

놈은 돈이 썩어 나는 놈이 확실했다.

덜덜덜 송대근의 팔다리가 제멋대로 떨렸다.

살다보면 맞닥뜨린다는 위기가 송대근한테는 이 순간이 확실했다.

“불법 행위자들 집과 재산에 가압류 거십시오. 소송 전에 재산을 빼돌릴 사해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죠.”

송대근의 눈을 직시하며 조곤조곤 지시를 내리는 놈.

“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하관우 회장의 목소리가 당차게 조용해진 공사 현장에 울렸다.

***

“뭐라고? 회장과 건축주가 찾아와 공사판을 엎었다고?”

“형님! 미친놈들입니다! 철근 몇 개 빠지고 간격이 틀어졌다고 저에게 손해배상 청구하겠답니다! 저 이러다 쫄딱 망하게 생겼습니다!”

“…….”

장주시장 안효근은 외사촌 동생의 죽는 소리에 인상을 썼다.

가끔 민원이 들어왔다.

공사가 너무 엉망이라 도저히 대금을 지불 못하겠다는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마다 시청 직원을 보내 적당히 조율해 무마시켰다.

안효근 시장의 재선에 엄청난 도움이 됐던 사촌 동생이다.

집안에서 돈을 거둘 때 목돈을 던졌다.

선거 운동 기간에는 밑에 애들을 자원봉사자로 등록해줬다.

다음 선거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동생이었다.

“형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그래……. 형이 한 번 알아보마.”

“충성! 형님만 믿겠습니다! 전 형님께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은연 중 협박으로 느껴질 정도로 인생을 걸겠다는 동생의 표현이 안효근 귀에 걸렸다.

뚝.

통화를 끝냈다.

“새끼……. 적당히 해먹어야지. 내가 왕도 아니고…….”

그나마 대통령이 바뀌고 집권 여당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근심이 덜했다.

아무리 지방자치 시대라지만 중앙 정부의 감사가 뜨면 골치 아팠다.

또 지역이라 소문 잘못 나면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었다.

“오주혁 의원이 그렇게 한 방에 갈 줄 누가 알았겠어. 그 양반하고 죽이 잘 맞았는데…….”

장주시 사장에 출마할 수 있었던 이유도 지난 선거에서 떨어진 오주혁 의원 덕분이었다.

중앙 당사와 오주혁 의원 보좌관을 거쳤다.

그리고 5억 정도 쓰고 시장이 됐다.

시장이 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봉사를 무던히 했다.

기부뿐만 아니라 초상집도 발바리처럼 다 찾아 다녔다.

그야말로 발로 뛰어 얻은 장주 시장 자리였다.

“이번만 더 해먹고…… 국회의원 가자! 나도 중앙 정치 한 번 해야지. 흐흐흐.”

오주혁 의원이 성추행 추문으로 박살이 난 뒤 아직 지역위원장은 임명되지 않았다.

안효근 시장은 그걸 노렸다.

“10억 정도는 밀어 넣어야겠지……. 그래도 남는 장사다.”

장주시 지역 이권으로도 1년이면 뽑았다.

돈 바짝 모아 중앙으로 진출하고 싶은 욕망을 안고 있는 안효근이었다.

삐이이이.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뭐야?”

[시장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누구? 약속 잡혔어?”

[그건 아닙니다.]

“그런데 누구야? 나 바쁜 거 몰라?”

안효근 시장은 요즘 밀려오는 지역 민원을 멀리했다.

눈에 보이는, 따라붙는 이익도 없는 괜한 짓은 사양이었다.

[조윤태 변호사라고 말하면 아실 거라고 하십니다.]

“조윤태 변호사가 누구……. 아! 조윤태 차장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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