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
회귀의 전설
296장. 차이나타운 (1)
“보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뭐가 말입니까?”
“스티븐 매튜는 까다로운 사람입니다. 지금껏 어떤 투자자도 보스처럼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와 저녁에 술까지 마시다니……. 놀라울 일입니다.”
로버트 라이언은 진심으로 놀랐다.
스마트폰으로 대박을 친 이후 스티븐 매튜가 투자자들을 문전박대하고 경멸하기를 즐긴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쿡과 함께 상당한 주식을 소유한 스티븐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본래부터 돈에는 별로 관심 없던 그였다.
자신의 상상을 실현시켜 줄 방법으로 애플을 이용하던 스티븐 매튜.
로버트 정도 되니 만나 준 것이다.
고공행진 하는 애플 주가만큼 스티븐의 자존심도 하늘을 찔렀다.
아이펀의 놀라운 기능에 세계 곳곳에서 계속 찬탄이 터졌다.
애플 신도라는 신생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그런 애플의 진짜 주인 스티븐 매튜와 저녁을 먹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다던 스티븐이 보스와 와인을 즐겼다.
두 사람의 오가는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대화가 주를 이뤘다.
미래에 대한 고찰과 여러 가지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고견이 오갔다.
보스가 말했던 미래 먹거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5G와 자율주행차, 광유전학, 시스템 대사공학, 인공지능 등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 전반에 관한 폭넓은 대화가 오갔다.
둘은 서로를 보고 감탄했다.
천재들만의 은어가 로버트 귀에 들렸다.
듣고도 모르는 내용이 태반을 넘었다.
무경계로 변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말할 때 로버트는 이해를 포기하고 술에 집중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밤이 늦도록 대화는 계속됐다.
와인을 비우고 차를 마시는 자리로 이어지는 동안 유쾌한 목소리가 스티븐의 별장을 채웠다.
두 사람은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됐다.
귀한 시간을 빼 다음 날 점심까지 함께하고 난 뒤에야 헤어졌다.
스티븐 매튜가 작별할 때는 보스를 껴안고 브라더라고 외쳤다.
보스도 그런 스티븐을 따듯하게 안아줬다.
하룻밤 만에 진짜 동료가 됐다.
“동양에서는 배울 게 있다면 어떤 이라도 스승이자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스티븐과 저도 그런 사이입니다.”
“보스야 신과 같은 인물이지만 스티븐에게도 미래 안목이 엄청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초라해졌습니다.”
“로버트……. 당신은 나에게 스티븐보다 더 필요한 사람입니다. 스티븐은 말이 통하는 동지라면 로버트는 피를 나눈 형제와 같습니다.”
“보스…….”
사람 감동 시킬 줄 아는 보스다.
로버트는 무지함에 부끄러웠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짐을 느꼈다.
“변호사를 부탁합니다.”
“네?”
“스티븐과 얘기가 됐습니다. 자신의 주식 반절을 사후에 시장가로 매입하기로 말입니다.”
“아!”
“비밀 계약입니다. 절대 알려지면 안 됩니다.”
“전문가로 준비시키겠습니다.”
엄청난 일이 하루 만에 벌어졌다.
스티븐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애플 주식 상당수를 보스에게 넘기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건 형제에게도 약속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시장가라고 했지만 애플 대주주가 될 수도 있는 대사건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담담한 보스.
“존경합니다!”
로버트가 고개를 숙였다.
나이를 떠나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마음의 자연스러운 울림이었다.
“존경보다 우정을 원합니다.”
“보스를 향한 제 사랑은 아버지를 향한 마음보다 큽니다!”
로버트는 거침없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로버트~.”
바람이 부는 로버트의 별장.
로버트는 오늘 하루 휴가를 냈다.
온전하게 보스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욱이 보스가 오늘 동양의 신비를 시술해 준다 약조했다.
한 번 받고 나면 인생이 달라졌다.
존경이 아니라 목숨까지 다 줄 수 있었다.
월가 폐인에서 단숨에 주목받는 거인으로 만들어 준 보스였다.
보스가 아니었다면 지금은 노숙자로 죽어 월가의 유령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미국 경기 폭락에 월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폐인들이 수천 명이 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허드슨 강 자살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제 직원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보디가드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요?”
뭔가 찜찜한 표정을 짓는 보스.
안색이 점점 굳어져갔다.
***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어? 그게…….”
“왜 감이 안 좋아?”
“……잘 모르겠다. 뭔지 모르지만 찝찝해.”
“믿을 만한 보디가드도 두 명이나 있어. 걱정하지 마. 내 대학교 동창들 모임인데 무슨 일 있겠어? 여기 미국에서도 범죄율이 낮은 월가 중심부야. 걱정 마.”
“알았어~.”
도도희는 갑작스럽게 친구들의 부름을 받았다.
별장에서 우연히 만났던 프린스턴 대학교 경제학과 동기의 초대였다.
월가에서 근무하는 대학 동창들과 저녁이나 먹자는 내용이었다.
대표는 그제 사라졌다.
미국 암여우 같던 사라 요한슨과의 만남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다고 주장하던 아빠 도운중 회장을 많이 닮았다.
그러던 차에 연락이 왔다.
동창들과 만나서 밥이나 먹고 수다나 떨자는 내용이었다.
가까웠고 로버트가 보디가드를 붙여줬기에 가볍게 응했다.
보스도 승낙했다.
김한별과 같이 움직였다.
빠지는 외모도 아니고 눈치도 빠른 김한별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 받을 만한 존재였다.
더욱이 미래를 보는 예지력이 있었다.
얼마 전 그 예언 때문에 찝찝했던 도도희는 김한별을 대동했다.
월가 구경을 미끼로 던졌다.
할 일 없던 김한별도 따라나섰다.
홍콩이나 아시아권에서만 활동해 왔던 김한별도 미국이 궁금했다.
“와아아……. 진짜 월가는 월가다.”
“홍콩보다 어때?”
“음……. 맛이 달라. 확실히 스케일이 큰 미국 스타일이야. 홍콩도 영국인들이 지배했지만 땅이 좁아서 이런 맛은 없어.”
김한별은 거대 빌딩들이 늘어선 월가 거리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한때 홍콩도 세계 금융 중심지라 불렸지만 요즘은 그 명성이 퇴색 됐다.
중국 반환 이후 많은 금융자본들이 빠져나갔다.
아시아 투자 붐이 강하게 일었지만 과거와 같지 않았다.
내정간섭이 없을 거라고 중국 정부가 보증했지만 그걸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자유롭게 살다가 하나만 제약을 받아도 답답한 게 사람 심리였다.
그게 싫어 유능한 홍콩 출신 인재들이 영국이나 캐나다 등으로 이주해 갔다.
그에 반해 월가는 세계 금융의 중심축이 됐다.
거대한 빌딩과 오가는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월가의 모습을 대변했다.
“대표님 만나기 전에는 월가에 복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요즘은 한국이 편해. 언니 이곳도 인종차별이 쩔어~. 나 같은 미녀에게도 눈을 찢어 보이는 놈들이 많다니까.”
“그래서 허름해도 내 집, 내 고향, 내 조국이 좋다고 하는 거야~.”
고아로 자라 홍콩에서 조국의 소중함을 몸소 깨달은 김한별의 진심이었다.
“언니……. 나이에 어울리게 좀 말해. 아줌마 같아!”
“무슨 소리야. 얼굴 액면가는 내가 더 젊어~.”
“그건 인정~.”
보디가드가 운전하는 리무진을 타고 월가에 도착한 도도희와 김한별.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차이나타운이야. 건너편이 이태리 타운. 괜찮지?”
맨해튼 중심부 거리에 위치한 차이나타운.
“차이나타운? 여기서 만날 거야?”
“친구들이 여기 딤섬을 좋아해. 완전 맛집이야. 언니도 딤섬 좋아하지? 침사추이 맛집과 비교될 정도라니까. 퇴근 후에 딤섬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하면 피로가 싹 날아갔어~.”
도도희가 입맛을 다셨다.
과거를 생각하는 듯 눈빛은 반짝였다.
평소 깐깐하고 차갑던 이미지와 정반대 표정이었다.
“그렇구나…….”
대답하면서도 김한별 얼굴은 굳어갔다.
“왜? 진짜 뭐가 보여?”
“아니……. 그건 아닌데…… 이상해.”
“뭐가?”
“다른 곳으로 가면 안 돼?”
“안 돼. 약속 잡아 놨단 말야. 대학교 친구들이 세 명이나 모인다구. 최신 월가 정보를 습득해서 대표님께 예쁨 받고 싶어. 한국에서 취할 수 없는 고급 정보가 수두룩해~.”
“주차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빌.”
어느새 차가 멈췄다.
보디가드 두 사람이 먼저 내려서 문을 열었다.
빨간 투피스 정장을 차려입은 도도희와 블랙 원피스를 입은 김한별이 차례로 내렸다.
대표 덕분에 럭셔리 명품 정장 몇 벌과 액세서리를 풀로 장착한 두 미녀가 내리자 주변 시선이 쏠렸다.
“동양 모델이야?”
“중국인은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인? 그것도 아니면 한국인?”
차이나타운을 지나가던 이들이 수군거렸다.
특히 같은 동양인들이 폭발적 관심을 보였다.
드레스를 차려 입은 늘씬한 미녀들은 이곳에서 보기 힘들었다.
청바지에 편한 복장의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차이나타운.
두 미녀의 등장은 마치 축복 같았다.
“언니 들어가자.”
“응~.”
홍콩 가이드 시절에도 미모가 남달랐던 김한별이지만 이런 관심은 낯설었다.
제대로 정장을 갖춰 입은 뉴욕 샐럽 같았다.
생각보다 기분은 괜찮았다.
누가 뭐라 해도 김한별은 아직 꽃보다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오늘따라 주차 공간이 야박하네…….”
“제프. 먼저 가봐. 내가 주차하고 갈게.”
빌과 제프가 차에서 내려 주차장을 살폈다.
약 20여 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꽉 찼다.
요인 경호를 위해서는 이곳 주차장이 필요했다.
식당 주차 관리인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은 주차하고 이동하는 데 거리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가장 주차하기 어려운 곳이 바로 뉴욕 맨해튼이었다.
“빌~ 오늘 미녀들 대단하지 않아?”
“상부 지시다. 절대 아무런 내색도 관심도 표명하지 말라고 그랬어. 어려운 시기에 밥줄 잘리기 싫으면 관심 꺼.”
“쳇~ 빌, 넌 보디가드의 낭만을 몰라. 내 친구는 유명 가수와 눈 맞아서 한밑천 단단히 챙겼어.”
“낭만보다 난 조직 명령이 우선이야.”
오늘 보디가드에 나선 빌은 예민했다.
최근 들어온 신입 제프는 모르겠지만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건물 뒤쪽에 위치한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화려한 전면과 달리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음산하게 느껴졌다.
누가 미리 다 점유한 듯 단 한 곳도 주차할 수 없었다.
이라크전을 비롯해 여러 전쟁에 참가했던 용병 빌은 신경이 곤두섰다.
제프의 시답잖은 농담을 넘기며 사방을 살폈다.
촉이 경고를 보내왔다.
뭔지 모르지만 위험신호가 분명했다.
그리고…….
“형제들~ 여기는 주차하면 안 돼~.”
갑자기 주차장 한 쪽에서 등장한 몇 명의 중국인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뭐지? 중국인들 아냐?”
키가 작은 중국인들을 보고 제프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특수부대 복무 후 제대했지만 전쟁터를 경험한 적 없는 제프.
시비를 걸어오는 중국인들이 비웃는 걸 보지 못했다.
“귀빈들이 이 식당을 이용 중이다. 시비 걸지 말고 비켜.”
빌이 긴장하며 왼쪽 가슴에 넣어 둔 총을 점검했다.
맨해튼 중심은 경찰들이 쫙 깔렸다.
여차하면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이 새끼들 뭔가 목적이 있군!’
빌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대놓고 제프를 비웃는 중국인들이 점점 다가왔다.
“흐흐. 겁대가리를 상실한 중국인들 같으니라고~ 내가 누군 줄 알아? 나 네이비씰 출신 제프…….”
제프가 다가오는 중국인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휘익 하고 앞에 있던 중국인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제프를 향한 손이 벌처럼 움직였다.
타닥 탁! 퍽퍽벅!
순식간에 제프의 팔과 다리가 가격 당했다.
“큭!”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무릎이 꺾이며 바닥에 주저앉는 제프.
고통 속에서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움직이지 마!”
총을 뽑아드려는 빌.
쇄애앳.
무언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왔다.
퍽!
“으윽!”
총을 뽑아 든 우측 팔에 박힌 날카로운 물체.
빌은 손이 순식간에 마비되고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강력한 마취제가 묻은 암기.
제프 어깨에도 어느새 주사기 모양의 암기가 꽂혀 있었다.
“푹 한숨 자. 너희들에게는 유감이 없어~ 흐흐흐.”
귓가에 중국 악센트가 가득한 영어가 들렸다.
‘빌어먹을…….’
그리고 그게 빌의 마지막 기억 잔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