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0화 (289/1,284)

 # 290

회귀의 전설

290장. 뉴욕 파티 (1)

“뻑큐! 빌어먹을 로버트 라이언 같으니라고! 이렇게 어수선한 날에 파티라니……. 엿이나 쳐 먹어!”

리무진 자가용 안에서 팰튼 호텔의 경영자 크라우만 팰튼이 욕설을 쉬지 않고 내뱉었다.

미국 경제에 터진 서브 프라임 여파가 전염병처럼 세계로 퍼졌다.

당장 여행객 수가 급감했다.

고급 호텔을 주업으로 삼는 팰튼 그룹은 그중에서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호텔 체인점 객실 점유율이 30퍼센트를 밑돌았다.

손익분기점 상태에 내몰렸다.

주가는 출렁였고 사모펀드 유니온스가 추가로 주식을 더 매수한 걸 알았다.

팰튼 주식을 되찾기 위해 자금을 축적하던 크라우만은 허탈감에 빠졌다.

호텔 경영에 유니온스에서 파견한 이사들이 포진했다.

그리고 이것저것 감시를 하고 견제구를 날렸다.

과거에 비해 크라우만의 조직 지배력은 확연히 떨어졌다.

임원들과 직원들도 대놓고 크라우만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했다.

회사 경영자에서 일개 이사로 전락해 버린 것 같았다.

열불이 났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당장 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감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월가 투자업체들과 기업들이 파산했다.

미국 공업을 떠받치는 자동차 빅3조차 여유자금이 바닥났다는 소문이 쫙 돌았다.

그런 와중에 열리는 로버트 라이언의 파티.

버지니아주 맥클린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날아왔다.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신세가 된 셈이다.

유니온스의 상당 지분을 소유한 로버트 라이언이 해고라고 말하면 회사에서 당장 쫓겨나야 할 판이었다.

미칠 듯 화가 치밀었다.

“……다 온 것 같습니다.”

“다? 아직 길가잖아?”

“그게……. 차들이 밀렸습니다.”

운전사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밀려?”

“도보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라고! 걸어가라고?”

미국 부자들이 선호하는 뉴욕 최고의 부촌 롱아일랜드 햄튼의 대저택.

길가에 차들이 빽빽하게 멈춰 서 있었다.

아직 로버트 라이언의 저택 앞까지 가려면 한참 길이 멀었다.

그런데 차들이 길가에 빽빽하게 주차되다시피 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끄응…….”

크라우만은 신음을 흘렸다.

자기 말고도 뒤에 차를 주차하고 걷기 시작한 유명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콧대 높은 뉴욕 경찰들이 차량을 통제했다.

뉴욕 시장도 온 것 같았다.

로버트 라이언의 위세를 실감했다.

크라우만이 잘 나갈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촌놈이…… 출세했어. 젠장…….”

욕의 강도에도 기세가 줄어들었다.

사실 초청장은 받지도 못했다.

로버트 라이언이 파티를 열 계획이라고 조용히 사교계에 소문이 돌았다.

자격 있는 분들은 모두 환영한다는 로버트의 전언.

미국 각지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뉴욕에 둥지를 튼 해지펀드 매니저들과 금융권 인사들이 대다수 참가할 건 뻔했다.

뿐만 아니라 연예인을 비롯해 정치인들도 몰려올 건 확실했다.

크라우만은 옷을 매만지며 차에서 내렸다.

이제는 감히 본인 선에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로버트 라이언.

욕을 쏟아내던 모습과 달리 차에서 내리는 순간 크라우만은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크라우만 씨 여기서 보는군요.”

“오! 토리~ 이곳에는 웬일입니까?”

“오늘 근사한 파티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어요. 이웃집 파티인데 참석해 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세계적 디자이너인 토리 버스의 디자이너 겸 대표인 토리 비키.

올해 40대 초반의 그녀는 날씬한 몸매에 명품 브랜드 대표다운 미모를 뽐냈다.

크라우만이 활짝 웃었다.

안면만 텄던 미녀 디자이너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경호원들이 뒤에 서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하하. 저도 파티에 참석하려고 왔는데 잘됐군요. 같이 가시죠~”

크라우만이 왼팔을 내밀었다.

“저야~ 영광이죠~.”

토리 비키도 거부감 없이 미소로 화답하며 크라우만의 팔에 손을 올렸다.

쟁쟁하던 그녀도 지금 내심 위축된 상태였다.

초대장도 발부되지 않은 파티였지만 지금 몰려든 유명인들의 수만 수백 명에 이르렀다.

대통령이 주최하는 자선파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헤이~ 제니퍼~.”

“룩스~.”

곳곳에서 도보로 이동하던 이들이 참신한 경험을 맛봤다.

뜨기만 해도 파파라치 먹잇감이 되던 인사들이 길가에 널리고 널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곳을 향해 걸어갔다.

파도 소리가 근사하게 들리고 환하게 불빛이 밝혀진 대저택.

벌써 그곳에서 은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새로운 만남을 좋아하는 셀럽들의 심장을 절로 뛰게 만들었다.

***

“로버트……. 정말 못 말린다니까~”

3층 객실에서 창밖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로버트 라이언도 별수 없는 남자다.

얼마 전 근사한 별장을 구매하겠다고 들었다.

괜찮은 가격이라고 했다.

남는 돈 아껴서 뭐하겠나.

마음에 드는 별장 양껏 매입하라고 허락했다.

로버트는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뉴욕 햄튼 저택을 7,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미국 별장이 와이너리를 포함해 다섯 곳이 넘어갔다.

집이 죽였다.

대서양 모르셔스만의 파란 바다가 보였고 저택 바로 앞에 깨끗한 모래사장이 있었다.

대지는 약 2만 평에 건물은 1000평 정도 됐다.

테니스장, 수영장, 산책로가 딸린 잘 가꿔진 정원은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미국에서도 상위 0.1프로가 거주한다던 저택은 감탄사를 자아냈다.

부자라면 누구나 한 번 꿈꾸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졌다.

뉴욕 부자들 중에 햄튼에 별장이 없다면 명함을 내밀지 말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집은……. 진짜 부럽다.”

서울에 있는 내 집은 경호원 숙소 정도였다.

20개의 룸과 그와 같은 개수의 화장실, 현관은 중세 시대의 아치 형태였다.

1층에는 대형 벽난로가 위치했고 넓은 홀은 수백 명이 들어가도 남을 만큼 넓었다.

이계에 있는 성은 여기에 비하면 개집 수준이었다.

넓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바다 뷰는 절로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가구들은 한눈에 봐도 가격을 책정하기 힘든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벽에 걸려 있는 미술품이나 장식 조각품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물론 눈에는 안 찼다.

파티 끝나고 시간나면 작품 몇 점 그려놓을까 생각 중이다.

시원한 바다를 보자 멋진 구도가 계속 떠올랐다.

띠링 띠리리리~♫.

작은 오케스트라 정도 되는 악단이 음악을 연주했다.

“많이도 모였네~”

저택 앞 잔디밭에서 자유롭게 열린 파티.

수십 개가 넘는 하얀 테이블 위에 와인과 간단한 안주들이 세팅 됐다.

프랑스에서 맛봤던 파티와 차원이 달랐다.

돈이 주는 위대한 힘을 목격하는 현장이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남녀들 수백 명이 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눈으로는 부지런히 서로를 탐색하는 뉴욕 샐럽들.

3층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나도 와인을 마셨다.

파티에 걸맞게 슈트를 차려입었다.

뉴욕 거리 쇼핑 중 도도희와 김한별에게도 옷과 액세서리를 질러줬다.

아빠 따라온 딸들에게 선물하는 심정으로 카드 좀 긁었다.

한도 무한의 블랙카드가 제대로 위력을 보였다.

그녀들은 곧바로 세련된 뉴요커로 탈바꿈됐다.

도도희야 그렇다지만 김한별도 스타일이 딸리지 않았다.

쇼핑하는 내내 뭇 남성들이 대놓고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뉴욕에서 쇼핑을 마치고 도착한 별장.

두 여성은 급기야 비명을 지르며 좋아라 했다.

똑똑.

“네~.”

“보스 접니다.”

“들어오십시오.”

오늘 파티의 주재자인 로버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초청장도 안 보냈다고 들었는데 다들 알아서 찾아왔군요.”

“다 보스 덕분입니다~”

로버트가 웃는다.

로버트의 힘이 바로 나의 힘이다.

초청장도 없는 비밀 파티에 알아서 유명인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내가 훑어봐도 얼굴만 아는 미국 스타들이 간간이 보였다.

“파트 규모가 큰 거 아닙니까?”

“보스의 미국 사교계 견식 무대입니다. 소홀함이 있다면 제가 무능한 겁니다.”

로버트는 언제나 최선이었다.

“감사합니다~.”

백작 작위를 소유한 영주다.

미래를 위해 이런 것도 경험하면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부담 없이 즐기시면 됩니다. 신원은 모두 파악했습니다. 자격이 부족한 이들은 돌려보냈습니다.”

저택 주변으로 경찰이 연신 순찰을 돌았다.

저택 내부 곳곳 역시 보디가드들 수십 명 배치돼 있었다.

입구에서 몇몇이 걸러져 보내졌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경호였다.

“술만 마시면 됩니까?”

“물론입니다.”

오늘 파티는 미국 상류사회를 경험하라는 로버트의 배려에서 시작됐다.

로버트는 보기보다 세심했다.

“마음에 드는 여성들과 데이트를 하셔도 무방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도도희와 김한별과 함께 왔다.

그녀들이 내 애인은 아니지만 예의는 아니었다.

파티에 동행한 여성들을 두고 다른 여인과 또 눈 맞아 바람이 난다면 그건 진짜 난봉꾼이다.

“전 그래서 오늘 애인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씨익 웃는 로버트.

로버트에게서 노바 형님 향기가 났다.

결혼한 것도 아닌 로버트는 자유의 몸이다.

아마 그가 손만 뻗으면 안길 미녀들이 수백 명은 넘을 것이다.

부럽지는 않았다.

도도희와 김한별과 미국 상류 파티를 맛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내려가시죠. 혼자 마시는 와인보다 여럿이 함께하는 와인이 더 맛을 더하는 법입니다.”

“그러죠~.”

이미 도도희와 김한별은 파티장에 내려가 있었다.

도도희와 김한별 주변으로 젊은 남자들이 금세 모였다.

그녀들은 누가 봐도 눈에 확 띄는 미녀였다.

금발 미녀들이 품고 있는 풍염함과 농염함은 부족했지만 한국 미녀들만의 도도한 매력이 발산됐다.

김한별도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이드였던 그녀였기에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대화도 능력이었다.

앞으로 구호 파트를 맡을 김한별의 미래가 기대됐다.

“로버트~.”

“자네 바쁘지 않나?”

“무슨 소리야. 자네가 파티를 연다는 소식에 바로 달려왔지.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설마 결혼 발표는 아니지?”

“심심해서~.”

“뭐라고~ 푸하하하.”

로버트가 내려가자 주변으로 벌떼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로버트의 시답지 않는 말에도 웃음을 터트렸다.

권력자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 중 하나였다.

로버트에게 눈빛을 보냈다.

혼자 시간을 보내겠다는 의미다.

파티를 열었지만 이곳은 오늘 데뷔 무대가 아니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었다.

미소를 띠며 와인잔을 들고 파티장을 걸었다.

넓은 잔디밭 곳곳에 흐르는 달콤한 음악이 귀를 간지럽게 했다.

수백 명의 정장을 차려입은 미국 상류층 인사들 사이에 동양인은 많지 않았다.

그들이 신기한 듯 날 쳐다봤다.

도도희와 김한별을 보는 시선과는 조금 달랐다.

의혹,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이었다.

입구에서 걸러지지 않고 파티장까지 들어왔다면 일단 인정을 받는다는 의미다.

어깨를 펴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바닷가가 보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서 담소가 펼쳐졌다.

진짜 파티가 아닌 일종의 비즈니스 미팅 장소.

드라이한 탄닌 맛이 쌉싸래하게 목을 적셨다.

휘리리링.

대서양의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10월을 향해 가는 뉴욕 바닷가 바람은 그렇게 차갑지도 덥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군요.”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빠르게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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