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8화 (287/1,284)

 # 288

회귀의 전설

288장. 쇼핑하러 가다 (2)

“라과디아 국제공항에서 다니엘 장이 방금 로버트 라이언과 접선했다는 보고입니다.”

“흐음……. 홍콩에서 한 바탕 휘저어 놓고 태연하게 입국이라……. 간이 큰 건가 아니면 나이가 어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건지…….”

CIA 아시아 정보 담당 3팀의 팀장 루크는 부하 팀원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간이 큰 놈이다.

월가에서 핫한 로버트 라이언과 돈독한 관계로 짐작되는 다니엘 장.

녀석 때문에 얼마 전 홍콩에서 각국 첩보원들 사이에 엄청난 긴장감이 돌았다.

중국의 유력 가문과 프랑스 귀족 가문의 결합이 있는 날이었다.

세기의 결혼식 같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주 복잡하게 얽힌 거래였다.

세상을 암중에서 분할하고 있는 수장들의 혼맥을 잇는 순간이었다.

알만한 각국 정보원들이 홍콩에 대거 몰려들었다.

그때 느닷없이 등장한 다니엘 장.

CIA에서도 요주의 인물로 눈여겨보고 있던 자였다.

로버트 라이언과 접촉하는 자들에 대한 정보는 최우선으로 취급 됐다.

그중에 다니엘 장이라는 한국인도 순위권에 존재했다.

그런 다니엘 장이 홍콩에 나타나 큰 사건을 터트렸다.

갑자기 홍콩을 거점으로 삼는 중국 거물 리장창이 살인 명령을 내렸다.

정확한 내막은 파악이 불가능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큰일이 벌어졌다.

한국 정보원이 개입된 정황이 포착되었지만 홍콩에서는 막을 수 없었다.

한국 정보원들은 대부분 중국 쪽 요원들에 의해 파악이 가능한 상태였다.

낄 자리가 없었다.

살벌한 전투가 벌어졌다.

다니엘 장이 리장창이 사주한 히트맨들을 깔끔하게 처리해 버렸다.

홀로 홍콩에서 영화 한 편 제대로 찍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용인 가능한 범위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곧 타국에서 죽임을 당할 거라고 정보원들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렇다 할 보호 명분이 없는 자가 중국 유력가 집안 안방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에서 인권과 안전보호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감쪽같이 다니엘이 사라졌다.

CIA를 비롯해 각국 정보원들이 그를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홍콩에서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던 다니엘 장.

며칠 동안 홍콩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그런데 갑자기 헝가리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렸다.

신출귀몰한 녀석의 행동에 루크를 비롯해 모두 뒤통수를 맞는 상황이 됐다.

S급 감시요인은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놈의 행적은 비밀 투성이었다.

“러시아에서 시치미를 뗐지만……. 놈들과도 연결되어 있겠지~. 여우같은 놈이야.”

헝가리는 러시아 첩보조직의 힘이 강력하게 미치는 곳이다.

유럽 쪽도 의심할 만했지만 프랑스 귀족가를 건드릴 놈은 거의 없었다.

“체포할까요?”

팀원 잭슨이 물어왔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의심이 가는 자는 CIA에서 바로 체포, 심문할 수 있었다.

“잭슨……. 자네 집에서 애 보고 싶어?”

루키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네? 그게 무슨…….”

“다니엘 장이라는 놈은 로버트 라이언의 친구야. 그리고 로버트는 민주당의 확실한 조력자다.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가?”

“아!”

아무리 CIA가 독립적으로 움직인다지만 대통령과 행정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미 CIA는 다음 대 대통령으로 오바마를 점찍었다.

여론이 거의 압도적이었다.

“체포가 아니라 보호해야 할 중요 인물이야. 그래야……. 승진도 할 수 있어. 녀석이 운이 좋다는 데 100달러 걸지.”

루크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내기 판돈을 걸었다.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저도 걸겠습니다.”

“소문내지 마. 파이가 작아지면 우리만 손해야. 여러 팀에서 주시하고 있어. 분발해야 돼.”

“흐흐흐. 당연하죠.”

둘은 눈빛을 마주치며 웃음을 지었다.

아시아 쪽 파트였기에 다니엘 장이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많은 정보를 파악했다.

상부는 정권 교체에 눈치를 보느라 신호를 감지 못했다.

누가 봐도 좋은 기회.

CIA에서도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물론 그 중심에 한국인 다니엘 장이 있었다.

***

“어서 오십시오. 다니엘 대표님!”

“보고 싶었습니다. 로버트.”

남자 둘이 진한 악수를 나눴다.

뉴욕 라과디아 국제공항 출국장.

‘도대체? 이 오빠 정체가 뭐야???’

든든한 보디가드들의 경호를 받으며 등장한 로버트 라이언.

그를 보고 김한별은 머리를 수없이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태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국 출장길에 동행자로 선택됐다.

상무 도도희와 함께 말이다.

여권을 챙겨오라는 말에 김한별은 의심 없이 인천국제공항으로 출국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는 게 일반적인 루트다.

분위기로 보아 비즈니스석이라도 타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김포 공항으로 차가 움직였다.

궁금해 물어보았지만 도도희와 오빠라 불리는 장태산은 빙긋 웃기만 했다.

김포 공항에서는 의전팀의 VIP급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마주하게 된 거대한 덩치의 자가용 비행기.

장태산과 도도희는 아무렇지 않게 비행기에 탑승하더니 중앙 좌석에 앉았다.

마치 자신들 비행기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국정원 요원이었지만 이코노미석만 앉아 봤던 김한별이었다.

내심 주눅이 들어 촌스럽게 비행기 내부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아랍 왕족이 사용하고 있다고 믿어도 될 만큼 엄청나게 화려했다.

수백 명이 앉아도 될 좌석은 모두 제거하고 침실까지 완비해 놓은 하늘 별장이 따로 없었다.

도도희가 조용히 불러 대표님 소유라고 알려줬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대한민국 어떤 재벌도 이 정도의 럭셔리 비행기를 소유하지 못했다.

대통령조차도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는 한국이었다.

그런데 일개 개인이 이럴 수는 없었다.

‘진짜였어……. 모두 다.’

장태산의 투자 회사에서 김한별은 다른 세상을 맛 봤다.

빠른 퇴근 시간과 넓은 집과 차, 식사비까지 모두 직원 복지로 지원됐다.

유세라 팀장은 대표를 보필하면서 자기 개발에 바빴다.

누가 보면 회사를 놀러 다니는 거 아니냐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그러나 회사는 무리 없이 굴러갔다.

상무 직함을 달고 있는 도도희도 나름 바빴다.

묘하게 룰이 없는 것 같지만 조직적 움직임을 보이는 LOR 투자 회사.

김한별에게도 일이 주어졌다.

대한민국에 있는 지원 받아야 할 고아원을 비롯해 각종 복지시설 파악 업무가 떨어졌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복지부와 연결되니 간단하게 해결 됐다.

그리고 장태산 대표는 진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직접 고르라고 했다.

일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평소 김한별이 하고 싶었던 일이고 꿈이었다.

한편으로는 회사가 걱정 됐다.

대표는 한국대 법학과 1학년 학생이었다.

대표는 수업보다 출장을 가거나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니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때마다 유세라와 도도희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대표님과 함께라면 평생 사는 일로 걱정할 일 없을 거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김한별은 그 말이 다 진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김한별도 파악하고 있던 세계적 투자자 로버트 라이언.

가끔 홍콩에 그가 올 때면 한국 국정원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런 라이언이 장태산 대표를 만나 고개를 숙였다.

누가 봐도 장태산 대표가 갑이라는 걸 느낄 정도다.

“미스 도~ 다시 봅니다. 그 사이 향기가 더한 것 같습니다.”

“로버트도 언제나 멋져요. 그리고 제 이름은 엔젤라라고 말해줬잖아요~”

“하하. 미안합니다. 엔젤라~ 그런데 이분은…….”

로버트 시선이 김한별에게 향했다.

“새로 영입한 유능한 직원입니다. 해외와 국내 구호 파트 담당입니다.”

장태산 대표가 능숙하게 소개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이 킴입니다~”

다년간 가이드로 단련된 김한별은 능숙하게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하하. 우리 다니엘 대표님 주변에는 아름다운 능력자들만 모이는 것 같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조이~. 로버트라고 불러주십시오.”

세계적 투자자가 손을 내밀었다.

“네~ 저도 조이라고 불러주세요~.”

김한별은 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국정원 블랙요원이 아니라 대단한 사업가를 모시는 유능한 비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살고 있던 세상이 며칠 사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네 사람은 공항 밖으로 나왔다.

“타시죠.”

기대한 바대로 주차장에는 잘 빠진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한별은 그동안 살면서 상상도 못했던 럭셔리 라이프.

보디가드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 좌석에 몸을 앉혔다.

그때 정면에 앉는 장태산 대표.

그를 보자 느닷없이 마음이 뜨거워졌다.

‘오빠……. 나도 뼈 묻을 거야!’

도도희와 유세라가 농담처럼 내뱉던 회사에 뼈 묻는다는 말.

그 말의 깊은 의미를(?) 김한별도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살아서는 절대 이 회사에서 나가지 않겠다고 말이다.

***

“진실로 대단하십니다. 보스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로버트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뻐꾸기를 날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판을 보면서 경악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정도였다.

세계 자본 시장은 모두 나의 예상대로 돌아갔다.

각종 선물 거래와 환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내가 말한 대로 적중했다.

지금도 여전히 판은 나의 예상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달에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또 다우존스 공업지수가 폭락했다.

각종 선물도 앞다투어 수직 낙하중이다.

로버트에게 예측했던 대로 자금이 투입됐다.

이제 남아 있는 빅쇼(Big Show)는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였다.

그것도 예상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다.

로버트가 무릎 꿇고 신을 대하듯 행동해도 어색하지 않을 판이다.

“로버트. 미래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과거와 오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예측 가능한 미래는 어떠한 조짐을 보입니다. 그게 오늘의 결과입니다.”

시장 격언을 곁들였다.

누가 뭐래도 난 겸손을 아는 남자였다.

“다들 미래를 예견한다 말했지만 보스처럼 몇 발씩 앞서지는 못합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로버트에게 정말 미안했다.

미래를 찍고 오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찬사를 듣지는 못했다.

아니 예견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았고 의미도 없었다.

미래를 볼 줄 알았다면 지난 생에 공부를 그따위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몇 명 되지 않는 여자 친구들과 헤어질 일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으로 서럽게 살다 노량진에서 고작 컵밥 만찬을 즐긴 후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이번 생에는 뻔뻔하게 살 필요가 있었다.

메시아 급으로 인정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하하. 과찬입니다.”

시원하게 웃음으로 말 못 할 사정을 대신했다.

“보스……. 투자의 신이라는 별명을 받는 제가 존경하는 유일한 분입니다. 과찬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받는 모든 영광은 보스 것입니다!”

로버트는 참 좋은 남자다.

겸손함의 미덕이 뭔지 제대로 아는 이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움을 주고 키워주면 모두 본인이 잘나서 된 줄 착각하는 양아치들과 달랐다.

“로버트~ 이제 비행기 그만 태우고 일 좀 하죠~.”

칭찬은 들을수록 좋지만 많이 듣다보면 멀미가 난다.

미국에 사업하러 왔다.

아무리 가상 세계에 화폐가 많아도 현찰이 주는 감동은 달랐다.

물건도 마찬가지다.

돈으로 바꿔 놓을 미래의 사업들.

돈 보따리 들고 쇼핑하는 재미를 맛보기 위해 찾아온 미국이다.

“포드의 재무담당 수석이사 제프 도넬리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로버트가 씩 웃었다.

미리 로버트를 통해 준비시켜 놨다.

찾아가는 서비스를 할 필요가 없는 위치가 됐다.

아쉬운 쪽은 내가 아니라 포드 쪽이었다.

“그럼 사업하러 갈까요?”

“모시겠습니다.”

로버트의 방에서 나왔다.

헐값에 나온 월가 건물을 몇 동 더 매입했다.

그중 하나를 온전히 사용하고 있는 로버트.

물론 암중 지배자인 나의 수락이 있었다.

“직접 고용 인원이 1000명이 넘었다고 했습니까?”

오고가는 임직원들이 많이 보였다.

로버트를 보는 족족 고개를 숙였다.

“한 달 전에 1000명을 넘었습니다.”

방계로 뿌려진 사모펀드를 비롯해 각종 집단까지 통합해 수천 명이 나의 지시를 받았다.

카르마 포인트 쌓이는 속도와 지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신들의 계산은 정확했다.

가끔 이렇게 미국에 들러 직원들 보며 챙기는 맛도 괜찮았다.

스르르릇.

협상 테이블이 열릴 사무실 문이 열렸다.

철저하게 방음 장치가 가동되는 넓은 회의실.

도도희와 김한별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앞에 전형적 뚱보 미국 아저씨가 들어서는 날 봤다.

삐딱한 시선이 아직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았다.

“제프~ 기다리고 있었나?”

“로버트……. 나 바쁜 사람인 거 알잖아.”

돈 꾸러 다니느라 바쁜 건 나만 안다.

“인사하게. 한국 투자자 다니엘 장이야.”

“……한국 투자자? 자네가 아니라?”

“내 동업 파트너지. 그리고 포드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아.”

“흐음~ 그래?”

과거 2008년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독감에 걸리던 시기다.

한국 투자자인 나를 좋게 볼 리 없었다.

로버트의 파트너라지만 썩 믿음이 안 가는 눈치다.

“제프 도넬리 씨~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제프와 눈을 제대로 맞췄다.

악수도 하지 않고 그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한 마디 던졌다.

튕기는 것 같지만 절대 이 자리를 먼저 일어나 나가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포드의 재정 상태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더 엉망이 되어간다.

“예의가 없는 친구군…….”

투덜거리며 눈을 돌리는 제프 도넬리.

“방탕했던 과거로 수렁에 빠진 포드의 재무이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요.”

“What???”

What은 무슨 What!

“도산 일보 직전인 귀사가 돈 많은 투자자 앞에서 고개 빳빳이 세우면……. 그것도 예의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는 What에 대한 대답으로 빙긋 웃으며 살짝 밟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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