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
회귀의 전설
286장. 인연과 악연 (3)
“한 대표님. 누나와 사장님을 부탁합니다.”
“네?”
“태산아…….”
두 사람이 갑자기 변한 내 표정을 보고 놀랐다.
분노가 차갑게 일었다.
내부를 포위했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나타난 반응이다.
행동이 심상치 않은 놈들이었다.
공장 주변으로 확연히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일렁이고 있었다.
흉포한 오크들이 뿜어내던 기운과 흡사했다.
기분 나쁜 살기.
살려두지 않겠다는 강한 기운이 가득하고도 넘쳤다.
스윽.
사무실 안에 있던 스테인리스 파이프를 오른손에 잡았다.
“해, 핸드폰이 안 돼!”
나의 움직임을 보며 불길함을 눈치챈 임혜린 과장.
112에 신고하려다 통신망이 연결되지 않자 당황했다.
“유선 전화기도 차단당했습니다.”
사무실 전화를 들어 신호를 확인하던 한진웅 대표의 얼굴이 굳었다.
“바깥으로 절대 나오지 마십시오. 안으로 들어오는 놈들만 맡으십시오.”
“대표님!”
한진웅 대표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특수부대 출신인 본인이 밖을 맡는 게 정상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저었다.
한진웅 대표가 해결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걱정 마십시오. 이곳만은 반드시 방어하십시오.”
당부의 말을 하고 빠르게 문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파앗!
밖으로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전원이 나갔다.
공장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였다.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만이 약하게 스며들어왔다.
끼릭! 쾅.
공장 바깥문이 강하게 닫혔다.
새끼들 하는 짓이 귀여웠다.
긴장되긴 했지만 동시에 마음은 느긋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나에게 어둠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걸 놈들이 알 리 없다.
이래서 서울에 있는 동안 기분이 찝찝했던 것이다.
미래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신들이 개입했다.
또 다른 악연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한 판 떠서 끝장내야 마무리가 될 악연.
오크 대전사들과의 실전 맞짱 경험이 날 강하게 만든 것 같았다.
인간들이 아무리 용을 쓰고 강한 척해봐야 오크 살기만 못했다.
그리고 지금껏 만났던 히트맨들이 한둘이 아니다.
스윽.
그렇다고 긴장감은 놓지 않았다.
파이프를 잡고 마력을 은근히 불어넣었다.
쇄애애애애애앳.
기다렸다는 듯 공간을 뚫고 무언가가 맹렬히 날아왔다.
어둠 속이라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카아앙!
파이프가 정확히 날아오는 물체를 후려쳤다.
타다당 소리를 내며 뒹구는 날카로운 손도끼.
“나와 새끼들아~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키키키키.”
귀신 웃음소리를 내며 다섯 놈이 공장 정문과 후문 쪽에서 등장했다.
들판의 야생 개떼들처럼 눈동자가 살광에 번들거렸다.
단순한 깡패 새끼들이 아니었다.
손에 들린 무기는 양아치 전용 사시미가 아니다.
벌목도 또는 정글도라 불리는 무식한 마체테를 손에 들고 있었다.
목을 치면 바로 댕강 잘려나갈 것 같은 두툼한 칼날이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키는 작고 피부도 까무잡잡했다.
청부 살인도 글로벌 아웃소싱이 유행하는 것 같다.
놈들을 보자 바로 느낌이 왔다.
청부살인으로 유명한 필리핀 히트맨들이다.
동해파의 잔머리가 훤히 보였다.
놈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극도의 훈련을 받은 듯 어둠 속에서도 나를 정확히 꿰뚫어봤다.
“일당 얼마냐? 비행기 값은 벌어서 가는 거 맞아?”
타갈로그어로 물었다.
“꼬맹이 넌 죽었어~. 크크크.”
정면에 서 있던 보스로 보이는 놈이 히죽 웃었다.
정글도로 목을 따는 시늉을 했다.
“꼬맹이? 크크. 키도 X만 한 게 개소리는~.”
비웃음으로 응대했다.
마체테를 잘 다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공이 없는 놈들이다.
나에게는 떠돌이 오크 수준이었다.
“컴 온~ 숏 필리피노~”
파이프를 가딱거리며 놈을 자극했다.
“!!!”
약을 올리자 놈의 눈동자에 광기가 더해졌다.
“죽여!”
불쾌감에 약이 오른 놈이 명령을 내렸다.
공장 안에 살벌하게 울려 퍼지는 타갈로그어.
쇄애애애애앳.
앞뒤로 서 있던 청부업자들이 힘차게 도끼를 날렸다.
필리핀이었다면 총을 먼저 쐈을 놈들이다.
쇄애애애애앳.
휘리리리리리리릭.
놀랄 정도의 정확한 합공이었다.
내공이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당했을 정도다.
손도끼 네 개가 머리와 배, 다리를 노리고 날쌔게 날아왔다.
신체의 약한 부위만 노리는 얍샵한 술수였다.
저 도끼에 찍히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 있었다.
“탓!”
입에서 기합이 터졌다.
눈에 똑똑히 도끼 궤적이 보였다.
발이 바닥을 박찼다.
몸이 번개처럼 가볍게 옆으로 틀어졌다.
파이프가 허공을 번개처럼 갈랐다.
쉬이이이잉.
하체로 날아오던 도끼 두 개는 그대로 어둠을 가르며 사라졌다.
캉 카강!
배와 머리를 노리던 도끼는 파이프에 맞아 불꽃을 튀기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떨어졌다.
“헛!”
놀란 비명이 공장 안을 메웠다.
말은 쉽지만 방금 보였던 반응은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극한을 넘었다.
짧은 시간에 두 개의 전투 손도끼를 쳐낼 수 있는 자는 별로 없었다.
필리핀 히트맨들은 미처 몰랐다.사이코 아사신과 중국 전문 살수들도 내 손에 대갈통 깨지고 전기 통닭구이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터엇!
바닥을 박차고 공장 뒷문을 맡고 있던 두 놈에게 달려갔다.
“!!!”
청부업자들이 당황하며 마체테를 들었다.
순식간에 놈들과 조우했다.
쇄애애앳.
두툼하고 널찍한 도끼날이 몸뚱이를 사선으로 베었다.
다른 한 놈의 마체테는 허리를 노렸다.
혹독하게 훈련 받았을 놈들.
느려도 너무 느렸다.
손에 내공이 더해졌다.
그리고 히트맨들보다 더 빠르게 풀 스윙을 날렸다.
뻑! 뻐억!
인정사정없는 내공이 담긴 파이프로 양 어깨를 내리쳤다.
“크아아아아아악!”
“아아악!”
찢어지는 비명 이중창이 공장에 시원하게 울렸다.
덜렁거리는 팔과 어깨를 붙잡고 눈물 콧물에 비명을 토하는 두 놈.
정확히 어깨와 팔 연결 부위가 부러져 나갔다.
앞으로 오른팔은 다 사용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새끼들아!”
놈들 주변으로 어두운 그림자들이 뭉쳐 떠다녔다.
살인귀가 붙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들고 있던 파이프로 놈들의 허벅지 쪽을 빠르고 강하게 후려쳤다.
뻐걱! 뻑!
둔탁한 파열음 속에 허벅지 뼈가 나간 두 놈.
우당탕 바닥을 뒹굴었다.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두 놈은 그만 기절해 버렸다.
“하아……. 이제 좀 분이 풀리네.”
우드득 목을 풀며 시선이 정문을 막고 있는 세 놈을 향했다.
“…….”
히트맨들의 몸이 망부석처럼 굳는 게 보였다.
놈들 주변에도 짙은 기 덩어리들이 일정하게 떠다녔다.
원한을 품고 죽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저벅저벅.
파이프를 들고 놈들을 향해 저승사자처럼 다가갔다.
오늘도 측은지심은 발휘되지 않을 것 같다.
***
‘어떻게 된 거야. 저 놈도 청부업자였어?’
사람을 저렇게 무식하게 처리하는 자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알았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자들만이 저렇게 잔인한 손속에 망설임이 없었다.
마나오그의 인상이 어둡게 찌푸려졌다.
서울에서 한 건을 마무리하고 돌아가려는 찰나 의뢰가 들어왔다.
간단하면서 대가가 짭짤한 의뢰가 분명했다.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개판인 필리핀 대대로 내려왔던 악습인 살인 청부업.
마나오그는 이 돈으로 그간 가족을 평안하게 먹일 수 있었다.
조직에 가입한 후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 대가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마나오그가 속한 마닐라파는 손속이 잔혹하고 청부에 깔끔하다는 입소문이 돌아 세력을 키웠다.
요 근래 해외 원정 청부업도 간간이 수행했다.
다른 국가의 조직들이 꺼리는 일들을 화끈하게 마무리해 왔다.
일을 마무리하면 위조 여권을 사용해 바로 출국하는 방법을 택해 증거가 남지 않았다.
“네가 이리 올래? 아니면 내가 갈까?”
파이프를 들고 겁도 없는 놈이 천천히 다가왔다.
‘이 새끼들이 우리를 죽이기 위해 함정을 판 거야?’
마나오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평범한 놈이 아니라는 건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저런 놈을 떠맡긴 한국 조직에 이가 갈렸다.
‘사실이라면 이 새끼들 가만 두지 않겠어!’
마나오그는 이를 갈며 마체테를 쥔 손에 힘을 실었다.
눈앞의 놈이 분명 강했지만 해볼 만했다.
마나오그는 마체테 한 자루로 빈민가 꼬맹이에서 오늘 이 순간까지 버티며 왔다.
“크크크.”
비웃음을 흘리며 마나오그는 마체테로 자신의 왼팔을 살짝 그었다.
진득한 피가 금세 배어 나왔다.
생사의 맞수를 맞이할 때 벌이는 마나오그만의 의식이었다.
마체테가 피를 머금으면 주인을 지켜준다고 아버지가 말했다.
“자해가 취미냐? 그래 개취 존중해 주마~.”
놈이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피식 웃었다.
‘죽인다 반드시!’
투지를 불태우는 마나오그.
“네놈는 특별히 목을 쳐주마! 크아아아아!”
흉포한 함성과 함께 마나오그가 돌진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그 뒤를 따라 돌격하는 두 명의 부하.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는 놈.
돌격하던 마나오그의 몸뚱이가 살짝 경직된 건 어쩔 수 없었다.
***
퍼억! 퍽!
“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공장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비명에 동해파 부두목 장만석은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벌써 몇 차례 들려온 비명.
“혀, 형님.”
공장을 감시하고 있던 조직원이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부두목 장만석을 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갔다.
“떨지 마 새꺄. 전파차단이나 잘해!”
장만석은 똘마니에게 짜증을 냈다.
두목의 명을 완수하기 위해 직접 걸음했다.
핸드폰 수신을 차단하기 위해 전파차단기까지 동원했다.
늦은 밤이라 주변 공장은 이미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공장 내 기숙사에 머무는 사람들이 있어 암암리에 신경이 쓰였다.
빨리 일을 끝내야 했다.
“…….”
갑자기 조용해졌다.
“끄, 끝난 것 같습니다.”
공장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이 일순간 끊겼다.
“차는?”
“염산통이랑 다 준비했습니다.”
“하필 훈련기간이 겹쳐가지고…….”
본래 시체를 처리할 때는 바다에 묻었다.
알몸에 가죽으로 돌덩이를 묶어 던지면 고기밥이 되어 절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군대 훈련기간이라 해상 운반이 쉽지 않았다.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장만석은 공업용 염산통을 준비시켰다.
시체 치우는 데 그만한 물건이 없었다.
단 다 녹기 전까지 며칠 동안 보관하는 게 문제였다.
“준비해라. 필리핀 새끼들이 바로 시체 챙겨줄 거다.”
“네……. 형님.”
과거 장만석과 몇 번 작업을 해 본 조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언제나 찝찝한 일처리.
장만석도 이 일을 처리하고 나면 몇 달 동안은 술과 여자로 보내야 겨우 잊어졌다.
끼이이익.
공장 문이 천천히 열렸다.
장만석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무기를 들고 저벅저벅 한 놈이 나타났다.
전원이 차단된 공장 주변 때문에 놈의 실루엣만 보였다.
“클리어?”
영어로 짧게 장만석이 물었다.
전문 청부업자들었기에 실수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장만석을 향해 좀 더 가까이 놈이 다가왔다.
“어, 어어!”
조직원이 다가오는 놈을 보며 소리를 냈다.
“뭐, 뭐야!!!”
순간 장만석이 놀라 외쳤다.
필리핀 청부업자가 아니었다.
“그, 그 새끼입니다! 그 새끼요!”
놀란 조직원이 어둠 속의 실루엣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쇄애앳.
그때 뭔가 어둠을 뚫고 날아왔다.
퍽!
조직원의 가슴팍을 그대로 때리는 굵직한 돌멩이 하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끄르륵 거리며 조직원이 쓰러졌다.
“이, 이 새끼가!”
장만석이 재빨리 품에서 사시미를 꺼냈다.
혹시 몰라 대비용으로 챙겨왔던 연장이었다.
“좌우지간 양아치 DNA를 가진 놈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겨우 준비한 게 사시미냐?”
놈이 파이프를 오른손으로 고쳐 잡고 다가왔다.
“너 뭐하는……. 새끼야!”
장만석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해 악을 썼다.
도망칠 수도 없었다.
소리 소문 없이 처리하기 위해 믿을 만한 조직원 하나만 데려왔다.
“산소 버러지 같은 새끼가 말이 많네. 야~ 형아가 하나만 물어 볼게.”
나이도 어린놈이 장만석을 자극했다.
“닥쳐 새끼야! 다가오지 마!”
휙휙 사시미를 흔들며 장만석이 주변을 살폈다.
놈이 어느새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름 장만석. 나이 37세. 동해파 부두목 맞아?”
“헉!”
장만석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랐다.
이름과 조직에서의 위치는 비밀이었다.
“뭘 놀라 인마. 두목 어딨어?”
“너, 너 누구야! 어떤 놈들이 보냈어!”
“이번에 결성했다. 신동해파라고~”
놈이 약을 올렸다.
“죽어!”
거리를 재던 장만석이 사시미로 배를 향해 찔러갔다.
“너나 뒈지세요!”
“!!!”
장만석의 사시미가 빈 공간을 갈랐다.
퍼억!
그때 장만석의 배에 느껴지는 가늠할 수 없는 둔통.
“캑!”
화끈한 고통을 느끼며 장만석이 배를 끌어안고 무릎을 꿇었다.
꽈직.
그런 장만석의 얼굴을 지그시 밟아오는 발.
“와아 이 양아치 새끼. 사람도 여럿 죽였네?”
놈이 어이없는 탄성을 터트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발에 낯짝이 밟히는 치욕을 맛본 장만석은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두목 학수 어딨어?”
“모, 모…… 른다.”
의리를 지키려는 장만석.
“그래?”
빠아악!
가차 없이 파이프가 장만석의 어깨를 후려쳤다.
“끄아아악!”
장만석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토했다.
팔이 달그락거리며 대번에 흔들렸다.
“다시 한 번 묻는다. 학수 어딨어?”
“…….”
잔인한 놈이었다.
장만석은 심장이 벌벌 떨리는 두려움에 생각이 마비되었다.
“몰라? 그럼…….”
파이프를 다시 높이 치켜드는 놈.
그 파이프의 움직임을 찌그러진 눈으로 쳐다보던 장만석.
“벼, 별장…… 에…….”
자신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말이 튀어나왔다.
법도 통하지 않을 무식한 놈.
부셔진 어깨뼈는 극도의 고통으로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장만석은 목숨이라도 건지기 위해 본능을 최대한 발휘했다.
“별장? 강원도에 별장이 한두 개냐?”
발에 힘을 싣고 지그시 밟으며 웃음 띤 얼굴로 천천히 다가와 묻는 친절한 놈.
장만석은 코앞의 악마 모습에 아랫도리를 뜨겁게(?) 적시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