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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화 (281/1,284)

 # 281

회귀의 전설

281장. 하늘이 정해준 뜨거운 사이

‘속았어! 어떡해!’

김한별은 지난밤만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졌다.

장태산이 다가와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을 때만 해도 온갖 기대를 품었다.

김한별도 인생에서 그렇게 화끈했던 순간은 처음이었다.

책임져 줄까 물어왔던 나쁜 늑대 같은 사람.

그 한 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직장도 잘리고 갈 곳도 없는 상태에서 그 말보다 위로 되는 속삭임은 없었다.

더욱이 누가 봐도 반할 만한 사람에 엄청난 부자였다.

하늘에서 큰 복을 하사한 게 분명하다 생각했다.

룸에서 술을 더 마셨다.

술이 꿀처럼 달다는 말을 실감했다.

한바탕 시원하게 땀을 낸 후라 술이 물처럼 흡수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좋았다.

장태산 품에 안겨 나름 애교도 부렸다.

나이는 어린 남자지만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는 러시아 정보국도 쥐락펴락했던 상남자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암전이 찾아왔다.

맥주에 양주를 넣고 폭탄주를 만들다 쓰러진 것이다.

장태산 같은 사람이면 마음을 놓아도 괜찮다고 느껴 아낌없이 술에 취했다.

애도 아니고 다 큰 성인남녀 사이에 상열지사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가…….”

“스물여섯입니다.”

“나하고 동갑이네요?”

“그랬나요…….”

아침에 눈을 뜨니 호텔이었다.

VIP만 사용한다던 스위트룸이었다.

거대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곁에 아무도 없었다.

암막 커튼이 햇빛을 가렸다.

무려 낮 12시였다.

화들짝 놀라며 몸을 점검했다.

놀랍게도 아무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렇게 뜨겁게 책임져 줄까 말했던 놈이 손 하나 안 건드렸다.

뿐만 아니라 김한별이 입고 갈 옷도 준비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깔끔한 정장과 구두, 가방이 룸 거실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옷가지 위에 명함과 편지도 한 장 놓여 있었다.

눈 뜨면 룸서비스로 밥 먹고 면접을 보러 오라는 친절한 내용이었다.

잔뜩 기대한 김한별은 아침부터 코스 요리를 위장에 쓸어 담았다.

그리고 적혀 있는 주소지로 면접을 보러갔다.

강남에 위치한 20층 정도 되는 빌딩.

대로 옆에 서 있는 건물을 통으로 사용하는 회사였다.

경비가 삼엄했다.

명함을 보여주자 바로 통과됐다.

그리고 도착한 20층 사무실.

장태산이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홍콩 가이드 계의 탑 미녀 소리를 듣던 그녀였다.

어제 클럽에서도 주변에 많은 늑대들이 얼쩡거렸다.

강남 성형 미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차별됐다.

장태산이 마련해 놓은 투피스 정장도 잘 어울렸다.

구두까지 완벽 세팅 한 채 도도하게 사무실로 들어가던 그 순간…….

‘이 여우들은 뭐야!’

김한별을 맞이한 건 장태산이 아니라 여우들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그녀들이 김한별의 방문을 환영했다.

그리고 시작된 면접을 가장한 취조.

“동안이네요.”

“그렇죠? 제가 동안이라는 얘기는 많이 들어요~”

팀장이라는 여자가 이야기를 주도했다.

도도희라 불리는 깜찍하고 세련된 미녀는 팔짱을 끼며 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가시방석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한별은 가이드로 닦은 실력을 발휘해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두 여자 포스가 남달랐다.

평범한 직원이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뭐랄까?

장태산과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았다.

“합격.”

그때 조용히 있던 도도희가 합격이라 말했다.

“네?”

“언니 마음에 들어. 음흉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우리 대표님 옆에서 장난칠 것 같지도 않고~ 언니 내 말이 맞지?”

“…….”

“말 편하게 놔. 어차피 자주 볼 것 같은데~”

도도희가 활짝 웃었다.

“대표님 도와주셨다고 하던데 맞나요?”

“아마도…….”

“그럼 말 놓자. 우리 대표님이 쉽게 직원 채용하는 분 아닌데 잘 부탁한다고 하더라. 나 유세라라고 해. 직급은 LOR 투자 전문 회사 총무팀장.”

유세라가 악수를 청했다.

“어……. 그래.”

성격 좋은 김한별이 얼떨결에 마주 손을 잡았다.

“우리 대표님 능력도 좋다니까~ 이렇게 귀여운 여자 분은 또 어디서 꼬셨을까? 설마 클럽 같은 곳은 아니죠?”

도도희의 송곳 자문자답.

“그게……. 하하…….”

김한별이 어색하게 웃었다.

도깨비 집단에 홀린 것 같았다.

장태산과 그녀들.

다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대표님~”

도도희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수업 끝났어요?”

유세라 팀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어느새 장태산이 사무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유 팀장님 커피 부탁해요~.”

“네~ 시원한 아이스로 준비하겠습니다.”

“오늘따라 더 영계틱 하네요.”

도도희가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나타난 장태산을 보고 장난을 걸었다.

“원래 영계거든요.”

“피이~ 그래서 이렇게 귀엽고 동안 여자 분을 직원으로 채용하신 거예요?”

“한별 씨~”

어깨에 대학생들이나 들고 다니는 가죽 가방을 메고 나타난 장태산.

김한별을 보고 활짝 웃었다.

‘설마 수업이 그 수업은 아니지?’

대답하지 못하고 생각에 빠진 김한별.

“한국대 법학과 1학년이 그렇게 널널해도 돼요? 내가 아는 법학과 친구는 법전을 끼고 살던데~.”

도도희가 놀리는 듯 말했다.

‘한국대 법학과 1학년? 그럼 설마……. 미성년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은 김한별.

아직 한국에서는 빠른 입학이 아니라면 1학년은 미성년자였다.

지금껏 장태산 나이가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성년자라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다.

홍콩에서 받았던 지령서에도 스무 살이라고만 나왔다.

최소 만으로 스무 살은 됐겠지 생각했다.

자신만만하고 국가를 상대로 돈질하던 청년을 누가 미성년자로 보겠나.

어젯밤 그렇게 뜨거웠던 사이.

김한별은 멘붕이 됐다.

***

국정원 블랙 요원이라더니 무늬만 그랬다.

얼굴 표정에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나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다.

도도희가 놀리듯 말하자 경악에 빠진 김한별.

미성년자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음이 분명했다.

무늬만 미성년자고 속에는 아재가 산다는 걸 다들 몰랐다.

김한별이 오빠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가 실재 아재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듭니까?”

“네? 뭐, 뭐가요?”

“회사 말입니다.”

“……네.”

어제 새벽에 김한별은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처럼 끝까지 달렸다.

술에 취해 오빠~ 오빠~ 부르는데 귀여워서 사고 칠 뻔했다.

열나게 몸을 비볐던 사이였다.

몸이 기억하는 김한별의 체취.

달콤했다.

술을 마셨다.

김한별은 양주 폭탄주 제조가 선수급이었다.

자기를 꼭 책임져 달라고 계속 말하던 그녀.

집도 없고 직장도 없다며 세상에 나밖에 없다고 반 협박을 했었다.

고아 출신이라 일가친척도 없단다.

그녀의 취중진담을 몇 시간째 꼬박 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김한별은 폭탄주 제조하던 자세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블랙 요원이라지만 전혀 국정원 요원 같지 않았던 김한별.

그녀를 안고 호텔로 갔다.

방에 눕히고 호텔 직원에게 옷과 일체 액세서리를 부탁했다.

수업 갔다 왔더니 도도희와 유세라 팀장이 면접을 끝내 놓았다.

다들 각자 개성이 있어서 셋이 잘 어울렸다.

엄마가 이 광경을 봤다면 혀를 차고도 남았을 것이다.

둘도 부족해 사무실에 어여쁜 꽃을 더 추가한 내가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좋았다.

내 목숨을 구해줬던 김한별은 좀 더 특별하게 생각되었다.

그리고 뭔가 다른 느낌이 왔다.

나중에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표님 언니에게 전 합격 드렸습니다~.”

“저도요~.”

두 사람은 김한별이 마음에 든 것 같다.

김한별 어디서 미움 받을 만한 모난 성격은 아니었다.

“한별 씨는 어때요? 출근하겠습니까?”

“네? 출근요?”

“복지 차원에서 회사와 가까운 오피스텔과 차량을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집하고 차를요?”

“직책은…… 대외협력팀장. 어떻습니까? 외국어도 잘 하시고 다년간 해외 근무 경험을 참고했습니다.”

룸에서 김한별이 얘기했다.

자신의 꿈은 가난한 이와 아픈 이들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고.

고아원 출신으로 겪었던 서러움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해외에서 로밍 요금 걱정할 정도였던 김한별은 수입금의 반 이상을 자신이 살던 고아원에 정기 기부 중이라 했다.

그녀의 마음이 예뻤다.

“저야 좋지만……. 제가 아는 게…….”

“해외와 국내 봉사 업무 담당입니다.”

“아!”

내 말에 김한별 얼굴이 일순간 활짝 펴졌다.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서는 기부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김한별이 나타난 이유가 있었다.

“연봉은 팀장급에 준해서 지급할 생각입니다.”

“오! 우리 대표님 화끈하시다니까~ 언니 올해 연봉이 억 찍었지?”

도도희가 유세라 팀장에게 물었다.

“응~ 올해 연봉 1억 맞춰주셨어.”

“수당까지 합치면……. 대기업 이사급 수준이네?”

“맞아~.”

“!!!”

두 여자의 대화에 김한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러시아와 10억 달러로 거래하는 걸 봤으면서 또 놀랜다.

사실 나에겐 김한별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있었다.

타샤를 통해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했다.

미국은 로버트가 담당하고 있고, 앞으로 러시아 쪽은 김한별이 맡아줘야 한다.

사귀기가 힘들지만 친구라면 간도 내주는 러시아 불곰 형님들이다.

게다가 타샤와 김한별은 각별한 사이였다.

물론 나는 타샤와 더 각별한(?) 사이지만 말이다.

“대표님 오늘 회식 해야죠~”

“회식요?”

“신입 직원 왔는데 오늘 화끈하게 쏘세요!”

“어디서요?”

“제가 청담동에 끝내주는 클럽을 알아요. K라고 요즘 그곳이 완전 핫하데요~.”

“큼.....,”

“…….”

도도희의 말에 난 헛기침을 뱉었고 김한별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어제도 갔는데 오늘도 클럽 K에 간다면 부딪히는 얼굴이 많을 것이다.

“뭐예요? 둘이 진짜 클럽에서 만났어요?”

눈치 빠른 도도희가 바로 캐치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와! 언니 그렇게 안 봤는데 능력자였어?”

도도희가 장난스럽게 김한별을 추궁했다.

김한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행동으로 두 여인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내일 강릉으로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 준비를…….”

“대표님 뭐죠?”

“뭐가 말입니까?”

“우리에게는 회사 식구끼리는 그런 곳 가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유세라 팀장 말투가 웃겼다.

“홍콩에서 신세 진 것도 있어서 갚았습니다.”

“아니 신세를 클럽으로 갚아요? 그거 어느 나라 계산법이죠?”

“……너 남자 조심해라.”

그때 갑자기 고개 숙이고 있던 김한별이 도도희를 똑바로 봤다.

눈빛이 변했다.

왔다 그분!

“어, 언니……. 그게 무슨…….”

“미국에서 쫓아다녔던 중국 놈……. 순박하게 안경 쓴 그놈 조심해. 녀석과 만나면 너 큰일 난다.”

“헤엑!”

도도희 얼굴이 하얗게 탈색됐다.

김한별은 특정한 미래 시점을 보고 있었다.

나만 보였다.

“특히 녀석이 방문해도 클럽 가지마. 분명히 이번에……. 약 탄다.”

“어, 언니…….”

천하의 도도희가 꼼짝을 못했다.

김한별의 특수한 예지력.

누가 보면 신빨 대단한 선녀 보살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사무실에 새로운 사원이 들어왔다.

그리고…….

띠리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눈에 익숙하지 않은 번호가 떴다.

하지만 꼭 받아야 할 전화였다.

“여보세요.”

- 장 대표님. 접니다. 듣기만 하십시오.

“네…….”

국정원에 심어 놓은 나의 정보통 1차장 정국종의 비밀 전화였다.

- 상부의 지시로 일본 쪽에 대표님 신상이 넘어갔습니다. 당분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짧게 듣는 것만으로 끝난 대화.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짱개도 벅찬데 이제는 일본 원숭이도 날뛴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내가 아니었다.

어차피 나와 그놈들은 한 번 보나 두 번 보나 하늘이 정해준 뜨거운(?) 사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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