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회귀의 전설
274장. 클럽에서 (1)
- 아! K!
“꺄아악! 살아 있었네요? 몸은 괜찮아요? 지금 한국에 왔어요? 어디에요?”
K는 전화 너머 들려오는 상대방 목소리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상대는 홍콩에서 엄청난 사건을 터트리고 러시아 요원과 사라진 경호 대상.
국내로 급히 귀국한 뒤 안가에서 신분세탁을 했다.
계약된 블랙요원 K의 모든 정보가 포맷됐다.
생각보다 일이 빨리 진행됐다.
재계약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직속상관인 1차장이 마지막으로 전화해 이제는 민간인으로 열심히 살라는 말을 남겼다.
순수한 민간인이 되어버린 K는 정보 통로가 막혔다.
블랙요원 중에도 레벨이 있었다. K는 그중 버려도 되는 패로 취급됐기에 정보를 들을 만한 동료 하나 없었다.
- 회사입니다. K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요! 서울요! 그리고 호칭은 김한별이라고 불러주세요~ K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답니다~.”
김한별은 기분이 좋았다.
살아 있는 남자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됐다.
러시아인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친구들이다
타샤는 믿을 수 있었지만 그녀의 윗선은 두려운 자들이었다.
서슴없이 암살 지령을 가장 많이 날리는 FSB였다.
정보를 구할 수 없었다.
이제는 백수 신분이 됐다.
여태 국정원 블랙 요원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할 수도 없다.
포맷되면 그녀에 대한 모든 정보가 사라진다.
그녀를 알고 있는 국정원 1차장만이 그녀의 지난 과거를 기억할 수 있었다.
블랙 요원 신분은 국정원 직원들도 몰랐다.
처음 계약 당시 특수한 능력으로 요원에 선발됐지만 몇 년 전 사라졌다.
다른 이들의 미래를 짧은 순간 엿볼 수 있었던 독특한 초능력이었다.
그때 그 초능력 덕분에 러시아 요원 타샤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능력은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고, 그녀는 블랙 요원으로 불리긴 했지만 위치가 애매해졌다.
그녀는 홍콩에서 가이드하며 시간을 보냈다.
타샤나 몇몇 안면 있던 이들로 인해 정보는 쏠쏠하게 모았다.
그러나 요인경호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그 대상이 살아 있었다.
블랙요원에서 퇴출당한 처지인 그녀는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한 평범한 이십 대 중반 여성일 뿐이었다.
- 밥 먹었습니까?
“네? 밥요?”
갑작스런 남자의 말에 한별은 당황했다.
홍콩에서도 느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를 남자였다.
안부를 묻는 상황에 되레 밥은 먹었냐고 물었다.
- 원수는 갚아야죠. 배 안 고파요?
“……헤에~ 저 술도 사주세요! 백수 됐어요!”
홍콩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자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던 중국 공안부 애들이 언제 끌고 갈지 몰랐다.
남은 여생 동안 중국이나 홍콩은 멀리하고 싶었다.
정보요원들 중에서 가장 더러운 애들이 중국 정보국이었다.
강한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 쪽 요원들에게는 발톱을 감추지만 만만한 국가에는 가차 없이 총을 들이댔다.
앞으로 국력이 커질수록 그들의 작태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 어딥니까?
“강남역 사거리요~”
- 10분만 기다리십시오.
“넵!”
한국에 돌아왔지만 친구나 가족도 없었다.
고아원에서 자랐고 그때 잠깐 발휘된 능력 때문에 국정원에 바로 취직 됐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거의 왕따 수준으로 학교생활을 유지했다.
언어에 재주가 많아 홍콩 지사에 발령받았지만 외톨이로 살았던 김한별이었다.
휘리리링.
무더위를 날리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 냄새가 물씬 맡아졌다.
“어디를 가 봐도…… 내 나라 내 조국이 최고야.”
시끄러운 광동어가 남발되는 홍콩이 아닌 한국의 강남 거리.
김한별은 뭉클해진 가슴을 쓸며 조국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
부우우우우우웅.
기분 좋게 차를 몰았다.
평일 저녁이었지만 강남의 저녁거리는 휘황찬란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높은 건물, 오고가는 차들의 전조등은 살아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생동감이 넘쳤다.
돈 많이 벌면 외국으로 이민 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다른 곳에 가면 모두가 이방인이었다.
그들이 언제까지 이방인에게 친절할까?
한국에서 인정 못 받으면 어차피 타국에서 느끼는 박탈감도 마찬가지다.
하루 일과 후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활기로 넘치는 강남역 사거리.
저 멀리 한쪽에 서 있는 K가 보였다.
찢어진 청바지에 하얀색 반팔 셔츠, 귀여운 챙모자를 착용했다.
귀여운 인상과 스타일에 오고가던 남자들이 살짝 뒤를 돌아봤다.
국정원도 여자 직원을 이제는 미모 보고 뽑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다시 보니 반가웠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홍콩에서 비운의 영화 한 편 찍고 장렬하게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이래서 인연이 소중한 법이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관상이나 사주에서도 인복을 높게 쳤다.
끼이이익.
강남에서는 평범한 축에 드는 포르쉐가 그녀 앞에 멈췄다.
“???”
썬팅 때문에 안을 볼 수 없는 K, 아니 김한별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가 저런 여자를 국정원 블랙요원으로 보겠나.
창문을 내렸다.
“뭐해요~ 밥 안 먹어요?”
“꺄악~ 오빠!”
또……. 오빠란다.
홍콩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오빠라 부르던 김한별.
가이드 할 때 습관을 못 버린 것 같았다.
“타요.”
“으히히. 야타족이다!”
“…….”
유행 한참 지나 고어가 된 농담에 머리가 시원해졌다.
김한별을 추천한 국정원 1차장을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누가 봐도 흥 많은 누나였다.
핸드폰 빌려달라니까 위기 순간에도 통화료 걱정하던 김한별이었다.
달칵 문을 열고 옆좌석에 탔다.
“우와와와! 이런 차 처음 타 봐요! 이거 비싼 차 맞죠?”
“안전벨트 매요.”
“네~ 오빠~.”
“제가 오빠 맞습니까?”
“남자들은 다 젊으면 오빠라고 불러줘요. 싫어요? 홍콩에 온 오빠들은 좋아하던데~.”
배시시 웃는 김한별은 정신세계가 독특했다.
그녀의 총질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했다.
적이 아닌 나를 겨냥한 것 같은 엄청난 솜씨였다.
“뭐 먹을까요?”
“맛있는 거요!”
물어 본 내가 바보다.
홍콩에서 살다 온 그녀라는 걸 잊었다.
“일식? 한식? 그것도 아니면…….”
“클럽! 고고!”
“크, 클럽?”
“노땅처럼 밥 먹고 무슨 술을 마셔요~ 가볍게 안주로 배 채우고 흔들면 좋잖아요~.”
김한별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나 때문에 홍콩 가이드 일자리도 사라졌음이 확실했다.
“퇴직금 받았어요?”
“어떻게 알았어요?”
“마지막 임무라고 했잖습니까.”
“오빠 기억력 되게 좋다~ 퇴직금 3천만 원 받았어요. 되게 짜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겨우 3천이라니! 서울에서 방 한 칸 못 구해요. 홍콩 집은 사무실에서 알아서 해줬는데~ 으이잉.”
김한별은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했다.
금융위기로 얼마간 집값이 떨어지지만 3천만 원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이제 뭐하실 겁니까?”
“……커피숍 알바 자리라도 알아봐야죠.”
“영어도 잘하지 않습니까?”
“고졸이잖아요. 요즘은 미국 대학 나오고 혓바닥에 버터 바른 애들 천지예요. 전 명함도 못 내밀어요.”
“그래도 블랙요원이 커피숍은…….”
“흐흐. 멋있지 않나요? 순정 만화에 나오는 여주인공처럼 뭔가 과거가 있는 그녀가 일하는 커피숍. 적들이 나타나면 탕탕!”
“잡혀가요. 한국에서는 총질 하지 마십시오. 그 실력으로는…….”
“미안해요~ 오빠 죽을 뻔했죠? 키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 법이다.
김한별 사고방식도 남달랐다.
나이도 젊은 여인이 국정원 블랙요원이 됐다가 잘렸다.
김한별은 짐작도 못했겠지만 사실 내가 정국종 1차장에게 요구한 것이었다.
홍콩에 놔두면 위험할 게 뻔했다.
마침 계약 기간이 끝났다기에 깔끔하게 포맷 시켜달라고 했다.
김한별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다.
총질도 못하고 순진한 그녀는 정보요원의 세계와 어울리지 않았다.
타샤도 빨리 정리하라고 충고까지 했었다.
“오빠 아는 클럽 있죠?”
“흐음…….”
“왜 이래요? 오빠 정도 되면 강남 접수하고도 남았죠~. 오늘 화끈하게 스트레스 좀 풀게 해줘요. 백수 됐더니 살만 쩌요.”
그때 갑자기 한 클럽이 번뜩 떠올랐다.
얼마 전 제대로 사고 쳤던 청담동 클럽.
온시은을 구하기 위해 문짝을 때려 부쉈다.
경호원들과 접수했었다.
그곳 이름도 K가 들어갔다.
부우우우우웅.
가속 페달에 힘을 줬다.
신계에 가서 진이 누님과 부비부비 했던 뜨거움이 생각났다.
역시 스트레스 받는 청춘에게 클럽만큼 좋은 유흥 장소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요즘 너무 착하게(?) 살았던 것 같아 반성도 됐다.
티리리링~♬.
귀에 가볍고 경쾌한 음악이 들렸다.
김한별이 오디오를 조작해 음악을 틀었다.
“예~~~!”
흥에 빠진 블랙요원 K.
창문을 열고 어깨를 들썩거렸다.
요즘 주변에 이상한 분들이 점점 많이 모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쿵~♫ 두두둥~♬ 둥둥~♪.
“모두 손을 들고 외쳐~ 오예~♬~ 오예~♫.”
클럽 디제이의 디제잉과 강렬한 비트음이 결합한 강남 청담동 클럽 K.
홍대로 손님이 몰려가는 와중에도 이곳 클럽 K는 강남의 자존심을 지켰다.
노는 물이 달랐다.
홍대로 일반 대중들이 몰려간다면 이곳 K는 집안이 좀 사는 청춘들이 모였다.
기본 입장료도 남자는 10만 원이 넘었다.
여성들도 미모 따져 봐서 입장료가 책정됐다.
면제부터 퇴출까지 입구 가드가 눈치껏 판단했다.
차별을 따지는 이들이 드물었다.
대기업이나 상류층 자제들은 특별 관리를 받았다.
클럽 K에서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특별 모임으로 그들의 신분에 격차가 매겨졌다.
클럽 입구는 철저하게 모니터링 됐다.
[거기 둘은 돌려보네! 이것들이 물 흐리려고 작정했나!]
영업 상무가 무전기용 이어폰을 착용한 가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손님들은 입장 불가이십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입구 가드들이 짧은 몸에 핫팬츠로 무장한 여성들 둘에게 퇴짜를 놨다.
“아놔! 우리 지금 무시하는 거예요? 우리 홍대 용 클럽 정예 멤버들이에요! 지금 실수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입장 불가합니다.”
“어머머~! 민주 사회에서 손님 가려 받겠다는 거예요? 소문 듣고 왔는데 완전 꽝이네~ 여기 지배인 불러줘요! 우리가 왜 입장이 안 되는지 납득을 못하겠거든요!”
화장까지 요란하게 떡칠한 두 여자는 쌍심지를 켰다.
작은 키는 10센티는 될 것 같은 키 높이 구두로 커버했다.
소담스런 가슴은 두툼한 뽕으로 몰았다.
독하고 진한 싸구려 향수와 저렴한 액세서리와 말투는 지나가는 이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누가 봐도 입장이 불가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성격도 거칠기 짝이 없었다.
껌을 씹으며 다리를 떠는 모습은 심히 보기 좋지 않았다.
“손님들이 기다리십니다.”
가드들은 정중함을 끝까지 잃지 않았다.
이런 철저한 수질 관리와 정중함으로 클럽 K는 주가가 치솟았다.
클럽에 오는 목적 상당수가 예쁘고 잘난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순수하게 춤을 즐기러 간다는 말은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인간들이 창조한 동물적 육감 만족 놀이터 중 클럽 K는 강남 최고봉이었다.
“도대체! 입장 기준이 뭐예요! 얼마나 대단하게 하고 와야 받아 주는 거냐고요!”
“흥! 그러게 말이야. 꼴갑이야~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이거 성 차별이에요! 고소할 거예요!”
괜찮은 남자들이 많다는 소문에 강남까지 진출하려 했던 두 여인은 입구를 막았다.
가드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런 진상들은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잠시 비켜주시겠습니까?”
그때 클럽에 들어가기 위해 두 명의 남녀가 나타났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
“뭐에요! 지금 우리가…….”
“어멋!”
화를 내려던 두 여자가 깜짝 놀랐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킹카가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옆에 딸린 귀엽고 깜찍한 미모의 여인.
화장이 진하지도 않아 입구를 막고 선 두 여인과 완벽하게 비교가 됐다.
여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의 키와 외모, 패션 감각은 감히 입에 담기 힘들었다.
떠들던 두 여자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찾아 온 부끄러움은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었다.
“어! 어어!”
그때 모니터링 하고 있던 영업상무가 사무실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 전 나타나 클럽 문짝을 부셨던 그 남자다.
“뭐해! 빠, 빨리 그분들 모셔!!!”
급하게 무전으로 가드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대표가 머물고 있는 옆방으로 뛰듯이 달려갔다.
“형님! 그, 그분이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