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2화 (272/1,284)

 # 272

회귀의 전설

272장. 아공간의 마음을 훔쳐라(1)

“하아……. 엉망이네…….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큐셀의 ESS 연구팀의 연구원 노경록은 수석 연구원이 벌여놓은 작태에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한 게 뻔했다.

각종 테스트기는 오픈 된 채 정리되지 않아 엉망이었다.

상당히 큰 연구소 내부는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수석 연구원 김재열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유학파들 재수 없다니까…….”

노경록은 감춰두었던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냈다.

큐셀에서 바닥부터 시작했다.

한때는 초창기 멤버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국내파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공대로는 한국대 다음이라는 한영대 공대 출신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기술들에 밀리기 일쑤였다.

IT와 결합하고 국가나 학교 연구기관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미국 유학파들을 따라잡는 게 쉽지 않았다.

교수들은 아직도 과거 수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뒤처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집안이 받쳐 주지 못했다.

한영대에서 박사까지 받고 입사할 때만 해도 포부가 남달랐다.

하지만 눈에 확연히 보이는 벽 앞에 주저앉았다.

까놓고 해외파로 같은 박사급에 나이도 어린 김재열에게 밀렸다.

생각지도 못한 연구방식과 뛰어난 이해도에 받쳐주는 지식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순식간에 메인에서 보조로 전락했다.

새로운 연구논문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맥을 짚지 못했다.

그에 반해 김재열은 모든 점에서 뛰어났다.

특히 연구하다 막히면 학교 동료나 교수들에게 직접 연락해 그 자리에서 해결했다.

지금도 밑에 연구원들 몰래 뭔 짓을 벌인 게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지~. 흐흐.”

노경록은 부전공이 컴퓨터 공학이었다.

모든 자료가 삭제된 메인 컴퓨터 앞에 앉았다.

타다다닥.

가볍게 불법 프로그램을 가동해 삭제된 연구 결과를 화면에 띄웠다.

“어? 이, 이게 뭐야???”

한눈에 봐도 믿기지 않는 자료들이 화면을 채웠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내용의 데이터였다.

“도대체 뭘 개발한 거야? 으으으…….”

화면에 나타난 수치는 공학도의 상상을 뛰어 넘었다.

“이게 가능해! 이게 가능하냐고!”

노경록은 놀라는 와중에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흐흐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내가 챙기마.”

USB에 자료를 복사했다.

며칠 전 중국 쪽 헤드 헌터 기업에서 연락이 왔었다.

중국 기업에 취직하지 않더라도 쓸 만한 연구 결과는 값을 지불하겠다는 은밀한 제안이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해 신용 대출까지 받았던 노경록은 구미가 당겼다.

그런 점에서 입맛이 돌았다.

충분히 중국 쪽에서 혹할 연구 내용들이었다.

실용화만 가능하다면 세상을 뒤집을 만한 성과가 될 것이었다.

“재열아……. 네가 이렇게 도움이 되는 날도 있구나.”

복사를 끝내고 컴퓨터를 정리한 노경록.

스르륵.

연구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피곤한 얼굴의 김재열이 들어왔다.

“팀장님~ 오셨습니까.”

“어~ 경록 씨 언제 왔어요.”

김재열이 활짝 웃었다.

언제나 허물없이 다가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팀원을 좋아했다.

“조금 전에 왔습니다. 어제 무리하셨나 봅니다.”

“내가 많이 어질렀지요? 미안합니다~ 어제 기막힌 걸 만나서 말이에요.”

머리를 긁적이며 김재열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습니다.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같이 치우면 금방 끝날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경록 씨~ 저녁에 한 턱 쏠게요.”

“콜!”

상대의 마음을 전혀 모르는 김재열의 말에 노경록은 비웃음을 지으며 쿨하게 대답했다.

***

“아직은 때가 아니야……. 아직은.”

아공간에서 마력석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마력이 다 소모된 껍데기만으로도 난리가 났다.

세상을 향한 강력하고 실질적 무기임은 분명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숫자는 화려했다.

한국에 투자한 자본금 말고 세상에 뿌린 투자금은 배고픈 악어처럼 돈을 삼켰다.

실재 하면서도 실재 하지 않는 가상의 화폐였다.

나만 볼 수 있는 자금의 흐름이었다.

“덩치가 커지면 반드시 탈이 난다.”

지금도 방화벽을 침투하는 해킹 시도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여기저기 우회로를 설정해 놨지만 놈들의 침투는 집요했다.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었지만 함부로 사용하지 못했다.

로버트를 통한 투자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사법 제도 아래 통제되는 자본이 상당했다.

점조직처럼 운영되지만 내가 조종할 수 있는 자금은 한정적이었다.

법인이라는 또 다른 허상의 인격체를 통한 자금 거래였다.

자칫 로버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처리 불가능한 애로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놈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적들이었다.

누가 누구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고 있는지 조직의 구조를 몰랐다.

이제 조금 맛을 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몇 번의 위기를 넘겼다.

“쭉쭉 미끄러지는구나.”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미국발 위기에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주식은 바닥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내년 2월 초까지 수직 낙하하는 미국 주가.

그 이후로 쭉쭉 상승곡선을 그리고 날아오른다.

“오일이라 그런가? 진짜 가파르게 미끄러지는군~.”

7월부터 시작된 오일 하락폭은 역대급이었다.

147달러에서 최저점 25달러를 향해 내려가는 중이다.

장기 오일 선물에서 상승에 베팅했던 선물 업체나 개인은 모조리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낙하폭이면 며칠 후 당장 원금이 구멍이 난다.

그 이후로는 죽음이었다.

오일 파동 이후 이렇게 가파른 기름값 변동은 역사에 없었다.

현재 100개를 훌쩍 넘는 조세피난처 법인 투자금들이 하락에 베팅하고 돈을 쓸어 담았다.

이제는 나도 계산하기 복잡할 정도로 수익이 발생했다.

“계속 법인들은 쪼갠다.”

적들이 감지 불가능할 정도로 투자금을 쪼개고 우회시켰다.

내가 죽으면 하루아침에 가상의 세계에서 사라질 자금.

실재 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굴릴 수 있는 자금이 한정적이었다.

“기업을 더 사냥 한다……. 더!”

철저하게 미국이나 유럽 법인을 통해 합자 형식을 취할 것이다.

얼마나 공무원들이 정치가나 기업가들에게 협조를 잘하는지 정보가 금방 샜다.

바람처럼 퍼지는 소문을 말리지 않았다.

나 건들면…….

한 방에 보내버린다는 경고였다.

안아를 파는 게 딱 좋았다.

홍대 이모를 필두로 연대 전주희가 바람잡이가 될 것이다.

어머니가 중용대학교 이사장이 된 것도 주효했다.

서서히 한국에서 발판을 넓혔다.

강한 자들에게는 약하게 나오는 한국 상류 사회다.

불필요한 힘겨루기나 싸움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연대 전주희가 씩씩거리며 나갔지만 그 이후로 다른 액션은 없었다.

충분히 알아보고 꼬리를 말았을 것이다.

서로에게 상처가 남을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 법이다.

오정의 임준형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상당히 건방진 행동 같아 보였겠지만 다른 말 없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안아야 워낙 빨리 쓰러지고 인수가 됐기에 조용하다지만 다들 배가 고팠다.

약육강식의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변하지 않았다.

[삐이이이이.]

“네. 유 팀장님.”

[대표님, 커피에 간식 드세요~.]

“바로 나가겠습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생각났다.

유세라 팀장의 커피 내리는 솜씨는 이제 경지에 올랐다.

엄마도 마셔보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공간!”

파스스스스슷.

외침에 따라 아공간이 열렸다.

회귀한 인생도 겪어보기 힘든 삶인데 차원 이동도 그에 못지않았다.

엄청난 보너스를 받았다.

마력석을 조용히 집어넣었다.

내력이 늘어나자 아공간 규모가 확장됐다.

“쩝…….”

입맛이 다셔졌다.

마법이 더 필요했다.

미래 먹거리로 선정된 태양열 전지판과 저장장치.

그것만 접수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오일로부터 에너지가 자유로워진다면 그 파급 여파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웃집 개들로부터 멸시와 무시당할 일도 없었다.

호시탐탐 영토를 침범하고 빼앗으려고 들지 못할 것이다.

전기차를 필두로 모든 산업 부분에 혁명이 일어날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세계적 자연 오염 사태에서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실리콘 전지는 환경오염을 유발했다.

그러나 자연에서 쉽게 분해되는 유기 태양 전지는 아니었다.

재료비가 쌀 뿐만 아니라 유리창에도 설치가 가능했다.

일상생활 곳곳에서 태양열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일단 커피부터~”

아공간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대표님~.”

“일 안 하세요?”

“쉬는 시간도 일과의 한 부분이랍니다.”

“자동차회사 인수 문제 보고서 작성해 올려주십시오. 구체적이고 합리적이며 미래지향적인 내용으로 가득 채워 부탁합니다.”

“걱정마세요~ 과장과 허세 가득한 보고서 작성해 올리겠습니다.”

도도희는 저 말투가 매력이다.

자칫 싸가지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미녀의 웃음은 모든 분노를 녹이는 마법과 같았다.

“오늘 원두가 끝내줘요. 진하게 내려서 얼음 둥둥~.”

커피를 내오며 유세라 팀장은 기분이 좋았다.

“대표님. 저희 주말에 시골에 놀러갑니다~.”

“네?”

“어머니가 놀러 오라고 하셨어요.”

“…….”

엄마를 제대로 홀린 것 같다.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쌍둥이들이 두 미녀를 보고나서 나에게 문자를 보내올 게 뻔했다.

“다른 직원들도 있습니다. 본사 직원으로서 품위를 잊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살짝 겁을 줬다.

“어머~ 대표님, 공과 사는 구분하시죠? 이번 시골 여행은 순수한 개인적 휴식 차원에서 가는 거예요. 어머니와 나물도 캐고 밭일도 도와주고~. 세라 언니 그렇지?”

“응? 그, 그렇지.”

도도희보다 약간 순수한(?) 유세라 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특히 쌍둥이 여동생들 조심하십시오. 걔들…… 어리다고 얕보면 큰일 납니다.”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도도희가 배시시 웃었다.

책잡히지 말라는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도운중 회장님이 제대로 딸을 키웠다.

잡초처럼 강하면서 아름다웠고 동시에 영리하고 눈치도 빨랐다.

능력도 탁월했다.

엄마를 구워삶는데 옆에서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표님 드세요. 새로 오픈한 수제 케이크 전문점에서 사 왔어요.”

유세라 팀장이 웃으면서 달콤한 초코무스 조각 케이크를 내놨다.

가난이 멀어지니 이런 건 좋았다.

지난 생에는 아까워서 먹어보지도 못했던 간식이었다.

배고픈 수험생에게 초코파이 하나도 감지덕지였다.

경건하게(?) 케이크를 잘랐다.

부드럽고 촉촉하게 잘리는 케이크의 촉감.

보기 좋은 녀석이 맛도 좋다고 했던가.

새벽에 먹었던 더덕보다 더 입맛을 자극했다.

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사르르 혀끝에서 녹아내렸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아직 뜨거운 공기가 식지 않은 9월의 여름 날씨였다.

사무실 안은 에어컨이 가동돼 시원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보기만 해도 뜨거웠다.

“어때요?”

유세라 팀장이 케이크 맛을 물어왔다.

“환상입니다~”

“다행이에요.”

활짝 웃으며 그제야 케이크를 먹는 유세라 팀장.

“언니 누가 보면 오해하기 딱 좋아~”

“뭐가?”

“대표님 사모하는 티 팍팍 나잖아.”

“무, 무슨 소리야.”

도도희 당신도 팍팍 티 나거든!

딸각.

그때 스푼에 부딪치는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반투명한 스테인리스 접시였다.

“왜요?”

접시를 쳐다보고 있자 유세라 팀장이 물어왔다.

“다른 접시 있습니까?”

“이거요?”

“네. 이 스테인리스 접시요.”

“네……. 여기.”

접시를 받아 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튼튼하고 고급져 보였다.

“중소기업 제품인데 몸에 안 좋은 유광처리를 하지 않았어요. 단단하기도 하고 편리해서 구입했어요.”

유세라 팀장이 설명을 곁들였다.

“잠시 방에 다녀오겠습니다.”

급히 접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공간!”

다시 열어보는 아공간.

접시를 들고 아공간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아공간은 지구 물건을 극도로 거부했다.

건전지를 비롯해 공업적 생산품들을 격멸했다.

먹는 것도 유기농 제품만 넣을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팔아먹을 물건이 아쉬웠다.

싸게 구입해 비싸게 팔아 마력석이나 금으로 바꿔오면 완벽할 것 같았다.

다 쓴 마력석은 존재만으로도 엄청난 물질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접시의 아공간 수용 상태를 살폈다.

싸고 튼튼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스테인리스 접시.

그곳 상인들에게 제대로 먹힐 것이 분명했다.

스으윽.

접시가 아공간으로 사라졌다.

“예스!!!!”

까탈스런 아공간 녀석이 스테인리스 받아들였다.

다시 급히 밖으로 나갔다.

“유 팀장님! 이 접시 세트 종류별로 1,000개 구입해 주세요.”

“네? 1,000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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