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
회귀의 전설
262장. 대국재단
“하하하. 여기서 뵙게 되네요. 선배님.”
“주 교수. 이번에 발표한 헌법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논문 잘 읽어 봤어. 학교 다닐 때도 똑똑하더니 뭔가 달라. 시대를 앞서간다고나 할까?”
“전직 총장님 앞에서 부끄럽습니다.”
“난 전직이지만 자네는 현직이잖아~ 부러워.”
“별말씀 다 하십니다.”
‘저분은 한국대 법학과 교수님이고……. 그 앞에 분은 전직 검찰총장이잖아!’
재단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도도희는 장태산 대표를 졸라 재단 일에 나섰다.
일일 도우미 역할이었다.
장태산 어머니에게 점수를 더 따고 싶어서였다.
어제 있었던 한국항공을 소유한 한국 그룹 사모를 박살내는 장태산을 보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저 남자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말아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강남 팰튼 호텔 연회장에 손님들이 속속 입장했다.
어릴 적부터 사업을 위해 한국 유명인들의 정보를 숙지하던 도도희는 깜짝 놀랐다.
법인 설립도 회사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삼우로펌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이름은 대국재단.
장태산 대표의 아버지 이름이었다.
그러나 실질적 활동은 어머니가 맡았다.
한국 명문대를 나왔지만 유기농 사과 농사일에 매진한다고 들었다.
한 번 뵙고 싶은데 기회가 없었다.
그렇기에 도도희는 점수 따기에 여념이 없었다.
장태산 대표 어머니 옆에서 진심으로 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놀러오라는 소리만 나오면 바로 시간을 잡을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최선을 다하려는 도도희.
단정한 하얀색 스커트에 은은한 꽃무늬가 수놓아진 푸른색 시원한 셔츠로 코디 했다.
“총장님! 선배님!”
“대균아. 넌 갈수록 젊어지는 것 같다.”
“항산화 식품을 꾸준히 섭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배님들 따라잡기 위해 골프채를 놓지 않습니다.”
“좋은 건 나눠먹어야지~”
“곧 추려서 보내놓겠습니다.”
“라운딩 한 번 잡아.”
“넵! 선배님!”
‘세상에 손대균 리앤장 로펌 이사를 애 취급하다니…….’
대한민국 탑을 달리는 로펌의 실질적 주인인 손대균 이사가 어린 후배처럼 굴었다.
전직 총장과 법대 교수 앞에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저도 라운딩에 불러주실 거죠?”
“그래. 우리 윤태도 불러야지. 예전에 내 밑에서 빡시게 굴렀는데 말이야~.”
“흐흐. 총장님 밑에서 몇 번 죽을 뻔했죠.”
삼우로펌의 조윤태 이사도 나타났다.
“뭘 그리 재미난 얘기들 하나?”
‘윤진용……. 국회의장!’
전직이지만 5선의 국회의원이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현 여당 출신이지만 청렴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인물이다.
국회의장 시절에도 여와 야에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일처리를 했다.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아이고! 선배님!”
전직 검찰총장이 고개 숙이며 악수를 청했다.
“한진아. 너도 많이 늙었다.”
“세월에 장사 있습니까? 여기 새파랗던 애들도 새치가 허옇습니다.”
“의장님 오셨습니까!”
“됐어. 그냥 선배라고 불러. 의장님 하니까 내가 엄청 늙은 것 같잖아.”
“그럴까요? 선배님~.”
“거봐 듣기 좋잖아.”
“그럼 나도 총장 말고 선배로 불러!”
“에휴. 한진아. 넌 이것도 샘 나냐? 총장일 때 나 집어넣는다고 난리쳤던 거 생각 안나?”
“그때는 먹고 살려고 그랬죠. 그래서 석고대죄 의미로 크게 쐈잖습니까. 잘만 드시더니 오늘 왜 그러실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
“크크크크.”
‘대한민국에서는 한국대 동문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이 사실이었어. 그런 점에서 대표님의 선택은 퍼펙트하네.’
연회장 입구에서 한국대 동문 모임이 벌어졌다.
장태산 대표의 연줄이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오! 이 원장 오랜만이야.”
“선배님 오셨습니까.”
‘이민석 전 금감원장까지…….’
도도희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있어 몇몇 대그룹 빼고 저런 역사적 거물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장태산 대표의 파워에 도도희는 감동했다.
백화점 여직원들을 감싸던 따스한 인간미와 한국 그룹 사모를 박살내던 패기.
그리고 권력자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정치력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빠 고마워요~.’
방황하던 어린 시절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도운중 회장이 오늘따라 고마웠다.
마지막 선물이라며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했다.
평소 인간 평가에 박하던 아빠가 최고의 남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선택을 믿고 찾아왔던 장태산 대표의 투자 회사.
앞을 내다보는 미국 투자 건부터 시작해서 엄청난 일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이었다.
펼쳐질 미래만 생각해도 도도희는 심장이 미칠 듯 뛰었다.
아버지의 선단식 경영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체 모를 풍부한 자금과 로버트 라이언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 엄마를 위해 큼지막한 선물을 준비한 장태산 대표.
“도희야 뭐해? 손님들 입장 도와드려야지.”
“어? 응~ 그래야지.”
요즘 들어 눈치가 빨라진 유세라도 따라왔다.
장태산 대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이와 지위 때문에 내색에 서투른 유세라.
“언니. 우린……. 죽을 때까지 한 팀이다.”
“뭐야? 당연하지~ 도희 유골함도 준비해 놨다. 같이 뼈 묻을 생각이니까 걱정 마~.”
물론 가끔 독특한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다.
“어! 대표님이다!”
그때 오늘의 주인공인 장태산 대표와 감색 개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가 나타났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진짜……. 잘났다!’
도도희는 그를 보는 순간 심쿵 했다.
잘나가는 아이돌이나 배우들보다 10배쯤 더 빛나는 남자.
하얀 셔츠에 노타이 차림이지만 전혀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은 시계와 단정한 구두까지 누가 봐도 잘난 집 귀한 자식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빛이 났다.
모든 이들의 이목을 단박에 잡아끌 만큼.
“귀한 걸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 장 대표!”
“하하. 우리 과의 보물 왔나~.”
“잘생긴 청년이군.”
“이거 젊은 때 날 보는 것 같아? 그렇지 않나?”
입구에서 환담을 나누던 인사들이 활짝 웃으며 장태산을 맞이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전혀 기죽지 않는 대표.
유세라와 도도희는 애인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흐뭇하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찾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도와 대국재단을 이끌어 갈 여러 이사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드립니다.”
와아! 우리 엄마 배우해도 될 것 같다.
모든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룹 따님 포스 어디 가지 않았다.
시골 아낙으로 살 때는 전혀 몰랐던 엄마의 진면목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지난 생에는 죽기 전까지 아버지 곁에서 빚에 허덕이며 살았다.
곱디고운 얼굴은 햇볕에 타 그을렸고 마른 몸은 농사일에 힘들어했다.
그래도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애썼던 주설란 여사.
백화점에서 구입한 국내 유명 디자이너의 감색 개량 한복이 품격을 더했다.
말투는 따뜻하고 당당함이 넘쳤다.
행동은 우아함의 극치였다.
가슴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고개 숙이는 모습은 현명한 여인의 자화상 같았다.
고개를 둘러 주변을 봤다.
사회 저명인사들과 하관우 회장이 참석했다.
대국재단의 이사와 감사들이었다.
이들과 함께라면 현 정권 실세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다.
연결된 인맥들이 모두 다 최상급이었다.
한국에서 이보다 더한 인물들로 이사진을 구성하기는 어렵다.
임성철 회장도 재단 사외이사로 등재가 됐다.
출연금도 가볍게 10억을 쏴줬다.
각종 화환들이 연회장 앞을 채웠다.
언론은 초청받지 못했다.
매달 상당한 상납금을 받는 손대균 이사를 통해 통제했다.
엄청난 재단 출연금이라면 소문이 나야 하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조용하고 소리 없이 재단이 설립되고 오늘 중용대 처리 문제로 이사들을 소집했다.
이사들도 대부분 만족했다.
재단 차원에서 경비뿐만 아니라 차량과 기사까지 제공했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 현직 공무원 신분인 한국대 교수만 빼고 최상급 대우를 해줬다.
보수는 연 2억.
퇴직하고 노년을 보내는 이들에게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었다.
조윤태 변호사와 손대균 이사도 만족했다.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재단법인의 이사 감투는 앞으로 쓸 만하다는 걸 잘 알았다.
동시에 엄마와 나도 얻는 게 많았다.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사회적 방패막을 얻었다.
짝짝짝짝짝.
가벼운 박수소리가 울렸다.
뒤편에 앉아 나도 박수를 쳤다.
엄마의 본격적인 사회 데뷔무대였다.
동창회가 스프링 캠프라면 지금부터는 메이저리그 본 경기와 같았다.
“우리 이사장님 보기보다 똑소리 납니다. 앞으로 대국재단 앞날이 훤하겠습니다.”
“그렇죠? 돌아가신 주 회장님이 막내 따님은 잘 두셨습니다~.”
외할아버지를 아는 윤진용 전직 국회의장과 이민석 전 금감원장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도 다 돈의 위력이었다.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신들이 정한 보이지 않는 이치에 의해 보너스를 받았다.
“여러 인생 선배님들 앞에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엄마가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연회장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사장을 고사했지만 내가 강력히 주장했다.
재단법인 이사장은 막강한 자리다.
그 자리를 다른 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사님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르고 고른 사회 원로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이사장에 탐을 냈다면 뽑지도 않았다.
국정원 1차장을 통해서 얻어 낸 정보를 기초로 뒤탈이 없는 분들로 엄선했다.
자식들 교육 문제로 주민등록법이나 농지경작 위반 정도가 다였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급 공무원 할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그런데 저기 하관우 회장은 왜 부른 겁니까?”
손대균 이사가 궁금한 듯 물었다.
이사도 아닌데 자리를 차지한 이유가 궁금한 것 같았다.
“그건 제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미 하관우 회장과 말이 끝났다.
회장님이 되더니 인상과 포스가 달라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확실했다.
“이번 대국재단이 인수한 중용 대학교에 본 TS 그룹이 산학 협동 프로그램을 제안하기 위해서입니다.”
“산학 협동 프로그램요? 그 말은 지금 중용 대학교 학생들을 특채라도 하겠다는 말입니까?”
현직 교수인 주태열 교수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대기업이 인수한 학교들이 간혹 그런 적이 있었다.
단박에 학교 위상이 달라지게 된다.
TS 그룹 정도라면 학생들이 앞다투어 입사하고 싶은 회사 순위에 들었다.
앞으로는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더 전폭적인 지원을 퍼부어 그룹을 단시간 안에 3대 재벌급으로 격상시킬 생각이다.
“그렇습니다. 만약 중용 대학교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각 그룹 사업장과 연계해 특별 입사 제도를 실시할 생각입니다.”
“오! 그거 멋진 제안입니다!”
“정규직인가요?”
존경 받을 원로들답게 좋은 반응을 보였다.
“물론입니다. 정규직 채용 조건입니다. 입학과 동시에 TS 그룹 장학생들을 선발할 생각입니다. 각 학년 중에도 능력과 꿈이 충분한 인재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관우 회장의 말에는 자신감이 담겼다.
모두 내가 지시한 사항이다.
오직 이 자리에서 하 회장, 조 변호사님만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엄마가 고마움을 표했다.
엄마에게도 살짝 귀띔했다.
오늘 처음 회동하는 이사회였다.
명의만 빌려 재단을 설립했다.
그런데 이사회 첫 회의에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사실 이사들은 재단 규모도 확실히 몰랐다.
중용 대학교를 인수할 정도의 재력이 있는 수준으로 알았다.
엄마가 잘나갔던 그룹의 막내딸이었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제는 이벤트를 할 시간.
“그리고 그 제안과 더불어 대국재단에 제 사재로 1조 5,000억을 투자할 생각입니다.”
“허억!”
“1조 5,000억!!!”
흐뭇해하던 이사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파격적인 재단 사제 출현은 거의 없었다.
그룹 회장들도 기껏해야 수천 억 수준이었다.
그러나 가뿐하게 1조 5,000억을 질러버리는 엄마.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입술로 말했다.
엄마! 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