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1
회귀의 전설
261장. 갑질의 정석 (3)
‘장태산?’
최민석 지점장은 장태산이라는 이름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어디서 많이 듣고 회자됐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얼굴은 처음 봤다.
“자, 장태산! 네놈이 장태산이라고…….”
그에 반해 조인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딸을 두들겨 패서 미국으로 쫒아낸 원흉이었다.
남편이 한 번만 더 건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성질 같아서는 깡패들을 시켜 죽여 버리고 싶었던 놈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두려움이 앞섰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 없었다.
주변에 보는 시선이 많았다.
싸가지 없는 건 소문났지만 쪽팔림은 다른 문제였다.
“왜? 이름 들으니까 친숙하지 않아. 딸이 누구를 닮았나 했는데 엄마 판박이네. 그렇지?”
비웃는 놈의 얼굴에 조인화는 다시 폭발했다.
“지점장 뭐해! 당신 잘리고 싶어? 손님 이렇게 당하는데 구경할 거야!”
“…….”
최민석은 난감했다.
지금 이 사태는 그가 해결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국항공을 소유한 한국 그룹은 10대 재벌이었다.
윗선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다.
“여보세요. 하 회장님.”
그때 청년이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네. 강남 갤럭시 백화점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백화점? 누구에게 하는 거야?’
하 회장이라는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안아의 새로운 대표가 하관우 TS 그룹 회장이었다.
“바꿔달라고 합니다.”
얼떨결에 최민석은 핸드폰을 받았다.
“여보세요. 강남 갤럭시 백화점 지점장 최민석입니다.”
- 최민석 지점장이라고?
“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 나 하관우 회장일세.
“네! 회, 회장님요!”
최민석은 숨이 멎는 충격을 받았다.
- 백화점에서 일이 있다고?
“네……. 손님 한 분이 화가 나셔서…….”
차마 조인화 사모라고 말하지 못했다.
눈을 치켜뜨고 쳐다보는 것이 살모사 눈빛이었다.
- 장태산 대표가 하라는 대로 해. 그럼 돼.
“네? 회장님 그게 무슨…….”
- 말 그대로네. 회장의 말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책임은 모두 내가 지겠네.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 수고하고. 조만간 본사에 한 번 부르겠네.
“들어가십시오!”
핸드폰을 들고 최민석은 고개를 90도로 숙였다.
본사 회장이 밥을 먹자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대표님!”
최민석 지점장은 핸드폰을 옷으로 닦아 건넸다.
‘맞아! 장태산!’
이제야 눈앞의 청년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안아 그룹 인수에 핵심 한국 파트너였다는 젊은 투자자였다.
“뭐야? 지점장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삼상치 않은 분위기에 조인화가 쌍심지를 켰다.
‘회장이라고? 정말 ST 그룹 회장?’
성깔이 지랄 같지만 머리는 달고 사는 조인화였다.
상황이 불리해져 가는 걸 느꼈다.
“지점장님, 백화점 업무방해와 폭력 행위로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넵! 대표님!”
“CCTV 작동 되죠?”
“물론입니다. 초고화질입니다.”
“신문사에 연락하세요. 지금 당장 부탁드립니다.”
“처리하겠습니다!”
“야! 지점장! 너 미쳤어? 저 자식이 뭔데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거야! 너희들 둘이 짰어? 나 엿 먹이려고 그런 거야!”
“당신이 먼저 경찰 불렀잖아~ 바보 아냐?”
“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성질이 뻗쳤지만 어쩌지 못하고 악을 쓰는 조인화.
“사, 사모님 일단 차량으로…….”
비서가 조인화를 이끌었다.
눈치로 봐서 아주 잘못 건드린 게 확실했다.
얼마 전 회장님이 불같이 화를 내며 사모를 두들겨 팼다는 사실은 비서들 사이에 소문이 쫙 났다.
웬만하면 성질 더러운 아내를 건들지 않는 정중용 회장이었다.
“너 이 X새끼! 죽여버릴 거야!”
분노성충동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조인화가 눈이 돌아가 다시 장태산 얼굴을 향해 손톱을 세우고 돌진했다.
쫘아아악!
그때 시원하게 조인화의 따귀가 불이 났다.
콰다다당.
충격에 조인화가 바닥에 뒹굴었다.
“어디서! 감히 내 아들에게 손을!”
서릿발 같이 추궁하는 중년의 여인.
온몸에서 부잣집 사모님의 포스를 줄줄 풍겼다.
조인화와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품격은 덤이었다.
***
오!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내가 나서기 전에 시원하게 싸다구를 날리는 엄마.
조인화 얼굴에 손자국이 진하게 났다.
“우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아아앙!”
분에 못 이겨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조인화가 애처럼 엉엉 울었다.
2018년에 전 국민들에게 얼굴 팔린 아줌마의 2008년도 버전을 봤다.
빼빼 마른 신경질적인 얼굴과 몸뚱이는 추악한 모습 그대로였다.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
귀기가 보였다.
살기가 밖으로 뻗치는 관상이었다.
누군가를 죽일 듯이 살(殺)을 부리며 사는 팔자다.
그런 화를 누르고 살다 늦게 터져 병이 됐다.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들도 문제가 됐다.
엄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자식들은 성격도 유전됐다.
강한 자에게는 고개를 숙이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자비를 모르는 족속이 됐다.
귀족도 아니면서 현대판 귀족처럼 살려고 한 대가였다.
죽으면 똑같은 한 줌 흙이 된다는 이치를 모르고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들이다.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장 통제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대표님.”
내 부하라도 되는 양 지점장은 힘차게 대답했다.
“뭣들 합니까. 손님들께 사죄 말씀 드리고 1층은 잠시 폐쇄하겠습니다. 안전팀 라인 확보하세요. 그리고 경찰서에 신고하세요.”
“넵! 지점장님!”
소식을 듣고 달려나온 백화점 직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정직원으로 고용한 덕분인지 다들 사기가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지점장님.”
“하명하십시오. 대표님!”
“이 아줌마 블랙리스트에 등재시키십시오. 앞으로 블랙컨슈머는 예외 없이 백화점 출입 금지입니다. 직원들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손님도 가려 받는 백화점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하관우 회장의 지시가 있었던지 토를 달지 않았다.
고객의 갑질을 참고 사는 게 일의 전부라 할 수 있는 백화점 직원들이다.
하루 종일 구두를 신고 하지정맥류를 비롯해 각종 병에 시달렸다.
먹고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을 향해 갑질도 정도껏 해야 했다.
타다다다닥.
그때 순찰차를 타고 온 지역순찰대 경찰들 두 명이 백화점 안으로 빠르게 들어왔다.
“폭행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우아아앙! 경찰관 아저씨! 저 자식과 그 뒤에 여자가 저를 때렸어요! 빨리 수갑 채워서 잡아가세요!”
조인화는 아직 끝장을 못 본 것 같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엄마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2008년이 아니라 이때 한 번 강하게 털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혐오의 표본을 품고 사는 여자다.
독기와 싸가지, 갑질과 우월감이 영혼을 오염시켰다.
죽어서도 저승사자가 침 뱉고 끌고 가고도 남았다.
예전에 만났던 강감찬 저승사자에게 반드시 부탁할 생각이다.
“사실입니까?”
경찰이 물어왔다.
“아닙니다.”
지점장이 나섰다.
“누구십니까?”
“백화점 지점장 최민석입니다.”
띠리리릿.
그때 경찰관들 무전기가 울렸다.
[갤럭시 백화점에서 업무방해와 폭행으로 수사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같이 처리하십시오.]
“접수했습니다.”
경위계급을 단 경찰관이 무전으로 답했다.
“업무방해는 누가 신고하셨습니까?”
“제가 했습니다. 저기 있는 여성 손님이 백화점 매장 기물을 파손하고 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이분에게 욕을 하고 손톱으로 긁으려 달려들었습니다.”
지점장 다음에 승진 시켜줘야 할 것 같다.
화난 표정으로 조인화를 몰지각한 아줌마로 몰고 갔다.
“야! 야! 너 죽을래! 당장 강남경찰서장 연락해! 나 한국항공 조인화야!”
불리해지자 악을 고래고래 지르는 조인화.
경찰들 인상이 바로 찌푸려졌다.
강남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서장 연결하라는 소리일 것이다.
다들 검사에 판사, 변호사에 잘 나가는 국회의원과 상류층들이 모여 사는 강남이라는 섬.
가장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경찰들 고충을 알 만했다.
“CCTV에 자료화면 있습니다. 복사해서 제출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폭행 당사자들은 조사할 예정이니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경찰관들도 사건이 간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 같다.
한국항공 사모라는 여자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모님 무슨 일입니까?”
그때 양복에 법(法)이라는 배지를 단 변호사 둘이 나타났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바로 조인화에게 다가갔다.
“양 변호사 잘 왔어요. 저 자식하고 저 여자가 나를 폭행했어요. 여기 봐요 손목이 부었잖아요.”
거짓말이다.
손목을 잡았지만 기를 운용해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픔은 느끼겠지만 기술적 처리를 마쳤다.
“사실입니까? 경찰관분들은 뭐하십니까? 폭행 당사자들 당장 연행하세요!”
안경을 착용한 사십 대 중반의 양 변호사라는 자가 나섰다.
말투가 검찰에서 근무했던 자 같았다.
“양쪽이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저 분은 업무방해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재물손괴도 추가합니다.”
지점장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그랬다! 돈 주면 될 거 아냐! 이깟 것 몇 푼이나 한다고!”
몇 천이나 몇 억은 조인화에게는 푼돈일 것이다.
“들었죠? 재물손괴는 보상하면 간단하게 끝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폭행은 다르죠. 연약한 여자를 상대로 손을 사용하다니……. 사모님 뺨에 상처 안 보여요? 뭐합니까! 바로 수갑 채워요! 오희동 서장님께는 제가 직접 연락하죠.”
경찰관들이 곤혹스런 눈으로 날 봤다.
“제가 그랬어요. 절 잡아 가세요.”
엄마가 나섰다.
“들었죠? 저 여자 분도 같이 연행해요.”
돌아가는 꼴이 아주 개판이다.
“어디 로펌 소속 변호삽니까?”
양 변호사라는 자를 보니 냄새가 났다.
한국항공 소속 변호사가 아닌 외부 로펌 소속이 확실했다.
“리앤장 소속이오.”
자랑스럽게 리앤장이라 밝히는 양 변호사.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양희찬이오.”
핸드폰을 들었다.
예전 엄마 사건이 떠올랐다.
뭣도 모르고 엄마를 갈구고 시기하던 순실이 아줌마 지금 잘 사는지 모르겠다.
- 후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선배님, 혹시 로펌 소속 중에 양희찬 변호사님 계십니까?”
- 양희찬? 어. 검찰 출신으로 한 명 있어. 왜? 아는 사이야?
“방금 알게 됐습니다.”
- 무슨 일로?
“한국항공 조인화 씨가 저와 어머니를 모욕하고 폭행을 하려 했습니다. 갤럭시 백화점에서는 난동을 부렸습니다.”
애도 아닌데 손 선배에게 상세하게 고자질했다.
- 그 아줌마 사고 칠 줄 알았다. 쯧쯧.
“양 변호사님이 경찰관들에게 절 체포하라 협박합니다. 강남 경찰서장 이름 들먹이면서 말입니다.”
- 미친 새끼 아냐? 바꿔봐!
손대균 선배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바꾸라고 합니다.”
“누군데? 나 아는 사람이야?”
“아마 잘 아는 분일 겁니다.”
양희찬이 거만하게 핸드폰을 받았다.
“리앤장의 양희찬…….”
- 손대균 이사다.
예민한 귀로 대화 내용이 들렸다.
“헛! 이, 이사님!”
- 조인화 사건 손 떼라. 그리고 VIP께 정중히 사과하고 돌아와. 장 대표 바꿔봐.
“아, 알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양희찬이 차렷 자세로 핸드폰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건넸다.
- 정 회장에게는 내가 전화 걸어 놓으마.
“선배님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 그래~ 그때 보자.
통화가 끝났다.
“됐습니까?”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양희찬 변호사가 고개를 숙였다.
“…….”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갑질을 부리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뭐, 뭐야! 니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조인화가 양 변호사의 태도에 놀라 악을 썼다.
아침 드라마에서 악 쓰는 악역과 100퍼센트 싱크로율을 보인다.
띠리리리리리리리.
그때 조인화 옆에 서 있던 비서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넵! 회, 회장님!”
통화하던 오 비서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조인화에게 건넸다.
“누구야!”
“회장님이십니다.”
“……회장님!”
조인화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 여보세요.”
미친개 같던 조인화가 순한 양처럼 변했다.
- 당장 들어와! 이 미친 여편네야!!!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폭언이 터졌다.
“여, 여보 제가 지금 폭행으로…….”
- 너 죽고 싶어? 당장 들어와!!!
뚝 핸드폰이 끊겼다.
“너희들……. 가만 두지 않겠어!”
조인화가 표독스러운 얼굴로 사람들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휙 고개를 돌려 자리에서 뜨려했다.
“어이~ 아줌마~. 갈 때 가더라도 사과는 하고 가야지~.”
“뭐라고!”
“지금 당장 어머니와 여기 사람들에게 사과해!”
“내가 미쳤냐! 미친놈아!”
미친분이 미쳤다고 물어보니 어이가 없다.
“연행하세요.”
차갑게 말했다.
“네? 넵!”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경찰관들이 다가갔다.
파바바바밧.
그때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한국항공 조인화 사모님이 정말 갑질을 부렸습니까?”
“뭡니까? 저 뒹구는 가방을 다 찢은 건가요???”
갑자기 들이닥친 기자들.
조인화는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악! 아아아아악!”
그리고 미친 듯 비명을 질렀다.
진정한 갑질의 정석이 뭔지 모르는 졸부의 말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