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7화 (257/1,284)

 # 257

회귀의 전설

257장. 러시아에서 (2)

‘이게ⵈⵈ 무슨ⵈⵈ.’

이른 새벽 동트는 빛에 타샤는 눈을 뜨다말고 정신이 멍해졌다.

어젯밤 있었던 일대 사건ⵈⵈ.

얼굴이 화끈하게 뜨거워졌다.

장태산이라는 한국 남자에서 러시아 상남자의 냄새를 맡았다.

거친 조직 생활의 스트레스를 은근히 받아왔던 타샤.

몇 년 만에 제대로 남자를 안았다.

아무르 호랑이 같은 남자는 타샤를 제대로 괴롭혔다.

거칠게 물고 할퀴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맞이하는 폭군의 강한 폭력에 타샤는 굴복했다.

비명을 지르다 어느새 기절한 것까지는 또렷이 기억이 났다.

‘미친 거 아냐?’

술 몇 잔에 취할 리 없었다.

연방보안국 안가라 찾아오는 이들은 없지만 이럴 때가 아니었다.

손님 접대가 온전히 타샤 몫으로 남아있었지만 잠자리까지 포함돼 있지는 않았다.

장태산에게 호감이 많았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는 타샤가 아니다.

조국 땅이 주는 편안함과 보드카의 취기 때문이라 말하기에는 지금껏 받았던 정신훈련이 아까웠다.

술을 마시다 눈이 마주치고 그러다ⵈⵈ.

‘아카시아 향기 같았는데ⵈⵈ.’

어떤 향기 같은 것을 코로 맡고 난 뒤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갑자기 욕망이 불끈 치솟아 올랐고 장태산을 유혹했다.

스륵 오른손이 움직였다.

그 순간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타샤의 눈이 질근 감겼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하룻밤이다.

상부에서 알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보호와 감시가 타샤에게 현재 내려진 임무다.

‘타샤ⵈⵈ 요즘 너무 굶었다 싶었다.’

지난밤의 충격이 아직도 온 몸에 남았다.

온몸이 격렬한 격투 훈련을 받은 것처럼 뻐근했다.

그러나 동시에 상쾌함도 느껴졌다.

얼굴이 붉어지는 타샤가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왔다.

눈에 들어오는 자잘한 멍자국.

어젯밤의 격렬한 사건의 흔적이었다.

‘미쳤네! 미쳤어!’

고개를 저으며 타샤는 빠르게 옷을 입었다.

죽은 듯 매끈한 근육이 빛나는 상체를 반쯤 드러내고 자고 있는 남자.

보는 순간만으로도 타샤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뭔지 몰라도 어젯밤 일은 평범하지 않았다.

“휴우.”

짧은 한숨을 내쉬는 타샤.

조심히 방의 문을 열고 나갔다.

어제 저녁 오늘 오전 중에 조직에서 누가 찾아올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직 입금되지 않은 9억 달러와 그 이외의 조건들.

지금 상부에서는 이 남자를 두고 수없이 많은 두뇌들이 경우의 수를 따지고 있을 것이다.

***

“하아아아ⵈⵈ.”

타샤가 나간 걸 확인하고 긴 숨을 토했다.

타사가 깨어나기 전에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미쳤네ⵈⵈ. 미쳤어!”

옛 여자 친구의 결혼식에서 충격을 받았다.

장인어른이 될 수도 있었던 리장창이 살인 명령을 내렸다.

박살내고 도주하는 와중에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왔다.

그리고 보내게 된 화끈한 지난 밤.

굶주린 것도 아닌데 참을 수 없었다.

아직 대한민국 미성년자가 여기저기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타샤가 깨어나기 전에 이미 눈을 떴다.

정열의 슬라브 미녀는 밤에도 적극적이었다.

노바 형님이 봤다면 이제 하산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천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곳에 수염이 듬뿍 난 30대 중반의 러시아 남자가 보였다.

- 흐흐흐. 나? 이 집 주인.

“네? 여기 사세요.”

-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난 이곳에 산다.

한 마디로 귀신집이라는 소리다.

하필 연방보안국은 집을 골라도 이런 곳에 안가를 만들었다.- 지난 밤 고마웠다. 오랜만에 제대로 구경했다. 흐흐흐.

귀신의 음흉한 웃음소리에 나만 쪽팔렸다.

나도 반쯤 기억나는 뜨거웠던 시간이었다.

“너무한 거 아닙니까! 타샤는 잘 모르는 여자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 지랄하네. 그런 놈이 불끈하냐?

“끙ⵈⵈ.”

그 귀신 말발 좀 있었다.

신도 아닌 존재지만 기가 만만치 않았다.

포도주 귀신 이후 두 번째 만나는 강력한 유령이다.

풍기는 기운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음탕할 뿐이다.

- 난 펄펄 끓는 기름 위에 불씨 하나만 던졌을 뿐이다. 왜 애꿎은 유령에게 화풀이야! 재미는 지들이 다 봤으면서!

할 말이 없었다.

- 너 잘 하더라?

“뭐, 뭐가요ⵈⵈ.”

목소리가 작아졌다.

- 애가 반쯤 죽었다 깨어났다. 흐흐흐흐.

“도대체 뭘 사용했습니까?”

- 내가 특별히 포인트 사용해서 만든 사랑의 묘약~ 아카시아 향이 제대로지?

사랑의 묘약은 개뿔ⵈⵈ.

포인트를 아는 걸로 보아 그냥 귀신은 아니었다.

기가 생각보다 훨씬 맑았다.

“신이십니까?”

- 남들은 그렇게 부르더라.

“그런데 왜 이곳에 머무십니까?”

- 너도 편한 곳이 좋잖아.

말발이 상당했다.

“신도 지상에 머물 수 있습니까?”

- 포인트 많아서 갈 곳이 우주에 널렸다.

“부자시군요ⵈⵈ.”

- 생전에 좀 벌어 놨다.

인간들도 돈만 많으면 세상에 못할 것이 없었다.

나도 능력으로만 따지면 남극에서 히터 틀고 살면서 펭귄들 사육할 정도 능력은 됐다.

그래도 신들의 기행은 가끔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신계에서 못할 짓이 없었다.

얼굴 몸매 빵빵한 여신들과도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이런 곳에 머무는지 궁금했다.

“누구십니까? 그리고 왜 하필 이곳에 머물고 계십니까?”

- 이 집은 대대로 우리 가문 소유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증오했던 여인과의 추억이 가장 많은 곳이지ⵈⵈ.

사연 없는 귀신은 세상에 없었다.

신이 되어서도 인간 시절의 추억을 잊지 못해 머문다는 귀신.

말투에 쓸쓸함이 베었다.

“실연당하셨습니까?”

- 실연이 아니라ⵈⵈ. 배신과 증오, 애증이 결합한 복합 증상이다.

“뭐가 그리 복잡합니까?”

- 넌 사는 게 쉽냐?

“ⵈⵈ.”

요즘 정말 어렵다는 걸 피 튀기면서 배우고 있다.

3서클 치료 마법으로 총상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홍콩에서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것이다.

이 집 귀신 만난 것도 살다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뭐하시는 분이십니까? 평범한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이제는 신계에 가지 않아도 인간계에 정착한 신도 만난다.

이계까지 갔다 왔더니 놀랍지도 않았다.

- 내가 이 동네에서는 좀 먹어준다. 흐흐흐.

“그니까 누구시냐고요!”

지난 밤 포인트를 이용해 뭔가 수작을 부린 이름 모를 러시아 신.

그가 천장에서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참 괴기스러울 장면이다.

천장이 TV 화면처럼 살아 움직이는 게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헐ⵈⵈ.”

시를 듣는 순간 확 떠오르는 러시아의 대문호.

러시아의 국민 시인이자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존재가 지금 눈앞의 귀신인 것 같다.

“알렉산드르 푸시킨???”

- 오! 너도 아냐?

아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안다.

힘든 청춘 시절 그의 시를 한번쯤 되뇌지 않았던 이들이 없을 것이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ⵈⵈ.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ⵈ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ⵈⵈ.”

요즘 들어 시를 많이 읊는다.

머릿속에 저장된 신들의 기억 속에 시가 많았다.

한 풍류했던 분들이라 문학적 소양이 다양했다.

- 오! 제대로 아는구나!

- 신이 카르마 포인트를 쐈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받았습니다.

잘나가는 신답게 아는 체 좀 해줬다고 포인트를 쏜다.

그도 그럴 것이 절망에 빠진 청춘들은 힘들 때마다 푸시킨의 시를 읊었을 것이다.

그가 죽었을 때 러시아 민중들 수만 명이 모이자 황제가 놀라 근위병으로 관을 보호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더욱이 자녀를 넷이나 낳은 러시아 사교계에서 미모와 끼를 자랑하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로 인한 죽음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아내와 바람둥이 프랑스 망명 귀족 조지 단테스와의 염문에 눈이 돌아간 푸시킨이 결투를 신청했다.

결투에서 패배한 그는 이틀 뒤 사망한다.

질투에 사로잡혀 문학가가 장교와 결투를 벌인 것이다.

열정은 높이 살 만했지만 개죽음이었다.

명문가의 계승자 푸시킨은 아내의 미모로 인해 창작욕도 넘쳤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렀다.

미녀는 몸에 해롭다는 말의 산증인이 됐다.

30대에 접어든 푸시킨과 16세 소녀 나탈리아와의 결혼.

그녀는 매혹적인 미모로 유명했지만 경박하고 신분이 낮은 데다 사치벽까지 심했다.

늘씬한 몸매와 미모가 열일 했다.

황제가 나탈리아를 보기 위해 푸시킨을 시종보로 임명한 사건은 당시 러시아에 잘 알려진 사건이다.

푸시킨도 잘한 건 없었다.

600년 전통 명문 귀족 혈통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또 상류 사회에서 문어발 백작 부인을 비롯해 여러 유부녀들과 관능의 시간을 보냈다.

젊은 시절 한 방탕했던 푸시킨이었다.

시적 재능과 함께 말발이 좋아 여자들에게 먹혔다.

노바 형님의 러시아판 버전이었다.

물론 결과는 매우 안 좋았다.

푸시킨이 사망하고 아내는 장군과 재혼했다.

전형적인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 내 아내 욕하지 마라. 죽기 전까지 그녀는 수없는 영감과 사랑을 줬다. 뜨거운 피를 식혀주지 못한 내 잘못이다.

신이라 눈치가 빨랐다.

열녀비와 쌍벽을 이루는 열남비를 세워 줘야 할 것 같다.

“그때 왜 그러셨습니까? 대리 결투자를 내세워도 되지 않았습니까?”

- 남자가 쪽팔리게 대리 결투자는ⵈⵈ. 그건 돈 많은 유대 상인 놈들이나 하는 짓이지!

죽어서도 화끈한 러시아 남자다웠다.

“글쎄요ⵈⵈ. 때로는 그럴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즘 깨달은 게 많다.

내 재능과 타인의 재능이 같을 수는 없었다.

자신보다 재능이 넘치는 프로에게 부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살았을 때보다 죽고 난 뒤가 더 재미났다.

“재미요?”

- 결투했던 놈은 성병 걸려 죽고 지옥 갔다. 아내와 재혼한 장군 놈은ⵈⵈ. 황제에게 밉보여 역모죄로 시베리아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배고파서 얼어 죽었다. 아주 제대로 꼬숩더라.

이 정도면 악신의 중간 보스로 불려도 할 말 없었다.

“아내는요?”

- 마지막 꽃들은 더 사랑스럽네. 들판에 화려한 첫 꽃들보다도 우리 가슴에 슬픈 꿈들을 더 생생하게 일깨우는 마지막 꽃들ⵈⵈ. 그렇게 간혹 이별의 순간은 더 생생하네. 달콤한 만남의 순간보다도ⵈⵈ.

자신의 시로 화답하는 푸시킨.

“그래서 결론은요?”

- 자살했다. 그래서 그녀도 지옥 갔다.

“네???”

- 아름다움도 한 순간이다. 세월이 지나자 그 아름다움을 무기로 삼던 그녀는 자신의 초라함을 견딜 수 없었다. 꽃잎이 시들고 향기가 사라진 꽃에 벌과 나비가 오겠느냐?

아내의 마지막을 푸시킨이 지킨 것 같다.

질투했지만 사랑했기에 고통스러웠던 위대한 시인만이 의리를 지켰다.

- 넌 그러지 마라.

“네?”

- 젊은 시절 사랑은 특권이다. 남의 여자는 탐하지 말며 순간일지라도 사랑에 진실을 다해라. 어젯밤처럼 서로 위안과 위로가 되라. 소유하지 말고 순간 진심을 다하라. 그 규칙만 지키면 된다. 죽어보니까ⵈⵈ. 가장 바보스런 순간이 마음 떠난 상대를 소유하려 욕심을 부렸던 순간이었더라.

죽은 신들이 요즘 계속 말했다.

순간이라도 진심을 다해 사랑하라고ⵈⵈ.

사랑이라 말하며 소유하려 욕심내지 말라고 신들이 충고했다.

“충고 감사합니다.”

- 흐흐. 고마우면 가끔 불러서 좋은 구경 시켜줘라~.

음탕한 신ⵈⵈ.

살아서 버릇 죽어서도 못 감췄다.

“그 조건은ⵈⵈ.”

- 신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 신의 재능을 이용해 대가를 받은 당신에게 강제 조건이 발동되었습니다.

- 신이 포인트를 계약금을 듬뿍 지불했습니다.

- 신과 위약시 신계공정거래법에 의거하여 10,000배의 포인트를 지불해야 합니다.

“!!!”

떡 입이 벌어졌다.

어떻게 저게 공정거래법이란 말인가!

“어, 언제 재능을 이용했습니까!”

- 사랑의 묘약~ 그거 비싼 거다. 난 땅 파서 장사 하냐?

“그, 그건 제가 원해서 그런 게ⵈⵈ.”

- 그래서 싫었어? 싫은 놈이 여자를 그렇게 잡아먹을 듯 몰아붙여? 이런 나쁜 짐승 같으니!

할 말 없다.

항복이다.

귀신의 집에 들어온 대가라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대문호답게 말로 상대할 신이 아니다.

- 잘 부탁한다. 흐흐흐.

귓가에 속삭이는 푸시킨의 음흉한 웃음.

빨리 이 동네를 뜨고 싶었다.

똑똑.

그때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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