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2화 (252/1,284)

 # 252

회귀의 전설

252장. 홍콩에서(4)

“클라라……. 오늘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 줄리.”

“진짜 놀랍다. 순수의 상징 클라라가 먼저 시집을 가다니…….”

“신랑 봤어? 완전 멋있어! 클라라만 아니라면……. 내가 신부가 되고 싶어!”

“프랑스 귀족이라고 했지?”

“클라라 너 크게 한 건 할 줄 알았다.”

“고마워…….”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클라라가 친구들을 위해 웃었다.

들러리를 위해 홍콩까지 찾아와 준 대학교 친구들이다.

친구들은 클라라를 한없이 부러워했다.

누가 봐도 멋진 신랑이었다.

“은행장님도 왔다며?”

“뿐만 아니라 그룹 본사 고위급 임원들도 거의 다 왔대.”

“세상에…….”

같은 은행에서 근무했던 동료들도 수군거렸다.

10여 명이 넘는 여성 하객들에 둘러싸여 클라라는 인생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미소 짓는 클라라는 결코 만개한 꽃이 아니었다.

오늘이면 이제 그 누구의 아내가 된다.

프랑스에서 만났던 남편감은 누가 봐도 탐낼 신랑감이었다.

큰 키에 부드러운 금발, 푸른 눈동자와 자상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미국 유학파에 스포츠도 거의 만능급이었다.

클라라를 향해 언제나 자상했다.

지금껏 손만 잡아봤다.

그러나 클라라의 마음은 아직 남편을 향해 열려있지 않았다.

사랑을 느끼기에는 무언가 부족했다.

엄마의 일생이 계속 떠올랐다.

가문을 위해 희생하며 낯선 홍콩 땅에서 살았던 엄마.

클라라도 프랑스에서 그와 같이 살아야 할 것이다.

“하아.”

짧은 한숨이 나왔다.

친구들에 비해 결혼이 빨랐다.

지난 밤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했건만 오늘 따라 피부는 더 새하얗게 빛을 발했다.

거울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은 클라라가 봐도 아름다웠다.

괴수가 사는 성에 끌려가는 공주가 주인공인 만화가 떠올랐다.

어릴 적 단 한 번도 이런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함께 노을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미래를 꿈꿨다.

‘다니엘……. 정말 안녕.’

예식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두 집안이 장소와 방식을 타협했다.

홍콩에서 결혼하지만 예식은 성당, 바티칸에서 직접 보낸 사제를 통해 치러진다.

결혼 방식까지 거래가 되는 현실에 클라라는 한없이 서글펐다.

진짜 사랑이라면 아무도 없는 시골 성당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꿈이 돼버렸다.

거울에서 고개를 돌려 대기실 창문을 바라보던 클라라.

“아!”

신음을 흘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라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타다다닥.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멈추지 않고 대기실 문을 열었다.

“……다니엘?”

환상처럼 그가 보였었다.

비 젖은 채로 슬픈 미소를 보이던 그 사람.

그러나 환상이었다.

그가 이곳에 나타날 리가 없었다.

“클라라?”

그때 열린 대기실 문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

“루이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다정하게 묻는 남자는 예비 남편 루이스.

클라라를 향한 짙푸른 눈동자에는 걱정이 담겼다.

“아, 아니야.”

“힘들지? 그래도 힘내. 오늘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다정한 루이스의 목소리는 시를 낭송하는 시인처럼 달콤했다.

“어머! 진짜 잘 생겼다.”

“완전……. 이상형이야.”

클라라 친구들은 부러움의 목소리를 이구동성으로 뱉었다.

그러나 얼굴이 굳어버린 클라라.

“하아아…….”

긴 한숨만 쉬었다.

스스로 선택한 결혼이었다.

이제는 어설픈 감정을 버려야 할 때.

클라라는 머릿속에서 과거의 사랑을 포맷시켰다.

그리고 살포시 손을 뻗어 루이스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녀를 지켜줄 남자는 세상에 루이스 밖에 없었다.

***

“다니엘?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비비안은 핸드폰을 들고 중얼거렸다.

분명 찾아 온다 약속했는데 다니엘은 예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겨우 오늘에서야 통화 제약이 풀렸다.

아빠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클라라 언니는 차분하고 교양 있는 가문의 여식이었다.

어머니를 통해 귀족가 예법을 완벽하게 숙지한 클라라 언니를 아빠는 대단히 만족했다.

오빠도 새신부의 미모와 분위기에 흠뻑 취했다.

비어있던 성의 안주인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를 다니엘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아빠와 넌지시 얘기도 됐다.

오빠에게도 말해뒀다.

자연스럽게 결혼식을 통해 정식 교제까지 허락받고 싶었던 비비안.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다니엘은 상당한 실력의 투자자였다.

아빠도 흥미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뭘 그렇게 찾으십니까?”

그때 에두아르가 다가왔다.

“다니엘이…… 안 왔어요.”

비비안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었다.

오직 에두아르만 다니엘의 진면목을 봤다.

그렇기에 비비안을 도와줬다.

“네? 다니엘요? 안 왔습니까?”

에듀아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봤어요?”

비비안의 눈빛이 반짝였다.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습니다. 아가씨를 보러 갔습니다.”

“정말요? 그런데…….”

비비안은 사방을 둘러봤다.

작은 성당 안은 사람들로 만석이었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비비안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부탁해요. 에두아르.”

“기다리십시오.”

에두아르는 고개를 숙이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다니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불길한 느낌에 비비안은 심장이 떨려왔다.

땡! 땡!

본 결혼식을 알리는 미사종이 울렸다.

그리고 시작된 세기의 결혼식.

비비안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식장 안으로 옮겼다.

온통 머리에는 다니엘에 대한 걱정 밖에 없었다.

***

투두두두두둣.

빗방울이 거칠게 바닥을 때리며 튀겼다.

그녀가 있던 신부 대기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보았다.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한 순백의 신부 클라라.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던 시 한편이 떠올랐다.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그다지도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라. 너를 보고 있으면 서러움은 나의 가슴속까지 스며드누나…….”

하이네의 ‘너는 한 송이 꽃과 같이’ 라는 시.

신부 대기실 너머로 보였던 순결한 백합 같은 클라라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을 향해 웃고 있던 클라라는 그 어떤 때보다 아름다웠다.

차박차박.

비가 오는 홍콩 거리를 걸었다.

뜨거운 심장을 식혀주기에는 차가운 빗방울로 모자랐다.

슈트가 흠뻑 젖었다.

“이별은 사랑이 부족해서 떠나보내는 거다……. 사랑이…….”

클라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녀의 손을 잡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녀와 나의 선택이었다.

둘 다 목숨처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천장지구>라는 영화와 스토리 라인이 비슷했다.

리장창의 가문은 대단한 게 확실했다.

그에 반해 겉으로 드러난 내 존재는 미미했다.

결혼식 분위기로 비비안의 가문과 연결된 클라라 가문의 커넥션을 읽어냈다.

클라라의 남편도 봤다.

관상도 괜찮았다.

클라라가 있던 대기실로 향해가던 남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진심으로 신부를 좋아했다.

마지막으로…….

클라라가 손을 내밀어 예비 신랑의 손을 잡는 걸 눈에 담았다.

하늘이 사랑을 허락지 않음이 아니었다.

인간이 계산적이기에 하늘을 탓했던 것이다.

솨솨솨솨솨솨솨솻.

빗줄기가 더 강해졌다.

뜨거웠던 피가 식어가는 느낌이다.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이별 의식이 참으로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귀하기 전의 인생에서는 전혀 짐작도 못한 인연이었다.

과거 전생에 몇 번은 엮였을 클라라와의 인연.

이번 생도 아닌 것 같았다.

누구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지랄 맞게도 오네.”

길도 모르는 홍콩의 비 오는 거리를 걷자 천천히 단단히 굳었던 마음이 풀렸다.

클라라를 봤던 충격도 서서히 과거의 기억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클라라는 새로운 인연자의 손을 잡고 신 앞에서 굳은 맹세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잘 살아……. 그리고 행복하길 바래.”

유덕화가 오토바이를 타고 떠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유덕화와 난 달랐다.

그는 죽음을 향해 달렸지만 난 미래를 위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이 지나면 또다시 내일의 해는 떠오른다.

잠시 고통은 있을지언정 주저앉음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조우가 심장을 아프게 쑤셨지만 괜찮았다.

이 또한 지나가는 인생의 한 과정이었다.

스무 살 청춘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겠지만 난 절망의 삼십 대를 살아봤던 청춘이었다.

“같이 술 마셔줄 친구가 아쉽네…….”

낯선 이방인의 도시 홍콩.

사방을 둘러봐도 모르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 하나 없었다.

걷다보니 인적 드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

순간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기분 나쁜 느낌은 살기였다.

그것도 분위기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만큼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고수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멈춰졌다.

날 보던 리장창의 차가운 눈빛이 퍼뜩 떠올랐다.

이곳은 그의 영역인 홍콩.

리장창이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다.

스윽.

골목길 사이사이에서 각종 옷차림을 한 사내들이 나타났다.

손에 들린 새파란 날이 선 사시미급 단도는 나를 노렸다.

“뭐지? 비 오는 날의 환영인사치고는 과한 거 아냐?”

자세를 잡았다.

거추장스런 슈트 상의를 벗어 손에 움켜잡았다.

아공간을 열면 손맛 좋은 무기들이 존재했지만 뽑지 않았다.

오늘은 그녀의 결혼식.

비까지 오는데 피까지 보고 싶지 않았다.

“넌…….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왔다.”

숫자는 정확히 일곱.

선두에 선 자가 중국어로 말해왔다.

놈들은 자연스럽게 포위를 완성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자연스러웠다.

손에 들린 단도의 날카로움이 더해졌다.

내공을 사용하는 놈들이었다.

“리장창에게 가서 전해. 난 우연히 이곳에 왔을 뿐이라고.”

클라라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예의를 지켰다.

“……그분은 너의 목을 원한다.”

화해의 제스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론은 하나.

입가에 번지는 위험한 짐승의 미소 하나.

“그럼 막아 봐……. 다 부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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