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
회귀의 전설
250장. 홍콩에서 (2)
“장태산 씨?”
“누구십니까?”
로버트가 보내온 자가용 비행기를 타기 위해 도착한 김포 공항.
출국 검사를 마치고 비행기 게이트로 향하는 순간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한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다가왔다.
스윽.
지갑에서 보여주는 신분증.
“아니 저를 왜?”
영화에서나 봤던 국정원 직원이 나를 막아섰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으로 빼돌린 퇴직 직원이 있기에 긴장됐다.
국정원은 2008년도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이었다.
분단의 아픔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사법 기관 중 하나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차장님이 잠시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차장님요?”
국정원까지 빨대를 꽂으려고 대기 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적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기분은 상했다.
나를 지켜보고 있다가 가는 길목에서 막았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하겠지만 궁금증이 더 강했다.
국정원의 넘버 투로 불리는 차장급이 왜 나를 보고 싶을까?
“잠깐이면 됩니다.”
국정원 직원이 친절하게(?) 나왔다.
견적이 딱 나왔다.
“가시죠.”
“감사합니다.”
국정원 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공항 청사 내부로 들어갔다.
말로만 듣던 국정원 직원들의 비밀 사무실이 보였다.
입구에는 카메라와 경비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안보와 테러를 전담하는 부서답게 오가는 요원들 눈빛이 매서웠다.
이런 특별한 인재들을 댓글부대로 전락시킨 대통령과 그 부하들의 머리통이 궁금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그렇게 배워도 모르는 것 같다.
“들어가십시오.”
두툼한 문으로 차폐가 되는 앞에서 요원들이 멈췄다.
“몇 차장님이십니까?”
“정국종 1차장님이십니다.”
해외 파트를 담당하는 국정원 1차장.
로버트와 내가 오고 가는 걸 포착한 것 같다.
스르륵 가볍게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이는 한 남자.
창밖으로 비행기 계류장이 환하게 보이는 3층 건물이었다.
창밖을 보며 폼 잡는 중년의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M자형 탈모가 진행되는 중년 사내 정국종 1차장.
“어서 오십시오. 바쁘신데 귀한 시간을 빼앗았습니다.”
웃으며 맞이하는 1차장의 눈빛은 반짝였다.
나를 직접 보고 간을 보고자 했던 것 같다.
“높으신 분이 찾으신다 하기에 왔습니다.
“하하. 높기는 뭐가 높습니까. 인맥이 저보다 더 출중한 장태산 대표님 눈밖에 날까 걱정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나를 막고 이곳으로 불러?
그래도 태도를 보니 기본 예의는 있었다.
아직 미성년자에게 장태산 대표라는 호칭을 깍듯이 붙였다.
“전혀 눈에 안 납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렇게 만난 것도 좋은 인연 아니겠습니까.”
내가 호랑이 몇 마리를 상대해 봤다.
국가 공무원의 탈을 쓴 1차장에게 빙긋 웃었다.
좋은 인연을 강조하는 의도를 모르면 바보다.
한 번 안면 텄는데 원하는 게 뭔가?
서로 주고받을 게 있으면 확실히 까보자는 의미였다.
1차장 정국종은 바보가 아니었다.
미미하게 입술을 떨며 기쁨을 표시했다.
“아시다시피 이 직업이 그렇게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국가의 녹을 먹고 살지만 살림살이가 빠듯합니다.”
가장 저급한 태도다.
돈을 원하는 것 같다.
대놓고 살림살이 빠듯하다고 말할 정도면 알아들어야 했다.
“그렇죠. 공무원들이 박봉이죠.”
단, 당신 같은 도둑놈들 빼고!
“더 이상 승진 기회 잡기도 그렇고 퇴직하면 딱히 할 일도 없습니다.”
퇴직 후 인사 청탁까지 나왔다.
“연금으로 살기에는 아직 한창 젊을 나이죠.”
맞장구를 쳐줬다.
국정원 차장이면 상당한 권력이다.
오가는 말이 재밌었다.
오늘 아니면 이런 인연 만나기가 어디 쉽겠는가.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외 정보를 취급하다보면 국내에 입국한 위험인물 파악하기가 쉬웠다.
듣기로 국정원은 차장들이 핵심 중추였다.
그 안에서도 제법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그런 중추 중 한 사람이 나에게 동아줄이 돼 주기를 청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 알아본 것 같다.
“그러게 말입니다. 국가를 위해서 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은 강한데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승진 욕심도 내는 것 같다.
그것도 아니면 국회의원 배지라도 달고 싶다는 욕망을 내비치는 것이리라.
“능력 있는 분이라면 당연히 알아서 모셔가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능력을 보여줘 봐라.
그러면 내가 섭섭지 않게 챙겨주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정국종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말이 통한다는 걸 알아챘다.
“하하하. 젊은 분답게 대답이 화통해서 좋습니다.”
“시간이 황금인지라 계산이 빠릅니다.”
바쁜데 더 내놓을 메인 메뉴 없나를 물었다.
내 구미를 당길 그 무엇.
“위험한 친구들이 옆에 있더군요.”
정국종은 옆에 있던 탁자에서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중국인 사진들이 보였다.
전형적인 노가다 복장이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뭔가 있어 보였다.
“누굽니까?”
“자세히는 모르지만 위험인물들입니다. 대표님 주변에서 알짱거리기에 찍어봤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라는 흥정 신호가 오갔다.
구미가 당겼다.
A.T 씨큐리티 경호원들이 취급할 수 없는 고급 정보다.
적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더욱이 중국인이라면 요주의 인물이다.
과거 장주시에서 습격했던 살수들이 떠올랐다.
아마 이번에는 좀 더 강한 놈들일 것이다.
“불법 입국자들입니까?”
“……합법은 합법인데 불법이죠~.”
묘하게 웃는 정국종은 자신의 패를 내가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이분들 돈 많이 벌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면 안 되죠.”
처리 문제를 논했다.
“두 당 그래도 2장씩은 벌어가지 않겠습니까? 몸값이라는 게 있는데…….”
2억 신호가 왔다.
“바짝 벌면 그래도 3장은 벌겠죠. 요즘 노가다 일당도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수고하는데 3장까지 질러주겠다 의견을 던졌다.
“!!!”
정국종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당이 세다는 걸 알았다.
내 큰 배포도 맛봤다.
“그, 그렇죠. 3장씩은 벌겠습니다.”
말투가 정중하게 변했다.
돈질은 이 맛에 하는 거다.
“자금 세탁해서 본국에 송금하려면 복잡하겠습니다. 뭐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들 루트가 다 있겠지만…….”
돈 받을 안전한 계좌 유무를 물었다.
“당연하죠. 저 자식들 프로입니다. 절대 들키지 않는 루트가 많습니다.”
눈빛이 빠르게 오갔다.
돈만 보내주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정국종.
의외로 마음에 들었다.
이거 잘하면 돈만 주면 일 잘하는 상머슴 하나 구할 판이다.
“하하. 그렇죠? 제가 별걸 다 걱정했습니다.”
“나라 걱정도 다하시고 애국자신 것 같습니다. 요즘 짱개들이 곳곳에서 큰판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다 우리 국민의 피 같은 돈인데 말입니다.”
짱개라는 말에 보너스를 더 주고 싶었다.
가깝지만 결코 상종하지 말아야 할 종족이다.
신뢰는 없고 억지와 똥배짱만 부렸다.
중한파는 아닌 것 같았다.
“애국자는 아니고 걱정이 돼서 말입니다. 이런 놈들이 한국에 들어와 판을 벌이는데…….”
국가에서 알아서 못하냐는 물음이 담겼다.
“알게 모르게 뒤를 봐주는 놈들이 많습니다. 건달 같아 보여도 대단한 인맥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날 노리는 자들이 허접대기가 아니라는 걸 경고해왔다.
국정원 해외파트 수장이 말할 정도면 심각하다는 의미다.
중국 국가 기관과 유착됐다는 의미로 파악했다.
“잘 좀 도와주십시오. 아직 나이가 어려 돈 버는 재주밖에 없습니다.”
정종국이 짐작하는 것보다 돈 많다.
도와주면 섭섭지 않게 용돈 주겠다는 의미를 강하게 어필했다.
국정원 차장을 만나니 말들이 다 암호 같았다.
인생 참 어렵게도 산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국민을 음지에서 돕는 게 우리 국정원의 목표이자 의무입니다.”
말은 참 번드르르하게 잘 한다.
정치해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을 것 같다.
“[email protected]이 메일 주소입니다. 제가 참고할 만한 것들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애국 하시는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은데…….”
비밀 계좌를 전용 개인 메일로 보내라 말했다.
계약은 성립됐다.
“적당히 추려서 보내겠습니다.”
정국종 차장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정국종 차장님은 큰일 한 번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잘 보여라.
빵빵하게 밀어주마라는 신호도 보냈다.
“불러만 준다면야 성심성의껏 봉사할 자신은 있습니다~.”
내 밑에서도 일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면 서로 고맙겠죠. 능력 있는 분들은 환영 받는 법입니다.”
잘하면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의미.
아주 만족한 듯 정 차장 얼굴빛이 상기 됐다.
갑작스런 조우에 나도 만족했다.
“홍콩으로 출국하시나 봅니다?”
“네. 지인이 보자고 합니다.”
“…… 요 며칠 홍콩이 바쁩니다. 세계 각국의 비밀요원들도 대거 입국했다는 정보입니다.”
“그래요?”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주 안전에 신경 쓰는 정신이 마음에 확 들었다.
“조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홍콩에 가이드 한 명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소문은 안 났지만 일처리 하나는 끝내줍니다.”
정체 파악이 힘든 블랙 요원을 붙여주겠다는 정국종.
“하하. 이거 다음에 단단히 식사 한 번 대접하겠습니다.”
“장 대표님이 부르신다면 시간 꼭 비워놓겠습니다.”
돈은 국정원 차장도 미성년자의 말을 듣게 하는 마법를 부렸다.
손을 내밀고 악수를 건넸다.
그 와중에 손에 잡히는 쪽지.
이거 의외로 심장이 뛰는 일이다.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럼…….”
목례를 취하고 밖으로 나갔다.
짧지만 특별하고 알찬 인연의 시작.
하늘이 베푼 또 다른 안배 같았다.
***
“홍콩에 들어왔다고?”
“방금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는 정보입니다.”
“자가용 비행기라면…….”
“로버트 라이언이라는 월가 거물 소유입니다.”
“친분이 상당하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한국 쪽 파트너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으으음…….”
딸의 결혼식으로 인해 골치가 아픈 리장창은 얼굴을 찌푸렸다.
한때 눈여겨보던 한국 청년.
인연이 가볍지 않아 조용히 있기를 원했지만 우연의 일치로 결혼식 날에 맞춰 입국했다.
“클라라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집에서 대기 중입니다.”
요 근래 클라라의 통화 내역을 모조리 감시했다.
전혀 한국에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찝찝했다.
이번 결혼식은 성전기사단과 최소 20년 이상 동맹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세기의 기회였다.
와신상담의 기간을 통해 성장한 중화인민들을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었다.
2025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을 만들어야 했다.
초를 칠 수 없었다.
여차하면…….
“인(人)단에 협조를 요청하라.”
“……단주님의 명을 따릅니다.”
인단은 사람을 처리하는 전문 조직.
회에서 역량을 다해 치러지는 행사였기에 인단의 적극적인 협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홍콩.
중국에 반환된 땅이었기에 리장창은 거리낌이 없었다.
“조용히 있다가…… 살아서 돌아가라. 그게 내가 베풀 수 있는 마지막 예의다.”
한국에서 받았던 환대를 리장창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공과 사는 엄격하게 구분하는 리장창.
여차하면…….
살아서 한국 땅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몰랐다.
“그런데 무슨 비가 이리 오는지…….”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
홍콩 앞바다가 비바람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