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2화 (242/1,284)

 # 242

회귀의 전설

242장. 임준형 (1)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지금 세상이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야? 그래서 미국 연준이 발권력을 행사한다는…….’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었을 때부터 경영 수업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아유라의 머리는 복잡했다.

수업은 끝났다.

교수님이 한숨을 쉬며 강의 첫 시간이 끝났음을 알렸다.

장태산을 따로 불러 갔다.

경영학과 신입생들은 서로 얼굴을 보며 되물었다.

핵심을 꿰뚫는 학생들이 드물었다.

장태산이 쉽게 풀어줬지만 회사 경영을 하거나 환율 전문가, 고학년 경제학도가 아니라면 알아듣기 힘든 내용들이었다.

단 하나 연준이 월가가 망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돈을 푼다는 말은 들었다.

“그게 가능해? 교수님 말처럼 연준이 그럴 리가 있어?”

“만화책을 많이 본 것 같다. 일본 만화에도 그런 경제 용어들 많이 나오잖아.”

“맞아. 자기가 미래 경제학자도 아니고~”

“재수 없어 법대생.”

“내 말이~.”

법학과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여론을 주도했다.

아유라는 끼어들지 않았다.

노트에 오고 간 내용들을 정리했다.

‘만약 장태산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엄청난 돈이 된다.’

주식이 폭락 중이었다.

오양식품이 중소기업 수준이고 내수 위주의 사업체지만 관련이 깊었다.

오양사료는 전량 옥수수 같은 원재료를 수입했다.

비상이 걸렸다.

6개월 물량을 고가에 선물 매수했기에 손해가 컸다고 들었다.

그러나 만일 장태산 말대로 흘러간다면 반전이 일어난다.

‘미국 위기가 심화되면 국내 환율은 더 가치를 잃는다. IMF처럼은 아니더라도 최소 달러당 1500원만 돼도…….’

숫자가 휙휙 달라졌다.

아유라의 노트가 복잡한 수식으로 가득 찼다.

‘원자재가 폭락 중이지만 달러가 확 풀리면……. 곧 반등한다. 그때를 알 수만 있다면…….’

오양식품이 대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태산은 이제 겨우 법학과 1학년이었다.

그가 보여준 능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그렇다고 국제환율과 국제경제까지 꿰뚫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이동진 교수님이 감탄했지만 그건 어린 학부생에게 보이는 인정일 수도 있었다.

‘아쉬워. 뭔가 더 있을 것 같은데…….’

교수님과의 대화가 더 이어졌다면 얻을 게 많았을 것이다.

정확히 둘은 말을 끝내고 사라졌다.

“뭐가 그렇게 복잡해?”

가방을 챙기던 강현수가 아유라를 불렀다.

“장태산 쟤 뭐야?”

“너무 포괄적 질문 같지 않아? 딱 봐도 잘난 인간이잖아. 능력도 엄청나게 뛰어난~.”

“집이 부자야?”

“엄마가 재벌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는데……. 난 태산이 녀석이 의심스러워.”

“왜?”

“고등학교 2하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까지 학교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던 녀석이었어. 공부도 그럭저럭, 다른 능력도 별 볼일 없었지. 그런데 방학이 끝나고 완전 사람이 변했다.”

“어떻게?”

“학교 일진뿐만 아니라 장주시 깡패들도 태산이가 정리했다는 소문이 쫙 돌았어. 거기에다가 돈을 학교에 팍팍 뿌렸어. 학교 이사장님 아들도 날려버리고 완전 장난 아니었어.”

“그게 끝이야?”

“……그럼 뭘 바래. 저 정도면 넘사벽 스타지. 얼굴도 잘생겨~ 돈도 많아……. 아! 그리고 소문이 하나 더 있다.”

“뭐?”

“투자 회사를 경영한다는 소리가 있어.”

“투자 회사? 장태산이 직접?”

“친구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는데……. 나도 잘 몰라.”

‘투자회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알아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식 투자로 재미 좀 봤다는 소문도 있어.”

“주식까지?”

“잘은 몰라. 워낙 녀석이 신비스러워야지. 너도 같이 술 마셔봐서 알잖아. 미녀들이 태산이만 보면 뻑가는 이유가 뭐겠냐?”

“뭐, 뭔데?”

“너도 그렇잖아. 태산이 저 녀석 매력이 쩐다 쩔어.”

“…….”

아유라는 아니라고 말을 못했다.

“친구로서 충고하는데 어설프게 들이대지마라. 네가 우리 과에서는 잘 나가지만 쟤는 전국구? 아니 세계적이야. 고등학교 때 여자 친구가 홍콩에 있을 정도였어.”

“고등학교 때 홍콩 여자 친구?”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염장질에 자살하려는 놈들 많았다.”

아유라는 장태산의 화려한 과거에 숨을 죽였다.

미대 퀸카뿐만 아니라 법대 미녀도 장태산 주변에 얼쩡거렸다.

“포기해라. 아유라~ 그럼 얻을 것이다.”

“뭘?”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나 간다~ 여자 친구가 기다려서.”

가방을 메고 사라지는 강현수.

그도 아유라의 어장을 떠났다.

‘포기하면 얻는다고…… 포기라…….’

생각이 깊어지는 아유라.

몇 달 전 줄리엣을 연기할 때의 강했던 포부는 많이 사그라졌다.

넘사벽 법대생 장태산.

“에잇!”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적다가 아유라는 신경질을 부렸다.

세상에 태어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강적.

아유라 마음에 불만 활활 질렀다.

***

“담배 한 대 태워도 될까?”

“교수님 방인데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맙네.”

강의를 하다 말고 끝냈다.

이동진 교수는 나를 끌고 교수실로 향했다.

머릿속이 엄청 복잡할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심화되고 있어도 학자들은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버냉키의 행동은 그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미국 재무부는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과 패니매어를 국유화한다.

그걸 신호탄으로 본격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금액도 몇백억 달러가 아니라 2,000억 달러 정도로 엄청났다.

기업 하나 살리겠다고 대한민국 1년 예산을 쏟아부었다.

무식한 미국형님이니까 가능한 짓이다.

뿐만 아니라 리먼 브라더스도 파산시킨다.

월가에서는 난리가 난다.

묻지마 투매가 벌어졌다.

미국 정부는 놀라서 부랴부랴 씨티그룹에 수천억 달러를 보증하고 공적 자금도 투입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이미 시장은 패닉 상태였기에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금융시장의 위기가 실물경기로 옮겨간다.

거대 제조업체인 포드, 크라이슬러, GM이 파산 상태에 몰린다.

폭풍이 쓰나미와 함께 밀려왔다.

나야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환율로 꿀을 빨다 못해 공장을 차릴 지경이었다.

로버트를 통해 주식, 원자재, 채권 투자로 갈퀴로 돈을 쓸어 담았다.

버냉키가 던지는 달러를 받아내기 위해 대형 뜰채가 준비됐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오늘 고맙네.”

“뭐가요?”

“그동안 나태한 내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어.”

창문을 열고 담배를 시원하게 빨던 이동진 교수가 고마움을 전해왔다.

진심이 느껴졌다.

새하얀 머리칼이 품격 있어 보였다.

“하하.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됐네. 내가 바본 줄 아나.”

한국대 경영학과 교수였기에 눈치가 빨랐다.

“눈치채셨습니까?”

“애들이라 몰랐지 다른 교수들이 같이 들었다면 쥐구멍을 찾았을 거네.”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2020년을 살다온 전직 증권맨이었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변수는 당황하게 만드는 신들의 비장의 무기다.

“자네는 누군가?”

이제는 하도 들어서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시죠?”

이제 교수들과는 말 따먹기 할 정도 레벨이 됐다.

과거의 나는 이 때쯤 교수님들에게 학점을 구걸하며 살았다.

이제는 학점 따위 전혀 상관없었다.

지금은 학점이 아니라 교수들을 평가하는 때였다.

“뭘 알고 있는 건가? 외국 투자자와 친분이라도 있나? 그것도 아니면 예지력이 뛰어난 건가? 실전 감각이 뛰어난 공부는 어디서 했나? 과외를 받은 건 아닐 테고.”

질문이 폭풍 같았다.

그 정도로 놀란 게 분명했다.

“아는 건 없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말했듯이 전 실증학파입니다. 철저하게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했을 뿐입니다. 버냉키 의장은 투자자 입장에서 관찰 1호 대상입니다. 학문적이 아니라 철저하게 돈 문제로 말입니다.”

“투자자? 환율 투자자인가?”

“투기꾼이 정답 아닐까요? 고매한 단어보다 그 말이 더 진실에 부합한 단어입니다.”

“자금 규모는 얼마나 되나? 예상대로라면 괜찮은 투자 수익률을 얻었겠지?”

참 궁금한 게 많은 분이다.

교수님이라 해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니 경영학과 교수들은 돈 문제에 평생 연관되어 있다.

경영의 궁극적 목표는 이익이다.

내가 소유한 물건을 팔아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내는 기술의 집합이 경영학이다.

“적당히 벌었습니다.”

“말투로 보니 10억은 넘겠군.”

“교수님, 그건 고등학교 때 일입니다.”

“뭐, 뭐라고?”

고등학교 초기 수익률이다.

“1학년이면 아직 미성년자이지 않나?”

“법정대리인 동의하에 가능한 투자가 한둘입니까?”

날 지그시 바라보는 이동진 교수.

아직도 날 참새로 봤다.

아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대학교 1학년이 고등학교 때 10억 수익을 얻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럼 자본금이 100억?”

“좀 더 쓰십시오. 한국대 경영학과 교수님들도 그 정도 자산은 다들 있지 않습니까?”

“……1,000억?”

“교수님 통이 생각보다 작습니다.”

“끄응…….”

이동진 교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내 앞에 섰던 상당수 인사들이 저런 모습을 보였다.

“조는 아니지?”

빙긋 웃었다.

조 변호사님도 저런 식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진실이 오갔다.

굳이 입을 열어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은 알아낼 것이다.

한국대 경영학과 교수 정도라면 여러 곳에 엄청난 인맥이 존재했다.

어차피 요즘 들어 이곳저곳에서 내 정보를 캐내느라 혈안이 돼 있다.

조만간 싹 정리할 생각이라 부담이 없었다.

“미쳤군.”

“제가요?”

“아니……. 신들이.”

금융으로 10억 달러 규모 수익을 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 투자자들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신들이 제정신은 아니죠.”

“…….”

만나보니 불쌍한 신들이 사방천지다.

포인트에 목숨 거는 그들의 신생 부럽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정말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를 실행할 것 같은가?”

이동진 교수 눈에 열망이 뿜어져 나왔다.

투자가 목적이 아니라 동질 학문 연구자로서의 궁금증이었다.

“모르죠~ 일개 대학생이 뭘 알겠습니까~.”

“조금 전 강의 시간에 보였던 열정은 뭔가?”

“교수님…….”

“말하게.”

“경영학의 기본 공부 중 하나가 예측과 위험 회피가 아닙니까? 전 제가 아는 지식 안에서 해답을 얻었을 뿐입니다.”

알려줘도 못 먹는다.

누가 학생 말을 믿고 사업 계획을 세우겠는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들어도 될 내용이었다.

어차피 내가 뱉어낸 예측을 맞춰내는 경제학자들도 많았다.

단지 그들의 말을 확신하고 투자할 수 있는 배짱이 다들 없을 뿐이다.

오로지 나만 빼고 말이다.

“아니 난 믿겠네.”

“네? 정말요?”

“태산 군……. 말대로 양적완화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야.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야. 자네 말을 듣고 많은 걸 깨달았네.”

호오. 이 교수님 뭔가 있다.

오바마가 대통령 될 것까지 예상했다.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내 말을 따르면 교수님은 졸부 소리 들을 수 있었다.

“아니.”

“네?”

“지켜볼 뿐이야. 어차피 마누라 집안이 부동산 부자야.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데 왜 무리하게 투자를 하겠나.”

“그런데 왜?”

“호기심이지. 학문적으로 그리고 자네가 누군가에 대한 강한 연구심이라고나 할까?”

눈빛이 반짝거렸다.

교수님에게서 똘끼 충만이 보였다.

어째 주변에 정상인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

“조 단위로 제가 돈 벌었다니까요.”

미끼를 더 던져봤다.

“어차피 죽으면 다 똥 되네. 먹고 살 정도 이상은 괴로움이야.”

황당함을 넘어 신뢰가 갔다.

사상이 독특하면서도 정확했다.

함께 일을 도모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관상도 훌륭했다.

전형적인 학자타입.

배신이나 사업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정말 자네 정체가 뭔가?”

“저요?”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이럴 땐 꼭 핸드폰이 울렸다.

강의실을 나오면서 무음을 풀어놓길 잘했다.

그런데 모르는 번호다.

“받게.”

“여보세요?”

- 장태산?

처음부터 반말이다.

“누구십니까?”

삐딱하게 말이 나갔다.

- 우리 한번 만나야 하지 않을까?

“누구십니까!”

- 나? 윤아 오빠. 임준형.

“네? 그럼 임준형 부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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