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1화 (241/1,284)

 # 241

회귀의 전설

241장. 무법자의 방식

‘질문?’

이동진 교수는 어이가 없어 손을 든 학생을 쳐다봤다.

학기 초, 그것도 첫날부터 교수에게 질문을 던지는 학생은 흔치 않다.

던져 놓은 수업 커리큘럼에 정신이 나가 한숨이 터지는 게 정상이었다.

오늘은 기를 죽이는 자리다.

학생들의 미진한 발표에 융단 폭격을 가해 강하게 키워야 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느꼈던 건 공포였다.

한국식 수업 방식에 익숙해 있다 맞이한 발표로 인해 공황장애까지 앓았다.

뉴욕대학교 박사 과정은 쉽지 않았다.

토할 만큼 수많은 자료를 뒤졌다.

특히 글로벌전략 전공은 경영학의 토털 정수라 불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쉽게 말해 세계에서 통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박사 학위를 따고 그 열매를 후배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한국대 교수가 됐다.

수업 방식을 과감하게 바꿨다.

기계식 피동적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수업 방식을 추구했다.

스파르타의 일당백 병사를 육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졸업할 때쯤이면 어디 가서 한국대 이름을 팔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만들었다.

한국대 경영학과 학생들이 각 기업체에서 잘 나가는 이유였다.

능동적인 탐구와 문제 해결 능력이 앞으로 미래 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요구 됐다.

실력 없는 교수 소리 듣기 싫었다.

학기가 끝나고 나면 눈에 띄는 학생들이 나타난다.

그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쳐 학계에 진출시키거나 여러 업체에 소개하기도 했다.

교수로서 가장 큰 보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손을 들고 질문 있다 말하는 남학생이 나타났다.

경영관에서 보기 힘든 미남이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처럼 낯이 익었다.

‘법학과 장태산?’

누군지 알아챘다.

번번이 경영학과에 깨졌던 법학과를 구원한 인재였다.

“법학과 학생이 내 과목을 수강하기는 처음이군요. 말해보세요.”

법학과 교수들이 술자리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법학과 학생들을 반년 만에 단합시켜버린 구심점 같은 학생이라는 평가였다.

“교수님 이번 학기 강의에 대해 몇 가지 궁금점이 있습니다.”

“내 강의에요? 뭐가 궁금한가요?”

적극적인 자세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1학년 때는 주눅 드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지만 법대생은 질문하는 목소리에 힘이 가득 들었다.

젊음이 주는 패기였다.

“교수님은 이번 금융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 거라 예측하십니까?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의 행보와 전공에 대해서는 아십니까?”

“네? 버냉키요?”

‘지금 나 테스트하는 거야?’

이동진은 살짝 당황했다.

요즘 언론에 회자되는 벤 버냉키에 대해 학부생들도 알 것이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의 전공과 행보 전망까지 묻는 학부생은 드물다.

연계방식이 독특했다.

“교수님은 뉴욕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금 위기 상황에서 교수님은 화폐정책을 중요시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선봉인 시카고 학파를 지지하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뉴욕대 학풍도 시카고 학파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뭐야? 이 녀석???’

지금 1학년 경영학과 수준으로는 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자유경쟁원리를 경제 철학의 바탕으로 삼는 시카고 학파가 지금까지 대세였다.

뉴욕대 교수들도 그걸 따랐다.

자연스럽게 이동진 교수도 신봉자가 됐다.

시장기능을 중시하고 정부의 역할은 제한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세계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경제계도 함께 노선을 따랐다.

“개인적으로 국제무역에 관해서 상대적으로 생산요소를 적소에 분업 활용 가능한 시카고 학파를 좋아합니다. 물질은 한정적입니다. 자본 효율화와 배분 면에서 경쟁을 통한 자연스런 성장과 도태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한국 경제는 그 시장자유경쟁을 통해 엄청난 혜택을 입고 성장해 왔습니다.”

이동진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강의 첫날에 예기치 못한 강의를 하게 됐다.

흐뭇했다.

상대가 경영학과 학생이 아니라 법대생이라는 사실이 아쉬웠다.

“교수님 그 부작용으로 지금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정하십니까?”

“인정요?”

“시카고 학파는 자유방임주의 철학에 기초해서 설파되는 학파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처럼 프린스턴 학파는 통계학을 바탕으로 합니다. 위기 시에는 존재하는 경제 데이터에 기반해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경제정책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세계적 위기입니다. 학부생들이 다루기에는 주제가 광범위합니다. 격변하는 전쟁터에서도 신속한 데이터 업데이트와 경제 정책 수정이 요구됩니다.”

“장태산 학생 맞죠?”

“네. 법학과 1학년 장태산입니다.”

“시카고 학파가 완벽한 이론이 아니라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세계적 위기라는 데는 동의 못할 것 같군요. 미국발 서브프라임 위기가 진행 중이지만 미국은 발권국으로서 충분한 재정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잠시 지나갈 바람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국가 이익과 금융회사의 이익 추구는 서로 다릅니다. 그 안에 내재된 개인의 욕망 또한 어느 정도 통제되어야 합니다. 자유방임적인 사적이익의 극대화로 지금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껏 이뤄놓은 자유시장경제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자본시장은 계속 성장하게 설계되었습니다.”

“거품은 가끔 제거되어야 합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럴까요? 지금 연준의 금융정책은 시장경제에 맡겨놓고 있습니다. 월가에서 금융 기업들 간에 인수합병이 이뤄지겠지만 연준의 지나친 개입은 없을 것 같군요.”

“…….”

두 사람의 설전에 강의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감히 누가 나서지 못했다.

교과서에나 몇 번 들어봤던 학파들 이야기로 현 경제 위기를 진단했다.

1학년 학부생들이 나눌 수 있는 대화 수준이 아니었다.

‘장태산? 뭐야? 너 경영에도 관심 있었어?’

법대생이 경영학과 유학파 교수와 설전하는 장면에 아유라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건 설전이었다.

누군가 지식 끈이 짧다면 바로 무너질 판이다.

그 전쟁터에 장태산은 치열하게 임했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확신에 찬 표정이다.

“교수님. 제가 처음 질문했던 벤 버냉키의 전공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하겠습니다. 아십니까?”

“……스탠퍼드 대학 경제학 교수를 지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 교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수 시절 연방준비은행과 대공황 시대의 역할에 대한 연구로 거시경제학계의 거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계량경제학 분야에서도 특별한 성과를 냈죠.”

‘이 녀석 뭐야? 유학파야? 정체가 뭐야?’

이동진도 뉴욕대 재학 시절 말로만 들었던 내용이었다.

박사 과정을 준비했지만 교수들과 그렇게 친분이 돈독하지 않았다.

시카고 학파 추종자인 뉴욕대 교수들이었기에 프린스턴 학파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았다.

당시 시장경제 상황도 시카고 학파의 손을 들어줬다.

“버냉키 의장은 대공황 전문가입니다. 그가 연준 의장에 앉아 있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공화당은 본래부터 금융규제와 금융감독을 중시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좋아하는 캐릭터죠.”

“아닙니다. 미국은 이 사건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예견요? 지금 장태산 군은 현재 위기가 대공황에 비견된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까?”

“네. 대공황과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이동진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설프게 경제학 서적 몇 권 읽은 학생과 너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짜리다.

세상 경험도 미천하고 실물경제나 시장경제를 논하기에는 공부가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나눠보는 1학년 학부생과의 대화에 심취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하기는 한데…… 아직 멀었지.’

어리광 같은 말을 더 나눌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경제가 위기를 맞고 있긴 하지만 대공황은 아니었다.

IMF와 같은 아시아 금융위기와 같은 독감 정도 수준이었다.

대형 금융회사들의 투자 손실이 과하게 부풀려졌다.

이런 때 인수합병을 통해 자연스럽게 금융회사들은 자본과 덩치를 키운다.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었다.

이동진 교수가 알고 있는 경제 지식이 그걸 말했다.

며칠 전 교수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인정한 부분이다.

학부생과 말 따먹기 할 만한 주제가 아니었다.

“교수님. 연준은 곧 QE를 시작할 겁니다.”

“뭐라고? QE?”

이동진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다.

‘양적완화 정책도 알아? 이 녀석 뭐야?’

교과서에나 나오는 비현실적 경제정책이다.

2008년 도에는 학부생은커녕 대학원생들이나 몇몇 꺼낼 말이다.

거의 사문화된 경제정책 용어를 사용하는 장태산.

꿀꺽.

이동진 교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부터 전혀 주눅 들거나 동요하지 않았다.

확신에 찬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천재?’

갑자기 의문이 확 치고 들어왔다.

세상을 살다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들이 있었다.

자신도 똑똑한 축에 들었지만 미국 교수들 중에는 미친 천재들도 많았다.

그때 느꼈던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피를 타고 돌았다.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자칫 잘못 대답했다가는 학생에게 밟힌 교수가 될 수도 있었다.

“장태산 군, 지금부터는 농담으로 대하지 않겠다.”

목소리가 딱딱하게 나갔다.

“전 처음부터 진실만 전했습니다.”

이동진은 자세를 바르게 잡았다.

“양적완화에 대해 얼마나 아나?”

“Quantitative easing 단어의 약자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이 갑작스런 금융시장의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경기부양, 국채 매입 등의 다양한 금융자산을 매입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정책을 말합니다.”

정확하게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사용한다면 그 파장은 엄청나다는 건 알고 있나? 세계기축 통화국이 양적양화라니……. 일본도 제로금리 시절에 양적완화 정책을 폈지만 아무 효과도 못 봤다. 그런데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켜 물가를 올리는 양적완화를 연방준비은행에서 시행한다? 그걸 증명할 수 있나?”

철저하게 대립자로 상대했다.

어리바리 대화를 나눴다가는 지켜보고 있는 학부생들이 소문을 낼 것이다.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교수로서 엄청난 명예를 훼손당할 수 있었다.

“일본식 장기침체로 인한 양적완화와 미국의 양적완화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뭐가 말인가?”

“일본의 장기불황은 인구감소로 인한 장기침체의 결과입니다. 부동산에 물려버린 대출자들에게 양적완화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미국식 양적완화는 효과를 볼 겁니다.”

“확신하는 이유는?”

“미국은 발권국이니까요.”

“그게 무슨 말인가?”

“정책금리가 앞으로 0프로가 될 것입니다. 초저금리 상태에서 연방은행이 취할 수 있는 금융정책은 극히 드물게 됩니다. 재정도 부실한 상태죠. 기준금리를 조절해 간접적 유동성 조절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럴 때는 발권국이라는 프리미엄으로 시장에 무지막지한 통화량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게 말이 돼? 연방은행이?’

이동진은 장태산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의문에 빠졌다.

지금 월가에서 들려오는 파열음이 심상치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자유경쟁무역의 선도자다.

‘알고나 하는 소리야? 지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는 예측인 줄 아는 거야?’

연방은행 정책을 예견한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공포에 질린 시장에서 우량회사채를 구입하면 수익률이 장난 아니다.

주가 투자 및 금리투자도 만만치 않았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비유도 안 됐다.

이동진의 손이 촉촉하게 땀에 젖었다.

똑똑한 경영학과 학생들은 머리에 구겨 넣으려고 했지만 의미를 몰랐다.

거시와 미시경제의 복합 이해만큼 어려운 대화였다.

그걸 장태산은 쉽게 풀이해줬다.

알아서 챙겨 먹으라는 절대자의 배려 같았다.

“방식은?”

이제 이동진이 궁금했다.

미래를 예측하는 장태산의 말에 목이 바짝 타들어갔다.

“국공채나 RP, 통화안정증권매입 같은 간접적 이자율변화가 아닌 시중에 유동성을 직접 공급할 것이라 예측합니다.”

“그 기준과 대상은?”

“거대 금융기관이 유동성이 빠진 상황에서 연준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을 겁니다. 이전에 거래하지 않던 회사채, MBS, CDO 등에 직접 공급하지 않겠습니까?”

웃으면서 반문하는 놈이 이제 무서워졌다.

정확하게 금융정책을 꿰뚫고 있었다.

이건 대학원생을 뛰어넘는 연구원 수준이었다.

“디폴트 우려가 있는 민간자산을 매입한다고? 연준은 민간은행을 상대하지 않아. 그게 그들의 전통이야.”

이동진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망하게 생겼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망한다고?”

“경제는 심리입니다.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느끼는 바와 월가에서 느끼는 공포는 색깔이 다릅니다. 그곳은 지금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의 한복판이 됐습니다. 그런데 전통요? 언제 전쟁이 양심적이었습니까? 하하하하하하하.”

이번에는 장태산이 웃었다.

쿵!

이동진은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며칠 전 뉴욕대 동문에게서 전화가 왔고 해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로는 했지만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한국대 교수는 한국이 망하기 전까지 해고될 위험이 희박했다.

그러나 장태산의 말은 피부를 파고들었다.

“차라리 그러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왜요?”

“왜라니. 그게 지금껏 시장불안 요소를 잠재우는 효과적인 방식이니까…….”

“무법자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놔두고 신사인 척하라고요? 그건……. 순진한 경제학도들의 희망이 아닐까요?”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동진은 똑똑히 알아들었다.

웃고 있는 장태산.

교수님처럼…….

이라는 말을 생략했다.

“하아…….”

이동진 입에서 밀려나오는 긴 한숨.

뼈저리게 느껴지는 패배감.

‘저놈은……. 위, 위험한 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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