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
회귀의 전설
238장. 보너스
“장태산이라는 자가 뛰어나다고요?”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그런데 왜 이렇게 보고가 늦었나요?”
“그게……. 비서실에서 통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현이는 알고 있던데요?”
“……죄송합니다. 부사장님.”
오정 전자 부사장 집무실에서 임준형은 직속 라인 전무에게 보고를 받았다.
안경을 쓴 샌님 같아 보이지만 임준형은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다.
호부(虎父) 밑에 견자(犬子) 없다는 말을 가치로 증명했다.
타고난 사업 감각은 임성철 회장에 버금갔다.
자식들 중에 유일하게 먼저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차 전무님. 아현이가 생각보다 욕심이 많아요. 잘 지켜봐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파악하겠습니다!”
오정 전자 전무 차현태는 고개를 바짝 숙였다.
임원은 모두 사내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이 없을 경우 2년 정도 버티다 모두 잘려 나갔다.
퇴직이 보장되지 않는 까닭에 더 치열하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개중에 차현태는 운 좋게 듬직한 동아줄을 잡았다.
다음 대 오정의 주인이 될 임준형의 수족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임아현 전무보다 정보를 늦게 획득했다.
“나가서 일 보세요.”
“그럼.”
임준형은 보고서를 받고 눈빛을 빛냈다.
“어라? 이 자식 진짜 스무 살이야?”
나이에서 시작해 보기 좋게 정리된 보고서를 보며 임준형은 흥미를 보였다.
요즘 와이프와 사이가 나빠 머리가 아팠다.
회사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막내 여동생 때문에 알게 된 장태산이라는 이름.
“한국대 법학과에 자산이……. 나보다 부자네? 푸하하하하하하.”
임준형이 사무실이 떠나가라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은밀하게 상속이 진행 중이라 재산이 아직 수면 위에서는 잡히지 않았다.
비상장 회사 인수와 그를 통한 그룹 사업체 간의 합병으로 경영권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중이었다.
아버지와 장한수 실장이 일을 꾸몄다.
호텔과 오정 모직을 비롯 몇몇 사업체가 여동생들에게 상속되었다.
하지만 핵심은 임준형이 물려받기로 약속이 됐다.
가문의 장손에 대한 사업체 상속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 임아현이 발톱을 보였다.
아진이나 윤아와 달리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부리는 욕심과 달리 사업적 수완은 특별나지 않았다.
그래도 오정 식구라는 사실만으로 위협이 됐다.
어쩔 수 없이 물려받게 될 계열사 주식은 임준형에게 비수가 될 것이다.
와이프와 이혼 얘기가 나오는 상황인 만큼 재산을 분할해줘야 할 판이다.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 접하게 된 장태산에 관한 정보.
“물건이네……. 물건.”
임준형은 진한 호기심을 보였다.
아버지 임성철 회장이 공부하는 막내를 불러들였을 정도로 대단한 놈이었다.
집안은 평범했다.
엄마가 동룡 그룹 핏줄이었지만 버림받았다.
아버지는 평범한 남자였다.
“아버지가 인정할 정도라면……. 새로운 적인가? 그것도 아니면…….”
도련님 같은 임준형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적과 동지는 확실하게 구별했다.
“만나봐야겠군. 우리 막내 동생 짝이 될 수도 있는데~.”
무료한 일상에 던져진 파장에 임준형은 생기가 돌자 흡족했다.
혈육의 정이 강하지 않지만 그래도 피붙이였다.
특히 막내 여동생은 유달리 어릴 적 오빠를 잘 따랐다.
아내와 자식이 생겨 분가한 이후로 연락이 뜸했지만 그래도 정이 남았다.
그런 여동생이 마음에 들어 하는 녀석이었다.
아버지가 승낙한다 해도 자신이 반대할 수도 있었다.
임 씨 잡안에 해가 된다면…….
한국을 떠나야 할 것이다.
***
뭐지? 갑자기 등골이 싸해지는 기분은?
“대표님. 지금 얘기 듣고 계신 거죠?”
“어? 그, 그럼요.”
“어디까지 얘기했어요?”
“돈이 없어 피자박스 디자인했다는 것까지 했습니다.”
“듣고 있었네요?”
“그럼요~ 사업 보고회 자리인데.”
여자 둘이 모이면 무섭다는 걸 알았다.
덥석 품에 안긴 도도희 상무가 품에서 벗어나자 유세라 팀장도 가볍게 안겨왔다.
미국에 살다보니 익숙해진 스킨십이라고 자연스럽게 거짓말도 보탰다.
어찌나 유세라 팀장 심장이 뛰는지 내 심장으로 이식되는 줄 알았다.
그 다음 시작된 사업 보고회.
술 한 잔 빠질 수 있겠냐며 회사에서 가까운 일식집 룸을 잡았다.
도톰한 회에 사케를 마셨다.
소주보다 부드러운 녀석을 두 여인은 잘도 마셨다.
그리고 시작된 무용담.
“대표님. 어떻게 에어비엔비를 아셨어요? 창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도도희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봤다.
사람 떠보는 데 선수인 도운중 회장 핏줄다웠다.
뭔가 알아내려는 집요한 눈빛이다.
“두 분 다 인터넷 서핑을 하세요. 가끔 가다가 정말 느낌이 팍팍 오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럼 이 회사도 그렇게 찾아낸 거예요?”
유세라 팀장이 물었다.
“당연하죠. 심심하던 참에 이것저것 보던 중에 딱 눈에 띄지 뭡니다. 세상에 없던 숙박형 공유 플랫폼이라니……. 정말 기발하지 않습니까? 해외에서 가정집처럼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서비스라니……. 이거 딱 봐도 돈 냄새 나지 않습니까?”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지난 생에는 말만 들어봤고 이용도 못해봤던 서비스다.
여행할 돈도 없는 나에게 여인숙만도 감지덕지였다.
그렇지만 에어비엔비가 호텔 경쟁 상품이 되었다는 건 잘 안다.
타국에 놀러가 그곳의 일반 가정집에서 싸고 편하게 머물 수 있다는 환상은 충분한 메리트가 됐다.
고객의 잠자던 판타지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었다.
“역시! 우리 대표님 멋져!”
유세라 팀장이 하트 뿅뿅 날린다.
술을 마셔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이제는 무섭다.
임윤아도 저랬다.
“하여간 우리 대표님 촉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래서 정확히 투자 내용은 어떻게 됐습니까?”
믿고 맡겼기에 아직 정확한 보고를 받지 못했다.
로버트가 변호사를 비롯해 투자회사를 투입해 적절하게 주식을 나눴다.
내가 요구했던 주식은 49퍼센트 수준이었다.
“당연히……. 성공했죠! 로버트 라이언이 이것저거 많은 도움을 줬어요. 법률 자문 및 투자회사도 소개해 줬어요.”
도도희가 흥분했다.
한국에 와서 팽팽 놀다가 떨어진 일거리에 만족한 것 같다.
“사업 가능성은 어떻습니까?”
냉정한 사업가 면목도 보였다.
미래에 큰돈이 되겠지만 나에게 큰 매력은 없었다.
소소하게 직원들 보너스 줄 정도면 됐다.
“정말 놀라웠어요. 조 루비아, 브라이언 자인스, 블레차르비크 세 남자 성공하고도 남을 것 같았답니다. 패기와 열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쩔었어요.”
도도희 말투가 톡톡 튀었다.
“도희 말대로 성공하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진실한 사람들 같았어요.”
에어비엔이 공동 창업자들이 독특한 매력을 소유한 것 같다.
나 말고는 한 눈 팔지 않던 두 여자가 호감을 보였다.
상당히 괜찮은 사업가들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대표님보다 한참 밑이었으니 긴장 푸세요~.”
도도희 눈치 하나는 기가 막혔다.
“데이트 신청 안 받았습니까?”
“어머 그걸 알고 계셨어요?”
유세라 팀장은 도도희에 비하면 꼬리 한 개 수준이다.
“당연하죠. 걸출한 미녀들 앞에서 국적과 인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도 항상 설레는데~.”
“정말요?”
유세라 팀장이 발그레한 볼로 묻는다.
“언니 속지 마. 바람둥이들은 언변의 마술사들이야. 내가 딱 냄새를 맡아봤는데……. 대표님 그사이 하나 더 건진 것 같아.”
헐! 대박!
도도희 혹시 선무당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에이 설마~, 대표님 바쁜 분이야. 그리고 프랑스에서 사고 친 것도 얼마 안 됐는데 벌써? 최소한의 양심은 있으시겠지~.”
유세라 씨 미안합니다.
전 양심도 없는 놈인 것 같습니다.
괜히 심장이 쫄리고 입술이 떨렸다.
아직은 완벽한 바람둥이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언니 내 촉을 믿어. 대표님 몸에서 묘한 향기가 나……. 뭐랄까? 고귀하면서도 단아한 그런 향이랄까?”
도도희 상무가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듯 묘사했다.
도도희 엄마가 의심스러웠다.
“아니에요. 대표님. 우리 엄마 평범한 미녀세요~.”
“!!!”
독심술을 수련한 사파의 고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도희는 눈빛만 보고 내 마음을 읽어냈다.
그리고 웃는다.
그녀의 미소에 고개가 알아서 돌아갔다.
괜히 눈 마주쳐봐야 깊은 속까지 들킬 것 같았다.
“심리학이 부전공이었어요. 그리고 담당 교수님이 유명한 영술사였어요. 흐흐.”
국산이 아니라 외국산 무당 제자다!
“하, 하하. 어쩐지 영험하다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막 귀신 보이고 그런 건 없으니까 안심하세요. 심리학과 묘하게 얽힌 내 남자의 행동 파악 정도니까요.”
내 남자란다.
조만간 미국에 사무실 하나 내야 할 것 같다.
한국에만 있다가는 사고 연속일 것 같았다.
“오오오! 도희 짱!”
“언니. 우리 합심해야 해. 세상에 많은 여우들 틈에서 우리 대표님 확실히 지켜드려야지.”
“물론이지! 나 시집도 안 가고 사무실 문 지킬게!”
앞으로 두 사람은 묶어서 휴가 보내리라 다짐했다.
오고가는 와중에 둘이 스토리를 짠 것 같다.
“시집들 가세요~ 내가 특별히 강남 50평대 아파트 외 혼수 일체, 1년짜리 신혼여행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유급으로!”
“대표님. 꿈도 꾸지 마세요. 그냥 대표님 밑에서 일하고 보너스 받을래요~.”
도도희가 고개를 젓는다.
“대표님 저 회사에 뼈 묻으려고 유골함까지 가져다 놨어요. 버리신다면…….”
유세라 팀장 말이 섬뜩 했다.
버리면 귀신 돼서 꿈에 나타난다는 협박이다.
“투자 금액과 지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분 15프로. 우리 쪽 투자 금액은 100만 달러. 로버트 쪽 연결된 투자자들은 400만 달러에 34프로 결정됐습니다.”
대박이었다.
500만 달러로 미래에 수백억 달러짜리 회사 대주주가 됐다.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을 넘는 투자 수익이다.
“잘했습니다. 두 분께 보너스로 2억씩 드리겠습니다.”
“네? 2억요? 저, 정말요???”
유세라 팀장이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반 직장인에게 이렇게 통 크게 쓰는 상사 없다.
“대표님……. 이 투자 최소 수십억 달러짜리죠?”
도도희는 통이 확실히 컸다.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았다.
“장기 투자 회사입니다. 그리고 미래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냥 투자의 일종입니다.”
그렇다고 걸려들 내가 아니다.
“망하면 그냥 마는 거죠~.”
미래를 아는 자만이 표출할 수 있는 여유를 부렸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다음에는 꼭 미국 웅담 구해오겠습니다! 백방으로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회색곰 쓸개가 그렇게 좋다는데……. 반출하다 걸리면 종신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해서…….”
유세라 팀장은 잘 나가다 가끔 저렇게 맹할 때가 있다.
도대체 그걸 먹여서 어디에 쓰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독특한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시간들이 좋았다.
톡톡 튀는 미녀들과의 일과가 불편하다면 그건 지난 생을 망각한 천벌 받을 짓이다.
“우리 거국적으로 한잔할까요? 보너스 2억 받았는데 오늘은 제가 쏩니다!”
도도희가 잔을 높이 들었다.
얼음통에서 건져 낸 차가운 사케향이 청량하게 퍼졌다.
“건배!”
셋이 동시에 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오늘 2차는 그럼 내가 쏩니다!”
흥이 오른 유세라 팀장이 2차를 외쳤다.
“그럼 난 3차?”
“대표님은 평생 쏘세요!!!”
“맞아! 대표님은 평생! 키키키.”
두 사람의 웃음이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이 이번에 벌어다 준 돈과 카르마 포인트가 쏠쏠했다.
장담 못하겠지만 평생 쏠 수도 있었다.
두 사람과 나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보이지 않아도 점점 돈독해졌다.
함께 하기에 단단해져 가는 감정의 교류가 좋았다.
서로를 아껴주고 있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미래를 알 수 없지만 오늘의 행복한 이 순간을 우리 모두 추억할 것이리라.
띠리리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다.
그것도 국제 번호.
통화버튼을 눌렀다.
- 다니엘?
순간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