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6화 (236/1,284)

 # 236

회귀의 전설

236장. 한강의 괴물

- 실례지만 잠시 의원님과 차 한잔하실 수 있으신지요?

“지금 말입니까?”

황당한 사건의 연속이다.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인맥을 심겠다 생각하자마자 연락이 왔다.

신들이 계획한 것처럼 말이다.

- 네. 대표님.

목소리가 정중했다.

양우석 국회의원에 대해 대충은 안다.

내가 장주시에서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분이다.

한국자유당 후보가 성추문으로 개박살 난 뒤에 어부지리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는데, 나와는 별다른 접점은 없었다.

본래는 다음 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2020년 총선 후에 합동민주당 원내대표가 된다.

순박한 얼굴과 달리 제법 강단 있고 우직한 스타일이다.

“무슨 일입니까?”

-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십니다.

국회의원도 정보력이 빠삭했다.

조용히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알아챈 것 같다.

“저에게 고마워할 일이 전혀 없을 텐데요.”

일단 한 번 뺐다.

내가 계획했던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국회의원과 자주 조우하면 좋은 꼴 못 본다.

정권이 바뀐 뒤 본격적으로 사찰이 시작된다.

오바마가 대통령 되기 전까지 몸을 사릴 필요가 있었다.

- 잠시면 됩니다. 부담 되시면 한강에서 캔 커피라도 한잔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한강?

나쁜 장소는 아니다.

“1시간 후에 여의도선착장에서 뵙도록 하죠. 의원님만 나오셔야 합니다.”

뭔가 느낌이 왔다.

양우석은 나로 인해 정치입문이 빨라졌다.

인연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 알겠습니다.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하관우 회장이 의문에 찬 눈으로 본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보자고 합니다.”

“회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정치인들 신뢰하지 마십시오. 정치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듯 그들 정치인의 신념과 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현 야당의원들 속에 변절자들이 많습니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야당의 탈을 썼지만 여당보다 더 나쁜 놈들도 많았다.

이합집산으로 신념을 저버린 자들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었다.

정치인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인간부류 중 하나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정치라는 인간 욕망의 정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권모술수에 능해야 한다.

“누가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하관우 대표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한 몸 희생해 똥물에 뛰어들어 그 똥물 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살신성인이다~.”

***

스륵 스르륵.

양우석 국회의원은 반팔, 반바지 운동복을 입고 자전거를 몰았다.

8월의 무더위에 한강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있었다.

보좌관이 준비한 자전거를 타면서 주위를 살폈다.

초선의원이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사찰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불법인 줄 알지만 긴급한 통화는 대포폰을 이용했다.

장태산 대표와의 연락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런 당선에 양우석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상당한 표차로 한국자유당 의원이 앞섰다.

오주혁 의원은 쟁쟁한 안아 그룹의 핏줄이었기에 물리치기가 벅찼다.

더욱이 여론을 이용한 치졸한 한국자유당의 행태에 많은 국민들이 합동민주당을 선택하지 않았다.

10년 정권 동안 맛있는 꿀물을 빤 죗값이었다.

밑바닥부터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양우석은 피눈물을 삼켰다.

친일파 후손들과 기득권자들의 대변자로 전락한 여당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대형 언론사들도 돈 봉투를 받고 정권 나팔수가 됐다.

합동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때보다 한국자유당이 정권을 잡을 때 돈을 더 챙길 수 있었다.

비정규직 문제도 짬짬이로 통과시켰다.

의석수가 작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국민들의 심판은 준엄했다.

입이 열 개라도 뱉을 말이 없었다.

급했기에 어중이떠중이들을 받아들인 대가였다.

신념 대신 권력에 취한 다선 의원들 문제도 컸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새 인물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초선의원인 자신에게는 힘이 없었다.

그러다 알게 된 장태산 대표에 대한 정보.

보좌관이 은밀히 내용을 전달해 왔다.

안아 그룹 외국계 기업 인수에 깊숙이 개입한 인물이 스무 살 청년 장태산이었던 것이다.

그가 소유한 투자 건물에서 안아 그룹 인수팀이 가동됐다.

양우석은 그가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정보를 파악했다.

그나마 국회의원이었기에 가능한 동원력이었다.

그리고 알아낸 결과물.

‘인간이 맞긴 한 거야? 그 나이에 이룰 수 있는 신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

알면 알수록 경이를 넘어 경악 그 자체였다.

투자의 귀재가 아니라 신이였다.

파악한 재산 규모만 3조 원에 육박했다.

고급 정보였지만 어렵게 획득했다.

그가 안아를 무너트린 장본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확인하고자 노력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다.

외국 투자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누가 봐도 대규모 전략적 M&A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예민하게 발달한 촉으로 양우석은 장태산이 자신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켰음을 알았다.

안아를 무너트리면서 동시에 오주혁 의원까지 날린 것이다.

어부지리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하늘이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야당 국회의원 수가 턱없이 부족할 때 힘을 발휘하면 미래가 보장됐다.

장주시에서 추진되고 있는 대규모 개발 사업 소문이 들렸다.

끈을 따라가다 보면 안아, 아니 이제는 TS라 불리는 그룹과 장태산 투자회사와 연결되었다.

지방에서 민심은 투자유치로 판가름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장주시 또한 마찬가지다.

안아 그룹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줬던 오주혁은 그걸 미끼로 국회의원이 됐다.

더군다나 새로운 공장이나 산업시설이 들어오면 젊은 인구가 유입 된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유리했다.

스르륵 스르륵.

양우석은 천천히 자전거를 몰며 여의도 선착장으로 향했다.

따라오는 자는 없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두근두근 양우석 심장이 뛰었다.

한국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 선배로 불릴 수도 있지만 긴장됐다.

인간이 아닌 괴물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2년 전 개봉했던 영화 ‘한강 괴물’이 떠올랐다.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가 생각날 정도로 손에 땀이 배었다.

“!!!”

그리고 양우석은 봤다.

선착장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는 한 남자.

하얀 셔츠에 평범한 청바지를 입고 있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아우라가 보였다.

정치 거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자체발광 포스였다.

꿀꺽.

양우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자전거를 몰고 그에게 다가갔다.

사진으로 봤던 옆얼굴이 보였다.

장태산, 그가 맞다.

끼이익 자전거가 자연스럽게 멈췄다.

한강을 보던 괴물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셨습니까~.”

반갑게 건네는 인사가 친근했다.

“양우석이라고 합니다.”

“장태산입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나눴다.

아귀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바쁜 시간에 불러내 미안합니다.”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의원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뭐지? 이 압도당하는 기분은?’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다.

지나가는 여자들이 대놓고 쳐다볼 정도로 출중한 외모다.

하지만 모습과 달리 풍겨내는 기운은 대기업 회장 수준이었다.

양우석은 움츠려드는 자세에 힘을 넣어 버텼다.

“한잔하시겠습니까?”

장태산 왼손에 들린 비닐봉투에 시원한 맥주가 들어 있었다.

날도 덥고 긴장했던 양우석은 갑자기 목이 바짝 탔다.

“자전거도 음주운전하면 안 되는데…….”

동시에 알고 있는 상식이 발목을 잡아 맥주 캔을 받지 못했다.

국회의원이 한강에서 음주하고 자전거 탔다고 알려지면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가끔 이런 일탈도 즐겨야죠. 제가 아는 분이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장태산은 맥주를 손에 들고 바로 건네지 않았다.

묘하게 웃었다.

양우석은 장태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건네는 말속에 장태산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을 것 같았다.

“선악불이(善惡不二)”

“???”

선과 악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말에 양우석은 의문이 들었다.

어린 친구가 뱉기에는 많이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선과 악은 실체가 없어 평등하다. 다만 그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뿐이다. 뭐 그런 뜻이지요.”

선문답이었다.

양우석의 인상이 살짝 굳어졌다.

고작 스무 살 청년이 뱉을 말이 아니었다.

인생 선배에 대한 도전 같았다.

“자칫 위험한 오류에 빠질 말이군요. 선과 악은 언제나 뚜렷합니다. 그렇기에 선을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일생을 가꾸는 겁니다.”

양우석 말투에 힘이 들어갔다.

양우석이 좋아하지 않는 양비론과 맞먹는 수준의 발언이었다.

“간단히 물어보겠습니다. 농부가 잡초와 벌레를 제거하기 위해 농약을 뿌리는 행위는 선입니까? 악입니까?”

장태산은 미소를 잃지 않고 물러서지 않았다.

“…….”

양우석은 일순간 말문이 막혔다.

인간과 자연 입장에서는 분명 대립되는 질문이다.

“양봉업자가 벌의 꿀을 뺏는 것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더 할 말이 없었다.

궤변론자들이 모든 것에서 해답을 찾는 상황 같았다.

둘 다 선과 악이 공존했다.

그 대상이 인간이냐 벌레나 곤충이냐의 입장에서 차이가 갈릴 뿐이었다.

“젖소에게 물을 주면 우유가 되고, 독사에게 물을 주면 독이 됩니다. 정말 어려운 선택입니다. 의원님은 그럴 때마다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도대체 어린 친구가 뭘 보고 듣고 자란 거야?’

양우석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이 장태산을 평가하려했다.

그가 돈만 추구하는 악인이라면 오늘 이후 더 이상 만남은 없었다.

그러나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위해 꿈꿀 수 있는 남자라면 기꺼이 도움이 되려 했다.

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데 반대 입장이 됐다.

양우석 자신이 시험당하는 자리였다.

“그건…….”

쉽게 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어렵죠? 정신과 육체의 행위에 따라 결정되는 선악의 경계는 옛 선인들에게도 난제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특히 정치인이라면 확실히 선택해야 할 때가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맥주 한 잔으로 갈증을 해소할 것이냐……. 아니면 준법의식을 발휘하며 참을 것이냐는 온전히 의원님 몫입니다.”

“!!!”

양우석은 생각지 못한 충격을 받았다.

투자 감각만 탁월한 애송이일 거라는 상상도 해봤다.

그런데 이건 진짜 물건이었다.

양우석 자신이 판단할 그릇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던진 화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진실한 선을 위해 약간의 불법을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대뜸 돈이 떠올랐다.

정치인이라면 항상 돈이 필요했다.

지역구와 인맥 관리를 위해서는 자잘하게 나가는 돈을 무시 못 했다.

동료 의원들이나 기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재력이 요구됐다.

양의석도 알게 모르게 후원자가 있었다.

선관위에 보고되지 않은 비밀 정치자금이었다.

선이라 생각하는 바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장본인이었다.

“이 맥주 받으실 수 있습니까?”

정태산이 맥주를 들고 물었다.

선택의 순간이었다.

각자가 추구하는 선을 위해 작은 악을 잠시라도 용인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파르르 양우석은 몸을 떨었다.

그 어떤 때보다 오늘 이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큰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그럼……. 대표님이 생각하는 선과 악은 어떤 기준입니까!!”

양우석이 이제 질문을 던졌다.

답변에 따라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거나 그냥 떠나야 했다.

“선과 악은 왼손으로 보리를 잡고 오른손으로 보리를 베는 것과 같습니다.”

“그게 무슨…….”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선과 악은 간단하게 말해…….”

장태산의 미소가 이제는 신비로웠다.

하지만 양우석은 긴장감을 넘어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 기준은……. 자기 마음 꼴리는 대로라는 소리입니다. 의원님은 목마른데 이 맥주 한 잔도 못 마시지 않습니까? 의원님 스스로 오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덥석.

장태산 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양우석은 맥주캔을 빠르게 잡았다.

눈앞의 장태산이라는 청년.

그는 양우석 인생에서 가장 위험하면서 완벽한 조력자의 모습을 소유한…….

한강의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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