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4화 (234/1,284)

 # 234

회귀의 전설

234장. 자매들의 전쟁

“아가씨, 그러다 손 다치십니다. 데이면 저 쫓겨나요.”

“걱정 말아요. 큰 아줌마 솜씨가 좋아서 엄마가 못 쫓아내요~”

오정 그룹 회장이 거주하는 삼성동 자택.

저녁을 준비 중인 주방에서 도우미들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 귀가한 이 집의 막내딸이 나물들과 야채들을 손수 데치고 있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유기농 재료들인 듯 향과 신선함이 백화점 상품과 달랐다.

“이렇게 하라고 하셨는데……. 아닌가?”

끓는 물에 굵은 소금을 넣고 비름나물을 데치는 임윤아.

나물 하나를 놓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과 달리 행동은 서툴렀지만 나름 정확했다.

“1분 맞죠?”

“네~ 비름나물은 1분만 데치면 됩니다.”

“아빠가 좋아하겠죠?”

“회장님께서 이맘때면 고추장 비름나물을 즐겨 드십니다.”

“다행이에요. 아빠가 좋아하셔서~.”

“막내 아가씨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시면 더 좋아하실 겁니다.”

도우미들이 미소를 지었다.

딱딱한 오정 그룹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막내 딸 임윤아였다.

절대 집안일을 보는 도우미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회장 부부도 자신들을 막 대하진 않았지만 다가가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재벌과 갑부 서열 1위의 위엄은 그런 것이었다.

자녀들도 말을 섞기가 쉽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자신들만의 영역이 확실히 구분 지어졌다.

대우는 좋았다.

일하는 것 이상으로 보너스도 자주 받았다.

집안에서의 일을 밖에서 누설하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아가씨 어디서 배워온 거 같지?”

“그런 것 같아. 예쁘신 분이 행동도 어쩜 저리 고와?”

“얼마 전에 우리 딸 주라고 옷도 주셨어.”

“미국에 가시지 말고 집에 계셨으면 좋겠어. 회장님도 유달리 찾으시는데…….”

뒤에서 도우미들이 조용히 속삭였다.

오랜만에 집에 사람 냄새가 났다.

여리고 고운 막내 아가씨가 주방에 들어와 있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다 됐다! 으히히.”

임윤아는 평생 처음으로 데쳐 본 나물을 보며 만족한 웃음을 터트렸다.

“손으로 물기를 꽉 짜셔…….”

고운 손으로 나물의 물기를 직접 짰다.

“고추장 한 스푼에 매실 엑기스, 참기름, 마늘과 깨를 넣고…….”

임윤아는 나물 하나에 온 정성을 다했다.

“어쩜 그리 잘 하세요. 막내 아가씨 어디서 배우셨어요?”

주방을 총괄하는 오정순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손이 예상 외로 야무졌다.

착착 비벼내는 나물이 먹음직스럽게 윤기가 났다.

“어머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네? 어, 어머님요???”

생긋 웃으며 말하는 어머니라는 말에 주방 도우미들은 서로 얼굴을 봤다.

사모님은 절대 주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맛이 까탈스럽지만 음식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다.

겨우 남편 물 한 잔 가져다주는 게 전부다.

자식들도 엄마 음식 맛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임윤아는 어머님이 가르쳐 줬다고 했다.

“다 됐다!”

임윤아는 믹싱볼에서 완벽하게 만들어진 비름나물 무침을 하얀 접시에 옮겨 담았다.

접시에 담긴 모양에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쩜 아가씨 이렇게 맛깔스러울까요? 이제 시집 가셔도 될 것 같아요~.”

“정말요?”

“그럼요. 누가 될지 몰라도 아가씨를 데려가는 분은 전생에 나라 몇 개는 구했을 거예요.”

“에이~ 아줌마 그건 오버예요!”

말과 달이 임윤아 얼굴에는 분홍빛 부끄러움이 맺혔다.

무언가를 상상하는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회장님 들어오십니다.”

그때 집안을 책임지는 집사 비서가 회장님의 퇴근을 알렸다.

식탁은 이미 풍성하게 차려졌다.

임성철 회장은 집에서 밥 먹는 걸 좋아했다.

퇴근하면 손만 씻고 바로 식사를 했다.

집안과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들 일곱 명이 입구에 섰다.

퇴근하는 집안 어른에 대한 예의다.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다.

스르르륵.

최근 설치한 현관 자동문이 열렸다.

“오셨습니까.”

모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가 많아요.”

사랑하는 막내딸이 집에 왔다는 소식에 임성철 회장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빠~”

임윤아가 활기차게 아빠를 외쳤다.

“오! 우리 아가.”

“아빠. 아가는 정말 아닌 거 같아.”

“무슨 소리야. 넌 언제나 아빠에게 애기란다.”

“들어와요. 아빠를 위해 막둥이가 나물을 무쳤어요.”

“나물?”

“유기농 비름나물요~.”

“그래? 그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아빠를 위해 특별히 공수해 왔잖아요~.”

“흐흐. 그래 우리 막둥이 최고다!”

임성철 회장이 잇몸을 드러내면서 활짝 웃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미소였다.

“윤아야~ 엄마는 보이지도 않는 거야?”

“오오! 엄마도 같이 온 거야?”

“네 아빠가 오늘 가족 식사를 통보했다.”

“가족 식사?”

“언니도 왔다.”

“처제, 나도 왔어.”

“언니~, 큰형부 오랜만이에요~.”

“그 사이 더 예뻐진 것 같은데?”

“이쁜 건 우리 큰 언니죠.”

“그건 인정.”

막내딸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임성철 회장의 가족 식사 통보에 식구들이 모였다.

“나도 왔다.”

“큰오빠!”

요즘 와이프와 사이가 좋지 않은 임준형이 들어왔다.

혼자였다.

“나도 왔다~. 막내야.”

“……. 왔어.”

“처제! 나도~.”

임아현이 들어서자 임윤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임아현은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눈초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마주치는 눈빛.

임윤아 또한 차갑게 변했다.

그런 관계와 상관없이 사람 좋은 임아현의 남편 주현민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모인 오정 그룹의 가족들.

“다들 뭣들 해. 밥 먹자.”

임성철 회장이 작은 키로 큼지막하게 발걸음을 떼며 식당으로 향했다.

“회장님 손은…….”

“물수건 줘. 배고파.”

“넵! 회장님.”

수행비서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주방 도우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기본 반찬 말고 따뜻한 국과 요리를 서둘러 준비했다.

“조카들은 안 왔네. 다들 보고 싶은데.”

임윤아가 자리에 앉아 아쉬운 듯 말했다.

“내가 오늘은 오지 말라고 했다.”

임성철 회장이 말했다.

“왜요?”

“왜긴~ 우리 막둥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서지.”

“아빠 사랑해요.”

“클클. 녀석…….”

“엄마에게는 사랑한다고 안 해?”

황라현이 어이없다는 듯 임윤아를 봤다.

“엄마는 반만.”

“왜? 엄마를 더 사랑해야지.”

“내가 필요할 때 엄마는 곁에 없었잖아. 매일 사모님들과 쇼핑하고 수다 떠느라 바빴어~.”

“그게 다 내조야. 아빠 사업이 그냥 되는 줄 알아?”

어느새 도우미들이 국과 반찬을 세팅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온전히 임 씨 집안 가족들만 모였다.

“몰라. 좌우지간 내 곁에 엄마는 없었어.”

“그럼 아빠도 마찬가지잖아.”

“아빠는 돈 벌잖아. 그 돈으로 유학도 가고 나중에 우리 애들 집도 사줘야지~.”

“뭐어? 너 시집 안 간다며?”

큰딸 임아진이 놀라 물었다.

“큰언니도 고등학교 때 그랬잖아. 독신으로 마음대로 살겠다고~.”

“그거야 철없을 때 얘기고.”

“미투야.”

“…….”

조신하고 말수가 적던 평소와 달리 오늘따라 활달하고 강단 있게 대화를 이끄는 임윤아의 말투에 가족들 모두 당혹감에 빠졌다.

임윤아 분위기가 확 바뀐 걸 가족 모두가 눈치챌 정도였다.

“영계가 좋긴 좋은가보다. 선 본 남자가 스무 살이라며?”

가만히 있던 임아현이 삐죽거리며 물었다.

“선? 누가? 우리 막내가?”

엄마 황라현이 놀랬다.

그녀도 모르고 있었다.

“여보. 이게 무슨 소리예요?”

황라현이 임성철 회장을 보고 물었다.

“언니도 내 나이 때 그러지 않았나? 미국에서 나이트 좀 휩쓸고 다녔잖아. 내가 알기로 그때 만났던 알렉스가 스무 살이었던 것 같은데?”

임윤아가 임아현의 과거 연애사를 끄집어냈다.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임아현이 당황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개인 과거사였다.

“괜찮아. 그 나이 때 다 그럴 수 있지. 유학 때 얼마나 외로웠겠어. 그렇지 않나요. 둘째 형부~.”

“응? 아……. 그, 그렇지.”

사람 좋은 주현민이 웃는 눈으로 대답하면서도 얼굴이 굳어졌다.

어떤 남자가 아내의 과거 이야기를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들을 수 있겠나.

“임윤아. 너 뭐야? 언니가 오늘 만만해 보여?”

강한 이미지의 임아현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임성철 회장 자식들 중 가장 개성이 강하고 성격도 드셌다.

평소처럼 임아현이 강하게 나갔다.

“그만해라.”

임성철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

회장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윤아에게 괜찮은 짝이 있어 내가 잠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임성철 회장이 통보를 했다.

엄마인 황라현도 대꾸를 못했다.

임성철 회장이 한 번 결정 내리면 그것이 처음이자 끝이다.

아직 자식들에게 주식 배분이 완벽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집안사람 누구도 임성철 회장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아빠~.”

그러나 유일하게 영향을 덜 받는 임윤아였다.

“응?”

부드러운 막내딸의 부름에 임성철 회장 얼굴이 바로 풀렸다.

늦둥이 막내딸은 임성철 회장의 보물이었다.

그렇기에 사위도 직접 고르려 했다.

“오정 랜드 주식 미리 상속해 주면 안 돼?”

“주식을?”

“!!!”

주식과 상속이라는 말에 가족들 모두 예민하게 표정이 변했다.

임윤아가 아니라면 감히 말도 못 꺼낼 민감한 내용이었다.

“나도 시집갈 준비를 해야 하고 이제 오정 가문의 일원으로서 뭔가 일을 해보고 싶어. 석사 과정만 마무리하면 아빠 도와줘야지~. 그치?”

“어? 허허허허. 그렇지. 우리 막내가 도와주면 아빠가 좋지.”

“유, 윤아야. 너 오늘 너무 막 나간다. 그런 내용은 가족들과 상의를 하고…….”

임아현이 다시 나섰다.

자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경영에 참가하겠다고 선포한 임윤아를 노려봤다.

“상의는 아빠하고 해야지. 오정의 주인은 아빠잖아.”

“그렇지! 우리 막둥이 언제나 똑똑해.”

임성철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해했다.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골치가 아파진 게 한둘이 아니었다.

상속 문제는 그중의 핵심이었다.

동시에 권력을 나눠줘야 한다는 사실에 서글프기도 했다.

나이를 먹자 점점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곁에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막내딸이 오정의 주인이라고 못을 박아줬다.

임성철 회장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그리고 둘째 언니.”

“왜!”

“출가외인이 너무 집에 자주 오는 거 아니야? 시간 나면 여기 오지 말고 형부, 조카들하고 시간 보내. 나중에 엄마처럼 외로워져도 누구 하나 책임 못 지는 거 알지?”

임아현에게 대차게 응대해 나가는 임윤아.

“뭐라고!!!”

눈을 부릅뜨는 임아현.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불꽃이 튀었다.

임아진과 임준형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흥미진진하게 두 자매의 전쟁의 서막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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