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3화 (233/1,284)

 # 233

회귀의 전설

233장. 빼박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입니까?”

아버지 그런 진부한 질문은 생략해도 됩니다!

클라라 때와는 완전 분위기가 달랐다.

나에게 클라라는 외국 며느리로도 괜찮다고 말하던 아버지 모습이 아니다.

근엄하게 자세를 잡고 계셨다.

때늦은 점심 식사 시간이다.

집에서 샤워하고 머리까지 감고 나왔다.

화장품도 없이 무작정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왔던 임윤아는 동생들 집에서 기초 로션과 스킨만 발랐다.

헬기로 옷을 배달하려는 행태를 말렸다.

이거 알려지면 두고두고 욕먹는다.

장주시 거리에서 적당한 브랜드로 치마 정장을 골라 입었다.

키가 작다지만 163은 됐다.

몸매는 44 사이즈.

마네킹이 입고 있는 정장이 그대로 임윤아에게로 옮겨졌다.

뭘 입어도 분위기는 럭셔리 그 자체다.

일반인은 따라올 수 없는 특별한 기품이 넘쳤다.

그리고 찾아 온 시골집 본가.

오는 중에 임윤아가 이것저것 물었다.

부모님 성격부터 쌍둥이들은 까칠한지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집안 분위기가 요상했다.

엄마에게 언질을 받은 듯 아버지는 묵묵히 자리를 잡고 계셨다.

식단은 평소 엄마가 차려주던 그대로다.

호박 된장국에 오이, 가지, 김치, 특별 계란말이와 제육볶음이 나왔다.

배가 고팠지만 입맛이 있을 리 없다.

엄마의 느낌표 세 개가 계속 목에 걸렸다.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그래도 꾸역꾸역 된장국에 말아서 잘 먹었다.

가족들 시선이 임윤아와 나를 계속 따라 다녔다.

임윤아는 의외로 밥을 잘 먹었다.

“맛있어요!”를 연발하며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다.

그러자마자 아빠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아버지는 컴퓨터나 핸드폰에 들어가는 전자 부품 만드세요.”

임윤아가 조신하게 대답했다.

“핸드폰 전자 부품? 오! 중소기업을 경영하시나 봅니다. IT 시대에는 중요한 국가 산업이지요.”

아버지! 중소기업이라니요!

떠억! 

일이 벌어졌다.

오정 전자가 중소기업으로 전락했다.

D램이 컴퓨터나 핸드폰에 들어가는 부품은 맞다.

하지만 그게 어디 중소기업이야?

세계 점유율 반절 먹고 들어갔다.

2020년에 오정 전자 순이익이 수십조에 달했다.

임윤아가 배시시 웃는다.

토종 여우가 멸종됐다는 소문 다 거짓이다.

주변에 여우들이 많이 산다.

입에서 진실이 튀어 나오려 했지만 임윤아가 눈빛으로 말렸다.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았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여기 이 분이 대한민국 제일 갑부질 막내딸이라고 말이다.

“아버님~ 편히 말 놓으세요. 제가 불편해요~.”

허어어얼! 아, 아버님?

임윤아 당신 정체가 뭐야?

언제 봤다고 아버님이라니…….

“그럴까? 큼큼.”

작업복 대신 처음 보는 모시옷을 입던 아버지가 흐뭇하게 웃는다.

좌우지간 남자는 예쁜 여자 말에는 무조건 귀를 기울인다.

“네~.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래 어머니는 뭐하시는 분인가요?”

엄마도 나섰다.

분위기가 참으로 이상했다.

마치 선 보는 자리 같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하룻밤 동침했다고 결혼까지 가는 건 아니다.

젊은 청춘 남녀가 눈 맞을 수도 있지 그걸 억지로 엮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나와 달리 예전 시대 사고 방식을 소유한 부모님이다.

뭐라고 말릴 분위기가 아니었다.

임윤아는 잘도 적응했다.

“집에서…….”

임윤아의 붉은 입술을 봤다.

오정 미술관 라움 관장인 황라현 관장.

소유하고 있는 작품 가치가 수천억은 가뿐히 넘어갔다.

1조가 넘는다는 찌라시 내용이 있을 정도다.

상류 여성들 사이에서 진짜 여왕으로 통했다.

임윤아가 어떤 대답을 할지 사뭇 기대가 됐다.

“놀기가 뭐하셨는지 얼마 전부터 그림 중계상 하세요. 어머니도 편하게 말 놓으세요.”

“그럴까?”

“네~ 어머니.”

임윤아 진짜 대단하다.

‘아버님, 어머니’라는 말이 잘도 나왔다.

어머니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아들 방에서 마주한 낯선 여인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림 중계상? 미술관에서 근무하셔?”

“네~. 소일거리로 소소하게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고 계십니다.”

소소란다…….

임윤아가 말하는 분위기로만 보면 백수 아줌마가 돈 몇 푼 벌겠다고 부업하고 있다는 말투다.

엄마 속지 마세요!

쟤 정말 위험한 것 같아요.

“나도 그림 좋아하는데~.”

그림 이야기만 나오면 좋아라 하는 엄마다.

임윤아에게 플러스 점수 추가가 되는 게 보였다.

“혹시 어머님이 저 그림들 그리신 거예요?”

임윤아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임성철 회장 딸은 그냥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모든 게 계획적인 것 같다.

“부끄럽지만 그래.”

“대단하세요! 극 사실 수채화가 캐롤 어반스 작품과 버금가는 실력이세요!”

“어머 그 정도는 아니야~.”

엄마 얼굴에 화색이 돈다.

실력 좋다는데 싫어할 사람 없다.

“무슨 소리세요. 빛을 이용한 색채감은 완벽한 경지세요. 화풍이 변하신 것 같아요.”

“그게 보여?”

“점점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세요. 저기 부엌에 걸려 있는 풍경화와 여기 있는 풍경화는 완전 달라요.”

임윤아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녀도 진짜 그림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떻게?”

“상상력에 따른 이상화가 점점 거부되고 있어요, 어머니 홍인대 출신이시죠?”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이 화풍은 홍인대 조현상 교수님 작품의 특징이세요. 빛과 자연, 그리고 숨 쉬는 듯한 공기의 느낌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화풍이 아니에요.”

화풍의 맥까지 알아맞히는 임윤아 실력이 놀라웠다.

“윤아라고 했지?”

“네~ 어머니. 임윤아예요.”

“어쩜 그렇게 그림에 잘 알아? 전공이 미술 쪽이야?”

엄마가 손뼉을 치며 좋아라했다.

엄마 눈썹도 반달로 휘었다.

95퍼센트 이상 넘어갔다.

“예일에서 미술사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예일이면 미국 예일 대학?”

아버지가 놀라며 물었다.

“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임윤아.

“와아! 언니 보기보다 쩐다!”

“예일이면 아이비리그 명문이잖아?”

눈치 보던 쌍둥이들도 예일이라는 말에 감탄을 터트렸다.

쌍둥이들도 눈빛이 변했다.

“언니. 학교도 예일 나왔어요?”

“아니 하버드 경영학과 나왔어.”

“……대박!”

막내 주희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도 몰랐다.

집안 분위기는 내가 한국대 법학과 들어갈 때 이상의 충격인 것 같다.

“공부를 잘했네.”

아버지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런데 왜 우리 오빠 만나요? 오빠 바람둥이인 거 아세요? 제 친구들도 상사병 앓고 난리 났어요~.”

주희가 강력하게 디스 공격을 퍼부었다.

주희 당분간 용돈 없다.

그렇게 잘난 언니가 왜 오빠 같은 남자를 만나냐는 듯한 말투다.

공부 못한다고 지려 밟은 나에 대한 복수다.

“좋은 남자잖아요.”

임윤아가 날 보고 미소 짓는다.

눈웃음 속에 담긴 눈빛은 진심이다.

아! 당분간 벼락 조심해야 할 것 같다.

하늘이 날 용서치 않을 게 분명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인연이 넘쳤다.

아무리 재물이 여자를 부른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언니 몇 살이세요?”

주아가 조용히 묻는다.

“스물다섯…….”

임윤아 목소리가 처음으로 기가 죽었다.

2020년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2008년도만 해도 아직 꺼려지는 나이 차이다.

“나이가 어려서 오빠가 좋아하겠어요~.”

평소 착하고 순한 주아가 날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뭐지 저 녀석 왜 칼을 갈고 있는 거야!

“???”

임윤아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가 만난 언니들은 나이가 많았거든요!”

커억!

사레가 걸릴 뻔했다.

아빠와 엄마가 급 당황한 표정이 됐다.

여기서 다른 집 같았다면 임윤아 얼굴이 빨개지고 나를 째려봐야 정상이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번지수 잘못 골랐다.

“그래? 그럼 정말 다행이네.”

“네? 뭐, 뭐가 다행이라는 거예요?”

주아가 말을 더듬었다.

“태산 씨보다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었거든. 그런데 전 여자 친구들보다 어리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

임윤아가 활짝 웃었다.

크크크.

임윤아 짱!

쌍둥이들은 임윤아와 날 번갈아 봤다.

못생기고 무식한 괴물 오빠를 사랑하는 피오나 공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태산이가 좋아?”

“네!”

임윤아 어제보다 더 씩씩했다.

“언제 만났어? 사귄 지 오래 됐어? 난 감쪽같이 몰랐네~.”

엄마……. 그런 질문은 위험합니다!

“어제 만났어요.”

“엥?”

“허어얼…….”

“!!!”

가족들 얼굴 표정이 정말 볼만했다.

임윤아만 아무 문제없다는 표정이다.

빨리 이 집을 떠나야 한다는 비상 신호가 울렸다.

“제가 회사 일로 바빠서 오늘은 이만…….”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그럼……. 어제가…….”

엄마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금세 까맣게 변해갔다.

확인하듯 임윤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눈이 질끈 감겼다.

아들 엄마들이 개방적이라지만 원나잇 현장을 직접 봤을 때는 얘기가 달랐다.

부모님 모두 보수적이다.

사색이 되는 게 당연했다.

“어제가 첫날밤이었어요~.”

임윤아가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우우우우우우우!

“오빠아아아아아아! 짐승!!!”

“와아아아아. 얼척 없네. 우리 오빠가 그런 남자라니…….”

쌍둥이가 대놓고 몸을 떨었다.

“태, 태산아. 아빠에게 할 말 없어?”

아버지는 당혹감을 넘어 몸 둘 바 모르고 몸을 떨었다.

엄마는…….

입술을 깨물고 날 노려봤다.

요 근래 처음 보는 엄마의 대놓고 추궁하는 눈빛이다.

임윤아! 그 첫 날 밤이 그 첫날밤이 아니잖아!

임윤아가 고개를 살짝 돌려 날 봤다.

입가에 희미하게 스치는 음모 가득한 미소.

어째 이번 사건 빼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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