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회귀의 전설
229장. 술 잘 사주는 귀여운 누나
“아니 윤 검사 이 자식은 왜 연락이 없어? 전화도 안 받고!”
조인화는 집에서 씩씩거렸다.
조울증을 앓은 듯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은 다해야 직성이 풀렸다.
누가 하려는 걸 막거나 하면 다 때려 부수고 있는 성질을 다 부렸다.
시집 와서는 잠시 누르고 살았다.
시아버지 성격이 조인화보다 한 수 위로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조인화는 마음대로 하고 살았다.
사람 좋은 한국 그룹 정인태 회장은 모질지가 못했다.
아들 하나에 딸 둘을 낳은 조인화는 한국 그룹에서 왕사모로 불렸다.
그룹에 속한 직분이 없으면서도 호텔이나 한국 항공 사무실에 들러 수시로 갑질을 저질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뺨을 때리고 눈앞의 물건을 던지는 일은 예사였다.
직원들 자르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행태를 보고 자란 자녀들 또한 엄마와 똑같았다.
“엄마……. 그 개자식 반드시 무릎 꿇려야 해! 우리 한국 그룹을 무시하는 게 분명해! 내가 분명 한국 그룹 딸이라고 말했는데……. 때렸어!”
막둥이로 자란 정현주는 엄마 분노에 펌프질을 했다.
‘온시은! 널 용서 안 해!’
장태산이라는 놈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있었다.
모델이 울고 갈 정도의 몸매에 얼굴도 끝장났다.
블랙카드를 소지할 정도라면 재력도 넘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정현주는 더 화가 났다.
온시은에게 또 밀렸다는 생각에 잠도 안 왔다.
맞아서 아픈 건 잠시지만 당한 수모와 다시 불붙은 질투심은 꺼질 줄 몰랐다.
“그래. 엄마만 믿어. 내가 이번 기회에…….”
“회장님 오셨습니다.”
“그이가요?”
오늘 검찰총장과 식사 자리가 있다고 나간 남편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밥 먹고 술 한 잔 마시고 이것저것 놀다오면 보통 새벽이다.
조인화는 남편의 사업상 여성들과의 만남에는 눈도 꿈적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관 수술을 했기에 밖에서 자식을 볼 일도 없었다.
그리고 조인화도 젊은 애인이 있었다.
서로 알고도 넘어가는 게 이 정도 상류 집안에서는 눈감아주는 치부 중 하나다.
스르르르릇.
현관문이 열렸다.
“여보 오셨어요. 오늘은 일찍…….”
쫘아아악!
“아아아악!”
집에 들어선 회장 정중용의 손에 조인화가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아, 아빠! 미쳤어요!!!”
짜아아악! 짝!
미쳤냐는 말을 뱉은 정현주 뺨에도 불꽃이 일었다.
“아, 아빠…….”
“여, 여보…….”
난생 처음 보는 정중용 회장의 분노에 모녀가 벌벌 떨었다.
“너! 당장 미국으로 꺼져! 앞으로 석사 끝날 때까지 한국에 발 들이면……. 다리몽둥이 분질러 버린다!”
호랑이 같은 눈에 불을 킨 정중용이 버럭 호통을 쳤다.
“여보……. 갑자기 무슨…….”
조인화가 적잖이 당황했다.
이렇게 뺨을 맞아 본 적이 없었다.
“따라와! 도대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어!!!”
조인화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끌고 들어가는 정중용.
화가 잔뜩 난 맹수 같았다.
“여보! 미안해요! 무슨 일인지 몰라도…….”
“닥쳐! 넌 오늘 좀 맞아야 해! 집안을 말아 먹으려고 발악을 해!!!”
쫙쫙!
“아아악! 악!”
안방에서 들려오는 폭행 소리에 정현주는 몸을 벌벌 떨었다.
그리고 급히 본인 방으로 돌아갔다.
엄마가 맞는 동안 이 집에서 도망 나가야 했다.
눈이 돌아간 아빠에게 잡히면 엄마처럼 맞을지 몰랐다.
이미 머릿속에서 장태산에 관한 일은 까맣게 지워져 버렸다.
***
- 들어가도 돼요?
“네? 어디를요?”
- 아구찜 먹고 있잖아요. 배고파요.
“!!!”
저녁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갑자기 전화를 해서 배고프다고 말하는 임윤아라는 여인.
임성철 회장의 막내딸이 확실했다.
오정 그룹 정보력에 새삼 놀랐다.
친구들 모임 장소까지 파악해 냈다.
그사이 나에 대해 많이 연구한 것 같다.
“임윤아가 누구야?”
“오올~ 태산이. 새로운 여자 친구 온 거야?”
“모르는 사이 같던데?”
“여기 찾아왔으면 오라고 해라. 우리가 성격 테스트 좀 해주지~.”
“크크크. 장태산 오늘 딱 걸렸어!”
술에 살짝 취한 놈들이 헛소리를 뱉었다.
오정 그룹 막내 딸 성격 테스트를 한다고?
미친놈들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사돈 8촌까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을 수 있었다.
임성철 회장과 장한수 비서실장은 독한 사람들이다.
술 한 잔 마셨다고 결코 경계를 늦춰도 될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이나 미래나 오정 공화국 소리를 들었다.
- 그냥 가요?
“책임 못 집니다.”
- 그럼 들어갑니다~.
용감한 여자다.
내가 아는 임윤아에 대한 정보는 단편적이다.
앞으로 몇 달 후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임윤아 스스로 생을 버리고 하늘나라로 떠난다.
죽기 전의 그녀를 본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다.
과거라면 전혀 스칠 일도 없었던 인연이었다.
드르르륵.
아구찜 전문점 출입문이 열렸다.
앉아 있던 친구들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
“오오오오오!”
“헐…….”
“뭐가 저렇게 귀여워?”
“태산아……. 맞아?”
나도 오늘 처음 본 얼굴이다.
오정에서도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은 유일한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임 회장님이 정말 아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임윤아를 봤다.
“!!!”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자체발광 귀여움이 장난 아니다.
키는 크지 않았다.
몸매가 빼어나 작은 키가 전혀 아쉽지 않았다.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와 엘프 같은 귀여운 귀, 전체적으로 흐르는 부티와 귀여움은 상상 이상이었다.
큰 소리 치던 친구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안녕하세요~.”
임윤아가 언제 봤다고 친구들을 향해 생글거리며 웃는다.
“네? 네에에에에에!”
“어, 어서 오십시오!”
“뭣들 해! 빨리 제수씨 자리 만들어드려!”
제수씨?
언제 봤다고???
진짜 노답 친구놈들이다.
과거 예린이와 서련이를 찬양하던 놈들이 바로 안면을 바꿨다.
“편하게 앉아 계세요~.”
귀여운 얼굴의 임윤아가 웃었다.
칙칙하던 아구찜 식당 안에 봄꽃이 만발한 것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 활달해 보이는 임윤아였다.
누가 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울증이 있거나 독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반가워요. 태산 씨~. 아니 태산 군인가? 키킷.”
임윤아가 정면에 털썩 앉았다.
청바지에 새하얀 셔츠를 입은 그녀는 준 여신급이다.
장주시에서 볼 수 없는 인간 자체 럭셔리다.
친구놈들이 눈치를 봤다.
“나도 반가워요……. 누나.”
씩 웃으며 반격했다.
“우리 말 놓을까?”
“아니요. 처음 본 사이에 그건 아니죠.”
“그것도 그렇지? 그럼 반만 놓을게.”
나이는 거저먹는 게 아니다.
임윤아는 들어서자마자 말발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런다고 그 분위기에 잡힐 내가 아니다.
임성철 회장도 내 앞에서 패배를 선언했다.
“배고프죠? 먹어요. 오늘 제가 쏘는 날입니다.”
“태산아, 처음 보는 사이야?”
“누나 맞아? 엄청 동안이신데…….”
옆에 앉아 있던 도중이와 형철이가 속삭였다.
“오늘 처음 보는 사이에요. 나이는 내가 다섯 살 많네요.”
“오오오! 완전 동안이세요.”
“누나! 미인이십니다!”
예쁘면 원숭이와도 결혼할 친구놈들이 칭찬 뻐꾸기를 날렸다.
성격 테스트하겠다던 놈들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모두 다 입이 반쯤 벌어졌다.
진짜 그림 같은 미녀는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참 매력적인 사람이다.
왕성에서 잠시 평민계에 놀러 나온 공주 같다고나 할까?
일반인이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풍겨 나왔다.
“여기 특대 나왔다~. 어디서 온 아가씨야? 명문가 규수 같네.”
식당 이모가 사극을 많이 본 것 같다.
요즘 세상에 명문가 규수라는 말을 누가 쓰나.
“감사합니다~.”
“많이 먹어요.”
“네~!”
임윤아는 서빙하는 이모와도 눈을 맞추고 웃었다.
성격이 생각보다 좋았다.
“나 먹어도 돼요? 배고픈데.”
“드십시오.”
친구놈들이 챙겨 놓은 앞 접시와 젓가락을 들고 아구찜을 공격하는 임윤아.
배는 고픈데 사냥에 서투른 아기 사자 같았다.
“그렇게 먹으면 옷에 튑니다. 이모. 앞치마 부탁합니다.”
말과 함께 집게와 가위로 큼지막한 아구 살을 잘라 먹기 좋게 임윤아 접시에 놓았다.
“누나 바람둥이들이 저렇게 자상한 법입니다. 절대 속지 마세요!”
“장태산 저 자식 한 바람 합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방에서 날 선 공격이 들어왔다.
확 까버리고 싶었다.
지금 여기 니들 눈앞에 있는 누나가 오정 그룹의 애지중지 막내딸이라고 말이다.
아마 다들 부동자세가 될 것이다.
오정 그룹은 나는 비행기도 추락시킬 집안이다.
“괜찮아~ 나도 한 바람해~.”
“…….”
봤지? 자식들 아주 그냥 표정이 가관이다.
눈웃음 살살치며 한 바람 한다고 말하는 임윤아.
“그, 그렇죠! 하하하. 요즘 세상에 능력 되면 한 바람이 문제입니까!”
“인생 짧습니다. 이놈 저놈 만나서 좋은 놈 골라 시집가는 게 최고죠.”
“누나. 인생관이 아주 쿨합니다! 존경합니다!”
야! 야! 이 새끼들아! 좀 심하지 않냐?
누구는 바람이고 누구는 인생관이 쿨하다고?
친구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쁜 놈들이다.
춘향이 팔아먹던 남원골 이방 같았다.
“누나. 소주 한 잔 하시죠?”
“그럴까?”
어느새 잔도 채워놓은 사악한 놈들.
아주 잘나가는 대감마님 수청드는 장주시 기생들 자세다.
그런데 임윤아, 소주는 마셔본 거야?
아구찜 먹는 모습을 봐도 수상했다.
한 번도 안 먹어본 것 같은 분위기다.
소주는 더더욱 마셔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자! 임윤아 누나와의 거국적 만남을 위하여 다들 잔을 들어라!”
“오오오오오오오!”
자식들이 어느새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우리 귀여운 동생들과의 만남을 위하여~!”
“위하여!”
그리고 나만 빼고 의리 없는 놈들이 오정그룹 막내 여우에게 홀딱 빠졌다.
“캬아~.”
임윤아도 한국 사람 맞았다.
이슬만 마시게 생긴 얼굴로 추임새를 뱉었다.
그…… 모습이 엄청 귀여웠다.
“한 잔 더 드시겠습니까?”
“물론이지~. 나 시작도 안 했어~.”
“누나 진짜 멋지십니다!”
“제 인생에서 만난 여인들 중에 원탑입니다!”
“호호호 정말?”
형철이 저 자식 언제는 “태산이 여동생이 최고야!” 라고 하더니 바로 노선을 바꿨다.
“넵! 누나가 여왕입니다!”
“그래. 오늘 기분이다. 오늘 누나가 다 쏜다! 2차! 3차! 죽을 때까지 술 쏜다!”
“누나! 누나! 누나!”
임윤아가 한 잔에 취한 것 같다.
분홍빛으로 살짝 물든 볼과 옥타브가 올라가는 하이톤 목소리.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2018년 봄 어느 날 뭇 청춘남녀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드라마 제목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손희진이 여주인공이었던 드라마.
‘술 잘 사주는 귀여운 누나’
2008년도에 장주시에서 이미 찍고 있었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의외로 소탈한 임윤아.
지금 이 순간 진짜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