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회귀의 전설
228장. 마법사가 되다
“……마법사가…… 깨어났다……. 긴 잠을 자던 밧세바의 힘을 이어 받은 후계자가 눈을 떴다…….”
“오! 주인님이시여! 그 자를 찾아 멸하겠나이다!”
“너희들의…… 힘은 부족하다……. 저주와 피의 함성의 가득한 재단을 쌓아라……. 자중하라……. 원한과 분노가 들끓는 이 땅에 악의 씨앗을 퍼트리라……. 그리하여 소환하라……. 나의 종들을……. 어둠에서 깨워라…….”
“주인님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쿵쿵쿵!
아사신의 장로 무자히드가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지하 깊숙이 자리한 신전.
뭉클거리며 붉은 연기와 피의 향이 진하게 퍼져 있었다.
무자히드는 감히 앞을 바라보지 못했다.
눈앞 재단 위에 펼쳐진 커다란 오망성의 마법진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다.
무자히드의 스승, 또 그 위의 스승들도 신봉했다.
언젠가 깨어나 세상을 파멸시키고 재창조할 예언자가 잠든 곳이다.
언제부턴가 예언자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잃어버렸던 과거의 술법들도 부활했다.
아사신의 정예 전사들이 다시 탄생했다.
종교적 이유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타락해 버린 아사신.
주인을 기다리는 종이 됐다.
다시 태어날 선지자로 그를 택했다.
아사신을 창조했던 위대한 스승이자 창조자였다.
“신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편애적 사랑을 철저히…… 이용하라……. 증오와 반목이 꽃피게 하라……. 그곳에 지상 낙원이 임할…… 것이리라……. 그리도 나 또한…… 긴 잠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오오! 주인이시여……. 속히 부활하소서!!!”
“수억의 공포가 하늘에 퍼질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나의 종이여……. 승리할 때까지 교활한 뱀이 되어라……. 월계관이 너희 앞에…… 왔도다.”
“크으……. 주인님이시여! 승리의 영광을 바치옵니다!”
파스스스스슷.
장로의 피 끓는 충정에 피의 마법진에서 붉은 향이 일어나 사방으로 퍼졌다.
“전사들을 양육하라……. 너에게 힘을 주겠노라…….”
“오오오오!”
눈 먼 장로의 몸에 흡수되는 빨간 기의 파동.
장로는 머리를 박은 채 온전히 주인의 힘을 받았다.
그리고…….
파아앗!
잠시 후 무자히드는 수십 년 만에 눈을 떴다.
눈동자에 출렁이는 핏빛 광채.
“크으! 주인님만을 오직 찬양하옵니다!”
감격에 피를 토할 것처럼 오체투지하는 무자히드.
파스슷 파스스스슷.
피의 마법진은 맹렬하게 빨간 빛을 뿜었다.
***
“세상에 믿을 신 하나 없다더니……. 와아아아…….”
기가차고 어이가 없어 신음만 계속 나왔다.
알파닥과 솔로몬 왕이 짠 완벽한 설계에 당했다.
짐작이라도 했다면 그렇게 쉽게 계약하지 않았다.
아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계 공정거래법을 언급도 않고 적용하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1퍼센트도 아니고 5퍼센트란다.
장금이 누님이 신들 조심하라고 했던 경고가 퍼뜩 떠올랐다.
그러면 뭐하나.
이미 계약이 체결된 뒤다.
“노바 형님이 들으면 울고 가겠네.”
1퍼센트에도 감격하던 카사노바 형님이 더 그리웠다.
진짜 솔로몬 왕은 사기꾼이다.
1,000명의 여자들을 만족시켰던 방법은 이번 거래에 포함되지 않았다.
다음에 보자는 말에 뼈가 있었다.
엄마가 이계로 점핑할 정도의 마법사라면 고서클이 분명했다.
그러나 달랑 3서클만 넘겼다.
솔로몬은 봉이 김선달이 형님으로 모셔야 할 분이다.
“솔로몬 대왕! 당신이 잘 먹고 잘 살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 경고합니다! 계약한 신을 저주하면 신계 공정거래법 부칙 조항에 의거하여 지급 포인트율이 올라갑니다.
“…니X.”
알림음 때문에 더 이상 욕이 나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억울했지만 그놈의 신계 규칙은 부정할 수 없었다.
솔로몬 왕 말대로 인간이되 정상 인간이 아닌 우주적 존재가 바로 나였다.
“마법이라도 똑바로 가르쳐 줘야지! 손들고 ‘파이어’하고 외치면 불이 바로 나오냐고!!!”
손을 들고 휘휙 뿌리며 소리쳤다.
화르르르르르르르.
“…….”
지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파이어라는 영상과 내뱉은 말에 아랫배가 화끈해졌다.
동시에 쑥 빠져나가는 기를 느꼈다.
그리고 눈앞에 등장한 대형 호박만한 불덩이.
진짜 마법이 발현됐다.
“마, 마법아 너 이렇게 쉬웠니?”
심장이 발발 떨렸다.
환상 속에서나 그려지는 게 마법이다.
이계에서도 말로만 듣고 아직 배우지 못한 기술이다.
그런데 진짜 마법을 쓰는 마법사가 됐다.
“워, 워터 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음 마법 영창.
슈루루룩.
불이 사라지고 푸른빛의 마법진이 번쩍하더니 수박만한 물 덩어리가 나타났다.
“와앗…….”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농담으로 취급하던 동정 마법사가 아닌 진정한 마법사가 됐다.
솔로몬 왕의 사기질에 당한 상처가 조금 위안을 받는 기분이다.
5프로는 분명 쌨지만 마법과 기타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카리스마.
그게 뭔가 크게 해줄 것 같았다.
“노바 형이나 솔로몬 왕이나 다 같은 바람둥이다. 여성들이 행복했다고? 그게 바로 진짜 사기지! 당하고도 당한 걸 모르게 하는 게 사기의 끝판왕이잖아.”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은 한다.
절망 뒤에서도 희망을 찾는 나는 자칭 정신승리자다.
“정령과 마법을 배우다니……. 도대체 내 인생 장르는 뭐야? 회귀, 재벌, 게임, 이계……. 마법 정령사? 이제 남은 건…….”
과거 2020년까지 읽었던 수많은 공상 소설들이 생각났다.
이것저것 참으로 짬뽕 범벅이다.
그래도 좋았다.
일단 돈은 오지게 많았고 주변에 썸 타는 미녀들도 과거와 비교 불가능 했다.
말도 안 되는 이계 여행도 가능한 지구 유일의 인간이 나다.
“된장국 먹으러 가볼까~.”
사기를 당했지만 어느새 마음은 안정되고 있었다.
시원하게 5퍼센트 떼어주고도 남을 만큼 포인트를 벌면 된다.
쫌생이처럼 포인트 벌어 우화등선 신선 될 것도 아니다.
터억!
정상을 박찼다.
어느새 지평선을 향해 떨어지는 해.
오늘 하루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붉게 지는 노을이 끝내줬다.
***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획득했습니다.
“응?”
갑자기 주어진 포인트 발생 알림음에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돌아와 가족들과 회포를 풀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밥을 먹고 여동생들을 갈궜다.
여동생들이 정신줄 놓고 클라라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은 대충 짐작하고 계셨다.
세상 덜 산 고등학생들이 눈치가 없었다.
확실히 조졌다.
그렇게 공부해서 오빠 발밑에나 따라오겠냐며 전투 의지를 키워줬다.
한국대에는 괴물만 산다고 현실도 알려줬다.
너무 잘해줘도 오빠의 권위가 안 사는 법이다.
대가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벌었다.
현실 남매는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8월의 무더위가 끝장을 부리는 날.
본가에 온 김에 장주시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그사이 도도희가 포인트를 벌어줬다.
도도희가 확실히 똑똑했다.
에어비엔비가 이때쯤 재정 위기에 빠져 창업자들이 피자 박스 디자인 할 시기다.
공유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았던 투자자들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직접 찾아가기는 소소한 수익이었기에 도도희에게 맡겼다.
절대 경영권은 빼앗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오로지 엔젤 투자자로서 역할만 맡겼다.
에어비앤비는 계속 쭉쭉 성장한다.
2020년에는 공유 경제의 왕이 된다.
주식 가치가 수백억 달러가 넘게 된다.
세계 여행이 일상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숙박 공유는 여행자들의 짐을 덜어준다.
물론 변태 집주인들이 몰카를 설치하지만 그 걸 막을 방법은 많지 않았다.
어차피 세상은 이해 불가능한 종자들과 뒤섞여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태산아……. 흐흐. 나 먼저 다녀오마. 남자란 말이야 군대를 다녀와야 진짜 싸나이가 되는 법이다~. 이 형아 오늘따라 멋지지 않냐?”
며칠 후 군대 가는 형철이가 개뻥을 쳤다.
싸나이?
훈련소에서 조교들에게 개갈굼 당해봐야 아! 민간인 시절이 진짜 천국이었구나!를 알 것이다.
자대 배치 후 선임들 갈구림에 베개를 눈물로 적셔봐야 이게 군대구나 확실히 느낄 것이리라.
전방에 배치되는 순간 은근히 느껴지는 공포도 무시 못 한다.
이 시기 최전방 분위기는 더했다.
대북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를 자장가 소리쯤으로 여기고 복무해야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퍼붓는 눈.
이게 최전방에 인접한 북쪽보다 더한 현실 공포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악마의 하얀 똥가루.
지금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쳐졌다.
훈련 따위는 끝없이 퍼붓던 눈에 비하면 아이들 전쟁놀이 수준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땀에 젖은 채 묵묵히 연병장을 쓰는 기분은 당해 본 자만이 안다.
겨울이 지나면 다들 반쯤 해탈하게 된다.
지금도 가끔 군대 가는 꿈을 꾸면 가위에 눌릴 지경이다.
그런데 진짜 싸나이?
입대도 안 한 놈이 뭘 알겠나.
그저 불쌍할 뿐이다.
9월 신병 훈련받고 나면 몇 달 후 바로 겨울이다.
쫄병 때 느끼는 서러움은 배가 된다.
괜히 심술을 부리는 선임들의 날선 갈굼은 영혼을 탈탈 털어버린다.
“마셔라. 형이 날 샐 때까지 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중생들을 술로 심심하게 위로했다.
“그래~ 형아가 먼저 가서 지키고 있을 테니까. 사법시험 떨어져서 아주 늦게 와라~ 알았지~.”
형철이 녀석이 먹히지도 않을 저주를 했다.
신경 안 쓴다.
어차피 사시 플랜은 가동될 일이 없었다.
“이모~ 여기 아구찜 특대 추가요~. 소주하고 맥주도 주세요~.”
“크크. 태산이만 오면 동창회네.”
“장태산! 돈 많이 벌어라. 우리 평생 술 값 보장해줘야지~.”
“우리 친구 아이가~.”
방학 끝 무렵이라 친구들 상당수가 모였다.
아직 의리가 살아 있는 시절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친구들 하나둘씩 군대를 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회생활.
어느새 하나둘 자의반 타의반 연락을 끊게 되고 친구들도 멀어진다.
그래서 이 시절, 이 순간이 좋았다.
녀석들 때문에 벌었던 카르마 포인트로 성장의 발판을 삼았다.
“마음껏 마셔라. 미래는 모르지만 오늘은 죽여주마!”
“고고고고!”
이제 술맛을 알아가는 녀석들이 소주와 맥주를 들이켰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피자와 치킨, 콜라를 사랑하던 고삐리들이었다.
지금 그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오늘이 지나가면 또 언제 이런 날을 다시 갖게 될지 몰랐다.
나도 술이 고팠다.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클라라 이야기는 가슴을 쌉싸름하게 적셨다.
돌이켜 보면 클라라가 진짜 내 첫 사랑인 것 같았다.
예린 선배와 달리 달달하게 주고받았던 수많은 감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만 뭔지 모를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 같다.
벌컥.
소주를 진하게 마셨다.
“오! 장태산 소주 마시는 폼도 멋진데~.”
“자식! 너 임마 그렇게 살지 마. 남자인 내가 봐도 멋진데 여자는 어떻겠냐?”
“옛날부터 저 자식 밥맛이야!”
“팰까?”
“저 자식 한국대 법대 다녀. 여기 동네 검사들도 제 선배일 걸?”
“그래……. 참자.”
친구들이 진담 반 농담 반을 던졌다.
무서운 녀석들이다.
하늘 아래 나에게 주먹질 할 수 있는 유일한 놈들이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전화다.
“여보세요.”
- 장태산 씨 맞죠?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갑자기 걸려온 전화의 낯선 여성의 목소리.
친구들이 떠들며 술을 마시다 조용해졌다.
오늘따라 핸드폰 통화음이 크게 들렸다.
녀석들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 임윤아예요.
“임윤아요? 그게 누구…….”
- 임성철 회장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