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회귀의 전설
226장. 중급 신을 만나다 (1)
“지검장님 부르셨습니까.”
“앉아.”
“넵!”
동부지검 차장검사 윤대호는 갑작스런 지검장 호출에 놀랐다.
지검장과는 가깝고도 먼 사이였다.
연수원 3기수 선배였지만 학교가 달랐다.
검찰 조직에서도 안면이 거의 없었다.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라인이 달라 접촉점이 없어 겁을 먹지는 않았다.
윤대호가 잡은 줄도 생각보다 튼튼했다.
지검장은 총장에 올라가지 못하면 대부분 여기서 검찰 인생이 끝났다.
지검장은 상당수 이쯤에서 옷을 벗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검찰은 상명하복으로 운영되는 군대식 조직이었다.
물러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보필하는 척을 해야만 했다.
윤대호도 옷자락을 여기며 아랫사람의 자세를 갖춰 보였다.
“요즘 일이 많지?”
동부지검장 한종호가 웃었다.
“아닙니다. 할 만합니다.”
윤대호는 더없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 할 만하지……. 그러니까 그렇겠지.”
“네?”
한종호의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에 윤대호는 눈을 껌벅거렸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촉이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한국대와 고영대, 연지대 출신이 아님에도 차장검사까지 오르는 데에는 빠른 눈치가 한몫했다.
“지검장님, 제가 무슨 실수라도…….”
“미친 새끼.”
“!!!”
욕이 터져 나왔다.
차장검사가 서열은 밑이지만 나름 정치력이 존재하는 위치다.
지검장이라도 함부로 앞에다 놓고 욕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검장 한종호가 욕을 했다.
끝장을 봤다는 의미다.
윤대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요즘 맡았던 사건들을 빠르게 스캔했다.
그리고 짚이는 사건 하나.
‘설마? 장태산?’
“이제 눈치챘냐?”
“!!!”
“멍청한 새끼야. 라인 좋아한다면서 상대도 파악 못 했어? 한국 그룹 연줄도 한계가 있어, 인마. 똥통 대학교 나왔으면 정신이라도 잘 챙겨야지. 쯧쯧.”
한종호가 혀를 차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윤대호는 이미 자신에 대한 처분이 결정되었다는 걸 알았다.
‘젠장!’
처음부터 뭔가 찝찝하다 싶었다.
한국 그룹 사모가 개인적으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라면 사건이 굵었다는 것이다.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 중에도 불길한 감은 떨치지 못했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재산이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엄청났다.
그러나 전혀 언론에 노출이 안 됐다.
뿐만 아니라 삼우로펌과도 각별한 관계이긴 했다.
어떤 사건으로 엮을까 고심하다 오늘 갑작스럽게 호출된 윤대호.
자신이 먼저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 그룹과 연관된 자신을 날릴 정도라면 라인이 엄청나게 빵빵한 놈이란 소리다.
“장태산…… 입니까?”
“몰라서 묻냐? 멍청한 새꺄. 법무부 감찰실에서 연락 왔다. 너 이 새끼 티 나게 돈 받았더라? 투서가 들어왔다.”
툭.
욕을 하며 서류를 하나 윤대호 앞에 던져졌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스폰을 받는 게 관례다.
지검장도 털면 몇 개 나오고도 남았다.
하지만 법무부 검찰실까지 움직였다면 모든 게 끝났다.
“통영지청으로 갈래? 아니면…….”
뒷말을 더 이상 뱉지 않는 한종호 지검장.
“지검장님…… 이건…….”
윤대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갑자기 끝나버린 찬란하게 더 빛날 검사 인생.
하루아침에 똥바가지를 뒤집어 써버렸다.
‘X발! 조인화 이 미친년 때문에!!!’
***
“여기는……. 또 어디야?”
거대한 궁전이 눈앞에 떡 보였다.
벽돌로 건축한 궁전은 실로 거대했다.
두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유행하는 백향목들이 건축물을 둘러쌌다.
졸졸졸졸.
바닥 수로를 타고 흐르는 물도 맑고 깨끗했다.
궁전의 기둥들도 황금으로 덧칠이 된 것처럼 빛에 반짝였다.
건축물도 한두 개가 아니다.
적어도 수십 개.
이계의 백작성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비하면 초가집 수준이었다.
- 중급 레벨의 신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최초로 입성했습니다.
“오! 중급 레벨!!!”
한번쯤 만나보고 싶었던 중급 신들의 공간이란다.
레벨이 오르니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지의 능력치뿐만 아니라 상위 신들과도 만남이 이뤄졌다.
- 레벨 부족으로 포인트를 대폭 차감합니다.
“뭐라고! 포인트 차감! 야! 이건 아니지! 네가 먼저 자동 탐색했잖아!!!”
들려오는 알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급 신을 만난 것도 아닌데 고작 눈으로 구경했다고 포인트 빼가는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다.
“너 삐끼냐? 우리 인간적으로 그러지 말자! 응! 나 포인트 많이 벌어야 돼!”
누가 봐도 이건 준사기다.
집 구경했다고 돈을 받는 건 나쁜 짓이다.
- …….
알파닥은 침묵을 고수했다.
“아오! 염병!”
욕이 그냥 절로 터져 나왔다.
형체가 있어야 멱살이라도 잡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열불이 치솟았다.
“호호호호호~”
“언니~ 차가워~. 꺄르르르르르르~.”
“???”
그때 갑자기 환청이 들렸다.
너무 맑고 고운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촤르르 촤르르릇.
야릇한 상상이 절로 이는 물소리가 들렸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괜히 알림음을 채근했다는 미안함이 들었다.
포인트 차감이 괜한 사기질은 아닌 것 같다.
신들을 그렇게 만나 봤지만 괜찮은 선녀들은 본 적이 없었다.
진이 누님이야 화끈했지만 신들 세계에서 알아주는 클럽 주인이다.
순수함이 심각하게 결여됐다.
나에게도 이제 뭔가 참신한 만남이 올 때가 됐다.
여신들 만나지 말라는 규정이 따로 없다.
너무 순수하게 능력 위주로 신들을 만났던 과거가 많이 반성됐다.
반스데일이나 노바, 다른 음악신들처럼 여신들을 뵙고 싶었다.
사박사박.
발걸음이 유달리 조심스러워졌다.
원래 이런 놈 아닌데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어머어머! 어딜 만져~.”
“언니~ 완전 커!”
커? 뭐가 커?
머리에서 갖가지 음란마귀들이 제공하는 온갖 환상들이 보였다.
오! 신이시여……. 저를 유혹에 빠지게 하옵시며 다만 좀 더 화끈하게 보여만 주소서!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후끈 마음이 달아올랐다.
알파닥 진화 버전 같은 녀석이 제대로 자동 탐색했다.
아름다운 시간 보내라는 의미를 확실하게 알아챘다.
알파닥…….
너 진짜 괜찮은 놈이다.
잠깐 화 낸 게 진정 미안했다.
“라라~ 라라라~♬.”
가수 뺨치는 화음이 들려왔다.
CF 속 탑 여배우가 바로 떠올랐다.
인간들을 유혹했다던 로렐라이 인어들이 부르는 허밍 같았다.
높지 않는 담벼락이 보였다.
감시하는 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했으며 미세먼지 하나 없이 공기는 상쾌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씨 좋은 오후의 풍경.
“호호호호~”
“까르르르르~.”
여인들의 웃음은 어떤 음료보다 청량했다.
그리고 선녀들을 염탐했던 나무꾼처럼 담벼락에 발을 올리며 고개를 빼꼼 쳐들었다.
이런 놈 아닌데 유혹은 참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
그리고 봐버렸다.
“이, 이게 뭐야?”
수백 명이 넘는 여인들이 반나체로 거대한 원형 풀장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살짝 젖은 얇은 옷들 사이로 보이는 풍염한 여신들의 육체.
나무꾼이 왜 선녀 옷을 감춰버렸는지 알 것 같았다.
감히 인간 세상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미녀들이었다.
인종도 다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래픽?”
실재하지 않는 그래픽 같았다.
3차원 3D 그래픽으로 처리된 화면들이었다.
흐르는 물과 들려오는 목소리, 움직이는 동작 모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걸 간파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여신들.
과거 누군가 추억 속의 한 토막 같았다.
휘이이잉.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이내 여신들이 모두 바람에 실려 모두 사라져버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은 이때 쓰는 말 같았다.
성벽도 어느새 바스락거리며 낡아졌다.
영화로운 시절이 지나버린 준 폐허의 공간.
“실로 아름다운 한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오는 구수한 중년 남성의 목소리.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
왕이 보였다.
머리에 쓴 도금이 탈락한 금관을 착용한 50대 초반의 남자 신이 나를 보고 있었다.
푸른 눈동자 깊숙한 곳에 맴도는 허무함이 보였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괜찮다. 진실도 아닌 허상의 인형을 봤다고 탓할 자는 아무도 없다.”
야한 비디오 보다 이웃집 아저씨에게 걸린 기분이 바로 이런 것 같다.
담벼락에 내려와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처음 이동할 때 봤던 백향목도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생기가 사라진 공간의 변화가 놀라웠다.
중급 레벨의 신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내 추억 속의 그림자들이다. 내가 인간이었을 때 함께 했던 여인들이다.”
“네? 저분들 전부요?”
“왜 그러나? 남자로 태어났으면 1,000명의 아내를 두는 것도 기쁨이 아니겠나?”
돌 맞아 죽기 딱 좋은 대답이다.
여자 손도 못 잡아본 모태솔로들이 세상의 반이 넘어간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여자 생명체들이다.
그런데 1,000명?
아랍 석유 갑부 형님들도 감히 도전하기 힘든 미지의 숫자다.
과거 하렘을 소유했던 왕들도…….
“헉? 진짜 왕이십니까?”
색이 바란 황금 외투는 특별해 보였다.
주름진 얼굴은 아직도 중년 미남자다.
“이 왕성을 완성하기 위해 13년을 투자했다.”
왕이 회한에 찬 음성으로 옛 이야기를 꺼냈다.
“신을 섬기는 성전보다 더 화려하고 거대하게 건축했다.”
머리에 아직 왕에 대한 정보가 떠오르지 않았다.
13년 왕성 건축과 1,000명의 아내를 둔 왕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았다.
“누구십니까?”
“한 아이와 두 명의 엄마 이야기를 모르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한 아이게 두 명의 엄마면 아빠가 재혼했나요? 그것도 아니면……. 헛!”
갑자기 떠오른 위대한 왕의 이름.
지혜를 상징하는 대명사이자 타락하여 망국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이스라엘의 왕.
“소, 솔로몬!”
빙긋, 그가 웃었다.
- 중급 신을 영접했습니다.
- 카르마 포인트를 왕이었던 신께 헌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