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회귀의 전설
224장. 멋있는 여자
“혀, 현주야! 왜 이래? 네 꼴이 이게 뭐니!! 너희 뭐하는 새끼들이야???”
“우아아아아앙! 엄마!!!”
“우리 현주 꼴이 왜 이래? 누구한테 맞은 거야?”
정현주는 경호원들과 함께 본가로 돌아왔다.
마침 집에 있던 엄마 조인화가 정현주의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하고 놀랐다.
곱게 자란 딸의 뺨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손자국에 눈이 휙 돌아갔다.
“맞았지! 누구야! 어떤 개새끼가 이런 거야!!! 너희는 뭐한 거야??”
재벌 사모님의 품위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곧바로 입에서 듣기 힘든 쌍소리가 연속 터졌다.
조인화의 그럴싸하게 포장된 가식과 더러운 성격은 정현주에게 유전됐다.
아빠와는 다르게 자식들 모두 엄마 조인화를 빼닮았다.
“양 팀장! 말해봐. 도대체 어떻게 경호했기에 우리 현주가 이 꼴이 되도록 둔 거야!”
정현주를 품에 안고 조인화는 불쏘시개처럼 온 집안을 뒤집어 놓았다.
온 집안이 떠나가라 악을 썼다.
하루를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낼 정도로 성격이 더러운 조인화였다.
빼빼 마른 몸은 인간 가시를 연상하게 했다.
집안 집사부터 가사 도우미까지 모두 벌벌 기었다.
수시로 한국 항공 임원들을 불러다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것도 예사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탁자에 놓인 꽃병을 집어던질 만큼 성질이 급했다.
대내외적으로는 장학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명사이지만 그것은 이름뿐이었다.
조인화의 눈 밖에 나는 사람이면 누구든 자근자근 씹어 아예 얼굴을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딸 정현주의 닭똥 같은 눈물을 보며 눈이 까뒤집어져 흰자만 보였다.
온몸에서 풍겨내는 지독한 독기에 제 역학을 하지 못한 경호원들이 바짝 움찔했다.
지랄 같은 모녀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 더했다.
이들 경호원 사이에서는 1년 이직률이 수십 퍼센트였다.
양 팀장만 딸린 식솔들 때문에 꿋꿋이 참고 버텨왔다.
“말해! 말하라고! 어떤 개새끼가 우리 딸을 이렇게 만들었어! 당장 데려와! 아니 그 자식 어딨어! 내가 당장 쫓아갈 거야! 강남 경찰서장에게 연락해! 아니지, 윤 검사에게 연락 넣어! 으아아아아아!”
딸의 붉어진 볼을 보며 조인화는 발작적으로 악을 썼다.
부족하고 못난 딸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딸이다.
아빠는 뭔가 부족한 딸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조인화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닮아도 너무 닮은 막내딸을 위해 전후방으로 최선을 다했다.
한국 국적을 물려주기 싫어 미국 원정까지 가서 낳은 소중한 딸이다.
엄연히 미국 시민권자인 딸을 이렇게 만든 놈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차, 참으십시오. 사모님.”
“참아? 양 팀장 너 미쳤어? 누굴 보고 지금 참으래!”
“엄, 엄마! 그 새끼 악마야! 파티에 와서 다 때려 부수고 말리던 나를 이렇게 때렸어!”
정현주는 울면서 엄마를 자극했다.
하물며 없었던 거짓말까지 만들었다.
경호원들이 개박살나는 것을 보고도 눈이 뒤집혀 있었다. 성질을 참지 못한 정현주는 손톱을 세우고 장태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카드를 계산하던 놈에게 뺨을 제대로 맞고, 얼굴이 찢어져 터지는 충격을 맛봤다.
클럽에 있던 상류층 자제들이 그 광경을 똑똑히 봤다.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발라당 처박혀 뒤집어진 개구리 꼴이 됐다.
수치심에 도망치듯 집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울고 불며 정현주는 엄마에게 복수를 떠넘겼다.
“말해! 양 팀장 그 새끼 누군지 당장 말하라고!!!”
***
“정말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당연히 할 일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장 대표님 같은 분도 없을 겁니다.”
“아닙니다. 저도 좋은 놈은 아닙니다.”
온시은의 아버지를 불렀다.
온시은이 당한 약은 다행히 마약류는 아니었다.
수면제 계열 약이어서 회사 게스트 룸에서 치료를 해줬다.
기를 돌려 약기운을 빼냈다.
그리고 온시은 가방에서 꺼낸 핸드폰으로 부친에게 연락을 취했다.
잠금도 되어 있지 않은 핸드폰에 엄마라는 이름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형제로 짐작되는 이름도 없었고 핸드폰 연락처도 고작 50개를 넘지 않았다.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던 것은 내 번호는 ‘슈퍼컴 낭군’이라고 저장되어 있었다.
공대녀 작명 센스다웠다.
“시은이는 괜찮습니까?”
“수면제 계열인 것 같습니다. 푹 자고 나면 차라리 상쾌할 겁니다.”
“다행입니다……. 요즘 바빠서 통 녀석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공짜는 아니다.
문짝 날려버리고 온시은을 구출한 직후 상당히 많은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다.
미친년처럼 공격하던 정현주 뺨을 때리고 난 뒤에는 더블 카르마 포인트가 주어졌다.
정현주가 쌓은 악업이 그만큼 장난 아니라는 것이다.
천천히 중년 남자를 살폈다.
안경을 쓴 자그마한 체구의 온시은 아버지.
눈빛이 법 없이도 살 것처럼 선했다.
누가 봐도 공대 연구원 같았다.
온시은과 비슷한 기운이 감지됐다.
아직 직업이 뭔지 몰랐다.
온시은이 당한 일련의 일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회사로 불렀다.
나쁜 놈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명함을 찍어 보내줬다.
“술 한잔하시겠습니까?”
시간은 저녁 11시.
클럽을 뒤집어 놓고 블랙 카드로 깔끔하게 1억 긁어줬다.
클럽 사장이 1,000만 원이면 된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질렀다.
온시은의 미래를 위해 1억 투자한 셈이다.
아메리칸 블랙 카드를 꺼내들자 어린 갑질 인생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갑질 인생들도 아메리칸 블랙 카드는 처음 보는지 구경하는 눈치였다.
대기업 회장 정도 돼야 사용할 수 있는 카드다.
그것도 내 카드는 한도 무제한이었다.
“폐가 많습니다.”
“말씀 편하게 놓으십시오.”
“젊은 분이 예의도 바릅니다.”
온시은 아버님이 부드럽게 웃었다.
안경 너머 눈동자가 별처럼 반짝였다.
총기가 넘치는 눈빛과 인상이었다.
이 상은 전형적인 학자 타입의 관상이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관상에서 이상한 신호가 잡혔다.
콧등이 살짝 휘어 있어 자칫 인생에서 큰 실패를 맛볼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 드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냈다.
깨끗이 캔 주변을 티슈로 닦고 건넸다.
나의 그 모습을 찬찬히 온시은 아버지가 지켜보는 걸 느꼈다.
사윗감 판별하는 그런 흐뭇한 모습이었다.
“사업 규모가 큰 것 같습니다.”
“운 좋게 한 밑천 잡았습니다.”
“그것도 능력입니다.”
“실례지만 하시는 일이…….”
“이런……. 오늘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어 혼이 나가 있었습니다.”
온시은 아버지가 명함을 내밀었다.
시은 바이오텍.
어디서 많이 들었던 회사명이지만 바로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알던 바이오 회사는…….
“헉!”
그때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엄청난 기업 하나가 떠올랐다.
코스닥을 제압하고 코스피에 진입했던 젠트리온!
2020년 시가 총액 100조 원에 올라 기염을 토했던 세계적 종합 생명공학 기업이었다.
2002년 의약품 위탁생산으로 시작해 사업 영역을 바이오시밀러로 사세를 확장했으며 2008년 이때쯤 우회 상장하게 된다.
주가를 연구했던 수많은 이들이 구매하지 못해 후회할 눈물의 종목 1위가 바로 젠트리온이었다.
한때 주가가 3,000원도 안 되었다.
그런 녀석이 5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세계 최초 단일 클론 항체 자가 면역질환 치료제인 룸시마로 의약업계의 태풍이 되었다.
까다로운 미국 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룸시마는 미국에서 50프로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게 된다.
잘나가는 의약품은 황금과 똑같이 취급받는 미국이었다.
뿐만 아니라 뒤통수치기 좋아하는 중국이 합자 회사를 먼저 제안했다.
류머티스 관절염, 대장암, 직장암, 호흡기 질환 바이오시밀러 의약품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0년 내가 죽기 전 종합 인플루엔자 치료제와 대장암 치료제가 임상 실험을 마치고 전격 출시됐다.
대한민국 제약회사의 커다란 획을 그은 그 젠트리온.
대표 온정석!
우회상장 후 동업자에 의해 특허를 빼앗겼던 연구원이자 대주주의 이름이었다.
명함을 들고 있던 손이 가볍게 떨렸다.
내 재산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그래도 주식시장의 전설을 앞에 두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회사를 아나요?”
많은 것은 알지 못하지만 온정석은 특허를 헐값에 넘기고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런 그가 온시은 아버지로 나타났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처럼 생각되었다.
“혹시 투자자금 문제로 합병 중이신가요?”
“어! 그걸 어떻게 알았나요? 극비인데…….”
“제 전공이 투자전문입니다. 소문을 빨리 접했습니다.”
“하하. 정말 대단합니다. 그걸 아는 건 극소수인데.”
온정석이 환하게 웃었다.
이름처럼 정석대로 세상을 살아온 분 같다.
자신이 곧 팽 당한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눈치다.
“대표님, 그 합병 좀 기다려 주실 수 있습니까?”
“네? 합병을요?”
투자금을 미끼로 점점 지분을 빼앗아갈 것이다.
결국에는 주주총회를 통해 지분이 엄청나게 낮아진다.
그리고 감자와 유상증자를 거쳐 거지꼴이 되어 쫓겨난다.재주는 다 부리고 특허까지 회사에 귀속돼 내쫓기지는 비운의 천재인 셈이다.
그 사실을 안 이상 그것만은 막아주고 싶었다.
“안아 그룹이 인수된 건 아시죠?”
“잘 압니다. 미국 투자회사에 넘어가지 않았나요?”
“제가 준 매각 주관사였습니다.”
“아!”
“자랑은 아니지만 제 미국 친구가 이쪽에서는 유명한 분입니다. 로버트 라이언이라고 월가의 투자 천재죠.”
“로버트 라이언! 저도 압니다!”
잘 키운 로버트로 여기저기 명함 장사가 됐다.
그 대단한 인물을 암중에서 조종하는 자가 눈앞에 있다는 걸 온정석 대표는 몰랐다.
“좀 더 확실한 투자자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온정석 대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착한 분들은 약속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걸 알고 상대 투자자들이 계략을 짠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약 개발 투자금이 부족하시죠? 그걸 메우기 위해 우회 상장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생각보다 투자자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조건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49프로 지분에 경영권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100억 정도 투자입니까?”
“진짜 대단합니다!”
젠트리온에 대한 기억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100억이 나중에 수십조가 된다.
내 투자 수익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이런 우량 중소기업을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 자본에 넘길 수 없었다.
“제 회사에서 500억을 투자하겠습니다. 지분은 40프로. 경영권은 영구 보장입니다.”
바로 치고 들어갔다.
“아, 아니 그렇게 많은 자금을……. 이 쪽 바닥은 신약에 실패하면 바로 망하는 곳입니다. 복제 의약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회사가 위험합니다.”
“대표님을 믿습니다.”
아니 미래를 보고 왔기에 믿는 거다.
온시은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불확실성에 투자하지 않는다.
“으음…….”
고민에 빠진 듯 온정석 대표는 맥주를 마셨다.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사업성이 높아질수록 경영능력이 강하게 요구 됐다.
기업가보다 개발자가 어울리는 온정석 대표다.
“조건은 좋지만……. 내일이 바로 계약 체결일입니다. 지금껏 쌓았던 신뢰를 저버릴 수는…….”
이제 만난 나보다 지금껏 대화해 왔던 상대에 믿음이 가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나도 물러날 수는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온정석 대표의 미래를 살리고 싶었다.
“위약금 문제도 있습니다. 상장을 위해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땀이 수포로 돌아갑니다.”
“100억! 위약금으로 지급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땀에 대한 대가로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장 대표님 이런 무리를…….”
온정석 대표가 당황했다.
100억을 그냥 던지겠다는 말에 놀라워했다.
파격을 넘어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리라.
“아빠……. 허락해.”
“어! 시은아!!!”
어느새 깨어난 온시은이 침대 끝에 걸터 앉았다.
그 모습에 온정석 대표가 후다닥 딸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아픈 곳은 없고?”
“응~ 기분이 좋아.”
“저녁에 있었던 일은 기억나는 거야?”
“띄엄띄엄……. 생각나.”
말을 하며 나를 바라보는 온시은.
그녀의 눈동자가 촉촉했다.
대충 상황이 기억나는 것 같다.
아버지만 없다면 당장 나의 품에 달려들어 안길 눈빛이다.
“정말 다행이다. 여기 장 대표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야.”
“뭐, 뭐라고?”
온시은은 무적 공대녀다.
아버지 앞에서도 직구를 날릴 줄 알았다.
온정석 대표는 황당한 얼굴이 됐다.
온시은의 이런 말 처음 듣는 것 같다.
“날 믿는다면 태산 씨를 믿어줘. 미리 내 상속 지분 넘겨줘도 괜찮아. 난……. 아무것도 필요 없어.”
진심을 다해 말하는 온시은.
외동딸이니 미래 수십조 회사 주주가 될 수 있었다.
그걸 과감하게 포기하는 저 박력.
아! 온시은…….
너란 여자!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멋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