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회귀의 전설
222장. 날개 부러뜨려 줄까? (1)
“언니 오빠들 오늘 강하게 나가네……. 이러다 사고 칠 것 같은데.”
오양 식품의 3세 아유라는 땀을 닦으며 클럽 한쪽에서 냉수를 마셨다.
1년에 한 번 있는 모임의 정규 총회다.
아유라도 모임에는 오늘 처음 나왔다.
어릴 때 알았던 몇몇 언니 오빠들의 추천으로 가입했다.
장소는 청담동 클럽K.
요즘 핫하게 뜨고 있는 클럽들 중 최고인 곳을 하루 대여했다.
대한민국 정재계 상류층 자제들이나 3세들만 가입할 수 있는 노블레스 클럽.
가입 자격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그룹 오너 일가나 고위 임원들의 자제, 법조계는 고등 법원 판사나 부장 검사 이상의 자제, 언론 사주 자제들이다.
가입은 철저하게 추천으로 이뤄졌다.
자격은 대학생 이상부터 30세 이하로 미혼자만 받았다.
그 이상은 또 다른 모임을 통해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오직 젊은 상류층 자제들만 모여 노는 이 모임은 흥이 남달랐다.
모든 게 최고급이었다.
제공되는 술도 최하가 밸런타인 30년 이상이었다.
로마네 꽁띠에 못 미치지만 한 병당 100만 원 정도 나가는 빈티지 와인들이 제공됐다.
가벼운 안주도 호텔급 주방장이 직접 조리했다.
잘나가는 디제이가 클럽 분위기를 리드했다.
회비는 일 년에 1억이었다.
가입해 있는 멤버 수는 대략 100명 정도.
오늘 모인 정회원들만 해도 80명에 가까웠다.
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류층 자제라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통과 코스다.
노블레스 클럽에 가입하지 못하면 차후 사업하는 데 지장이 많아진다.
이곳에서 1차 형성된 인맥의 영향이 컸다.
사교와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집단 공동 모임이었다.
아유라는 사실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할아버지 사업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했다.
쿵쿵~! 쿠쿵 촤라라랏~♬.
강렬한 비트음에 머리가 동동 울렸다.
그 와중에도 아유라는 VIP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들 회원들 중에서도 레벨이 다른 대기업과 언론인 자제들 10여 명이 한 방에 모였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축 처진 여자 하나를 끌고 들어갔다.
성격이 고약하다고 알려진 한국그룹 회장 막내딸인 정현주가 주도했다.
끌려 들어간 여자는 시은 제약 오너의 하나뿐인 외동딸이다.
중소 제약 회사지만 특수한 복제약 및 신약 개발로 인해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 시은 제약.
딸의 이름을 제약 회사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아끼는 외동딸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아유라는 그 광경에 쓴 입맛을 다셨다.
금수저라고 다 같은 금수저가 아니었다.
다이아몬드 박힌 수저와 그냥 금수저로 또 나뉘었다.
그런 점에서 아유라도 여기서는 평범한 금수저에 불과했다.
“유라야~ 뭐해?”
아유라를 클럽에 추천했던 서양유업 CEO 딸 안소연이 다가왔다.
8등신의 미녀다.
연한 화장에도 미모가 도드라졌다.
생기발랄한 아유라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경쟁업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오양 식품과 서양 유업 두 기업은 사돈 관계였다.
“언니. 좀 쉬고 있어. 너무 흔들었더니 체력이 방전이야.”
“방전? 너 이제 신입생이잖아?”
“공부만 했더니 엉덩이가 무거워.”
“이게 언니를 놀려! 너 몸매 탱탱하거든! 저기 봐라. 늑대들이 침을 질질 흘린다~.”
“언니 보는 거잖아~. 섹시함이 무기 그 자체인 언니를~.”
“그건 그렇지. 내가 미국에서도 좀 먹어준다. 흐흐.”
아유라 새언니의 동생인 안소연은 아유라를 스스럼없이 대했다.
아유라가 친언니에게 살갑게 대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열었다.
사실 오늘 모임에 나온 이유도 아유라 때문이었다.
잘나가는 놈들은 매번 신입 회원들을 타깃으로 노렸다.
전국에 추문으로 소문이 난 오동성도 한때 이 모임 멤버였다.
아주 저질 같은 행동만 골라서 했다.
혹시 모를 그 같은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보호자로 나선 것이다.
‘올해도 물이 썩었네~.’
안소연은 사방을 둘러보고 혀를 찼다.
골빈 놈들이 태반이었다.
술에 취하고 심지어는 약에 취해 눈동자가 돌아간 놈들이 많았다.
부모님 잘 만난 것 빼고는 아무것도 봐줄 게 없는 놈들이 상당수였다.
머리도 실력도 없는 놈들이 대다수지만 미래에는 사업체를 물려받아 경영할 놈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골빈 사람처럼 놀다가도 어느 날 철 드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쓰레기도 많았지만 그런 놈들은 알아서 가문에서 도태가 되었다.
과거처럼 막무가내로 다 밀어주지 않았다.
될 만한 놈에게 그룹이나 사업체 핵심을 맡겼다.
나름 금수저들도 변화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다.
하지만 멤버들 중에 안소연 눈에 차는 인물은 하나도 없었다.
안소연은 본인 실력으로 하버드 대학교 경영학과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작태는 모두 쓰레기와 다름없었다.
미국 창업자들은 상당수가 2세에게 경영을 맡기지 않았다.
자녀들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주식을 물려주되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다.
그에 반해 한국은 재벌집 아들이나 손자로 태어나는 순간 미래가 결정됐다.
“언니 그런데 조금 전 룸에 들어간 언니……. 위험하지 않아?”
“유라야. 살다보면 모른 척해야 되는 일들도 있어. 오늘이 그런 날이야. 너만 조심해.”
VIP룸에서 막장 짓하는 놈들은 대부분 10대 그룹이나 대형 언론사 사주 가족이었다.
오늘은 재계서열 10위인 한국그룹 오너 딸인 정현주가 그 무리의 주동자였다.
정현주가 온시은을 찍었다.
안소연, 정현주, 온시은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안소연과 온시은과 달리 정현주는 문제아였다.
학교 왕따의 주범이었고 서클을 만들어 여왕처럼 군림했다.
대학교도 기부입학이 가능한 미국 지방 사립대 경영학과에 겨우 입학했다.
학력 콤플렉스가 강했던 정현주가 온시은을 찜했다.
안소연도 막을 수 없었다.
한국 그룹에 비하면 서양 유업은 동네 슈퍼 수준이었다.
“하아……. 정말 싫다.”
아유라가 답답한 듯 한쪽에 있는 맥주병을 잡고 고개를 돌리며 술을 마셨다
“!!!”
그때 아유라 눈에 들어온 한 남자의 실루엣.
“자, 장태산?”
클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청바지에 반팔 셔츠 차림으로 들어왔다.
들어서는 동시에 주변 남자들을 말린 오징어 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몸매와 얼굴.
“누구야? 아는 남자야?”
지금껏 남자에 관심도 없던 안소연이 놀라 아유라를 흔들 정도였다.
***
“오예~♪ 다 같이 손을 들고 부처핸섭! 예~♬”
발음도 후진 디제이 녀석이 악을 썼다.
쿵쿵 따라 쿵쿵~ 쿠궁~♪.
엇박자의 강렬한 비트음이 귀청을 찢었다.
“예에에에에!”
“와우우우우!”
미친 남녀들이 광란의 파티를 즐겼다.
한여름이라지만 여성들은 과하게 노출한 옷차림이 대부분이었다.
짧은 초미니에 겨우 가슴만 가린 탑 차림이다.
밀착한 남자들과 너나없이 부비부비 중이다.
오가는 눈빛은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현실판 같았다.
원초적 욕망이 사방에서 들끓었다.
초저녁 시간임에도 이미 취한 자들이 태반이었다.
뭐하는 놈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입구부터 험상궂은 보디가드들이 통제를 했지만, 장태산이라는 이름을 대고 들어올 수 있었다.
구미가 당기지 않았지만 들어온 클럽K.
담배 연기와 진한 술 냄새가 가득 퍼진 공간은 미친놈들 종합 발전소처럼 격렬하고 뜨거웠다.
인상이 절로 구겨졌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시은은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뚜벅 뚜벅 직진으로 걸어갔다.
“태산아…….”
“아유라. 오랜만이다.”
“어. 너도 잘 지냈어?”
경영학과 신입생 아유라가 미모의 여성과 동석하고 있었다.
큰 소리로 대화가 오갔다.
“잘은 모르겠고 하나만 묻자.”
“뭐?”
“온시은 선배 어딨는지 알아?”
“온시은 선배?”
“학교 컴공과 선배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아?”
“어떤 여자가 이곳에 있다고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 온시은이라면…….”
“제가 알아요.”
그때 아유라 옆에 있던 여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디 있습니까?”
“유라야, 이분 누구야?”
“우리 학교 법학과 친구.”
“그래?”
대답은 하지 않고 아유라에게 내 정체를 묻는 여자.
나를 묘한 눈빛으로 훑었다.
“누구십니까?”
“유라 아는 언니예요. 안소연이라고 해요.”
“지금 통성명하기에는 제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온시은 선배 있는 장소 알려주십시오.”
아유라와 비교될 정도의 미인이지만 지금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돈 많아요?”
“…….”
“혹시 대형 로펌 이사급 자제?”
“???”
“그 수준에 못 미치면…….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늘 이곳에 안 나타난 걸로 할게요.”
뭔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안소영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을 보냈다.
상대할 자들이 만만치 않다는 경고다.
“돈도 남들보다 많고 최소 대형 로펌 이사를 이곳에 부를 정도는 됩니다. 그러니 안심하고 온시은 선배 있는 곳이나 안내하시죠.”
“정말요?”
“언니……. 장태산은…….”
아유라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걱정 말고 태산이 데려다줘.”
아유라가 당차게 말했다.
나름 나를 경험한 아유라였기에 내가 어떤 성격인지 아는 것이다.
“나 책임 못 진다.”
고개를 저으며 안소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플로어를 가로질러갔다.
“오우우우~예~ 오늘만 날이야~ 모두 소리 질러~♬. 영혼이 약 빠는 이곳이 헤븐~♪.”
“헤븐!!”
되도 않는 개소리를 지르는 디제이에 호응하는 넋이 나간 청춘남녀들.
이 자리에서 죽으면 모두 카르마 포인트도 없어 개돼지로 환생할 자들로 보였다.
보통 클럽과 분위기가 달랐다.
퇴폐와 돈이 결합한 악마의 소굴 같았다.
“경고했어요. 지금부터 어떤 일이 있어도……. 본인이 책임져야 해요.”
안소연이 VIP룸 앞에서 다시 한 번 경고를 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시은이 이 안에 있어요.”
안소연이 룸 안을 가리켰다.
커튼으로 가려진 VIP룸.
방음도 잘 되는 듯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악마 성에 거주하는 보스들 냄새가 났다.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밥 한번 사요?”
뭐야? 언제 봤다고 밥이야?
내가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자 활짝 웃는 안소연.
돈 냄새 맡을 줄 아는 황금 여우처럼 보였다.
나도 경고 하나 날려주고 싶었다.
나 그렇게 착한 남자 아니다.
똑똑.
예의 있게 노크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 벌컥 문이 열렸다.
“우리 사랑은~♬.”
대형 룸이다.
안쪽에 목을 따고 노래 부르는 머시마가 보였다.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
안소연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철컥.
조용하게 꽉 닫히는 문.
“어머~ 정말 왔네? 시은아, 일어나봐. 흑기사 왔다~.”
나를 불러냈던 여자 목소리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흐, 흑기사……. 크크크.”
노래 부르다 말고 젊은 남녀들이 뒤섞여 비웃었다.
대가리 수는 정확히 열.
그들의 얼굴을 낱낱이 눈으로 스캔했다.
“시은 선배 어디 있나.”
시은 선배를 찾았다.
“여기 있잖아.”
룸 중앙 상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자신 옆을 가리켰다.
순간 눈에 들어온 온시은.
새하얀 어깨살이 드러난 채 소파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놈의 손이 시은 선배의 목과 어깨를 계속 쓸고 있었다.
타다닷.
그대로 룸 탁자 위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