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1화 (221/1,284)

 # 221

회귀의 전설

221장. 권리남용 (2)

“지회장님 괜찮겠습니까? 조 상무 이마 찢어졌는데…….”

“괜찮아. 지들이 대화를 막았잖아. 우리가 대표 좀 보겠다는데 왜 말려? 회사는 말이야. 다 우리 같은 노동자의 피땀으로 일궈낸 공동 사업체야.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경영을 개떡 같이 해서 외국 놈들에게 팔렸으면 우리에게도 보상을 해야지. 손실이 우리 때문이야? 지놈들 헛 지랄에 피 보는 건 노동자라고!”

안아 케미칼 여수공장 노조지회장 한양동이 총무 노조원에게 열변을 토했다.

본래부터 강성 기질이었지만 안아 회장 오승혁의 무자비함에 눌려 찍소리 못하고 지냈다.

오승혁이 노조에게 강하게 나오긴 했지만 대우는 나쁘지 않았다.

안아 케미칼은 석유화학 연봉 선두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이번에 제대로 돈 욕심이 돌았다.

한 달 전 대한노총 화학석유연맹에 가입했다.

대한노총이 너무 강성이라 노조원들이 참여를 꺼려했지만 한양동이 꼬드겼다.

외국계 기업은 파업만 하면 돈을 올려준다고 말했다.

자금도 빵빵한 돈 장사 하는 놈들이 회사를 인수했다고 거짓말도 섞었다.

노조지회장 선거에서 말도 안 되는 선거 공약을 내걸었다.

65세 정년 보장과 올해 적자가 난 회사에 3천만 원 성과금, 외국계 회사 인수에 대한 위로금과 경영 참여 목적 주식 3천 주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 정규직 우선 채용과 하계 휴가비 300퍼센트 지급 및 10퍼센트가 넘는 연봉 인상률도 내걸었다.

화학석유연맹 지도부가 그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말했다.

외국계 자본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선동당했다.

처음에 한양동은 망설였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 회사가 요즘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예고 없이 새로 회장이 된 인물이 과감하게 추진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같은 생산 라인에서 근무하던 준 동료들의 정규직 진급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들이 노동조합 가입을 꺼렸다.

동시에 전환으로 여름 휴가비 50퍼센트 인하와 물가상승률에 연동한 연봉 인상안을 회사에서 요구했다.

정규직 노조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을 정규직이 된 동료들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존 노조원들이 투표로 과격파 한양동을 지회장으로 선출했다.

공고 출신으로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던 한양동은 당선되자마자 하투를 강하게 밀어 붙였다.

새로 선출된 경영진에 대해 선제공격을 퍼부은 것이다.

‘흐흐. 적당히 몇 개 던져주지 않고 지들이 배겨? 용돈 한 번 두둑이 받아보자.’

급격한 유가 변동으로 회사가 적자 상태에 빠진 걸 알았지만 한양동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법정관리에 빠질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대한노총에서 알려줬다.

안아 케미칼이 화학석유연명의 주도적 리더가 되라고 격려도 받았다.

한껏 고무된 한양동은 찬반 투표를 거쳐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바로 파업이라는 쟁의행위에 들어갔다.

화학 업종 특성상 파업하게 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공장기계를 다시 가동하려면 한 달 정도의 청소와 안전 테스트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화학 쪽은 파업을 하더라도 기계 가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파업에 들어감과 동시에 기계 가동을 멈췄다.

울산에 위치한 안아 케미칼 대표실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대한노총에서 충분히 서포터 해 준다는 약조를 받았다.

“라면 다 끓었습니다.”

대표실에서 준비해 온 라면을 끓여 먹었다.

30여 명의 노조원들이 대표 집무실을 사적 공간처럼 활용했다.

작업화를 신은 채 탁자와 소파에 널브러져 지내는 것은 예사였다.

대표의 골프채로 퍼팅 연습도 했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대표의 물건들을 자기 것처럼 썼다.

회사 기밀이 들어 있는 컴퓨터를 열어 민감한 자료를 검색하기도 했다.

“동지 여러분! 우리 며칠만 고생합시다~. 우리 노동자들의 피로 대표 새끼들은 이렇게 호화롭게 사는데 우리는 거지처럼 사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우리도 저들과 다를 게 전혀 없습니다! 동지들 힘내고 파이팅 합시다! 고지가 멀지 않았습니다! 두둑하게 용돈 챙겨 가족들하고 멋지게 해외여행도 다녀옵시다!”

“와아아아아아아! 우리 지회장님 화끈해서 좋다니까!”

“우린 지회장님만 믿습니다!”

“라면 불겠다. 어서 드십시다!”

강성노조원들의 열렬한 화답에 한양동은 미소를 지었다.

회사에게 다 받아낼 수 없지만 적당하게 몇 천만 원 상여금은 얻어낼 생각이었다.

‘그래 투쟁은 이 맛에 하는 거지! 전임 노조 임원들은 너무 약했어. 우리가 거지야? 똑같이 일하면 같은 돈 받아야지!’

한양동은 가슴이 뿌듯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감투는 처음이었다.

제대 후 놀고 있다 친척 도움으로 안아 케미칼에 입사했던 과거는 잊은 지 오래였다.

‘돈 받으면 아파트 한 채 더 구입해야겠어. 집값이 똥값 된다는 소문이 쫙 퍼졌는데~, 흐흐흐.’

생각만으로 행복한 한양동이었다.

자신에게 배당된 라면 그릇을 잡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즉석밥에 김치까지 있어 보름 정도는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

에에에에에에에엥.

그 때 갑자기 요란한 확성기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불법 점유자들은 즉각 손을 들고 밖으로 나오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은 업무방해를 비롯해 불법노동행위 및 재물 손괴, 상해죄를 범했습니다!”

“뭐, 뭐야!!!”

놀란 노조원들이 화급히 라면 그릇을 던지고 창가로 몰려갔다.

“허엇!”

“이, 이게…….”

창 밖에 완전무장한 전투경찰들 중대 병력 몇 개가 완벽하게 본사를 포위했다.

‘으으! 뭐, 뭐가 이렇게 빨라!!!’

보통 회사에서 몇 번 더 임원을 파견한 다음 협상을 함이 순서였다.

대표실 점검했다고 바로 공권력이 투입되지 않았다.

노조가 지난 10년 동안 더 강성으로 변했다.

생존권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예상 밖에 허를 찌른 빠른 경찰 투입에 한양동은 당황했다.

“지회장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우리를 도와줄 동지들이 있습니다!”

한양동은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대표 개인 화장실에 들어가 번호를 눌렀다.

“강주희 정책위원장님, 안아 케미칼 지회장 한양동입니다. 지금 밖에 공권력이 투입 됐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투쟁하세요. 적이 강할수록 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자본가들에게 우리의 피 같은 노동 대가를 찾아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회장님과 동지들은 열사가 되어야 합니다! 대표실 입구를 막고 준비한 휘발유로 화염병을 만드십시오!]

“…….”

강력한 주문에 한양동은 말문이 닫혔다.

다른 회사보다 먹고 살만 한 안아 케미칼.

갑작스럽게 집에서 만류하던 아내와 자녀들 얼굴이 떠올랐다.

“곧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지회장님은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십시오. 연맹 임원들이 지회장님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연맹의 집행위원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집행위원이라는 말에 한양동의 눈빛이 다시 강렬해졌다.

인생에 있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엄청난 감투.

한양동의 야망에 바짝 불을 붙였다.

“알겠습니다! 더욱 가열 차게 권리를 쟁취하겠습니다!!!”

***

“강주희에게 또 당했네……. 쯧쯧.”

“강주희가 누굽니까?”

“대한노총 화학섬유연맹 정책위원장이자 고위 임원이지. 회사로 말하면 전무 정도? 장 대표 학교 학과 선배에 내 후배야.”

“네? 법학과 선배라고요?”

하관우 대표에게 강력한 대응을 지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조 변호사님을 호출했다.

휴가를 다녀와 얼굴이 그을린 조 변호사님은 두툼한 서류를 내밀었다.

“강주희, 얘가 구미호야. 얼굴도 예쁘고 선후배들에게 잘했어. 사법고시도 1차에 몇 번 합격했는데……. 2차와 3차에 번번이 낙방했다.”

“왜요?”

“아버지가 월북했어.”

“아…….”

지금 시절에야 연좌제가 없지만 조 변호사님 시절에는 존재했다.

신원조회에 걸리면 고시뿐만 아니라 일체의 공무원 임용에서 제외됐다.

사기업체도 대기업 같은 경우에는 입사가 불가능했다.

“아까운 인재였다. 그러다 노동 현장에 뛰어 들었다. 당시에는 노동환경이 열악했으니 열사들이 많이 배출 됐어. 그 덕분에 악성 기업들에게서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직업이 됐다.”

“직업요?”

모르는 일 투성이다.

노동조합은 일반인들에게 투명하게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었다.

“대한노총을 비롯해 거대 노총들은 소속 노조집단과 노조원들에게서 회비를 걷는다. 그 돈으로 파업비용도 보전해주고 변호사 비용까지 대납해준다.”

듣고 보니 이해가 확실히 갔다.

조직을 구성하고 회원들에게 회비를 걷어 자신들의 생계수단을 해결한다는 의미다.

“설마 회비를 더 걷기 위해 파업하는 건 아니죠?”

“알면서 왜 묻냐. 민주화 되면서 노동자들 권위가 많이 좋아졌다. 굳이 파업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업들이 기기도 했다. 오너들이 많이 해쳐 먹기도 했잖아. 하지만……. 요즘은 점점 도가 지나쳐지고 있다. 이러다 국민들 눈 밖에 나면 끝난다. 적당히 해먹어야지.”

조 변호사님이 고개를 저었다.

사회 상류층이지만 조 변호사님은 깨어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고개를 저을 정도라면 문제가 심각하다는 소리다.

“잘못하면 시끄러워지겠다.”

“법대로 하는 게 문제입니까?”

“강주희가 사람 홀리는 데 재주가 뛰어나다니까. 시집도 안 가고 그쪽에서 사는데……. 붙잡히면 과거 인연 있던 선후배들 찾아가 장난 아니게 로비한다. 장 대표가 몰라서 그러는데……. 걔 진짜 남자들 홀리는 데 재주꾼이다. 선후배들이 과거를 못 잊고 몇 번 풀어줬다.”

이렇게 남용되는 한국대 법학과 인연이란 사실이 당황스럽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런 요구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회사가 적자인데 성과급이라니요. 그리고 주식은 뭡니까? 상식을 가진 인간들이 아닙니다. 정년 보장까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자녀들 정규직 보장은 또 뭡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조건들입니다.”

“흐흐. 맞아. 그런데 화학석유연맹 쪽은 양반이다. 금속노조 들어가면 엄청 살벌하다. 걔들은 공장 폐쇄하고 사제 총도 만들어.”

“……정말입니까? 전경들이 다치면 어떻게 합니까? 본인들 자식들도 분명 전경에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문제지. 고위 공직자와 일반 경찰들은 뒤에서 지시만 내린다. 그런데 이 무식한 놈들이 애들을 죽창으로 찌르고 쇠총을 쏜다. 요즘 시대에 다 법대로 되는데 뭐가 그렇게 울분이 넘친다고 과격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노동법이 사측에 불리하게 변한 지 꽤 됐다.”

다시 분노가 일어났다.

상식적 요구라면 어느 정도 감내하겠지만 이건 몰상식의 극치였다.

“결정적으로 노조지회장이나 임원이 되면 특혜가 많다. 노조전임자는 회사에서 월급받고 노조업무만 본다. 이게 은근 꿀 빠는 보직이다.”

노조전임자 규정은 나도 안다.

2010년부터 무임금으로 변하지만 그 전까지 전임자들은 회사 월급 받으면서 노조권리만 연구했다.

잘못된 악습 중 하나다.

“회사 손실 규모가 1,000억이 넘었습니다. 화학 기계 공정상 다시 재가동하려면 한 달 이상 수리 및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합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밥그릇까지 차면서 요구할 일입니까? 회사를 폐쇄하겠다는 것도 아니도 비정규직을 늘리겠다는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거다. 솔직히 오너나 회사 경영진이 무능한 점도 있지만 어떻게 하겠냐. 자본주의 속성이 원래 그런 걸 말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세금을 투입해 살려주기도 뭐하다. IMF 이후에 공적자금 투입돼서 오너들만 배불렸다. 노동자들이 열받을 만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안 된다. 이번 안아 케미칼은 전형적인 노동자들의 권리남용이다. 정당한 파업 순서도 결여됐다.”

권리남용이 아니라 이건 자살행위다.

밑바닥 비정규직을 경험한 나였기에 회사 순수익의 30프로쯤은 보너스 및 여러 복지 혜택으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회사 사택도 마련해 주고 무이자 전세 대출도 생각해 두었던 것 중 하나다.

그런데 복을 발로 찼다.

이렇게 무자비한 요구라면 본인들이 돈을 걷어 회사를 경영하는 게 낫다.

무너진 노사관계라지만 상식까지 무너지면 안 됐다.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민사소송 바로 진행해서 불법 행위자 재산 압류하십시오.”

용서가 안 됐다.

“너무 강한 거 아니야?”

“변호사님 말씀대로 명백한 권리남용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모르는 자들은 본인이 당해봐야 합니다.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다른 직원들과 회사 법인체에 대한 정당한 권리구제 행위입니다.”

파업 행위 순서와 절차도 위법이었다.

거쳐야 할 단계를 빼고 쇠파이프를 들고 대표실을 점거했다는 건 용인할 수가 없었다.

미래의 미국 자동차 회사 먹튀 사건과 비슷했지만 내용은 전혀 달랐다.

고용 보장까지 되어 있는 회사에 금고를 열라고 협박하는 강도 같았다.

아무리 내가 엄청난 금융 소득을 올리고 있지만 무작정 퍼줄 수 없었다.

죽은 조상들도 그런 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사에도 알리십시오. 회사는 불법적 강경 노동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거라고 말입니다.”

“오케이! 장 대표가 까라면 까야지. 자식들이 누가 봐도 이건 아니지. 양심이 없는 놈들이다.”

조 변호사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공장으로 돈 안 벌어도 된다.

최후까지 버티면 법정관리 신청해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본인들의 밥솥까지 걷어차는 우매한 자들과의 타협은 없다.

한 번 원칙이 무너지면 또다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인간의 욕망이다.

오염된 욕망은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당한 노력만이 인정받는 구조가 정의고 법이다.

그것이야 말로 세상이 온전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이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저질 화음 핸드폰이 울렸다.

“시은 선배?”

갑자기 걸려온 전화는 온시은 선배였다.

쿵짝! 쿵쿵! 쿵짝!

대답대신 요란한 비트음이 들렸다.

“여보세요~.”

처음 듣는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십니까?”

“장태산?”

언제 봤다고 반말이다.

“맞습니다만 누구십니까?”

“나 시은이 친구~.”

“……시은 선배 바꿔주십시오.”

시은 선배가 이런 실수를 할 사람은 아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시은이 지금 뻗었는데~ 데리러 올래?”

갑작스런 의문의 여자 음성에는 놀림이 가득 담겨있었다.

한 번만 들어도 건방진 느낌이다.

온시은 선배 신변에 일이 있는 것 같다.

“어딥니까?”

“청담동 클럽K. 늦지 않게 와~ 주변에 침 흘리는 늑대들이 많네~.”

“크크크크크크.”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들의 음탕한 웃음소리도 함께 섞였다.

확 스팀이 끓었다.

누군지 몰라도 오늘 날 잘못 잡았다.

만약 온시은에게 무슨 일 생기면…….

오크 도끼로 화끈하게 마빡을 까버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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