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7화 (217/1,284)

 # 217

회귀의 전설

217장. 접대 (1)

“건방진 새끼! 나이도 어린놈이 돈 좀 벌었다고 깝쳐? 내 이 새끼를…….”

장한수는 먼저 끊긴 전화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이런 수모가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 났다.

오정그룹의 비서실장이었다.

오정의 2인자로 군림하며 수없이 대접만 받았다.

회장 말고는 그룹 계열사 사장 및 임직원, 정재계 거물들도 고개를 숙였다.

오정의 모든 비자금의 최종 출구가 장한수였다.

회장 임성철도 요즘은 장한수 눈치를 봤다.

그가 입만 뻥긋해도 오정은 산산조각이 난다.

페이퍼 컴퍼니에 감춰놓은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장한수가 조절했다.

장한수를 건들면 밤에 편히 잘 수 없다는 게 대한민국 상류 사회의 공식이었다.

그런데 돈 좀 벌었다고 애송이가 까불었다.

“손님을 모시고 가? 허참……. 미치겠네. 이 새끼 똘아이 아냐?”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감히 천하의 오정 그룹 주인과의 식사 자리에 손님을 초대하겠다고 통보를 했다.

장태산이라는 놈이 미친 게 분명했다.

한 번 보기만 해도 가문의 영광이라는 소리를 듣는 임성철 회장이었다.

겨우 몇 조 벌었다고 함께 놀 군번이 아니다.

“맛있는 곳으로 부탁한다고? 크크크크.”

장한수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 동안 내가 너무 착하게 살았던 것 같아……. 애송이 때문에 반성하게 되네.”

자근자근 밟아버려야 이런 일이 차후에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장한수는 오정의 칼이다.

오정을 위해서 평생 몸 바쳤다.

임성철 회장이 그 대가로 수천억의 부를 안겨줬다.

그래서 배알이 꼴렸다.

나이도 어린놈이 현금 자산만 수조다.

안아 그룹의 한국 조종자이기도 했다.

배가 안 아프면 그게 이상했다.

평생 피땀으로 일궈낸 장한수 자신의 인생보다 더 멋졌다.

“조져?”

오정의 장학생들이 정재계와 법조계에 포진했다.

한 마디만 던지면 없는 죄도 만들어 10년쯤 감방에 쳐 넣는 건 일도 아니다.

특히 사업하는 놈들은 예외가 없었다.

완벽하게 회계처리해도 옭아맬 수 있었다.

“하우우…….”

장한수는 길게 심호흡했다.

요즘 그룹 승계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안아 그룹이 훅 가는 걸 보고 회장도 예민했다.

2007년이었던 작년 오정의 법무팀장이 양심선언을 해버렸다.

오정랜드 불법 전환사채 승계 작업에 대해 세상에 제대로 알려졌다.

여론이 불같이 일었다.

그 이후로 벌어진 오정 특검.

그 동안 심었던 인맥으로 겨우 정리가 끝나갔다.

언론과 정치와 법조계에 떡값으로 수천억이 뿌려졌다.

대한민국에 오정 돈 안 받은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은 거의 없었다.

항소심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남아 있는 건 대법원 판결.

그 동안 사건을 벌이면 안 됐다.

“일단 만나보고……. 판단한다.”

특유의 냉혹한 2인자로 돌아온 장한수.

작은 눈으로 장태산에 관한 보고서를 꼼꼼히 살폈다.

말도 안 되는 신화를 이뤄낸 애송이.

녀석의 빈틈이 될 만한 것들을 짚어나갔다.

***

“보스. 차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

공항 장기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포르쉐를 끌고 회사에 왔다.

로버트 경호원들은 모두 호텔에서 쉬라고 명을 내렸다.

이제 로버트는 충분히 나 혼자 보호할 수 있었다.

포르쉐를 타고 오정 임성철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

로버트가 안타까운 말로 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방탄도 안 되는 이런 저렴한 차라니……. 특수 제작해서 보내겠습니다.”

포르쉐가 저렴하단다.

그래 버는 돈에 비하면 포르쉐는 저렴한 서민차가 맞다.

그래도 포르쉐만으로도 곳곳에서 눈총을 받았다.

어린놈의 새끼가 부모 잘 만나 돈지랄 한다고 말이다.

“됐어요. 부가티 곧 도착할 거 아닙니까.”

부가티 몰고 다니면 사방에서 받는 이목이 장난 아니다.

그것만 생각해도 머리가 아프다.

“외람된 말이지만 보스의 현재 상태는 미국 슈퍼스타들의 삶보다 못합니다. 그들 같은 경우에는 대저택에 적어도 10대 이상의 슈퍼카가 있습니다. 부자는 부자답게 사는 게 일반인들에게 동기 부여가 된다고 배웠습니다.”

동기부여가 아니라 박탈감 아닐까?

아메리카 스타일은 좀 달랐다.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질투하지는 않았다.

능력이 있다면 언제든 상류층에 진입하고 그걸 용인하는 동네다.

그에 반해 경제 성장이 정체되면서 벼락부자가 되기 힘든 대한민국이다.

동네가 너무 좁았다.

일정 이상의 적정 면적과 기본 소비 인구가 필요했다.

이계에 다녀온 이후 생각이 많아진 이유이기도 했다.

직접 경험해 본 영지경영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돈을 쓸어 담고 있지만 삶은 저렴했다.

로버트 말대로 삶의 질을 올릴 필요가 있었다.

이계에 가보니 알겠더라.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돈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계에서 감자 하나 구입할 수 없는 허상이었다.

“금광이나 은광 관련 회사도 매입하십시오.”

“투자할 곳이 많아 좋습니다.”

“투자금은 앞으로도 벌 수 있습니다. 빅 세일 기간에 이것저것 구입할 목록들이 많습니다.”

“광산 전문 투자 법인을 인수하겠습니다.”

“합법적 처리하시는 거 알죠?”

“물론입니다.”

로버트와 잠깐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합법을 이용한 적법한 불법이었다.

유럽 쪽과 연결된 조세 피난처 법인도 계속 구입했다.

절대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

내가 죽으면 그냥 허공에서 사라질 법인들이다.

부으으으으응.

저렴한(?) 고 배기량의 차는 광화문을 통과했다.

오가는 차와 매연,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계에서 그리워지기까지 했던 지구만의 풍경이었다.

생각보다 좋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인간을 배달 요리로 취급하는 오크는 없었다.

길가에 보이는 24시간 편의점만 봐도 배가 불렀다.

이계에 다시 갈 기회가 오면……. 반드시 성에 마련하고 싶었다.

차는 서울의 한정식 명소 홍천각에 도착했다.

성북구 산자락에 위치한 홍천각은 말로만 듣던 명소였다.

한상에 1인당 수십만 원짜리 상이 차려진다는 그곳이다.

로버트를 접대하기에는 알맞았다.

“오! 건물이 아름답습니다.”

홍천각으로 올라가는 돌담길과 한옥 정문은 로버트가 탄성을 뱉기에 충분했다.

차가 주차장에 멈췄다.

경호원이 차를 세웠다.

창문을 열었다.

“장태산 대표님?”

검정 슈트를 착용한 경호원이 이름을 물어왔다.

“맞습니다.”

“함께 오신 분은…….”

경호원이 날카롭게 로버트를 훑는다.

“제가 신원 보증하는 분입니다.”

그렇게 보면 안 될 사람이다.

로버트가 기침하면 오정 독감 걸린다.

“……알겠습니다. 주차하시고 따라오십시오.”

후진적 기업문화일수록 의전에 신경 쓴다는 경영학 격언이 떠올랐다.

과거 시대 인물이 되어가는 임성철 회장도 어쩔 수 없다.

이곳에 포진한 경호원만 얼추 열 명이 넘었다.

로버트가 흥미롭게 모든 걸 지켜봤다.

총기를 소지한 떡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 로버트였다.

임성철 회장 경호원들을 애들로 보는 눈치다.

“로버트 내리죠.”

“건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간 큼지막한 한옥 건물들 처마가 아름다웠다.

“그만큼 밥값이 비쌉니다.”

“기대가 됩니다.”

임성철 회장이 불렀지만 로버트와 난 전혀 부담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 걸었다.

산자락에 위치해 바람이 시원했다.

저녁 시간이라 8월 한낮 더위가 한풀 꺾였음이 느껴졌다.

“정말 완벽합니다. 미국 별장도 이런 식으로 건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경호원이 앞장선 채로 로버트가 속삭였다.

“그것도 추진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기대가 됐다.

로버트가 미국에 건축할 한국식 기와별장도 볼만할 것 같다.

“이곳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오른쪽으로는 큼지막한 바위가 보이고 아래로는 서울 시내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명당 방으로 인도 됐다.

방은 에어컨으로 뽀송뽀송했고 큼지막한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전경에 눈은 시원했다.

8월의 호사로 최고였다.

“로버트 보료에 앉아요.”

“동양 박물관에서 본 적 있습니다. 비단 방석이군요.”

중앙에 그리 크지 않은 차탁이 보였다.

연배가 있기에 임성철 회장이 앉을 상석을 비워 놨다.

그리고 우리집처럼 편하게 준비된 차가운 차를 마셨다.

“우룡차군요.”

“주인장 센스가 돋보입니다.”

반 발효차인 우룡차는 차게 마실 때 괜찮았다.

“오늘 만날 인물이……. 오정 전자 회장입니까?”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건방지군요……. 감히 오라 가라 하다니.”

‘보스를’이라는 목적어가 빠졌다.

절대 충성을 보이는 로버트가 좋았다.

“한국 기업 문화가 본래 이렇습니다.”

“인정은 합니다만 늦게 오는 건…….”

‘용서할 수 없는 작태이니 박살내 버릴까요?’라는 말이 빠졌다.

“그냥 놔두세요. 다 늙은 노인 불편하게 만들어 뭐하겠습니까.”

부드럽게 웃으며 달랬다.

“아무리 그래도…….”

“올 연말부터 주식 좀 긁어모으세요.”

“알겠습니다. 보스.”

오정전자 금융위기가 지나가면 앞으로 주식 쭉쭉 오른다.

몇몇 대기업 주식 적당히 긁어모을 절호의 찬스다.

앞으로 대기업과 부딪칠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말로 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최고다.

특히 그룹은 대부분 순환출자구조다.

대주주 앞에서 다들 깨갱이다.

차박차박.

그 때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몇 개 들렸다.

스르르륵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보이는 키가 작고 통통한 임성철 회장.

“먼저 와 있었나?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혔네.”

“괜찮습니다. 회장님.”

자리에서 일어나 임성철을 맞이했다.

“만나서 반갑네. 나 임성철이야.”

“영광입니다. 장태산입니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대한민국 기업계의 전설 같은 분이다.

품질경영을 주장하며 반도체로 세계 정상에 오른 사업경영 능력은 인정해주고 싶었다.

자식 말고 모조리 바꾸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무슨 영광씩이나……. 태산 군 같은 젊은이가 이제 그 영광의 주인이지.”

잡은 손은 따뜻했다.

한때 그가 괴물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많았다.

쫄지 않았지만 인정은 됐다.

이유야 어쨌든 세계적 기업을 일궈낸 업적은 존경받아 마땅했다.

“이쪽은 알지? 비서실장 장한수라고 해.”

“장 대표. 만나서 반가워요. 종친 같은데 앞으로 가깝게 지냅시다.”

웃고 있지만 눈빛이 차가운 장한수.

전형적인 2인자 관상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저야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졸부라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를 사용했다.

이채를 띠는 장한수.

스스로 졸부라 까는 내가 이상한 놈으로 보일 거다.

“그건 그렇고……. 이 분은 누군지…….”

임성철 회장이 로버트에게 관심을 보였다.

“로버트 라이언입니다.”

한국 말을 모르지만 눈치로 인사를 건네는 로버트.

“로버트 라이언?”

임성철 회장이 장한수 실장을 봤다.

“로버트…….”

이름을 되뇌던 장한수 실장.

“로버트 라이언!!!”

그리고 놀라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로버트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 장 실장.

이분이 바로 유명한 로버트 라이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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