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
회귀의 전설
216장. 보스. 콜!
“로버트 라이언이라고?”
“그렇습니다. 차장님.”
“월가의 거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떠오르는 월가의 마이더스라고 불립니다.”
“그래? 그렇지…….”
국정원 해외 파트 담당 1차장 정국종은 생각에 잠겼다.
출입국자 중에서 특별 경호를 받아야 할 요주의 인물들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정권이 바뀐 뒤 직원들 사상 검증을 거쳐 대거 물갈이를 해뒀다.
해외 파트도 마찬가지였다.
대북정보라인을 비롯해 해외 첩보 라인 상당수도 갈렸다.
잠적해 버린 흑색 요원도 나타날 정도였다.
정신없는 와중에 건수를 잡았다.
전 3차장을 감시하던 3차장 요원들이 상부의 꾸중을 들었다.
동선 파악에 실패한 요원들 상당수가 정신교육 입소를 명받았다.
이런 때 한 건 한다면 국정원장 및 정권 실세의 눈에 들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몹시 예민해 있는 VIP에게 보고하기 좋았다.
“투자 방문인가?”
“보고서에 기록된 장태산이라는 투자법인 대표와 함께 입국했습니다.”
“2번째군.”
“안아 그룹 해외 투자자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장태산은 국내 파트너입니다.”
“장태산……. 나이도 어린놈이 꽤 부자군.”
“여러 차례 털었지만 전부 깨끗합니다. 잡고 있는 줄이 튼튼합니다.”
“조심해야지. 어린 녀석이 돈을 쓸 줄 아네.”
장태산 조력자로 표기된 삼우와 리앤장은 국정원 3차장도 무시하지 못하는 조직이다.
특히 리앤장을 건드릴 수 있는 간 큰 놈은 대한민국에 없었다.
“요원들 투입해서 신변 보호해. 주변에서 깝치는 새끼들 있으면 알아서 정리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장태산이란 친구한테 연락 한 번 넣어봐. 조용히 밥 한 끼 먹자고 말이야.”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밑에 애들 입단속 잘해.”
“걱정 마십시오. 차장님.”
국정원 내부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심했다.
정권 말기까지 줄을 잘 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잘한다면 여당 국회의원 자리도 노려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면 한 밑천 크게 만들어 노후 대비를 준비해야 했다.
이것저것 눈치 볼 게 많은 국정원 고위직이다.
“뭔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데…….”
로버트라는 투자자를 청와대에 연결하면 뭔가 큰 건수가 생길 것 같았다.
국정원 1차장 정국종은 때아니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수작을 부려 손아귀에 넣으려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
‘도대체 대표님 능력이 어디까지야?’
도도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장태산 대표를 봤다.
도깨비 같은 남자가 확실했다.
이제 스무 살 밖에 안 됐다.
스타트업으로 부를 일군 그 누구보다 더 능력이 발군이다.
‘뭐야! 이 느낌! 더 멋있어진 것 같은데?’
유럽 여행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피부가 구릿빛으로 은근히 코팅됐다.
체격도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풍기는 야성의 수컷 냄새는 또.
미국 여성들에게 제대로 먹히는 럭비 스타보다 더 거친 향기가 났다.
학교 재학 중에 미국산 수컷들이 도도희에게 수없이 들이댔다.
모두 다 거절했지만 그때 받았던 인상은 똑똑히 기억했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 감춰진 남자의 체취는 강렬했다.
거기에 더해 대표는 지적인 데다 예술에 대한 사랑도 깊다.
도도희는 대놓고 욕심이 났다.
아빠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꽉 잡으라는 조언을 왜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도도희도 아빠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세상에 이런 능력자가 없다.
나이는 아무 문제가 안 됐다.
다만 대표가 상당히 철벽이라는 사실이 문제다.
“다니엘 대표님, 그게 무슨 말인가요? 리처드 상원 의원과 절 누가 비교했습니까?”
로버트 라이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남자가!’
도도희는 빠직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비교를 위한 예시였지 정말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월가 동기들이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남자가 바로 눈앞의 로버트 라이언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다.
지금이라도 국내 입국이 공식적으로 알려졌다면 기자들이 줄 서야 정상이다.
월가에서 모기지론 부실과 비슷하게 핫한 뉴스거리 인물이 바로 로버트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베어스턴스에서 근무했던 도도희라고 합니다. 떠오르는 월가의 전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도희는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이가 어린데 대단하군요. 베어스턴스가 망하지 않았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인재군요.”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월가의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도도희는 로버트에게 꿀리지 않았다.
전설은 전설이고 지금은 LOR 투자회사의 상무였다.
대표를 믿었다.
뭔지 모르지만 장태산 대표와 로버트에게서 미묘한 기운을 느꼈다.
로버트가 위가 아니라 장태산 대표가 더 존중받는 입장 같았다.
은연중에 보이는 로버트의 행동들이 그걸 말했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 배려였다.
“로버트. 여기 미녀 분은 제 비서인 유세라 팀장입니다.”
“오우! 정말 오늘은 축복받은 날입니다. 아름다운 미녀를 두 분이나 만나게 되는군요.”
로버트가 유세라 팀장과 악수를 나눴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세라도 긴장하며 미소를 지었다.
세계 경제 뉴스를 빼놓지 않고 섭렵하는 그녀도 로버트 라이언이라는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올해 투자 수익이 천문학적이라 알려졌다.
그런 세계적 투자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표가 자랑스러웠다.
‘뭔지 몰라도 변했어……. 그것도 많이!’
유세라도 대표를 보고 확실히 느꼈다.
웃고 있지만 눈빛이 강했다.
겉으로 표현되는 진한 남성미는 더 이상 감춰지지도 않았다.
두근두근.
유세라의 심장이 대표를 보고만 있어도 마구 뛰었다.
‘미쳤어! 미쳐!’
나이 차이가 제법 났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얼굴이 사르르 붉어졌다.
갈수록 매력이 넘치다 못해 터지는 대표 장태산.
오늘도 유세라의 가슴에 불질하는 방화 주범이 됐다.
“커피 부탁해도 되죠?”
“그럼요~.”
“두 잔 부탁합니다. 여행 중에도 유 팀장님 커피 그리웠습니다.”
유세라는 대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대표 목소리가 오늘 따라 더 감미로웠다.
커피가 그리웠다는 말이 유세라가 그리웠다는 말로 들릴 정도였다.
“네……. 네.”
오늘따라 유세라는 유독 더 조신한 비서 모드가 됐다.
은근하게 더욱 품위가 더해진 장태산 대표.
유세라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3년만 젊었어도 화끈하게 도전해 보겠지만 이젠 나이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저 세월이 야속할 뿐이었다.
***
“집무실이 생각보다 작습니다.”
로버트가 휙 둘러보더니 한 마디를 던졌다.
월가 로버트 사무실 비하면 소소한 사무실이다.
그렇다고 내용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로버트도 모르는 엄청난 자금이 이곳에서 움직였다.
“보스. 건물 하나 신축하거나 매입하시죠?”
강남 20층 건물이 마음에 안든 눈치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도 눈총 받기 쉽습니다.”
“……유교적인 관습이 강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어린놈이 잘 나가면 짱돌 맞기 딱 좋은 동네다.
그래서 이 건물도 로버트 투자 회사 끼고 구입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적당히 수준껏 살아야 합니다.”
“부자도 능력입니다. 보스, 이번 기회에 시민권 획득하시면 어떻겠습니까?
로버트 말투가 진지했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다면 엄청난 혜택을 받을 것이다.
기업가와 정치권이 유착되면 천하제일 깡패가 된다.
그걸 알지만 그렇게까지 싶지 않았다.
꿈속 할배가 이 민족을 위해 나에게 회귀 기회를 준 것을 안다.
그걸 배신하고 미국 시민이 된다면 벼락을 맞을 게 빤하다.
“로버트. 난 뼛속까지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보스.”
나의 신변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 줄 안다.
대한민국 정치권이 개판이라는 걸 로버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 여기서 버티는 거다.
개판이 차라리 안전할 수도 있었다.
리앤장을 돈 주고 동지로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까르푸는 어떻게 됐습니까?”
“폭락하는 주식을 상당수 매집했습니다. 투자로서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앞으로 벌어들이는 자금 중 상당수를 주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로버트도 알다시피 자유 무역이 진행될수록 거대 기업만 살아남습니다. 규모를 실현하지 못하면 치킨 게임에서 패배합니다.”
거대 기업들의 합병이 앞으로 횡행한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 대기업들이 통폐합되며 거대 공룡이 된다.
자잘한 중소 기술 기업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거대 공룡의 뇌를 지배함이 목적이다.
미국이 쇠퇴하게 된다.
세계 경찰국가 자리를 내주고 중국이 훌쩍 큰다.
투자를 미끼로 기술을 비롯해 지적재산권을 탈취하는 중국이다.
알고도 당하는 기업들이 수두룩 넘쳤다.
옆집 큰 개가 제대로 판을 키운다.
벌어들인 천문학적 흑자로 국가가 나서서 도적질을 권장했다.
그걸 막아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계로 가도 지구로 돌아와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보스, 미력하나마 힘이 되겠습니다.”
표정을 읽어내는 로버트가 눈동자를 빛냈다.
“로버트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진심이었다.
이계에 있는 동안에도 로버트가 많이 생각났다.
서로 도움이 되는 운명적 동지였다.
마주 보고 웃었다.
비행기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직도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로버트.”
“하명하십시오. 보스.”
“유럽에 빈 성이 많이 나올 겁니다. 개중에서 쓸 만한 성들은 모조리 구입하십시오.”
“성요?”
성에서 지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지구에 오자마자 이계의 성에서 봤던 풍경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공업 미세먼지 없는 맑은 공기가 가득하던 성에서의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가격이 폭락했다가 다시 솟아오를 겁니다.”
“팰튼 호텔을 이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한 마디를 던지면 해답을 바로 찾아내는 로버트다.
“좋은 생각입니다. 호텔급 관리를 받게 되면 값이 더 뛸 겁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말이 쉬워 준비지 세부사항 실행을 위해서는 많은 인원들이 매달려 계획을 짜야 했다.
그래서 보스 하는 거다.
“오늘 저녁은 특별히…….”
띠이이이이 띠이이이이.
인터폰이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대표님. 오정그룹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정에서요?”
지금껏 전혀 안면이 없는 오정그룹에서 뜬금없이 온 연락이다.
이해가 갔다.
오정그룹 정보력은 국정원 뺨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에 대해 임성철 회장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연결해 주세요.”
[네.]
수화기를 들었다.
피차 핸드폰 번호는 알지 못하는 사이다.
- 여보세요.
전화가 연결되고 차분한 중년 남성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 장태산 대표님 맞습니까?
“제가 장태산입니다.”
- 반갑습니다. 오정그룹 비서실장 장한수라고 합니다.
오정그룹을 언급하는 목소리에 거만함이 묻어났다.
그래서 어쩌라고?
미래에 이름 좀 날리는 인물이다.
현재 대통령과 짝짜꿍이 잘 맞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 …….
‘아이고! 실장님!’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 예상이 빗나가니 당황한 모양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한민국에서 오정그룹 비서실을 무시할 수 있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거다.
대기업 중에서도 갑 중의 갑이 오정이었다.
- 하하. 장태산 대표가 성격이 화끈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봅니다.
성격 화끈한 건 모르겠고 가끔 더럽기는 했다.
특히 갑질하는 놈들이나 뒤통수치는 자들에게는 확실하게 대접했다.
- 오늘 저녁 시간 되십니까?
갑작스럽게 저녁 시간을 묻는 장한수 실장.
- 회장님께서 오늘 저녁에 보자 하십니다.
임성철 회장이?
그래 한 번쯤 만나 봐도 될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사업하는 인물치고 임성철 회장 만남을 거절할 인물이 없었다.
“맛있는 곳으로 부탁합니다.”
- 네???
“저녁밥 먹자는 소리 아닙니까? 제가 대접해야 합니까?”
- ……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장한수 실장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 알겠습니다. 아주 좋은 곳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손님 한 분 모시고 갈 겁니다.”
- 손님요?
“내일 출국하는 분이라 오늘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배짱을 부렸다.
내 돈 안내고 저녁 먹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로버트가 한글을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껌벅거렸다.
- ……알겠습니다. 장소는 비서실에서 연락 갈 겁니다.
뭔가 씨가 있는 장한수 실장의 말투.
웃겼다.
오정그룹 비서실장 주제에 뭐 어쩌자고?
로버트의 신분을 아는 순간 장한수는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나 오정이지 월가에서는 그냥 그저 그런 대기업 중 한 곳에 불과했다.
전화를 먼저 끊었다.
“로버트 누가 맛있는 저녁 먹자는데 괜찮아요?”
“보스.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