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1,284)

 # 214

회귀의 전설

214장. 깨달음

‘으으으.’

에두아르는 치밀어 오르는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아가씨와 함께 있다던 한국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벼락을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

싸움을 한두 번 해본 놈이 아니다.

너무 차갑고 시려 눈알이 아파 올 정도였다.

전장에서 수십 명을 죽여 본 에두아르가 밀렸다.

남자 주변에 쓰러져 있는 아사신의 시체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자가 든 도끼에 박살이 나고 난도질 된 대가리와 신체 파편이 사방에 널렸다.

잔인한 손속이었다.

업을 삼는 도축업자도 이렇게 동물을 잡지 않았다.

목숨이 붙어 신음 흘리는 두 놈을 빼고 전멸이었다.

두려움이 일었다.

이 정도 숫자의 아사신을 잡기 위해서는 소대 규모 이상의 희생이 따른다.

그런데 남자는 이들 모두를 혼자 해결했다.

그것도 본인은 타격 하나 없이 깔끔하게 말이다.

“좀 늦었네?”

남자가 피식 웃었다.

이름은 다니엘 장이라고 했다.

총구를 겨눴지만 총 따위를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다.

그의 반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위험한 놈이다!’

에두아르는 방아쇠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아사신에 의해 오염된 소 떼로 인해 부하들이 많이 상했다.

사방을 빠르게 살폈다.

아사신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쏠 거 아니면 치워. 쓰레기들 처리해야지.”

태연하게 충고를 건네고 놈은 아가씨에게 다가갔다.

에두아르는 당황했다.

“머, 멈춰!”

“왜? 구해주러 왔다고 생색내고 싶어?”

“…….”

에두아르와 경호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봐도 놈이 아니었다면 아가씨의 목숨은 구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 목숨 또한 보장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물었다.

놈과 아가씨의 관계에 대해 접수했기에 추궁하기도 뭐했다.

“비비~. 눈 뜨지 말고 그대로 몸을 돌려.”

아가씨가 놈의 말을 충실히 따랐다.

인형처럼 움직이는 아가씨.

말괄량이 같던 평소 모습과 다른 모습이었다.

“날아간 내 무기도 부탁해. 비비 진정시켜야 하니까.”

“……알았다.”

에두아르는 남자의 말을 따랐다.

기사단장을 마주한 것처럼 그의 말에 엄청난 힘이 담겼다.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남자가 아가씨를 목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렇다고 무작정 이대로 놈에게 아가씨를 맡기기에는 경호원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에두아르의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놈에 의해 사태를 깨끗하게 정리됐다.

누가 뭐래도 다니엘 장이라는 놈 덕분에 오늘의 위기는 마무리됐다.

“시체들은 처리하고……. 나머지 놈들은 데려간다.”

“알겠습니다.”

경호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처리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DST에도 연락했나?”

“오고 있다고 합니다.”

에두아르는 품에 아가씨를 안아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놈을 봤다.

위험 요소가 완전 제거된 것은 아니지만 아가씨에게는 놈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경호원.

“휴우…….”

참았던 한숨이 절로 새나왔다.

일단 위기 상황은 모면했다.

예상치 못했던 성과도 얻었다.

무엇에 얻어맞은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뒹구는 두 명의 아사신 포로를 획득했다.

지독한 고문을 통해 정보를 쪽쪽 뽑아낼 수 있었다.

***

- 카르마 포인트를 듬뿍 획득했습니다.

지구에 도착하자 마나 포인트가 카르마 포인트로 변했다.

아사신을 제거한 대가로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 대신 선한 카르마 포인트를 줬다.

“다니엘……. 나 괜찮아…….”

눈을 뜨지 말라고 끝까지 감고 있는 비비안.

아직 목소리가 떨렸다.

아사신들이 내 손에 죽어가던 장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천천히 시간이 지나야 악몽의 잔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저벅저벅.

그녀를 안고 피비린내 가득한 공간을 벗어났다.

건물 앞마당으로 나왔다.

맞바람이 불어와 냄새를 날렸다.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하아.”

이제야 큰 숨을 쉬었다.

이계에 다녀 온 일이 꿈만 같았다.

상인과 용병, 난민들과 오크와 조우했던 일들이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꿈틀거렸다.

모두 다 실제 체감한 생생한 사건들이었다.

오크 대전사들의 흉포한 외모는 악몽으로 꾸기 딱 좋았다.

놈들이 뿜어대던 진득한 살기가 눈앞에 선하다.

지금도 등 뒤에서 나타날까 두려운 놈들이다.

다행히 목숨을 부지한 채 돌아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도 생각지 못한 능력을 얻어 돌아왔다.

신들이 도움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비비안도 무사했다.

품에 안긴 그녀는 새털처럼 가벼웠다.

눈앞에서 펼쳐진 죽음과 공포를 꿋꿋이 버텨낸 그녀가 대견했다.

짧은 동행 길이었지만 비비안과 진심 어린 위안을 주고받았다.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아사신의 습격만 아니었다면 그녀와 유럽 일주를 마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여기서 동행을 끝내야 할 때였다.

적들의 공격이 생각보다 강했다.

아사신이 아니라 스나이퍼가 나타났었다면 비비안은 죽었을 것이다.

“미안해……. 다니엘.”

비비안도 이번 위기 상황이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안다.

어느새 그녀가 눈을 떴다.

또로록.

맑은 이슬을 떨어트리는 비비안의 눈동자.

누구 때문이 아니다.

이것도 정해진 운명이었다.

“비비, 우는 거야?”

비비안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은 소중했다.

스무 살 여름, 첫 대학교 방학 기간 만난 프랑스 가출 고양이 비비안.

아름다운 기억밖에 없다.

아사신을 만난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게 완벽했다.

“갑자기 다니엘이 사라졌어.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어…….”

비비안의 촉이 남다르다.

순간이 아니라 영원 같았던 시간 이계에서 죽다 살아왔다.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지만 말이다.

“나도 그랬어.”

사라라락.

그녀의 탐스럽고 보드라운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많았다.

“고마워.”

비비안이 두 팔로 목을 감싸 안았다.

천천히 다가오는 붉은 입술.

거부하지 않았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마주해서인지 더 뜨거웠다.

짧지만 진한 키스가 이어졌다.

입술이 달콤했다.

이계에서 살아 돌아온 보상을 받는 것 같았다.

“큼큼.”

뒤에 나타난 비비안의 경호원이 짧게 헛기침을 뱉었다.

눈치는 있는 것 같다.

“에두아르. 미안해요.”

비비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경호원 쪽으로 돌아섰다.

“아셨으면 됐습니다. 백작님께서 많이 걱정하십니다.”

왕족 가문이라더니 백작 작위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이거.”

에두아르라는 경호원이 한 손에 쥔 도끼를 넘겨줬다.

이마에 힘줄이 보였다.

오크 대전사들이 들던 도끼라 무거울 텐데 자존심을 세웠다.

도끼를 가볍게 받았다.

“!!!”

에두아르가 살짝 놀랐다.

“그런 무기를 들고 용케 여행을 다녔군.”

“이 동네가 많이 위험하니까.”

아공간에 집어넣을 수 없어 들고 있었다.

아사신을 때려죽인 도끼 대가리에 피 한 방울 묻지 않았다.

마력무기의 장점이라고 탈만이 말했었다.

손잡이에 박혀 있는 마력석의 마력이 은은하게 무기를 보호한다.

일반 쇠로는 흠집도 못 낸다.

“일단 아가씨를 구해준 건 고맙다.”

“됐어. 뭘 바라고 한 건 아니다.”

“건방지군.”

파바바밧.

에두아르 시선과 강하게 부딪쳤다.

오늘 한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닌 듯했다.

“에두아르, 제 손님이고 은인이세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다니엘, 나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비비.”

“……보고 싶을 거야.”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갑자기 나타나 또 그렇게 떠나는 고양이 비비안.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어두운 하늘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한두 대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 정말 무난한 것 같다.

이런 난리통에도 조용했다.

삐뽀 삐뽀 삐뽀.

경찰차 사이렌도 울렸다.

“신원보증이 끝났다. 떠나면 된다.”

에두아르나 비비안이나 뭔가 비밀이 더 있는 것 같다.

“아가씨 가시죠.”

헬기가 가까운 곳에 착륙했다.

검은색 양복 입은 경호원들 수십 명이 총을 들고 내렸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연락할게. 다니엘!”

와락 품에 한 번 더 안기는 비비안.

토닥일 시간도 없이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다.

“아공간 개방.”

주변에 보는 눈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빨리 도끼를 감췄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비비안이 탄 헬리콥터가 떠난다.

고양이가 집에 돌아간다.

더 이상 여행의 의미가 없었다.

짧았지만 아주 대만족(?)이었던 프랑스 여행이었다.

띠릭.

핸드폰 단축 번호를 눌렀다.

- 넵. 보스.

언제 들어도 듬직한 로버트의 목소리다.

“로버트, 오늘따라 보고 싶습니다.”

- 무슨 일 있으십니까?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말만 들어도 듬직하고 기분이 좋다.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럴까요? 그럼 이곳으로 와서 저 좀 집에 데려다 주십시오.”

- 알겠습니다.

“편안하게 가고 싶습니다.”

- 큰 놈으로 몰고 가겠습니다.

한 마디 하면 착착 알아듣는 로버트.

“아! 그리고 그 녀석도 준비해 주세요.”

- 처리하겠습니다.

비비안과 함께 탔던 슈퍼카.

한국에 돌아가면 더 마음 가는 대로 살아야 할 것 같다.

이계에서 경험했던 기아 체험.

그야말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이었다.

순간순간 포인트도 쌓고 쓰면서 살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 충분히 마음 가는 대로 베풀고 누리며 살아야 함을 확실히 깨달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