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5화 (205/1,284)

 # 205

회귀의 전설

205장. 이상한 성의 이상한 닭

“단장, 이제 어떻게 해야 하겠소?”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하셔야 합니다. 떠돌이 오크들의 집념은 대단합니다.”

“이곳에 피할 곳이 어디 있다고…….”

마차 수십 대가 평원 위에 멈췄다.

한바탕 전투가 폭풍처럼 훑고 지나갔다.

검붉은 피들이 마차와 주변에 흩뿌려졌다.

인간들보다 머리통 하나씩 큰 오크들이 화살과 창, 칼 따위에 찔려 널브러졌다.

마차를 호위하는 용병들 중에 1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상자는 없었다.

오크 도끼와 검에 맞으면 사망이나 중상이었다.

그나마 떠돌이 오크와 맞닥뜨려 다행이었다.

수컷들로만 구성된 떠돌이 오크 이십여 마리가 겁도 없이 상단을 습격했다.

기습에 당해 피해가 컸다.

신입들이 죽임을 당했다.

상단을 이끄는 상단주와 용병대장의 인상이 좋지 않다.

떠돌이라 불렸지만 오크 무리의 정찰병이다.

다른 떠돌이 오크들이 동료의 피 냄새를 맡고 쫒아 올 것이다.

피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닥치는 대로 모조리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베르샤 백작성……. 그곳이 가깝습니다.”

“베, 베르샤? 그 곳은 저주받은 성이 아니오?”

베르샤라는 말에 제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쩔 수 없습니다. 금방에 도움이 될 만한 마을이나 영지가 없습니다.”

“하아……. 지름길을 택하지만 않았어도.”

상단주 제롬의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상품을 빨리 팔기 위해 지름길을 택했다.

하지만 빠름이 곧 독이 되었다.

“오크들이 이렇게 빨리 준동할지 아무도 생각 못했을 겁니다. 상단주님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마족이 강림했다는 베르샤 영지는 더 위험하지 않겠소?”

“소문만 무성하지 않았습니까. 성이 쓸 만할 겁니다. 영지가 폐허가 된 지 10년밖에 안 됐습니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오크들이 떠날 때까지 버티는 게 최선입니다.”

용병으로 뼈가 굵은 용병단장 탈만이 강하게 설득했다.

‘떠돌이 무리는 최소 수백 단위다. 상행을 강행하다가는 애들이 다친다.’

탈만은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소드 익스퍼트 초급의 용병이었다.

하지만 오크 떼는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알겠소. 그럼 바로 출발하도록 합시다.”

고민하던 제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크 떼의 무서움은 그도 잘 알았다.

“오크 가죽만 벗기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질긴 오크 가죽은 한 마리당 1골드 넘게 받을 수 있었다.

동료들의 시체는 땅을 깊게 파서 묻었다.

능숙한 용병들이 어느새 오크 가죽을 빠르게 벗겼다.

머리에 상처를 내고 쭉쭉 찢어내듯 벗겨냈다.

동료들의 복수라도 하듯 손길이 거칠었다.

“그런데 진짜 베르샤 성에 마물이 있다면…….”

결정했지만 제롬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분노한 오크보다는 마물이 나을 겁니다.”

동료의 복수를 위해 목숨 바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오크들이다.

대륙에서 오크라면 우는 아이도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베르샤 성이 주는 공포도 그에 못지않았다.

10년 전까지 풍요로웠던 베르샤 백작성이었다.

그곳에 마계의 마물이 소환됐다는 소식이 대륙에 쫙 돌았다.

몬스터나 마수도 아닌 마물은 인간들에게 공포였다.

인간들이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영주를 비롯해 모든 영지민들이 모두 도망쳤다.

대단한 능력자인 백작이 혼비백산해 도망칠 정도로 마물은 강했다.

소문은 과장되고 더 부풀려졌다.

거대한 영지 하나가 하루아침에 텅 빈 채 그대로 폐허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소문의 마물보다는 눈앞의 오크가 더 무서웠다.

***

깡! 깡! 깡! 깡!

“샐러맨더 화로를 화끈하게 달궈봐! 오늘따라 왜 이래?”

성질 더러운 불의 정령을 갈궜다.

자극할수록 녀석은 힘을 더 냈다.

“실프야! 바람이 약해지잖아! 어제 밥 안 먹었어?”

착한 실프는 조금만 갈궜다.

부동심 능력자인지 전혀 감정의 동요가 없는 놈이다.

“노움아 무결점 황토 맞지?”

성격 까칠한 대지의 정령에게는 친절하게 물었다.

“운디네, 담금물 좀 정화 해줘~.”

아기 같은 물의 요정에게는 더욱 더 조심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 세계에 도착한 지 어언 한 달이 지나갔다.

정령들을 모두 소환했다.

웃통을 벗고 힘차게 모루 위 칼날을 정을 이용해 신나게 팼다.

정신없이 정령들을 조종했다.

맑은 지장수 황토물이 들어있는 담금물에 새빨간 칼날을 담갔다.

치이이이이이이익.

새하얀 수증기가 앞을 가렸다.

“실프! 공기 정화!”

수증기가 팍 피어나자 실프가 바빠졌다.

휘리링 바람이 불어 수증기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쓸 만하네.”

흡족하게 틀을 잡은 장검을 들며 만족했다.

무게감과 균형감이 제대로였다.

- 정령의 도움을 받아 대장장이 레벨이 초급 3단계로 진화했습니다. 이제부터 쓸 만한 무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 정령들과의 친화력이 상승했습니다.

- 마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아오! 노가다의 석사 코스냐? 경험치 봐라. 미치겠네…….”

한숨이 나왔다.

내성에 위치한 대장간에서 한 달 가깝게 망치질을 했다.

게임처럼 무슨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능력을 개발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지난 시간 동안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동물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집 저 집 구경하며 쓸 만한 물건을 모았다.

마을에 심어진 과일 나무의 열매로 배를 채웠다.

막 자란 채소들도 상당했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할 일이 없었다.

밖은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나가지 못했다.

낡은 성문을 수리했다.

내성과 외성에는 대장간이 존재했다.

드워프 대장장이 바쿨라의 축복으로 망치를 잡으면 머리에 이것저것 많이도 떠올랐다.

마나 포인트가 벌렸다.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아쉬운 대로 포인트를 모았다.

반성도 많이 했다.

카르마 포인트가 차원 이동에 사용할 수 있는 보물인 줄 몰랐다.

진작 알았다면 더 알차게 신들에게 후려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매일 망치질을 쉬지 않았다.

레벨업이 되면 포인트가 보너스로 나왔다.

정신 나간 집구석 같은 성에서 대장간은 다행히 멀쩡했다.

여기저기 주워온 장작으로 녹슨 철들을 녹여 무기나 방어구 따위를 만들었다.

장금이 누님 레시피처럼 머리에 설계도가 가득 찼다.

포인트 버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뭔지 모르지만 강해져야만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을 뿐이다.

이곳은 총이 없는 세상이 확실했다.

발견한 무기들은 화살, 창, 검, 쇠뇌 따위였다.

살아남기 위해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했다.

정령과의 친화력을 높였다.

그것도 포인트를 줬다.

무술 수련도 쉬지 않았다.

한 번 죽어봤던 인간에게 쉬는 시간이라는 틈은 필요 없었다.

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좋은 무기는 강도와 연성을 골고루 갖춰야 했다.

녹는점이 가장 높은 순수철과 무른 쇠, 강한 쇠를 섞어 메질을 퍼부었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실전이지만 놀랍도록 빠르게 대장장이 스킬을 흡수했다.

의외로 천직 같은 생각도 들었다.

컴퓨터에 앉아 돈을 주무르는 것보다 현실감이 높았다.

매일 불어나는 체력과 친화력 좋은 정령을 이용했다.

정령들은 아이 같았다.

시간 날 때마다 불러주자 엄청 좋아했다.

녀석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드래곤 호흡법 덕분에 내공이 부쩍 늘었다.

천룡신군보다 더 빠르게 내공이 흡수됐다.

내공이 늘자 정령 소환 후 교감 시간이 길어졌다.

녀석들은 상일꾼이다.

돈도, 간식도 필요 없는 정령들을 열정페이로 부려 먹었다.

알바비 떼어먹는 악덕 업주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했다.

돈도 먹을 것도 필요 없는 유노동 무임금 환상세계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먹는 거라고는 마나밖에 없었다.

“가서 쉬어~”

파아아앗.

정령들이 돌아갔다.

스윽.

바닥에 떨어져 있는 손도끼들을 집었다.

훤히 보이는 대장간 바깥 나무 과녁판.

“이얍!”

기합을 힘껏 지르며 연습용으로 만들었던 도끼들을 연달아 날렸다.

퍼어억! 퍼억! 퍼억!

“나이스!”

손도끼들은 정확히 50미터쯤 떨어진 대형 나무과녁에 깊숙이 박혔다.

내공을 사용한 덕분에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어제 제작한 통 쇠도끼 한 자루를 잡았다.

족히 10킬로그램이 넘는 도끼가 가뿐하게 손에 들렸다.

상당한 무게였지만 이제는 익숙했다.

그리고 시작된 도끼 춤.

“타앗!”

아무도 보는 자가 없었다.

딱 미치기 좋은 이계 생존이다.

흥도 돋웠다.

태극양의권의 투로를 따라 도끼춤을 췄다.

부우웅! 부우웅!

태극양의권의 변형 도끼술은 쓸 만했다.

답답할 때 한 판 시원하게 추고 나면 숨이 트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동작으로 도끼가 공간을 갈랐다.

그렇게 도끼술 한 세트를 마쳤다.

“후우우웁~ 후우우.”

단내가 입에서 훅훅 뿜어졌다.

- 무기술 경험치가 빌어먹게 증가했습니다.

“야! 이 슈퍼 짠돌이 새끼야! 알파닥! 너 그러는 거 아니다. 하필이면 빌어먹게냐!”

알림음 저 자식이 미쳤다.

처음부터 불친절했던 놈이 이제는 속을 박박 긁었다.

돌아오지 않는 알파닥에게 욕을 퍼부었다.

알파닥은 시비를 걸고 불리하면 대답이 없었다.

다만 칭호로 괴롭혔다.

20일 전까지 칭호는 ‘실전도 모르는 풋내 쩌는 초급 용병 따위~’였다.

10일 전 칭호는 ‘아는 것도 없는 뭣만한 똘아이’ 등등.

3일 전 칭호는 ‘메추리알 두 쪽의 막장 이계인’.

수시로 괴롭혔다.

그 이후로 상태창을 안 봤다.

더럽고 치사해서 상태창을 소환하지 않았다.

안 봐도 알파닥은 자기의 특권을 살려 알림음으로 약 올렸다.

실제 게임처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게임 형태를 띠었지만 순수 쌩 리얼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창을 들었다.

그동안 제조한 창이 수십 자루다.

내성 무기 창고에 녹슨 창들이 제법 많았다.

그걸 모조리 끌어다가 수리했다.

“하압!”

힘찬 기합과 함께 창을 던졌다.

쉬이이이이익! 퍼억!

100미터쯤 떨어진 창 과녁에 힘차게 박혔다.

창도 연달아 날렸다.

그리고 통 쇠창 하나를 잡았다.

이틀 전에 완성한 쇠창은 검은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흡족했다.

이거 하나면 아사신 애들 피떡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땀을 닦고 창술을 수련했다.

수련은 진하게 계속됐다.

창이 끝나고 활을 들어 화살을 날렸다.

창고에 녹슬어 무뎌진 화살이 제법 많았다.

화살촉을 모조리 새로 개조했다.

대장장이가 되자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병만이 형도 이제 내 앞에서는 안 됐다.

마지막으로 검을 들고 검무를 췄다.

수련 시간은 숭고했다.

강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이 참사.

이 악물고 수련과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 ……미약한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 ……노력에 어울리지 않는 경험치를 얻었습니다.

- 마나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연속해서 경험치 증가음이 들렸다.

“흐허헉……. 헉.”

숨이 찼다.

지구에서도 놀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퍼부은 노력에 비하면 반에 반도 안 됐다.

“진짜 피도 눈물도 없는 이계 발암 고구마 성장드라마가 따로 없네…….”

숨을 고르고 고개를 저었다.

잘나가는 게임 캐릭터들처럼 딱 하나만 키우고 싶었다.

“뭘 해서 레벨을 올려야 되는 거야? 휴우.”

현재로써는 최고의 포인트 벌이는 이것밖에 없었다.

생각하면 한숨만 팍팍 나왔다.

꼬로록.

이 와중에도 배꼽시계가 구슬프게 울었다.

진짜 현실이었다.

상처도 나고 배도 고팠다.

꼬끼오~ 꼬고고고고고고!

그때 요란하게 닭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이상한 성에서 살아가는 나와 비슷한 이상한 닭.

녀석을 또 만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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