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1,284)

 # 200

회귀의 전설

200장. 초청하지 않은 손님들 (1)

“도대체……. 그놈 정체가 뭐야!!!”

가브리엘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자괴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생에 다시없을 충격을 맛봤다.

자신이 주도해 열어왔던 파티를 망쳐버렸다.

한순간 허수아비가 돼 버렸다.

원래 계획과 완벽하게 틀어졌다.

비비안과 나타난 한국인 다니엘 장, 그놈은 가브리엘의 상상을 뛰어넘는 능력자였다.

놈은 프로방스 음악 축제에서 믿지 못할 피아노 연주 실력을 뽐내며 유럽 음악계를 하루 만에 발칵 뒤집어 놨다.

그런 놈이 바이올린 활대까지 잡았다.

“미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브리엘의 입에서는 욕이 터졌다.

부드럽게 불어오는 지중해 바람을 맞으며 놈이 바이올린을 켰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

제목이…… 천상의 환희 중 ‘바람의 축제’였다.

경쾌하게 울리는 첫 음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구름을 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자작곡이 분명했다.

곡에 담겨 있는 감정의 느낌이 엄청났다.

마르세유 언덕 위 별장에서 지중해를 향해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은…….

환상적이고 몽환적이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놈이 켜는 바이올린 선율에 따라 바람이 춤을 추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세상에, 귀로 소리를 듣는데 눈앞에 환상이 보였다.

바람을 타는 요정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 단독 소나타였는데 한 편의 뮤지컬을 연상시켰다.

모두 눈물 흘릴 정도로 벅찬 감동을 맛봤다.

바이올리니스트 엘리는 놈의 연주가 끝나자 달려가 안겨버렸다.

그리고 펑펑 울며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거기에 존경한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뱉었다.

초청했던 마르세유 시장 아들과 샤넬 손녀도 마찬가지였다.

뮤즈의 재림이라고 극찬을 쏟아냈다.

모델들도 연락처를 얻기 위해 안달이 났다.

놈은 태연하게 모든 것을 즐겼다.

요리사들과 함께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다.

……맛있었다.

이건 뭐 능력이 전천후였다.

놈은 자신이 한국에 있는 유명 대학교 학생이라고 밝혔다.

비비안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질투에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주객의 입장이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다.

“……한국 재벌이라도 되는 거야? 요트도 아니고…… 크루즈라니…….”

파티를 휘어잡으며 다음 날 파티에 별장에 있는 모두를 초대했다.

다른 손님을 초청해도 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구 항구에 오후 2시까지.

열받은 가브리엘도 친구들과 함께 참석했다.

그리고 가브리엘은 그곳에서 절망을 제대로 맛봤다.

항구 저 멀리 떠 있는 14만 톤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크루즈.

거기로 초대됐다.

최근 이탈리아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본격 투입 예정이라던 크루즈였다.

놈의 초대에 하루 만에 300명이 넘는 유명 인사가 참석했다.

파리에서 급히 고속열차를 타고 온 이들도 있었다.

프로방스에 찾아왔던 유명 음악가들 대부분도 왔다.

그렇게 시작된 파티.

한 병에 1,000유로에 가까운 최고급 와인이 쫙 깔렸다.

요리사들 수준도 5성급 수석 셰프급이었다.

수준급 교향악단이 분위기를 더했다.

촬영 장비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펼쳐진 놈의 원맨쇼.

3곡의 자작 피아노 소나타가 연주됐다.

그걸로 끝났다.

놈을 위한, 놈에 의한, 놈의 파티였다.

“크으!”

이틀 만에 인생 바닥을 친 듯한 절망을 맛본 가브리엘은 쓴 입맛을 다셨다.

친구들도 어제 모두 떠났다.

홀로 별장에 남아 독한 위스키를 마셨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핸드폰이 울렸다.

“가브리엘입니다.”

아버지 전화였다.

-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버럭 호통 소리부터 들렸다.

평소의 인자하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니 그게 무슨…….”

- 감히 발루아 가문을 건들다니…….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소문이 난 것 같다.

“사실은…….”

- 됐다! 너 하나 때문에 지금 회사 주인이 바뀌게 생겼다! 당장 집으로 돌아와!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일체 모든 파티는 금지다!

“!!!”

아버지의 통보에 가브리엘은 정신이 멍해졌다.

평소 사교 파티를 장려해 왔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 에잇! 못난 놈!

일방적으로 끊기는 통화.

“아…….”

가브리엘은 충격을 받아 소파에 주저앉았다.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며칠간의 악몽.

눈을 떴다 감으면 하룻밤 꿈이 되어 버리길 가브리엘은 간절히 소망했다.

***

“정말 동화 같아…….”

비비안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7월의 프랑스 시니레로즈라는 시골 마을의 늦은 오후.

랭스에서 차를 타고 30분이 걸려 찾아온 소규모 와이너리는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오전에 내린 비로 안개가 점점 짙어지더니 천천히 저녁 어둠이 찾아왔다.

안개 속으로 서서히 잠겨 들어가는 포도밭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와인의 요정을 신으로 만든 뒤 이쪽 분야에 취미가 생겼다.

프랑스 여행도 주 여행지가 와이너리였다.

수만 개가 넘는 유럽 와이너리는 그 자체가 역사의 보고였다.

오늘 숙박하게 된 여기 상파뉴 가르데도 그중 한곳이다.

비비안과 똑 닮은 백장미가 와이너리 상징이다.

와인의 요정 기억 속에 세련된 풍미와 굉장한 퀼리티를 자랑하는 와인 맛이라고 저장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이 훌륭하다는 정보가 함께 있었다.

비비안도 대만족이다.

그녀는 어떤 여행 장소를 막론하고 모두 좋아했다.

이렇게 자유로운 시간을 처음 가져본다고 했다.

성에 사는 공주님으로 불릴 만했다.

옷차림을 최대한 편하게 입었다.

다시 젊은 여행자 콘셉트로 돌아왔다.

호화로웠던 크루즈 파티도 성대하게 끝났다.

로버트의 도움으로 유럽 투자 법인들이 발 벗고 나섰다.

아닌 게 아니라 돈을 처발랐다.

술과 요리, 교항악단급의 악단까지 초호화 아닌 게 없었다.

굳이 돈 따지지 않았다.

지금도 수입이 통장에 꽂혔다.

순간순간을 즐길 뿐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파티는 성대하게 끝이 났다.

가브리엘뿐만 아니라 이제 그 누구도 비비안을 무시하지 못했다.

확실하게 자근자근 밟았다.

크루즈 파티장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술을 퍼마시던 가브리엘.

눈길도 주지 않았다.

타인을 밟을 때는 인간미 제로이고 본인이 당하면 폼 잡는 놈들 본 게 한둘이 아니다.

값싼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그는 부모 잘 만난 덕분에 앞으로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집에서 반성하고 살아야 할 거다.

로버트가 철저하게 훈계할 게 자명했다.

이곳도 상류 계층은 부모들이 엄격하게 통제했다.

“너무 좋아. 다니엘~.”

비비안 목소리에 행복함이 가득 담겼다.

굵은 나무가 흔들리는 야외 소파에 앉아 와인을 마셨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곳도 블랙 카드가 통했다.

주인들만 드나들던 지하 와인 창고가 개방됐다.

맛 좋은 와인을 선물받았다.

하룻밤 묵고 가라며 와이너리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를 내줬다.

치즈와 과자 따위의 안주와 달콤한 와인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뤘다.

스르륵.

비비안의 고개가 살며시 어깨에 기대어 왔다.

슈퍼카를 버리고 우리는 빨간 티구안을 다시 몰았다.

비비안은 슈퍼카보다 티구안을 더 좋아했다.

액세서리도 귀찮다고 모두 빼버렸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의 순백 미소가 사랑스럽다.

오는 동안에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피곤할 시간이다.

와인까지 한잔했으니 체력이 방전되고도 남았다.

둘 다 옷차림은 편안했다.

청바지에 셔츠, 츄리닝 세트, 텐트가 실려 있는 티구안이 더 타는 맛이 났다.

마르세유에 더 있다가는 사람들에게 몸살이 날 것 같아 도망쳐 나왔다.

한번 맛봤으면 됐다.

소문이야 나겠지만 보디가드들을 동원해 철저하게 촬영을 막았다.

내 연주는 라이브로 들어야 맛이다.

악보가 풀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절대 음감의 소유자라도 불가능했다.

신들이 창작한 곡이다.

따라 해보고 싶어도 연주 속도나 기교가 인간이 소화할 수준이 아니다.

오직 나만이 가능했다.

물론 카르마 포인트도 엄청나게 벌었다.

인간들에게 강한 감동을 줄수록 카르마 포인트는 많아졌다.

사락.

비비안이 와인 잔을 놓고 손을 잡아왔다.

보드라운 그녀의 손 느낌이 좋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어도 우리들은 충분히 행복을 만끽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단 5일 동안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이제 이해가 됐다.

사랑은 결코 시간에 제약받지 않았다.

비비안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따뜻했다.

시크한 외모와 달리 마음이 여렸다.

강한 척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성품은 청초한 백합과 같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비비안은 꿈결처럼 속삭였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나도 그렇다.

비비안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비어 있는 왼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줬다.

비단처럼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키스를 하지 않아도 매 순간에 많은 교감이 오갔다.

머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념을 털었다.

오직 이 순간만이 우리 삶의 증거였다.

갈수록 안개가 점점 짙어졌다.

생각보다 어둠이 빨리 내려앉았다.

스스스스스스스슷.

“???”

와이너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몰려왔다.

축축했다.

자연적인 안개가 아닌 마치 인공적으로…….

“!!!”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운은 살기!

비비안을 쓰다듬던 손이 멈췄다.

긴장으로 몸이 굳었다.

“다니엘?”

교감하던 비비안이 눈치를 챘다.

찌르르르르르르.

좀 더 강해지는 살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장주시에서 습격했던 습격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살기가 음습하게 차분했다.

이곳은 포위가 됐다.

불빛도 전파되지 못하는 짙은 안개가 점점 불길해졌다.

“비비안…….”

그녀를 조용히 불렀다.

난 상관없지만 비비안이 문제였다.

무공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비비안이 타깃이라면…….

“다, 다니엘…….”

무언가 느낀 비비안이 떨었다.

그녀를 일으켜 세워 등 뒤로 보냈다.

옷자락을 잡고 떠는 비비안.

그녀가 느낄 정도로 살기는 진하고 가깝게 다가왔다.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게 없었다.

와인병을 들었다.

파장창!

왼손으로 와인병을 깨트려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내공이 가미되자 검처럼 단단하게 변했다.

그때 무언가 어슴푸레 보였다.

안개 속에서 다가오는 일단의 그림자.

사냥감을 향해 나아가는 범처럼 보인다.

거의 지면에 닿을 듯한 낮고 특이한 동작으로 다가왔다.

주변 사물들의 그림자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짙은 안개 속에 숨어 있는 초청하지 않은 손님들.

“크흐흐흐흐흐흐흐흐흐.”

놈들의 웃음이 자욱한 안개처럼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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