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회귀의 전설
198장. 파티에 초대 받다 (3)
“감히 보스에게…….”
로버트는 보스와 통화를 끝내고 이를 갈았다.
같잖은 상류층의 보이지 않는 갑질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과거 관리자급이었음에도 로버트는 미국 상류 사회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지금이야 상류 주류층에서 로버트를 대면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월가의 떠오르는 큰손이자 투자의 천재.
현재 로버트를 수식하는 말이다.
정치계와 재계, 문화계에서 로버트 섭외를 따기 위해 매일 전화 세례를 퍼부었다.
하다못해 이혼한 아내와 자식들도 얼마 전에 연락이 왔다.
과거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면서 미안하다며 같이 노후를 아름답게 설계하자던 전 와이프.
로버트는 치밀어 오르는 욕을 가까스로 참았다.
유럽에서 이주한 멸망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아내는 로버트를 은근히 무시했었다.
실업자가 되자 바로 도망치듯 로버트를 떠난 주제에 다시 합치자고 했다.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엄연히 독립해 각자 살 만하면서 아빠가 필요하단다.
웃기는 개소리였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지켜야 할 기본 예의가 있었다.
청춘을 다 바쳐 가족에게 헌신했던 로버트였다.
일순간 실업자가 되고 거지꼴이 되어 버렸을 때도 전화 한 통 없고 밥 한 끼 사주지 않던 놈들이다.
그랬던 자식들이 이제 와서 아빠가 필요하다고?
로버트는 그들 모두를 놓은 지 오래고 또 잊었다.
이미 독립해서 각자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해줬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굳이 지옥으로 다시 들어가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마르셀 드로포이……. 넌 네 자식 때문에 눈물 좀 흘려야 할 것이다!”
월마트, 테스코에 이어 세계 3위의 다국적 기업.
그 기업의 부사장이자 창업자의 아들인 마르셀 드로포이에 대해 로버트는 선전포고를 했다.
짧은 시간 보스의 말을 듣고 알아봤다.
가브리엘이라는 녀석은 셀럽이 되기 위해 사방팔방 돈질을 하고 다녔다.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못한 위치의 사람들을 싸가지 없이 대한다는 인간성 정보까지 획득했다.
로버트가 투자하고 있는 유럽 법인들은 정보력이 빨랐다.
보스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유럽계 회사들에 경종을 울려 줄 필요가 있었다.
기회가 좋았다.
유럽 법인을 통해 보스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모두들 경배하라. 그분은 나의 보스이시다!”
주먹을 움켜쥐는 로버트.
그 시각 까르푸에 대한 엄청난 국제적 공매도가 실시됐다.
퇴근 무렵의 까르푸 본사는 주가 폭락에 아연실색했다.
순식간의 벌어진 대규모 주가 폭락 사태에 까르푸 본사는 혼란에 빠졌다.
장 마감 시간 30분 전에 일어난 대규모 투매였다.
전 거래일보다 10프로 이상 빠지면서 대폭락을 맞이했다.
***
“비비안이 올까?”
“글쎄……. 학교에서도 자존심 높기로 소문난 비비안이?”
“가문이 대단하잖아. 가브리엘 오늘 좀 위험했어.”
“망해버린 왕가 후손이 뭐가 대단해.”
“안 망했어. 비비안, 보디가드들과 함께 다니는 거 몰라?”
“됐어. 그 정도가 뭐가 대단해.”
“비비안의 아빠는 성(城)도 갖고 있어. 대단한 귀족이라고.”
“……안 두려워. 그까짓 귀족 가문.”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이 가깝게 보이는 마르세유의 언덕 위 부자 마을 생폴드방스.
마르세유의 구 항구가 훤히 보이는 별장 저택에서 가브리엘과 친구들이 대화를 나눴다.
방학을 맞아 유명 셀럽들을 초청했다.
까르푸 부사장이자 대주주인 아버지가 허락한 파티다.
그는 독자인 아들을 사교계에 일찍 데뷔 시키려 했다.
가브리엘도 파티를 좋아했다.
셀럽들과 모여 수다를 떨고 미녀들과 썸을 타는 건 취미 생활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기분이 좋지 않았다.
파리 4대학에서도 가장 미모가 뛰어난 비비안에게 공을 들였지만 번번이 물만 먹었다.
가브리엘은 큰 키에 금발, 운동으로 단련된 몸, 집안도 잘 살았다.
다만 귀족 가문은 아니었다.
가브리엘이 비비안에게 접근한 이유에는 그의 집안이 귀족 가문이 아니라는 점도 한몫했다.
유럽에서는 상위 계층이 되는 조건으로 가문을 우선해서 따졌다.
보이지 않는 벽과 같았다.
그러다 보니 명망 있는 귀족 가문과 혼인을 통해 후손들의 미래를 바꾸려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계라도 귀족 가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목적과 욕심에 비비안에게 들이댔던 가브리엘.
화를 참고 마르세유에 왔다가 그녀를 만났다.
마르세유에서도 이름난 레스토랑인 그곳에서 조우했다.
그런데 눈앞의 광경에 열불이 났다.
평소 보이지 않던 미소를 지으며 비비안은 동양 놈 하나와 함께 있었다.
그것도 커플 옷을 입은 상태.
눈이 뒤집힌 가브리엘은 시비를 걸었다.
평소라면 비비안의 가문 때문에 조심했겠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이성을 잃었다.
더욱이 상대는 동양 놈.
큰 키에 잘생긴 놈이었지만 그래도 냄새나는 황인종이었다.
건방진 놈을 밟아주기 위해 파티 얘기를 꺼냈건만 놈은 대차게 받았다.
우스웠다.
감히 어떤 파티인 줄도 모르는 주제에 큰소리를 쳤다.
외모와 달리 차림이나 기본 액세서리가 딱 봐도 형편없었다.
누가 봐도 프랑스에 여행 온 동양 촌놈이었다.
기꺼이 놈을 파티에 초대했다.
찾아만 온다면 상류층이 어떤 건지 보여주고 완벽하게 조져 버릴 생각이었다.
오지 않으면 다음 학기 때 비비안을 씹기 좋은 안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 뭐야? 잘생겼던데…….”
“그렇지? 동양인 치고는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았어. 운동선수인가?”
“모델 같지 않아?”
“그럴 수도…….”
가브리엘만큼은 아니어도 집안 재정이 되는 학교 여자 친구들이 가브리엘의 속을 뒤집었다.
“릴리, 클레흐. 그건 아닌 것 같아. 그래 봐야 냄새나는 동양인이야.”
가브리엘의 친구 위고가 눈치를 보며 끼어들었다.
위고는 친구 덕분에 럭셔리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괜히 자존심 센 가브리엘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아마 오지 않을 것 같아.”
“저기 게스트들 오네.”
릴리와 클레흐도 관심을 돌렸다.
그녀들도 오늘 파티가 기대됐다.
방학 때 즐기는 이런 고급 파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상당한 비용이 지불되는 파티를 공짜로 누리는 건 기분이 좋았다.
찾아올 게스트들과의 유쾌한 만남도 기대하고 있었다.
입을 다문 까칠한 가브리엘을 더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별장 마당에서 벌어지는 만찬 준비는 완벽했다.
호텔 출장 팀이 왔다.
적당한 안주와 맛있는 와인이 가득했다.
여러 번 파티를 주최했던 가브리엘이 이번에는 특별히 더 신경 썼다.
마르세유뿐만 아니라 음악 축제 때문에 가까운 프로방스를 찾은 유명 인사들 상당수를 초청했다.
친구들 넷은 긴장했다.
이렇게 큰 파티를 부모님 없이 치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슈트와 드레스를 차려 입고 대기했다.
오늘 초대 손님은 모두 30명.
그들과 안면을 튼다면 파리에서도 파티에 초대받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연결되는 인맥.
앞으로 사업을 하거나 무엇을 해도 한 번 맺은 인맥은 도움이 된다.
끼이이익.
약속 시간에 맞춰 차들이 속속 별장에 도착했다.
잘 차려입은 남녀들이 미소를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들이 차를 한쪽으로 주차했다.
“가브리엘~ 얼마 전에 보고 또 보는군요.”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엘리 양.”
“프로방스에서 가까워서 다행이에요.”
떠오르는 유럽의 샛별 같은 바이올리니스트 엘리 미셀이 첫 번째 손님이었다.
같은 연주자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찾아왔다.
미모가 대단했다.
“이쪽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객원 연주자로 선발된 피아니스트 아일라 던컨이라고 해요.”
“아! 아일라 양!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일라는 아이보리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순결해 보이는 모습에 가브리엘의 만면에 미소가 번졌다.
‘예쁜데?’
아일라는 요즘 상류층에서 자주 회자되는 이름 중 하나였다.
대단한 여류 피아니스트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거기에 미모까지 더하니 곧 유럽 사교계의 별이 될 게 확실했다.
“릴리. 두 분을 안내해줘.”
“안녕하세요. 릴리라고 합니다.”
릴리는 비주를 나누며 여자들을 한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연달아 손님들이 도착했다.
“가브리엘~!”
“지젤. 오랜만이야.”
“네 초대를 받고 파리에서 바로 날아왔어. 별장 멋진데?”
파리와 밀라노 디자이너들에게 핫하게 사랑받는 슈퍼 모델도 찾아왔다.
가브리엘의 엄마가 운영하는 샤넬 매장의 단골손님이었다.
“여기 인사해. 이쪽은 영국에서 온 애나, 그리고 이 아름다운 비너스는 그리스 출신의 나탈리~.”
모델 지젤은 푸른색이 가미된 금발이 인상적인 매혹녀였다.
함께 따라온 모델들도 스타급 모델이었다.
이들은 젊고 유명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열리는 파티를 적극적으로 찾아 다녔다.
파티를 빛내는 또 다른 목적을 가진 꽃이었다.
“클레흐, 내 소중한 친구들 부탁해. 지젤은 와인이 약하니까 물을 줘.”
“오! 무슨 소리야. 오늘을 위해 내일까지 스케줄을 비워 놨다고~. 클레흐, 이번이 두 번째죠?”
“반가워요. 지젤~.”
어른들이 주최하는 파티와 다르게 오가는 대화는 가벼웠다.
그래도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했다.
사교계에서 한 번 안 좋은 소문이 나면 타격이 컸다.
적당한 눈치와 언변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소양이었다.
그렇게 손님들이 한둘씩 모여들었다.
마르세유 시장 아들, 그의 여자 친구인 대기업 샤넬의 손녀 이자벨까지 면면이 다 화려했다.
타고 오는 차들도 대부분 슈퍼카였다.
BMW나 벤츠는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프랑스 상류층에서는 자동차도 패션과 명예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로 보았다.
격조 높은 파티에는 렌트를 해서라도 슈퍼카를 탔다.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은 넘지 않았다.
다들 아직 나이가 어렸다.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부모나 가문이 주는 부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나이가 주는 한계였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지만 지도층의 넘쳐나는 흥청망청은 언론과 국민의 타깃이 됐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다들 더 몸을 사렸다.
“이제 다 온 거 같지?”
“아마도~.”
“비비안은 다음 학기에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후후.”
가브리엘은 손님들 수준에 대만족했다.
예술계, 경제계와 모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떠오르는 젊은 저명인사들 상당수가 찾아왔다.
파티 초대장을 거절한 이는 거의 없었다.
낮에 만났던 비비안과 동양인을 빼고.
부으으으으응.
그때 언덕 별장을 향해 올라오는 묵직한 배기량 소리가 들리더니 밝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라이트가 일반 차와 달랐다.
“???”
“무슨 소리야?”
가볍게 바람이 불어오는 별장 마당에서 다과를 즐기던 이들의 시선이 입구로 향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이곳 별방까지 막연히 찾아 올 사람은 없었다.
유난히 낯설고 크게 울리는 차의 배기음.
부으으으으으으으릉.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별장까지 올라오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는 붉고 검은 실루엣의 자동차.
“오우!”
“부가티???”
“진짜야?”
돈만 있다고 구입이 가능하지 않은 슈퍼카 중의 슈퍼카 부가티 베이론.
끼이익.
묵직한 배기음을 자랑하며 멈췄다.
“가브리엘? 누구 또 초대했어?”
“어? 아니…….”
위고의 질문에 가브리엘도 당황했다.
부가티 베이론의 가격은 200만 유로가 훌쩍 넘었다.
주차되어 있는 슈퍼차보다 최소 다섯 배 이상 비쌌다.
그런 차를 타고 방문한 초대 받지 않은 손님.
모두의 시선이 굳게 닫힌 부가티 베이론의 운전석 쪽으로 쏠렸다.
딸깍 운전석 문이 열렸다.
가볍게 차에서 내리는 남자.
훤칠한 게 키가 크다.
사람들 시선을 받으며 걸음을 옮겼다.
손끝으로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비비…… 안.”